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 위크에서 만난 액세서리 디자이너들 1

패션이야 장난이야? 이렇게 따지지 마시길!
요즘 멋쟁이들은 소꿉놀이 같은 패션에 더 열광한다.
자신의 컬렉션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을 2015년 봄, 여름 파리 패션 위크에서 만났다.




CHARLOTTE OLYMPIA


샤넬의 뮤즈이자 모델인 앨리스 데럴의 언니이자 액세서리 디자이너, 샬롯 올림피아 데럴. 2008년 2월 런던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그녀는 40~50년대 할리우드 영화와 핀업 걸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구두와 가방으로 우리 여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3년 만에 영국 패션 어워드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뽑힐 정도로 그 재능을 인정받은, 실력파 디자이너.

 

VOGUE KOREA(이하 VK)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쇼룸이 정말 귀엽고 예쁘다.

CHARLOTTE OLYMPIA DELLAL(이하 CD) 고맙다! 매번 컬렉션 주제에 맞춰 꾸민다. 이번에는 서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프린지 장식 쿠션을 곳곳에 배치했다. 중국이 컨셉인 지난 시즌엔 중국풍 격자창을 디스플레이에 활용한 것처럼.

 

VK 아닌 게 아니라 가을 컬렉션은 완벽한 중국 컬렉션이었다.

CD 1932년 영화 <상하이 익스프레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를린 디트리히가 주인공이었지만, 그녀의 동료로 등장했던 중국 여배우, 안나 메이 웡이 나의 뮤즈다.

 

VK 무려 10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아이템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는데, 대체 그 수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비롯되나?

CD 언제나 영화가 내 영감의 근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상하이 익스프레스>를 비롯해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많이 봤지만, 직접 중국을 가본 적은 없다. 결국 내가 상상하는 중국, 내가 느낀 중국 무드에서 이 모든 게 시작됐다. 이번 시즌 컬렉션을 위해선 특히 고급 소재와 화려한 컬러에 신경 썼다.

 

VK 그중에서 유난히 애착이 가는 아이템은?

CD 빨강 새틴 위에 골드 프레임을 더한 등불 모양 이브닝백. 예쁜 등불을 고스란히 가방으로 바꾼 디자인이라 사실 내가 디자인했다곤 볼 수 없다. 발상의 전환이 있었을 뿐. 구두 중엔 청나라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어 굽을 표현한 펌프스가 맘에 든다.

 

VK 당신의 상상 속에선 어떤 여성이 언제, 어디서 이 가방과 구두를 착용할까?

CD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과 구두가 있지만, 호사스런 소재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시즌은 기본적으로 이브닝 파티용이다. 내 컬렉션은 늘 구두부터 고른 뒤 여기에 맞춰 옷을 입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Dress from the feet up!”





VK 내년 봄 컬렉션은 좀더 가벼운 느낌이다.

CD 새롭고 거친 서부의 모습을 담았다. 그야말로 ‘Wild Wild West’! 내 컬렉션의 대부분이 그렇듯 주제를 충실히 표현한 아이템들로 가득 채웠다. 금괴 모양 클러치, 인디언 머리 장식에서 영감을 얻은 하이힐, 말머리 핸드백, 현상수배 클러치 등등.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또한 경험해본 건 아니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 ‘서부’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때 누구든 떠올릴 만한 아이코닉한 요소, 클리셰들을 뜻밖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VK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이토록 사랑스럽게 재해석하는 비결은 뭔가?

CD 뻔한 소재들을 고르되 살짝 비틀어 재해석하는 게 관건! 그 자체로 예쁜 일상의 사물을 찾은 뒤 가방이나 구두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흔한 담배 케이스조차 근사한 클러치가 될 수 있다.

 

VK 7년 전 ‘샬롯 올림피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CD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코르셋, 모자, 가방, 슈즈 등에 관심이 컸다. 드레스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어 착용하다가 본격적으로 액세서리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관능의 40년대풍 하이힐 위주였지만, 키티 플랫이 등장했고 이브닝 클러치가 더해졌으며, 최근엔 가죽 가방도 론칭했다.

 

VK 그 가죽 가방 라인의 이름이 매우 독특하다.

