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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뉴 뮤직의 일곱 남자 2

2016.03.17

by VOGUE

    브랜뉴 뮤직의 일곱 남자 2

    유행 따라 힙합 하는 요즘 이 남자들은 진국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힙합 벌판을 10년 넘게 지켜왔다.
    국내 굴지의 힙합 레이블 브랜뉴뮤직의 아티스트들.
    버벌진트와 태완, 트로이 멤버인 범키, 칸토, 재웅, 창우, 그리고 레이블 수장인 라이머까지.
    가을 초입의 어느 하루, 이 일곱 남자와 함께 야밤을 지새웠다.
    ‘스왝’과 ‘리스펙트’로 다져진 힙합의 기운이 도시의 밤을 갈랐다.

    버벌진트브랜뉴뮤직의 간판 뮤지션. 2001년 자비로 찍은 앨범 가 한국형 라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과 함께 힙합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정받았다. 이후 ‘좋아 보여’ ‘충분히 예뻐’ 등의 히트곡으로 대중적 인기도 얻었고, 9월 말 새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여자 모델의 큐빅 장식 원피스와 가죽 모자는 구찌(Gucci), 블랙 레이스업 힐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골드 반지는 지방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볼드한 진주 반지와 초커는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버벌진트의 스웨트 셔츠는 지방시, 핀스트라이프 팬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검정 에나멜 레이스업 슈즈는 톰 포드(Tom Ford).

    의외의 첫인상이었다. 처음 도착한 건 트로이였는데, 이들은 거의 90도 아이돌 인사를 해왔다. 힙합 좀 한다는 남자들이 넷이나 모였으니 질펀한 욕설을 한바탕 기대했는데 예상 밖의 예의 바름이었다. 나 잘난 맛에 호령하던 무대 위에서의 거들먹거림도 없었다. 그저 이들은 사이좋게 모여 담배를 피웠고,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도 알아서 배급해갔다. 옷으로 다 감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흔한 타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자리에서까지 날뛰면 되나요?” 2003년 브랜뉴뮤직을 만들어 10년 넘게 레이블을 지키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자 뮤지션인 라이머가 한마디 던지며 걸어왔다. 그 역시 점잖은 신사의 품새였다. 그는 2007년 1집 로 데뷔했고, 이후 몇 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지금은 프로듀서이자 레이블 대표로서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놀 때는 다들 잘 놀아요.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 격식을 지켜야 할 때 또 잘 지켜야죠.(라이머)” 근데 이렇게 모인 다섯 남자의 면면을 보니 다소 빳빳했던 이날 분위기가 이해될 것 같았다. 트로이는 올해 3월 갓 데뷔한 신인 그룹. 멤버들 나이도 천차만별이라 막내인 칸토와 큰형 격인 재웅의 나이 차는 무려 열세 살이고, 대표인 라이머와 칸토 사이에는 거의 한 세대 가까운 시간의 간극이 있다. 또래끼리 모여 서로 잘났다 떠드는 요즘 힙합 무리와는 다른 집단인 거다. 멋과 맛, 그리고 그 멋과 맛을 지켜온 시간의 진중함이 이 남자들의 ‘스왝(Swag)’에 있었다.

    브랜뉴뮤직은 사실 래퍼 군단 같은 집단이었다. 2000년대 레이블이 막 간판을 올리고 활동할 때 회사를 대표한 건 굵은 저음으로 읊조리는 듯한 라이머의 랩과 날카롭고 예리하게 찌르는 버벌진트의 메시지였다. 윤민수가 피처링한 데뷔 타이틀곡 ‘그녀가 없다’에서 라이머는 거의 전투하듯 달려오며 랩을 한다. 하지만 브랜뉴뮤직도 요즘 변했다. 범키의 부드러운 보컬이 더해졌고, 잽싸고 쫀득쫀득한 산이(San E)의 랩 곁엔 무대 퍼포먼스의 비중을 늘린 4인조 그룹 트로이가 있다. 스눕독(Snoop Dogg), 투팍(2Pac), 닥터 드레(Dr. Dre)의 갱스터 스타일에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나 퍼렐 윌리엄스 등의 보다 매끈하고 세련된 음악으로 변화돼온 힙합 전체의 흐름과 같은 트랙 안에서, 브랜뉴뮤직도 몸을 가꿔온 것이다.

