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뉴슨의 루이 비통 프로젝트

살아 있는 전설 6인이 의기투합한 루이 비통 ‘The Icon and The Iconoclasts’ 프로젝트.
그중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의 위트 있는 피조물이 프레자 베하, 리야 케베데의 어깨 위에 얹혔다.

프레자 베하와 리야 케베데가 떠난 크루즈 여행! 슈퍼모델들의 여행에 루이 비통이 함께했다. 그것도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모노그램 백팩. 프레자의 백팩은 포근한 양털 그 자체를 매치했고, 리야의 백팩은 오렌지빛으로 양털을 물들여 보다 경쾌하다.

옛날옛날, 프랑스 역사학자 쿠베르탱 덕분에 지구상 14개 나라의 체육인 241명이 그리스 아테네에 모여 운동경기를 벌였다. 인류 역사상 첫 하계 올림픽이다. 같은 해 독일에서는 다임러가 휘발유 엔진 트럭을 개발해 0.5t의 짐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뿐하게 운반할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는 <독립신문>이 창간된 해. 때는 바야흐로 1896년! 이쯤 되면 <보그>가 인류 역사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거사 가운데 왜 하필 1896년만 콕 집어 공부하자고 부추기는지 궁금할 것이다. 패션 관점에서는 1896년이 2014년 바로 지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빨간 비키니 수영복과 요즘 유행인 미러 선글라스, 여기에 양털이 달린 마크 뉴슨의 모노그램 백팩으로 완성한 크루즈 룩!

다시 그때로 돌아가 쿠베르탱이 올림픽에 관여할 무렵, 그의 조국 프랑스의 수도에서는 새로운 패션 탄생이 꿈틀댔다. 어느 청년이 작고한 부친을 기리기 위해 효심을 담은 헌정품을 만들고 있었던 것. 아버지 이름에서 알파벳 열두째 글자와 스물두째 글자를 따다 조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작업이다(불안정한 역삼각 형태가 비스듬한 의자에 놓인 모습). 그런 뒤 당시 유행인 아르누보 양식에서 비롯된 꽃과 별 문양 등을 반복 배치해 그럴싸한 패턴을 만들었다. 1896년, 조르주 비통이 아버지 루이 비통을 기리기 위해 완성시킨 패션 표식이자 먼 훗날 글로벌 패션 문화가 된 바로 그 모노그램의 탄생이다. “할아버지의 이니셜을 교차해 누구든 한눈에 알아볼 모티브를 만들었습니다.” 조르주의 아들이자 루이의 손자인 가스통-루이는 가문의 서명을 초월, 우리 시대 패션 모노그램으로 써도 될 위대한 패턴에 대해 이렇게 추억했다. “아버지는 다이아몬드 네 변을 곡선으로 다듬고 중앙에 네 장의 잎이 달린 한 송이 꽃을 넣어 개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뒤 양각으로 조각한 듯한 꽃문양을 반전시켜 모티브의 범위를 한 차원 확장했죠.” 이 모노그램의 화룡점정은 원하나. “그 안에 네 개의 둥근 잎이 달린 꽃을 채워 넣었습니다.”



해변의 모래밭에 누워 휴식 중인 프레자 베하. 그래픽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블랙 톱과 블랙 팬츠, 여기에 베이지색 양털 모노그램 백팩이 편안함을 선사한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에겐 루이 비통 모노그램 백이나 소품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인기가 오죽 대단하면 ‘럭셔리의 입문’ 혹은 ‘럭셔리 생활필수품’이라고들 말하겠나). 그렇다면 <보그>가 비통 가문의 상징적 패턴으로 토막 패션 강의를 진행한 진짜 이유는? 2014년과 1896년 사이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마크 뉴슨, 레이 카와쿠보, 크리스찬 루부탱, 신디 셔먼, 칼 라거펠트, 프랭크 게리…. 여러 영역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6명의 위인들이 모노그램의 재해석을 위해 모였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아이콘과 아이콘 재해석자: 모노그램을 기념하며’라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다.



