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아이템으로 떠오른 남성용 셔츠

잘 생각해보면 이보다 마술 같은 옷도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과 함께하든 잘 어울리니까.
넉넉하고, 하얗거나 푸른 남성용 셔츠가 패션 위크 때 큰 인기를 누렸다.
이제 당신도 사야 한다.



<보그> 인터내셔널 디지털 에디터, 수지 멘키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쇼가 끝나면, 친구들과 가족들이 종종 내게 묻곤 한다. ‘이제 뭘 입어야 하지?’ 이번엔 그 귀찮은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 있다. ‘셔츠를 사도록 해!’” 누구도 이 지시사항(명령에 가까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들 수 없을 것이다. 9월 3일부터 10월 1일까지 4대 도시 패션 위크를 거치는 동안, 런웨이와 리얼웨이 구분 없이 우리의 ‘패션 촉’을 건드린 건 수많은 셔츠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다음 시즌까지 계속될 셔츠 유행에 대해 이보다 더 분명한 예고가 있을까?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서둘러 셔츠 몇 장을 새로 장만해야 할 때가 됐다.

특이한 점이라면 셔츠가 남성적 실루엣이라는 뚜렷한 공통점 아래 화이트와 블루의 두 분파로 나뉜다는 사실! “버튼다운셔츠는 확실히 심플하고 남성적인 컷이 일품입니다.” 미국 <보그> 패션 에디터 출신의 스타일리스트 로렌 호웰은 평소 스몰 사이즈의 남성용 셔츠를 즐겨 입는다. “개인적으로 셔츠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어요.” 그녀는 해변에서 수영복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 입던(남자 친구에게 빌리거나 아빠에게 물려받은) 셔츠를 추억했다. 모델 소피 달도 남자 셔츠를 입는 여자들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품고 있다. “스웨터 걸(관능의 상징)과 정반대인 셔츠 걸은 단순하며 완벽하지 않아요. 머리카락은 늘 부스스하게 엉켜 있고, 눈 밑에는 졸린 듯 마스카라가 번져 있죠. 그녀들은 매일 아침을 크루아상과 크로스퍼즐로 시작하며, 진하게 내린 커피를 좋아해요. 좋은 향이 나고 잘 웃지만, 어딘지 소박한 여인들이죠.”

사실 이 여유로운 셔츠는 패피들 사이에선 꽤 익숙하다. 패션계에서 알아주는 멋쟁이로 통하는 파리 <보그> 패션 에디터들의 유니폼 같은 옷이기 때문이다. 이 ‘파리 보그 패션 운동’의 원조 격인 편집장 엠마누엘 알트가 하얗거나 푸르거나 줄무늬가 있는 남성용 셔츠를 어찌나 자주 입었던지, 스타 블로거 가랑스 도레는 그녀의 시그니처 룩인 ‘크롭트 레더 팬츠 + 앞섶만 바지 안으로 밀어 넣은 남성용 셔츠 + 펌프스’의 조합에 ‘알트핏’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톱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영국 <보그>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인 케이트 팰란 역시 옷장에 25벌쯤의 남성용 셔츠를 갖춰 놓고 일주일 동안 돌아가며 입는 셔츠 마니아다. “티셔츠보다 말쑥해 보이죠. 나이와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데다 업무 시간뿐 아니라 저녁 모임에도 두루 어울려요.”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일종의 패션 유니폼이에요. 다들 옷장에 한 장씩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자가 입은 남성용 셔츠는 패션의 고전이자 기본이다. 캐서린 헵번은 평소 남자 셔츠를 즐겨 입기로 유명했다. 캐롤린 베셋 케네디의 경우, 90년대 중반 빳빳한 화이트 셔츠를 이브닝웨어로 연출했다. 1988년 미국 <보그>엔 피터 린드버그의 뷰파인더 앞에 슈퍼모델들을 셔츠 차림으로 세운 그 유명한 화보가 있다. 큼지막한 남성용 드레스 셔츠만 입고 있던 그녀들의 분방한 아름다움이란! 또 묶었다가 풀었다가 뒤로 젖히는 등 온갖 방법-물론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지만-으로 셔츠를 응용했던 제인 버킨과 깊게 파인 브이네크처럼 보일 만큼 과감하게 단추를 푼 샬롯 램플링까지! 그리고 최신 유행은 깨끗하고 복잡하지 않은 스타일링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선두에 선 디자이너 레이블들(피비 파일로의 셀린,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사카이, 더 로우, 빅토리아 베컴 등등)은 미술관처럼 새하얗거나 맑은 하늘처럼 파랗거나 울타리 같은 줄무늬로 둘러싸인 남성용 핏의 셔츠를 모던 클래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입어야 할까? 브룩스 브라더스와 바나나 리퍼블릭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낸 디자이너 사이먼 닌(Simon Kneen)은 셔츠를 고를 때 다음 법칙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첫째, 다트나 디테일이 많으면 너무 여성스러워 보이니 가능한 장식 없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고를 것. 둘째, 신축성 없이 빳빳한 코튼 소재를 선택할 것. 피부가 비치지 않아야 하고 장식이 없기 때문에 질 좋은 소재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셋째, 실루엣 자체가 헐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입었을 때 펄럭거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타고 흐르는 게 관건이다. 넷째, 피팅 룸에서 입었을 때 가슴 부분이 벌어지면 한 사이즈 큰 걸로 선택할 것.

그렇다면 화이트를 골라야 할까, 블루를 골라야 할까? 화이트 셔츠는 클래식하고 우아하며 계절에 상관 없이 1년 내내 입을 수 있고, 어디든 잘 어울린다. 블루는 물에 푼 잉크가 스민 듯한 연한 파란색으로, 해변의 비치 파라솔 같은 푸른 줄무늬 셔츠는 룩을 좀더 적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게 도와준다. 화이트 셔츠에 비해 반듯하고 남성적인 느낌이 더 강해 다분히 여성스러운 옷과 매치하면 효과적. ‘스타일닷컴’의 패션 에디터 소피아 굴라티는 남자 친구에게 빌린 푸른색 발렌티노 셔츠를 빅터앤롤프의 핫 핑크색 실크 팬츠와 두툼한 스택트힐 슈즈에 매치한 뒤 달랑이는 커다란 귀고리로 마무리했다. 그러니 지나치게 우아해 보여 입지 않았던 미디 길이 풀 스커트나 레이스 스커트가 있다면, 푸른 셔츠 한 벌로 소생시킬 수 있다.

이제 남성용 셔츠 입기의 상급 과정에 들었다고 자신한다면, 다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맵시 있는 스커트나 포멀한 팬츠와 입을 때는 하의 안으로 셔츠 자락을 깔끔하게 전부 집어 넣고, 캐주얼한 스키니진을 입을 땐 앞섶만 집어 넣거나 느슨하게 쑤셔 넣을 것. 소매는 팔꿈치나 팔꿈치 바로 위까지 접어 올릴 것. 그리고 한 번 접은 소매는 다시 풀어서 내리지 않도록 한다. 애벌레 마디처럼 주글주글한 소매만큼 초라해 보이는 것도 없으니까. 함께 입을 스웨터는 반드시 브이네크 스웨터여야 하고, 네크라인이 두 번째 단추까지 열어 둔 것이 보일 만큼 깊게 파였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 이제 셔츠를 사러 백화점이나 플래그십스토어, 혹은 SPA 브랜드에 들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