    “우리 회사는 겹치는 놈이 하나도 없다. 산이처럼 뱉어내는 스타일의 래퍼도 있고, 범키나 태완처럼 스위트한 목소리와 멜로디로 어필하는 보컬도 있고, 트로이의 재웅이나 창우처럼 퍼포먼스적인 탤런트를 갖춘 친구들도 있다.(라이머)” 사장님의 직원들 자찬이긴 했지만 납득이 되는 얘기다. 사실 요즘 잘났다는 힙합 무리들을 들여다보면 대다수 서로 같은 취향의 뮤지션들이 모여 있다. 인기 좋은 레이블들 역시 대개가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한다. 하지만 브랜뉴뮤직은 취향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다. “자기 것이 분명히 있는 친구들만 데려오려고 한다”는 라이머의 얘기대로, 이 남자들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여기 모였다. 다소 거친 랩도 있고, 우울하고 진중한 가사도 있으며, 재기 발랄하고 기운 넘치는 무대도 있다. 힙합에서 중요한 건 힙한 취향이 아니라 굳은 심지의 ‘자기 것’인 셈이다. 실력 좋은 힙합 군단이야 많겠지만 이렇게 종합 백화점과 같은 풀 옵션의 레이블은 브랜뉴뮤직 말고 찾기 힘들다.

    라이머브랜뉴뮤직의 대표이자 래퍼. 2007년 <Brand New Rhymer> 앨범을 발표했고, 이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노래를 발 표하기도 했다. 지금은 브랜뉴뮤직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여자 모델의 가죽 라이더 재킷과 팬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깃털 목걸이는 펜디(Fendi), 메탈 반지는 모두 디디에 두보(Didier Dubot). 라이머의 로고 장식 가죽 라이더 재킷은 미스비헤이브(Misbhv at Koon with a View), 티셔츠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모직 와이드 팬츠는 김서룡(Kimseoryong).

    브랜뉴뮤직은 올해로 11년째 된 힙합 레이블이다. 국내에선 가장 오래됐다. 그리고 이 간판의 아티스트들은 승률도 좋다. 인기 뮤지션 하나 내놓지 못해 다소 음울하던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11년 버벌진트의 ‘좋아 보여’ 이후 승승장구다. 2013년엔 트로이의 멤버이기도 한 범키가 ‘미친 연애’ ‘갖고 놀래’로 연타석 히트를 쳤고, 역시 트로이의 또 다른 멤버인 칸토도 <쇼미더머니2>의 출연 기세를 몰아 <말만해>란 싱글로 인기몰이를 했다. 산이의 선전도 눈부셨고, 버벌진트의 경우 각각 2011년, 12년 발표한 앨범 <Go Easy>, <10년 동안의 오독1>의 인기가 오래가 작년까지 회사의 주 수입원을 책임졌다. 버벌진트가 랩을 하고 브랜뉴뮤직의 또 다른 아티스트인 팬텀의 산체스가 노래를 한 ‘충분히 예뻐’는 지금도 길거리에 나가면 종종 들려오는 곡이다. 히트곡 제조 능력으로만 보면 잘 가꿔진 아이돌 기획사 부럽지 않다.

    하지만 브랜뉴뮤직의 노래들이 대중의 마음을 읽고 철저히 계산해 만든 것들은 아니다. 소속 뮤지션들의 면면만 봐도 대중성보단 음악성에 초점이 놓인 회사라는 게 대번에 읽힌다. 지금이야 가장 힙한 힙합 뮤지션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사실 범키는 9년간 무명 생활을 거친 뮤지션이었고, 버벌진트 역시 앨범 <Modern Rhymes>와 <누명>의 충격 이후엔 다소 미지근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친 연애’는 성공할 거라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계속해온 것들의 또 다른 스텝이라 생각했다.(범키)” 그런데 그 또 하나의 스텝이 화려한 팡파르로 이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레이블을 힙합 재활원이라고 부른다.(웃음) 내가 데리고 와 함께 음악 하는 친구들이 파릇파릇한 어린 신인들이 아니라 다들 꽤 오래 음악 신에서 고생해본 뮤지션들이기 때문이다.(라이머)” 라이머는 2006년 데뷔 앨범을 냈지만 성적이 지지부진해 프로듀서로 전향한 태완도 데려왔다. 태완은 브랜뉴뮤직의 이름을 달고 지난 8월 무려 8년 만에 복귀작을 냈다. 또 한 명의 ‘힙합 덕후’가 재활을 마치고 무대에 선 것이다.