흑진주처럼 관능적인 리야 케베데의 피부색과 오렌지색 양털 모노그램 백팩의 선명한 조화!

사실 모노그램은 2001년 마크 제이콥스가 스테판 스프라우스를 부추겨 고리타분한 갈색 패턴 위에 낙서를 휘갈겨달라고 의뢰한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그 후 무라카미 다카시, 리차드 프린스, 줄리 버호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노그램을 캔버스 삼아 장난쳤다). 그로부터 4년 전으로 더 후진해 보면, 이 기획에 참여한 ‘선배’들의 업적이 비통 아카이브에 보관돼있다. 아제딘 알라이아, 마놀로 블라닉, 로메오 질리, 헬무트 랭, 아이작 미즈라히, 시빌라,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모노그램 100주년을 기념해 각자의 방식대로 가방을 재구성한 것.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프로젝트예요. 그만큼 강렬했으니까요”라고 모노그램의 두 번째 파격을 진두지휘한 루이 비통 부회장 델핀 아르노가 얘기했다.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 비통 입성 직전이었고, 사실 우리에겐 그 전까지 패션이라 할 만한 게 없었죠.” 그녀는 나오미 캠벨이 실제 기린과 함께 무대에 오른 론칭 파티까지 떠올렸다.



코발트 블루로 염색한 양털 트리밍의 모노그램 백팩을 공중에! 파란 하늘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컬러.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협업이야말로 아주 흥미롭습니다.” 델핀은 덧붙인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프로젝트죠. 아주 많은 유머가 포함돼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두 번째 모노그램 재창조, 모노그램 재해석, 모노그램의 재치 있는 파격이 그녀에 의해 성사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노그램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보다 개인적이고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게 기획의 취지. “장인 정신, 예술과 디자인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과 협업, 그리고 대범함이라는 개념을 지속적으로 포용한 채 모노그램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육대주 460개 매장에서 모노그램 가방을 팔고 있는 비통 가문의 스케일에 걸맞는 인물들이 지목된 것이다(패션을 포함해 건축과 예술, 산업디자인 영역에서 엄지손가락에 꼽히는 6인).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은 기능성과 실용성을 기본으로 자신만의 유머 감각을 더해 모노그램 백팩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위인들의 모노그램 업적은 각각 어떤 용모로 재탄생됐을까? 먼저, 얼마 전 LVMH 재단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는 곡선 형태와 구불대는 끈으로 자신만의 건축적 미학을 표현했다. 다중인격을 지닌 듯 천재적 퍼포먼스 예술을 보여주는 신디 셔먼은 자신의 얼굴을 풍자한 여행지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는 것으로 발칙한 아이디어를 드러냈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경우 스파이크힐로 모노그램을 구멍 낸 듯한 일률적인 도트 펀칭 기법을 도입했고, 아방가르드의 대모이자 패션 선지자 레이 카와쿠보는 넝마처럼 옷감을 뚫었던 자신의 명작을 노골적으로 응용했다. 이번 시즌 샤넬 광고를 권투 경기장에서 찍은 칼 라거펠트는? 최근 꽂힌 권투 사랑을 다시 보여주듯 모노그램 권투 글러브 등을 제작했다. 그리하여 엄격함과 진중함, 혹은 근엄함과 진부함 등의 표현이 따르던 부유한 패션 가문의 클래식 모노그램에 다시 한번 활기가 돌았다.





이 가운데 <보그 코리아>는 예술, 건축과 함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영감을 교류하는 산업디자인의 전설, 마크 뉴슨의 피조물을 주목했다. 루이 비통 하우스가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산업디자이너’라고 지칭한 바로 그 인물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세 살 청년이었던 그가 디자인한 ‘록히드 라운지 체어’는 희대의 걸작으로 기록됐다(필립 스탁, 카림 라시드와 함께 3대 산업디자이너로 호명되는 그는 얼마 전 애플 디자인팀에 합류했다). 현재 그는 가구와 패션은 물론, 항공우주산업과 과학기술까지 아우르는 중이다. 그의 이번 작업에 대해 비통 관계자들은 “직관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접근법으로 장르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광범위한 디자인 작업 세계”였다고 품평했다.