CD 눈치챘겠지만 이 가방 라인에는 각각 험프리 보가트, 말론 브란도, 클라크 게이블 등 40년대 남자 배우들의 이름을 붙였

다. 여자가 멋진 남자와 팔짱을 끼고 다닌다는 의미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제작됐지만, 구두에 자주 쓰는 골드 플랫폼과 PVC 소재를 활용해 재치를 더했다.

 

VK ‘샬롯 올림피아’를 상징하는 아이템 중 하나인 키티 플랫은 어떻게 탄생했나?

CD 나는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의 광팬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영감받은 ‘To Dye For’ 컬렉션에서 남성적인 로퍼를 여성스럽게 재해석하고 싶어 고양이 얼굴과 뾰족한 귀 장식을 더했다.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고, 지금은 브랜드 대표 아이템이 됐다. 매 시즌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해 선보일 정도다. 내년 봄 컬렉션에는 가방으로도 만들었다.





VK 거미줄 로고는 어떤 의미인가? 

CD 어린 시절 이라는 동화책을 좋아했다. 주인공이 나와 이름이 똑같아 더 맘에 들었다. 브랜드를 론칭할 때 상징적 요소를 고민하던 중 이 동화책의 거미와 거미줄이 번뜩 떠올랐다.

 

VK 당신과 여동생 앨리스는 어렸을 때도 아주 멋쟁이였을 것 같다. 

CD 모델 출신인 엄마를 따라 패션쇼에 가곤 했다. 특히 백스테이지는 늘 에너지로 가득했다. 아마 그때부터 막연하게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웠던 것 같다.

 

VK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구두와 완벽한 가방이란 뭘까? 

CD 수납장 안에 보관할 때도 예쁘지만 직접 신고 위에서 내려다볼 때도 예쁜 슈즈가 완벽한 슈즈다. 또 완벽한 가방은 100% 투명해서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방!

 

VK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꿈은 뭔가? 

CD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내가 신고 싶고, 들고 싶은 컬렉션을 만드는 것! 이거야말로 여자 디자이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닐까? 평소 내가 만든 모든 아이템을 직접 착용하고 다닌다.

 

VK 이제 또 한번의 패션 위크가 끝났다. 어떤 계획이 있나? 

CD 휴가를 어디로 갈지 정하진 못했다. 세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YAZ BUKEY


터키 오스만제국 왕족 출신이라는 으리으리한 배경으로 패피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사실이지만, 야즈 부키가 플렉시글라스를 이용해 완성한 주얼리에는 그녀만의 강렬한 개성이 돋보인다. 과감한 색채, 기발한 트롱프뢰유 기법, 여기에 재치 있는 문구까지! 매 시즌 그녀 자신이 일인다역을 맡아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 캠페인은 야즈부키 컬렉션을 즐기는 또 다른 재밋거리다.

VOGUE KOREA(이하 VK) 당신에 관한 자료 대부분이 오스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올가을 컬렉션의 주제 역시 ‘Turkish Delight’로 정했나?

YAZ BUKEY(이하 YB) 하하! 맞는 말이다. “대체 언제 터키를 주제로 다룰 건가?” 같은 질문을 지겹게 들었다. 물론 터키 출신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의 아름다움을 담은 컬렉션을 완성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번 시즌 파리에 온 지 20년이 된 것을 기념해 드디어 터키 오마주 컬렉션을 만들겠다 결심했다. 때마침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탄생 150주년! 그래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어두운 동굴 속에 빠지듯, 내 컬렉션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따라 상상 속의 터키를 여행하기로 했다.

 

VK 야즈부키의 터키는 어떤 곳인가?

YB 다른 디자이너들의 표현과 달리 좀더 신비롭고 시간을 초월한 곳! 특히 눈과 별이 달린 귀고리가 이번 컬렉션 주제를 가장 잘 묘사한 아이템이다. 골똘히 보고 있으면 최면에 걸릴 것 같지 않나!

VK 사진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다. 이 귀고리를 착용하는 여성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YB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가씨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아무렇게나 입은 뒤 이 귀고리를 찰 것이다. 한쪽 귀에만 착용해도 충분하다. 그런가 하면 일흔다섯 살의 여인은 우아한 재킷 위에 매치할 것이다. 귀고리 대신 커다란 목걸이를 착용해도 좋다.

 

VK 내년 봄 컬렉션에는 클러치와 토트백도 많은 것 같다.

