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 없는 스파이더 우먼, 김자인

김자인은 거침이 없다. 울퉁불퉁 15m 암벽을 스파이더 우먼처럼 오른다.
지난 9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강심장을 가진 여성 중 한 명이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뽐낼 수 있는 기품과 멋을 지닌 채.

시폰 드레스는 랄프 로렌, 크리스털 펜던트 목걸이는 엠주,뱅글은 클로에, 힐은 쥬세페 자노티.

실내 암벽등반은 선비의 스포츠다. 승부욕 불태우며 함께 싸울 상대 선수도 없고, 이 악물고 깨야 할 세계기록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울퉁불퉁하게 난 길을 무던히도 타고 오른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꽤나 지루해 보이는 스포츠다. 선수가 떨어져 탈락하는 일이 없으면 중계 화면상 변화도 별로 없다. 스포츠라면 으레 떠올리는 화려한 쇼 오프, 긴박한 접전 같은 걸 기대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실내 암벽등반의 이 정적은 사실 매우 농밀하다. 벽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지난한 여정은 마치 바둑과 같은 구석이 있어, 한 발, 한 발, 한 손, 한 손 선수가 나아가는 걸음에 철저한 계산과 근력이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벽의 코스는 정해져 있지만 정작 길을 만들어내는 건 선수 자신이고, 그 길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도 선수의 의지다. 어느 하나 쉬운 걸음이 없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선수들은 일제히 나와 5분 정도 벽을 바라본다. 타고 오를 루트를 스스로 정하는 시간이다. 김자인 선수는 “이제는 경력이 꽤 쌓여서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초기에는 암벽을 타다 패닉이 와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어요”라고 했다. 경쟁 선수의 순위가 어떻든, 기록이 어떻게 갈리든, 벽 위에서 내 길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가야 하는 거다. 그래서 이 정적의 여정을 보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 조금씩 격양된다. 걸음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고민과 계산, 그리고 집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코 화려한 팡파르는 아니지만 암벽등반에는 나 스스로에 집중했을 때 얻어지는 집념과 고집의 스펙터클이 있다.

지난 9월 스페인 히혼(Gijón)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의 결승전은 볼만했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이 주관하는 이벤트 중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에서 김자인은 예선, 준결승 모두 완등했다. 완등은 주어진 코스를 끝까지 다 오르는 걸 얘기하는데, 세계선수권 정도의 레벨이 되면 코스의 난이도가 높아 완등하는 선수가 그리 많지 않다. 14일 결승전의 상황도 그랬다. 세계 랭킹이 1위라 가장 마지막에 출전한 김자인이 벽에 오르기 전까지, 완등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세계 랭킹 2위이자 김자인 선수와 자주 맞붙는 슬로베니아의 미나 마르코비치는 47번째 홀드에서 추락했다.

그런데 세계선수권은 유독 김자인 선수와 연이 없는 대회였다. 월드컵 챔피언 우승은 20번 넘게 했음에도 김자인은 세계선수권 벽 앞에선 매번 좌절했다. 2005년부터 꾸준히 참가했지만 준우승만 세 차례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그녀는 좀 편해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수차례 다녀본 길을 타는 것처럼 벽을 리드미컬하게 올랐다. 조금의 무리도, 주저도 없었다. “세계선수권은 꼭 우승해보고 싶었어요.

가장 큰 대회고, 제가 아직 우승해보지 못한 대회라 더 그랬어요. 근데 결승은 실력 외에도 좌우하는 게 많으니까 마음을 비웠고, 편하게 하려 했죠.” 그렇게 5분여. 김자인은 정상에 올랐다. 허리에 맨 로프를 마지막 클립에 걸고, 가장 높은 위치의 마지막 홀드를 잡았다. 대회 중계진은 “무지하게 강합니다, 끝내주게 강철 같은 에너지입니다”라 소리를 질렀고, 김자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이날 마지막 홀드는 스마일 모양이었다. 열세 살부터 암벽을 타기 시작해 지금까지 15년여. 그녀의 클라이밍 여정에 일단락을 지어주는 웃음이었다.