    재웅(맨 오른쪽)트로이의 멤버. 81년생으로 최고 연장자다. 팀에선 랩을 담당하고 있으며, 스노보드 선수 출신답게 스포츠를 즐긴다.  창우(맨 왼쪽)트로이에서 랩을 담당하고 있지만, 동시에 패션을 담당한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할 정도로 옷을 좋아한다. 대학에선 연기를 전공했으며 그 경험을 살려 브랜뉴뮤직의 꽤 많은 뮤직비디오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도 했다.왼쪽부터)여자 모델의 버건디 컬러 홀터넥 원피스와 파이톤 롱부츠는 구찌(Gucci). 창우의 플라워 패턴 셔츠와 그레이 베스트, 핀스트라이프 벨벳 팬츠는 돌체앤가바나, 스웨이드 클리퍼는 생로랑(Saint Laurent). 칸토의 작은 도트가 프린트된 버건디 셔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꽃 자수가 포인트인 핀스트라이프 패턴의 팬츠 수트와 도트 패턴 슈즈는 디올 옴므(Dior Homme). 여자 모델의 그레이 팬츠 수트는 더 쿠플스(The Kooples), 검정 에나멜 앵클 부츠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범키의 도트 패턴 팬츠 수트는 장광효 카루소(Chang Kwang Hyo Caruso), 화이트 셔츠는 앤드멀미스터 (Ann Demeulemeester), 에나멜 로퍼는 프라다(Prada). 여자 모델의 스트라이프 패턴 실크 원피스는 톰 브라운(Thom Browne), 화이트 힐은 미우미우(Miu Miu), 스웨이드 헌팅캡은 구찌. 재웅의 턱시도 칼라 그레이 블루 컬러 재킷과 실크 셔츠는 프라다, 팬츠는 구찌, 검정 에나멜 레이스업 슈즈는 톰 포드(Tom Ford).

    트로이 다음으로 도착한 태완은 시종일관 싱글벙글이었다. 헤어, 메이크업을 할 때는 “머리가 너무 짧아서 할 게 별로 없나?”라며 웃었고, 눈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서는 “다크서클처럼 보이진 않느냐?”면서 또 웃었다. 이건 트로이의 예의 바름보다 한술 더 뜬, 거의 순한 양 한 마리의 대사였다. “브랜뉴뮤직에 돌아와서 정말 좋다. 일단 그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8월 복귀 앨범을 발표한 그는 그냥 모든 게 즐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브랜뉴뮤직은 2006년 그에게 데뷔 앨범을 내게 해준 레이블이다. 당시 그의 재능을 알아본 라이머가 앨범 제작을 도왔고, 태완은 이 앨범에서 휘성, 조PD 등과 피처링을 하며 노래를 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진 않았다. “고배를 맛보고 계속 프로듀싱만 했다. 나서서 가수하겠다는 생각은 좀 접었던 것 같다.” 본인은 줄곧 겸손에 겸양을 얹어 얘기했지만, 사실 태완은 비, 휘성, 엠블랙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미국 유명 아티스트로부터 고스라이팅 제의를 받기도 했다. 고스라이팅은 뮤지션이 비트, 멜로디 등을 쓴 뒤 프로듀서가 이를 다시 어레인지해 곡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미국 힙합 신에서는 흔한 일이다. 단, 그 비트와 멜로디를 쓴 뮤지션의 이름은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는다.

