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존스의 모자 이야기

“모자의 연금술사.” 누군가 스티븐 존스를 이렇게 불렀다.
패션계가 사랑하는 그 스티븐 존스가 오랜 친구였던 안나 피아지의 모자를 들고 서울을 찾았다.
그가 <보그>에 들려주는 패션과 모자에 대한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예술품을 사서 벽에 걸겠지만, 안나는 패션이라는 예술품을 구입해 자신의 몸에 걸었습니다.” 2년 전 작고한 이탈리아 <보그>의 전설적인 스타일리스트, 안나 피아지(Anna Piaggi)에 대해 말하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의 눈가가 순간 촉촉해졌다. “어떤 제약이나 규범도 없이 옷을 통해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던 여자였어요. 그녀의 용기와 대범함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에 있는 <보그> 스튜디오 4층 테이블에 앉아 그는 생전에 친하게 지냈던 안나 피아지를 추억했다. “한번은 왜 모자를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이렇게 답하더군요. ‘모자를 쓰면 내 복잡한 머릿속에 평화가 찾아오지. 나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줘.’”

런던의 모자 디자이너가 서울에서 안나 피아지를 추억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패션 아이콘이자, 이사벨라 블로우(역시 작고했다)와 쌍벽을 이루는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녀는 2년 전 돌연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런 이별의 슬픔에 잠긴 피아지의 가족과 존스, 그리고 10 꼬르소 꼬모의 까를라 소짜니가 그녀를 기리는 특별전을 기획했다. 하지만 1,000벌에 달하는 피아지의 옷을 전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피아지를 상징했던 모자를 전시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연히 큐레이팅은 존스의 몫. 이런 과정을 거쳐 기획된 전시가 <Hat-Ology>다. 1년 전 밀라노 10 꼬르소 꼬모에서 첫선을 보인 전시는 상하이를 거쳐 며칠 전 서울에 착륙했다(10월 26일까지 청담동 10 꼬르소 꼬모에서 열린다).

덕분에 우리는 연극 무대의 여배우처럼 과장된 메이크업(동그랗게 칠한 볼 터치와 상대적으로 작게 그린 립 메이크업이 특징)과 대담한 스타일링(믹스매치의 대가답게 기상천외하게 옷을 레이어링하고, 작은 지팡이를 ‘폼’으로 갖고 다녔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모자(컬링을 준 앞머리만 빼고 박박 밀어버린 보라색이나 파란색 머리에 삐딱하게 걸쳤다)로 기억되는 안나 피아지를 이제 서울에서도 추억할 수 있게 됐다. 안나 피아지라는 20세기 마지막 패션 진보주의자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들도 그녀가 평소 아끼던 모자들을 본다면, 이 주인공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훌륭한 패션 에디터였습니다. 제가 처음 숍을 열자마자 마놀로 블라닉의 소개로 제 모자를 보려고 찾아온 사람도 그녀였어요.” 긴 세월을 함께했던 친구이자 고객에 대해 소개해달라는 말에 존스가 이렇게 설명했다. “아름다운 재킷, 완벽한 구두, 예쁜 모자면 그녀는 행복했습니다. 특히 밀라노에서 그녀의 존재는 아주 특별했죠. 한번은 함께 다이애나 호텔의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손님들 모두가 그녀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기도 했죠.” 피아지가 밀라노의 아이콘이었다면, 스티븐 존스는 런던의 아이콘이다. 마돈나부터 다이애나 왕세자비까지 여러 셀러브리티들이 그의 모자를 즐겨 썼고,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 레이 카와쿠보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모자가 필요할 때 맨 먼저 존스에게 연락했다. 영국 패션협회는 그를 영국 모자 디자이너 홍보대사로 추대했고, 그의 작품을 담은 모자 전시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모자 디자이너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잭 포즌은 다섯 살 때부터 엄마를 위해 옷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아니에요. 제 인생에 모자란 없었어요.”



스티븐 존스와 안나 피아지가 함께한 모습. 2년 전 안나 피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존스는 그녀의 모자들만을 모아 그녀를 기리는 전시를 마련했다.

그런 그가 모자를 처음 접한 것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을 공부하던 시절이다. “재단 수업 교수님이 저를 어느 디자이너 작업실에 인턴으로 소개시켜줬습니다. 재단실에서 일을 시작하던 중 옆에 있던 모자 작업실을 기웃거리게 됐죠. 그곳에서는 늘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더군요.” 단순히 런던에서 화려한 생활을 즐기던 누나가 부러워 패션을 전공하게 된 리버풀 출신의 열여덟 살 소년은 결국 모자를 만들던 중년 여성들의 행복한 미소에 이끌려 난생 처음 모자를 만져보게 됐다. “모자 작업실에서 일한 첫날 깨달았어요. ‘아, 바로 이거구나!’” 

