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올가을 아스팔트의 슬릿 스커트

2016.03.17

by VOGUE

    올가을 아스팔트의 슬릿 스커트

    여자들이 보다 씩씩하게 걸을 수 있고, 게다가 섹시하기까지 한 슬릿 스커트.
    한동안 레드 카펫 여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슬릿 스커트가 올가을 아스팔트로 걸어 나왔다.

    시작은 작년 여름, 줄리안 도세나의 아토 데뷔 컬렉션을 본 순간이었다. 온통 스팽글로 뒤덮인 슬림한 터틀넥과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랩 스커트의 근사한 매치란! 2012 오스카 레드 카펫에서 베르사체 슬릿 드레스 차림의 안젤리나 졸리가 ‘쩍벌녀’ 포즈를 보일 때와는 전혀 달랐다. ‘저런 드레스도 레드 카펫에서 여배우가 입으니 역시 멋지구나’가 아닌, ‘나도 한번 입어보고 싶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사실 ‘좁고 기다란 틈새’라는 의미로 ‘slit’이라 이름 붙인 슬릿 스커트는 그동안 우리 여자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존재했지만 항상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가깝게 느껴지다니! 그렇다면 너무 과하지 않게 슬릿 스커트를 잘 입는 방법은 없을까? 속옷이 드러날 염려도 없고, 은근슬쩍 스타일링 센스를 뽐낼 수 있는 방법 말이다, 1년 전 매튜 윌리엄슨의 자수 장식 랩 스커트를 구입해 낭패를 본 적이 있는(서 있을 땐 슬릿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앉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나로선 찾아온 유행 앞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올가을 런웨이 사진을 보면 더더욱 슬릿 스커트를 입은 모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노출’이 적은 가을, 겨울 시즌임을 감안하면 특이한 현상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 슬릿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보일 듯 말 듯한 슬릿이 아니라 대놓고 드러내는 슬릿이다. 드레스보다는 스커트, 미니스커트보다는 미디나 롱스커트의 형태.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눈에 띄는 변화는 슬릿 스커트가 더 이상 파티를 위한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토 2014 프리폴 컬렉션과 줄리안 도세나의 파코 라반 가을 컬렉션만 봐도 그렇고, 단추 하나로 허리를 고정시킨 랩 스커트 스타일의 셀린과 스포트막스, 지퍼로 슬릿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까르벤과 펜디, 셔츠를 허리에 묶게 디자인된 사카이와 디온 리 컬렉션을 봐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리얼웨이에서 입을 수 있다는 룩이라는 것!

    고맙게도 디자이너들은 슬릿 스커트를 현실에서 즐기는 방법까지 고민했다(알투자라, 리드 크라코프, 카이처럼 맨다리를 그대로 드러낸 경우도 있지만). 우선 다리를 얼마나 잘 가릴 것인지가 관건. 아프리카 수공예 장식에서 영감을 얻은 발맹은 여러 패턴의 슬릿 스커트에 두꺼운 검정 스타킹을 매치했다. 사카이는 치렁치렁한 원피스 위에 짧은 슬릿 스커트를 곁들여서 걸을 때마다 안쪽 스커트 자락이 보이도록 했고, 스포츠막스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롱부츠를 매치했다. 허벅지를 노출하는 대신 종아리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현명한 전략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몸에 딱 붙는 트레이닝 팬츠나 니트 레깅스를 스커트 속에 입었고, 양 리는 와이드 팬츠 위에 롱 슬릿 스커트를, 셀린은 담요를 허리에 두른 듯한 롱 슬릿 스커트 위에 롱 코트를 걸쳤다.

    그렇다면 실제 패션 피플들은 어떻게 슬릿 스커트를 소화했을까? 저지 소재 롱 슬릿 스커트와 크롭트 톱을 매치한 리타 오라, 단추를 채우지 않은 스트라이프 셔츠와 함께 입은 리한나, 심플한 롱 재킷과 함께 입은 애냐 루빅 등을 보자. 어떤 상의든 소재, 프린트만 잘 맞는다면 딱 어울린다. 그렇다면 하의는? 빅토리아 시크릿을 대표하는 모델 중 하나인 릴리 알드리지는 타쿤 봄 컬렉션 슬릿 스커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려 슬릿을 최대한 깊게 판 뒤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허리선까지 완전히 노출되는 스커트 아래엔 레이스 쇼츠 차림. 물론 완벽한 몸매를 지닌 그녀이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슬릿 스커트에선 무엇을 어떻게 노출하는지가 중요하다(패션계가 사랑하는 DJ 첼시 레이랜드가 슬릿 드레스 아래 검정 언더웨어 차림으로 나타나 ‘워스트 드레서’가 된 순간을 떠올려보라). 그런가 하면, 지난 꾸뛰르 기간 내내 다양한 슬릿 스커트 차림으로 쇼장에 나타난 카린 로이펠트가 모든 룩에 매치한 건 나뭇잎 프린트의 에르메스 롱부츠다. 또 스타일리스트 소피 발키어는 섬세한 레이스 스커트 위에 새빨간 슬릿 스커트를 레이어드 해 세련된 스타일링 센스를 뽐냈다.

    자, 이제 슬릿 스커트에 도전해야만 할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졌다. 일단 가장 안전하면서 확실한 스타일링 방법을 소개한다. 두꺼운 검정 스타킹 위에 시스루 레이스 스커트를 입고, 그 위에 과감한 슬릿 스커트를 입을 것! 스타일리시한 여자가 되는 일, 그리 어렵지 않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사진
      James Cochrane,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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