김자인은 사실 암벽을 잘 탈 수밖에 없는 여자다. 그녀의 부모님은 산악 동호회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고, 아버지는 고양시 산악연맹 부회장, 어머니는 클라이밍 1급 공인 심판이다. 두 오빠 역시 클라이밍 선수이며, 큰 오빠인 김자하는 지금 김자인 선수의 코치 노릇도 한다. “솔직히 오빠들 대회 나가느라 비행기 타는 게 부러워 시작했어요. 오빠들 다 어디 가버리면 혼자 놀기도 심심했고요.(웃음)” 응석 부림, 어린 마음에 택한 진로였지만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김자인은 2009년 IFSC 월드컵을 시작으로 우승 행렬을 이어갔다. 2010년엔 아시안선수권대회에서 리드와 볼더링 두 종목 모두 1위를 차지했고, 2010년엔 IFSC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에서 5회 연속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볼더링과 리드, 양쪽에서 모두 강하다. 볼더링은 로프 없이 5m 높이 벽을 타는 종목이고, 리드는 로프를 활용해 15m의 벽을 오르는 종목인데, 그녀는 이 극단의 두 종목에서 구분 없이 좋은 기량을 뽐낸다. “볼더링은 아무래도 벽이 작고 급격한 경사 코스가 많아 동작이 과격한 편이에요. 지난해 무릎 부상 이후 올해는 리드만 하고 있는데 몸이 괜찮아지면 볼더링도 계속하고 싶어요. 둘 다 좋아하는데 하는 입장에서 더 재미가 있는 건 볼더링이죠.” 김자인은 별로 대단치 않다는 듯 이 이야기를 했지만, 이건 거의 육상 선수가 단거리와 장거리를 모두 제패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리고 이 실내 암벽등반은 전신의 힘을 고도의 집중력으로 모아 쏟아내는 스포츠다. “어릴 때 오빠들과 같이 놀면서 벽을 타다 보니 자연스레 남자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훈련한 꼴이 됐던 것 같아요.” 김자인이 대회 걱정 없이, 식단 조절하지 않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단 2주다. 봄부터 시작한 시즌은 겨울이 다 되어 끝이 나고, 그동안 선수들은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그녀는 세계선수권을 마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0월 초 아시안 선수권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간다 했고, 그 후에도 월드컵 대회를 네 차례나 더 출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몸도, 마음도 다부지게 가다듬지 않고는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하던 거라 그런지 그냥 이게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힘들다기보다는 그냥 당연한 삶이랄까요.” 그녀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훈련을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김자인은 키가 작다. 고작 153cm다. 체격도 왜소한 편. 발 크기는 230mm다. 과격하고 큰 동작을 요하는 이 스포츠에 결코 유리한 신체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클라이밍이 우람한 육체만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전 집중하는, 몰입하는 느낌이 진짜 좋아요. 모든 잡념을 잊고 벽을 타는 기분, 그걸 내 리듬으로 가져가는 게 이 운동에선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리듬이란 건 분명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땀방울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큰 선수들이 한 번의 동작으로 잡을 수 있는 홀드도 저는 점프를 하거나 있는 힘껏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김자인은 그래서 나름의 유연성, 근력 강화 운동을 했고, 이제는 오히려 좁고 복잡한 구간에서 작은 몸을 활용해 유리한 동작을 만들어내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클라이밍을 보면 종횡의 밸런스가 매우 조화롭다. 탄탄하고 견고한 동작이 쌓여 거칠지만 유려한 길을 만들어낸다. “매번 새로운 산을 만나러 가는 느낌이 있어요. 이게 누굴 이기기 위해, 기록을 경신하는 스포츠가 아니거든요. 주어진 벽 위에서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거죠.”

김자인은 그렇게 자신의 길을 스스로 닦았다. 홀드 연습을 하도 많이 해 지문이 다 없어지고, 악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20mm나 작은 신발을 신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편할 수 있는 여정을 쌓아온 것이다. 그녀는 “모든 클라이머들의 유일한 목표는 완등”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완등의 고지는 자기 자신이란 산일 것이다. 2등으로 뒤처지는 걸 겁낼 필요는 없다. 그저 “스스로의 리듬을 놓쳐버릴 때의 추락만이 두려울” 뿐이다. 김자인은 이 고독한 길을 택했고, 그 위에서 충만한 행복을 찾아냈다. 아마도 그게 클라이밍이란 스포츠가 꽃피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답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