 

졸업 후 런던에 작은 매장을 연 그가 단숨에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른 것은 친구들 덕분이다. 당시에는 무명이었지만 함께 클럽에서 놀던 뮤지션들이 그의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세상은 듀란듀란, 컬처 클럽이 누군지 몰랐지만, 제게는 친구들이었어요. 그들을 위해 모자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저도 덩달아 알려지게 됐죠.” 학창 시절 펑크족이었던 그도 친구들의 영향으로 런던 클럽을 다니며 뉴 로맨틱 스타일을 흡수했다. 그를 패션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도 팝스타들이었다. 컬처 클럽의 히트곡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뮤직비디오에 모자를 쓰고 잠깐 출연한 그는 당시 파리의 ‘앙팡테리블’이었던 장 폴 고티에의 눈에 띄었다.

 

“제게 다음 시즌 남성복 패션쇼 모델로 서달라고 하더군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제대로 걷지 못하던 존스는 고티에 무대에 서는 대신 그를 위해 모자를 만들었다. 아제딘 알라이아의 소개로 고티에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던 티에리 뮈글러와 함께 일한 것도 그즈음이다. “런던의 작은 매장에서 혼자 모자를 만들던 제가 패션의 중심인 파리에서 당시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일하게 되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죠.” 파리 패션의 중심에서 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어느새 그는 디자이너들이 모자가 필요하면 맨 먼저 연락하는 디자이너가 됐다. “갈리아노와 함께했던 디올에서의 15년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 패션을 창조하는 에너지를 맘껏 느낄 수 있었죠.” 그는 <보그> 인터뷰 전날,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존 갈리아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레이 카와쿠보와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어요. 앵커리지 공항을 경유하던 중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저를 보자마자 일본에 초대하지 않았겠어요?” 그녀와 함께 만든 아방가르드한 패션의 창조물들은 모자 디자이너로서 스티븐 존스를 진일보시켰다. 매 시즌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존스의 손을 빌리는 마크 제이콥스, 런던 특유의 자유를 함께 공유하는 자일스 디컨, 모자도 쿨할 수 있음을 증명한 아크네 스튜디오 등도 모두 스티븐 존스 군단 디자이너들이다.





“제가 모자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모자 디자이너만의 희소성 때문입니다.” 그가 지난 30년을 회고하며 말했다. “영국 속담 중에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가 아니라면,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패션 연못의 중앙에서 헤엄치게 됐다. “개인 작업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새로운 패션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협업의 필요성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들과 함께할 때는 제 전부를 바칠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완벽하게 저를 믿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협업이 완성됩니다.”

스티븐 존스는 이제 패션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됐다. “오늘 서울 10 꼬르소 꼬모를 거닐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알라이아 드레스를 보면 알라이아가 차려주던 근사한 디너를 추억하고, 릭 오웬스의 가죽 재킷을 보면 오웬스와 그의 아내 미셸과 함께 늦은 밤까지 나누던 대화들을 되새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앤 드멀미스터와는 한 번도 작업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벨기에 집에는 초대받은 적 있어요. 그녀의 이웃인 드리스 반 노튼과 함께였죠.” 런던에서 화려한 파티를 즐기던 누나를 동경하던 소년은 이제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삶을 즐기고 있다.

잠시 서울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던(“어쩌면 ‘새우깡’에서 영감을 얻어 모자를 만들지도 몰라요.”) 그에게 30년이 넘도록 수많은 여인들을 위해 모자를 만들며 무엇을 깨달았냐고 물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만큼 유명하고,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여성이라고 해도 자신의 외모에 100% 만족하거나 확신을 가지진 못합니다.” 그 여자가 마돈나 혹은 다이애나 왕비라고 해도 그럴까? “그럼요. 절대 그렇지 못해요. 하지만 패션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훌륭한 도구예요.” 가족과 직장 일이 맘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새 향수를 뿌리거나, 색다른 아이섀도를 바르거나, 마음에 꼭 드는 구두를 신는 순간 완전히 다른 기분을 선사할 수 있는 것처럼 모자는 여성들에게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예전만큼 모자를 즐겨 쓰지 않는 현대 여성들에게도 모자는 훌륭한 옵션이 될 수 있다. “모자는 어떤 패션 아이템보다 파격적인 재미를 선사할 거예요. 쓰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죠. 릭 오웬스를 입고 샤넬 백을 들고 왜 2만원짜리 아크릴 소재 모자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는 모자야말로 새로운 개성과 자신감을 선사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엄격한 배급제가 실시됐어요. 하지만 유일하게 배급 제도에 포함되지 않은 게 여성용 모자였죠.” 자신감에 찬 그가 따뜻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그건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어도 여성들이 모자를 쓰고 새 기분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멋진 배려였죠. 모자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