    물론 그 실력도 8년의 공백 이후, 새롭게 내는 앨범 앞에서는 긴장하고 신중했다. “프로듀서로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를 작업할 때는 객관적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내 노래가 되니 좀처럼 객관적일 수가 없더라. 좀 힘들었다.” 태완의 2집이자 복귀작 은 그래서 다소 성찰의 느낌도 준다. 시작하는 트랙 ‘History’에서 태완은 지나간 시간의 아픔, 외로움, 그리고 창작자로서의 답답함 같은 걸 아련한 멜로디로 담아냈다. 약점과 콤플렉스마저 욕설과 폭력으로 방어해대는 힙합 전사의 무모가 아닌,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아티스트의 자기 고백에 가까웠다. 물론 이 노래에 욕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태완 역시 흑인음악을 하는, 뼛속부터 그루브한 힙합, R&B 아티스트다.

    범키근래 가장 주목받는 R&B, 힙합 보컬. 2013년 ‘미친 연애’와 ‘갖고 놀래’란 히트곡을 냈다. 트로이에 소속되어 있지만 아직은 솔로로서의 인지도가 더 높다. 지금은 휘성과 함께 ‘얼마짜리 사랑’이란 노래로 활동하고 있다.여자 모델의 뱀피 패턴 브이넥 원피스는 더 쿠플스(The Kooples), 앞코에 송치가 장식된 힐은 에르메스(Hermès). 범키의 금박 패턴 재킷은 김서룡(Kimseoryong), 검정 니트 톱은 톰 포드(Tom Ford), 쇼츠가 연결된 블랙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검정 레이스업 슈즈는 프라다(Prada).

    복귀작을 내고 몸도 마음도 들떠 있는 태완과 함께 요즘 가장 들뜬 나날을 보내는 건 트로이의 범키다. 지난해 ‘미친 연애’ ‘갖고 놀래’의 기운을 그대로 살려 범키는 8월 휘성과 함께 <얼마짜리 사랑>이란 싱글을 냈고, 6월엔 대학 강단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여자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그리고 상반기엔 몸담고 있는 그룹 트로이의 데뷔 싱글인 <그린라이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범키의 트로이가 사실 그리 자연스레 어울려 보이는 조합은 아니었다. 흑인음악을 하는 범키와 래퍼 칸토가 멤버로 있기는 하지만, ‘그린라이트’의 무대는 댄스 뮤직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트로이의 다른 멤버 창우는 연기에도 욕심을 가진 친구고, 재웅은 나이가 서른 줄을 넘긴 했지만 전형적인 아이돌 멤버의 마스크를 갖고 있다. 심지어 트로이는 ‘그린라이트’를 부르며 약간의 안무도 한다.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하지만 무조건 힙합이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아니다. 요즘 전체적인 음악 신 흐름을 봐도 그렇다. 트로이는 그냥 그룹 자체가 힙합 스타일처럼 보이길 바랐고, 남자의 멋을 자연스레 뿜어내는 그룹이길 원했다.(라이머)” 거칠고 둔탁한 랩으로 자기 소리 하기 바쁜 힙합이 아닌, 함께 흥에 겨워 즐기고 춤추는 힙합 무드의 음악을 한다는 얘기다. 범키가 음악적 조종대를 쥐고, 칸토가 젊은 에너지를 펌핑하며, 재웅과 창우가 탄탄한 무대의 베이스를 꾸려나가는 트로이는 9월 범키와 이현도가 함께 작업한 신곡으로 다시 활동에 나선다. 띠동갑 이상의 나이 차가 나는 멤버들이 각자의 스왝을 담아 버무려내는, 흔치 않은 힙합의 무대다.

    브랜뉴뮤직은 좀 구식이다. 여느 기획사나 다 갖추고 있는 연습생 시스템도 지난해 칸토를 데려오며 처음 도입했고, 여전히 오디션이나 픽업보다는 두루 알고 지내던 뮤지션 동생 중 마음에 들고 믿음이 가는 녀석을 라이머가 영입해온다. “칸토는 우리 레이블의 허인창이란 친구가 데모 파일을 하나 줘서 들어봤다. 느낌이 지금 블락비의 지코를 처음 봤을 때랑 비슷했다. 좀 아쉽고 허술한 면이 있었지만 분명 클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라이머)” 그래서 브랜뉴뮤직은 당장 화려하진 않아도 끝내 진국의 맛을 낸다. 수년간 서로 알음알음 알고 지내며 쌓아온 믿음이, 돈독한 관계가 좋은 음악을 뽑아내기 때문이다.