YB 좀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봤다. 가을 컬렉션이 나의 첫 번째 사랑인 터키를 표현했다면, 다가올 봄 컬렉션은 나의 두 번째 사랑인 파리를 위한 것이다. 진 켈리가 출연한 1951년 영화 <An American in Paris>에서 영감을 얻었다. 늘 그렇듯 내 컬렉션엔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다. 루브르 미술관의 ‘모나리자’가 사라진 다음날, 어느 카페에서 파리지엥들과 미국인 관광객이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상황이다. 신문, 바게트, 와인 병 모양 클러치, 관광객의 카메라에서 영감을 얻은 숄더백 등이 등장한다.





VK 이번에도 직접 광고에서 여러 인물을 연기했나?

YB 물론이다!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 카페 웨이터, 새침한 저널리스트, 핑크색을 좋아하는 미국인 관광객 등으로 변신했다. 매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가와 함께 고민하고 상의해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프레젠테이션 음악을 담당하는 미셸 고베르도 미팅에 참여한다. 때론 주얼리 광고가 아닌, 작은 영화를 제작하는 기분이다. 우리 모두 8년째 함께하는 드림팀이다.

 

VK 광고는 물론, 당신 컬렉션은 늘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YB 내 머리와 마음이 온통 컬러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가을 시즌에는 와인, 카키, 네이비 등으로 침착해지고, 봄이 오면 파스텔 톤으로 물들여진다. 무채색이나 흑백인 경우는 결코 없다. 컬러와 함께 매 시즌을 즐기는 것이 참 좋다!

 

VK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위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나?

YB TV나 영화에서 참고하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또 다른 이야기로 발전시킨다.

 

VK 14년 전 브랜드는 어떻게 론칭하게 됐나?

YB 정말 본능적이었다. 뉴 밀레니엄이 시작된 순간, 이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번쩍 들었다. 원래 뮤지션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음악과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패션에 입문했는데, 패션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지방시, 제레미 스콧 디자인팀을 거쳤으니 여성복을 론칭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지만, 당시 내 아파트는 너무 작고 돈도 없었다. 공간과 예산이 많이 드는 여성복과 달리 주얼리는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성공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하하!

 

VK 플렉시글라스로 주얼리를 만들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
YB 내가 직접 개발한 기술이다. 각각의 조각을 레이저 커팅한 뒤 한 겹 한 겹 손으로 붙여야 한다. 그래서 클러치 하나를 만드는 데 5시간쯤 걸린다.





VK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에서는 무슈 마르지엘라와 함께 일했나?

YB 바로 ‘그’ 마르지엘라가 맞다! 그는 늘 방에서 혼자 작업하는 편이라 디자이너들도 쉽게 만나기 힘든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와인 파티를 하려고 와인 병을 따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도와줄까?”라고 묻기에 돌아보니 무슈 마르지엘라였다! 그와 대화했다는 것이 한동안 나의 자랑거리였다. 지방시에서는 알렉산더 맥퀸과 함께했다. 그리고 제레미 스콧까지. 다들 훌륭한 스승이었다.

VK 스승들의 컬렉션 외에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누군가?

YB 줄리앙 데이비드와 빈티지 알라이아 혹은 빈티지 뮈글러를 즐겨 입는다. 까르벵은 지나치게 소녀 취향이긴 하지만, 연출하기에 따라 나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도 있다. 사카이는 무척 예쁘지만 멋지게 소화하려면 살을 좀 빼야 할 것 같다. 실루엣이 어찌나 난해한지! 사실 어떤 브랜드든 몸에 잘 맞는 심플한 블랙 드레스가 최고다. 그래야 내 주얼리들이 돋보일 테니까. 뭔가 부수적인 것을 의미하는 ‘액세서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액세서리는 블랙 드레스 위에서 프린트와 장식이 되고, 메시지가 될 수 있다.

VK 다음 시즌 주제가 벌써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닌가?

YB 아닌 게 아니라 어젯밤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듯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비밀이다.

 

VK 그렇다면 휴가 계획 정도는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나.

YB 하하. 물론이다. 먼저 터키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그런 뒤 베니스! 요트 위에 누워 맛난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며 꼼짝 안 하고 쉬고 싶다. 그 다음은? 다이어트!

VK 10년 후엔 당신이 뭘 하고 있을까?

YB 프로즌 마르가리타를 마시며 강아지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몰두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