‘M.N’(여섯 명 모두 자신의 이니셜을 모노그램에 새겼다)의 눈에는 루이 비통 모노그램이 어떻게 보였을까? “모노그램 캔버스는 내구성과 방수성을 위해 개발됐습니다. 거칠게 다뤄도 된다는 얘기죠.” 산업디자이너답게 기능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백팩을 선점 했다. “나를 비롯해 누구든 쉽게 쓸 수 있는 물건이 바로 백팩입니다. 그래서 여성용 핸드백보다 훨씬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죠.” 그 결과 벽에 결리거나 선반에 놓인 진열품이 아닌, 직접 메고 싶어 할 만한 ‘상품’이 완성됐다. “내가 좋아하는 백팩의 특징을 전부 반영했어요. 가령,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백팩은 질색이라 바닥에 놨을 때도 고유 형태를 유지하길 원했습니다. 백팩 내부에 설치한 견고한 구조물이 비법이죠.” 그렇다고 뻣뻣하게 기능만 강조한다면 우리가 아는 천하의 마크 뉴슨이 아니다. “너무 심각한 것 역시 싫어서 재미를 더했습니다. 색색의 양털과 모노그램의 대비가 그것이죠.” 뉴슨의 조언에 따르면, 피곤할 땐 언제든 백팩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청하라는 것. “사람들이 패션 앞에서 심각해지는 걸 원치 않았어요. 이 백팩을 멨을 땐 편한 것은 물론 웃을 수 있을 겁니다.”







여섯 명의 신화적 인물들이 재창조한 기념비적 루이 비통 가방들은, 이런 류의 가방들이 태생적으로 지닌 ‘한정판’이라는 오만한 면류관을 쓴 채 희소가치를 뽐내며 몇 달간만 팔린다. 구멍이 뻥뻥 뚫린 레이 카와쿠보의 가방은 300만원대, 프랭크 게리의 트위스티드 박스와 신디 셔먼의 메신저백은 500만원대, 마크 뉴슨의 양털 백팩과 라거펠트의 수트 케이스는 700만원대, 그리고 루부탱의 쇼핑 트롤리는 무려 2,700만원대로 책정됐다. 하지만 패션&예술 수집가들에게 이런 가격표는 사실상 무의미한 수치일 수 있다. 회사 역시 솔드아웃을 기본으로 설정한 채 기획에 돌입했을 것이다(얼마 전 에 실린 시티그룹의 분석가인 토마스 쇼베에 따르면 루이 비통은 2013년에 99억6,000달러 혹은 75억 유로(고정 환율 기준 추정치)의 수익을 냈다).

루이 비통은 올해 하우스 설립 160주년을 맞았다. 경외심마저 품게 만드는 이 장구한 역사의 브랜드는 요즘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함께 다시 새 생명을 얻고 있다. 또 루이 비통 이니셜로 시작되는 모 그룹 LVMH는 파리 서쪽 외곽의 블로뉴 숲에 우주 행성의 빙산 같은 형태로 루이 비통 재단을 세웠다. 한편, 비공식 소식통에 의하면(하지만 꽤 신빙성 있는) 루이 비통이라고 표기된 향이 조만간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하긴 전 직장에서 인상적인 향수를 몇 차례 만들어 히트 친 패션 천재가 있으니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절차). 그리고 가문의 가장 훌륭한 유산인 모노그램이 그 ‘신의 손’에 의해 혁명을 일으킬 조짐이다. 그러니 이 프로젝트에 대한 루이 비통 회장이자 CEO 마이클 버크의 자부심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클래식을 둘러싼 관습에 대항하며, 과감한 혁신으로 대표되는 브랜드 이념을 이어가는 작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