    버벌진트와 라이머는 10년 넘게 알고 지내는 형, 동생이며, 브랜뉴뮤직의 또 다른 아티스트인 피타입과 버벌진트는 데뷔 전 PC 통신 힙합 동호회를 통해 서로 얼굴과 이름을 익힌 사이다. 그리고 이 아날로그적 관계와 방식이 레이블의 저력을 발휘한다. “그저 같이 모여 음악을 한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음악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였으면 좋겠다. 그 관계가 건강하다면 좋을 때든 나쁠 때든 휘청거리지 않는 레이블이 될 거라 생각한다.(라이머)” 태완 역시 “내가 낯을 많이 가리고 뒤늦게 들어온 입장임에도 모두가 친형, 동생처럼 잘해줬다”며 레이블의 화목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새벽을 넘긴 촬영 중 피곤할 만도 한데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기 시간에도 잠 대신 수다를 떨었다.

    칸토4인조 흑인음악 그룹 트로이의 막내. 랩을 담당하고 있으며 2013년엔 인피니트의 성규와 함께 <말만해>란 싱글로 활동했다. 1994년생으로 올해 스물한 살이다.  칸토의 가죽 셔츠는 김서룡(Kimseoryong), 벨벳 팬츠는 장광효 카루소(Chang Kwang Hyo Caruso), 버클링은 지방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실버 링은 생로랑(Saint Laurent). 여자 모델의 모피 장식 벨벳 원피스는 펜디(Fendi), 메탈 뱅글은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반지는 무슈(Mouche).

    브랜뉴뮤직에서 지금 가장 기대하고 있는 건 버벌진트다. 레이블의 간판 뮤지션 버벌진트의 새 앨범이 9월 말 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은 'Go Hard'. 그의 팬이라면 금세 눈치챘겠지만 이건 2011년 발표했던 'Go Easy'와 상응하는 앨범이다. 각각 검정치마, 레이디 제인이 피처링한 ‘좋아 보여’나 ‘어베일러블’과 달리, 타이틀 그대로 센 음악을 담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하고, 지난해 다른 아티스트와의 피처링이나 싱글만 내놨던 버벌진트가 다시금 기운을 모아 선보이는 묵직한 비트와 메시지 묶음이기도 하다. “<Go Easy>를 내놨을 때 사실 생각하고 있던 앨범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을 각각의 앨범에 담아 거의 동시에 발표하고 싶었다.(버벌진트)” 하지만 'Go Easy'의 인기는 버벌진트가 집에 앉아 조용히 곡이나 쓰게 해주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공연에 출연했고, 한동안은 라디오 DJ도 했다. 그래서 좀 지쳤다. “머릿속으로는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내는 삶의 사회자 같은 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근데 현실은 다르더라. 일단 오전 11시 방송이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아무래도 KBS가 공영방송이다 보니 이런저런 제재가 있더라.”

    전 트랙이 19금이었던 앨범 <누명>을 발표한 그로선 테이블과 마이크 앞 자리가 답답하기도 했을 거다. “욕은 하지도 않았다. 근데도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건 좀 민감하지 않느냐며 태클이 들어왔다.” 그래서 미리 공개된 'Go Hard'의 수록곡 ‘반도의 흔한 랩퍼’를 들어보면 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잡음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남자의 낮은 다짐 같은 게 들린다. 산이, 스윙스와 함께 한 이 노래에서 버벌진트는 “TV에 나와도 크게 달라진 게 없어/before and after/그냥 흔한 반도의 랩퍼/연예인 행세는 못하겠어/어딘가 좀 어색해서”라 내뱉는다.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누가 뭐라 떠들든, 내가 좋은 자리에서, 내가 즐거울 노래를 하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Go Hard'가 앞으로 이어질 3부작의 1편이라며 부제는 ‘양 가치’라고 했다. 모든 일에는 밝음과 어둠, 좋은 일과 싫은 일이 있다. 2013년 “음원 성적, 저작권료 등 개인적으로 최대치를 찍었던” 팡파르의 시간 속에서 버벌진트는 그 뒷면도 꺼내 놓았다. 2, 3부가 기다리고 있는 'Go Hard'의 전체를 듣기 위해선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1부 ‘양 가치’ 앨범은 버벌진트가 지난 2~3년간 보여주지 않았던 그의 뚝심이다.

    태완R&B, 힙합 음악을 하는 보컬. 2006년 앨범 로 데뷔했다. 이후엔 비, 엠블랙 등의 앨범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더 열심히 활동했고, 올 8월 8년 만에 자신의 앨범인 을 내놨다.  여자 모델의 레터링 포인트 점프수트는 자인송(Jain Song), 등산화같은 부츠와 검정 빅 벨트는 MBMJ, 체인 목걸이는 무슈(Mouche), 오른손 메탈 반지는 미네타니(Minetani), 못과 철망 모티브 반지는 엠주(Mzuu). 태완의 검정 블루종은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티셔츠는 크롬하츠(Chrome Hearts), 가죽 팬츠는 에르메스(Hermès), 검정 하이톱 스니커즈는 지방시(Givenchy by Riccardo Tisci), 투박한 실버 반지는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볼트 모티브 반지는 생로랑(Saint Laurent).

    버벌진트가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동안 라이머, 범키, 재웅, 칸토, 그리고 태완이 모여 버벌진트 얘기를 했다. 한편 욕을 기대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범키는 “진태(버벌진트의 본명은 김진태) 형이 일반적인 느낌은 아니고 아티스트 필이 많이 나서 쉽게 다가가기는 힘들다”고 했고, 라이머는 “그래도 친해지면 깨알같이 장난도 치고 논다”고 했다. 말투도 느리고 수염도 덥수룩한 버벌진트가 확실히 자기 멋에 들떠서 나대는 가벼운 힙합퍼는 아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서로에 대한 ‘리스펙트’로 이어졌다. “진태 형의 가사 쓰는 능력은 뺏아오고 싶다.(범키)”, “산이 형은 공연을 정말 재밌게 해서 그 흥을 닮고 싶다.(칸토)”, “범키의 보컬이 좀더 매력적인 느낌은 있지만, 수많은 프로듀싱 경험에서 쌓은 노련함은 태완이 더 뛰어나다.(라이머)” 욕설, 디스전 대신 이어진 덕담 한바탕이었다. 하지만 이게 서로 듣기 좋으라고 던지는 의례적인 멘트는 아니었다. 힙합에서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는 리스펙트는 나 잘났다 떠드는 자랑질만큼이나 중요한 자질이다.

    “힙합의 나를 리스펙트 하라는 것에는 복합적인 게 담겼다. 우선 자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음악적 기술을 갈고닦은 다음에야 나를 리스펙트 하라고 남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거다.(버벌진트)” 그러니까 힙합이 갱스터 무리들의 기세 싸움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사실 깔끔하게 승패를 인정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함, 당당함이 있는 거다. 여자, 술, 문신, 욕, 그리고 서로 물고 뜯는 디스전 등. 그저 요란하기만 한 이 멋도 힙합이지만, 자신과 상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세계도 힙합이다. 그리고 브랜뉴뮤직은 그 두 가지 멋 위에 양발을 굳게 딛고 10년 넘게 걸어왔다. 그게 장수의 비결이다. 스왝과 리스펙트의 다른 말은 아마도 솔직함, 그리고 당당함일 것이다. 거친 남자들의 멋 역시 시간을 들여 쌓아온 품격에서 나온다.

    화보 보러가기 >> https://www.vogue.co.kr/BrandNewMusic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미진, 피처 에디터 / 정재혁(JUNG, JAE HYUK)
      포토그래퍼
      YOO YOUNG KYU
      모델
      버벌진트, 라이머, 태완, 트로이, 황세온, 한으뜸, 이호정
      스탭
      헤어 / 한지선, 김선희 메이크업 / 이준성, 강석균 세트 / 다락(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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