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에서 열린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

모나코 왕국 안뜰에서 열린 루이 비통의 컷 크루즈 컬렉션쇼.
파란 하늘과 빛나는 바다, 70년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 그곳은 오랫동안 전 세계 귀족과 예술가의 휴양지.
루이 비통과도 아주 오랜 인연이 있다.
그 모나코에서 만난 매력적인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과 패션 천재 니콜라 제스키에르!



지금은 웨어러블한 옷이 각광받는 시대다. 8등신 모델들에게만 잘 어울릴 뿐, 대부분 여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옷(Unwearable)이 아닌, 누구나 입을 수 있고 잘 어울리는(Wearable) 옷들이 대세다. 지난 5월 17일 모나코공국의 왕궁 안뜰에서 열린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쇼는 요즘 패션계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 증표였다. 가을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웨어러블한 옷들이 소개됐고(팬츠가 많아지고 빨강, 노랑, 주황, 핑크 등 예쁜 컬러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백들은 한층 다양해졌으며,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충실히 반영하되 니콜라만의 소재와 실루엣, 디테일 실험이 포함돼 있었다. 반갑게도 한국에서 막 파리에 도착한 최소라가 쇼에 깜짝 캐스팅됐고, 샬롯 갱스부르, 제니퍼 코넬리, 브릿 말링 등 디자이너가 친하게 지내는 셀럽들은 물론, 영화 <괴물>을 세 번이나 보며 팬이 됐다는 한국 배우 배두나도 초대됐다.

이날 쇼는 루이 비통으로선 최초의 크루즈 컬렉션쇼이자, 니콜라 제스키에르에겐 데뷔쇼가 끝난 후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치른 두 번째 무대였다. 소재 실험과 실루엣 혁신으로 유명한 패션 천재 니콜라는 루이 비통 데뷔쇼를 통해 전 세계 프레스에게 색다른 차원의 놀라움을 안겨줬다. 그가 선보인 데뷔 컬렉션은 비즈니스를 염두에 둔 철저히 웨어러블한 옷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방들 또한 화제가 됐다. 루이 비통 아카이브 백들을 작고 귀엽고 반짝이게 만든 그 백들은 여자들이 분명 아카이브에서 꺼낸 것임이 분명함에도 매일같이 밤낮으로 들 수 있는 백이었기 때문이다(크고 무거운 백이 아닌, 작은 백 시대를 선포한 셈). 이 대단한 혁신과 변화의 주인공인 제스키에르와 루이 비통을 만나러 모나코로 떠났다.



유르겐 텔러의 카메라에 담은 모나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 의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화보집 ‘A Trip or Voyage’. 지중해, 선인장, 들꽃, 종유석 등 자연의 아름다움이 제스키에르에게 어떻게 영감을 주고 또 어떻게 의상으로 표현되었는지 알 수 있다.

루이 비통이 첫 번째 크루즈 컬렉션쇼를 왜 모나코 왕궁에서 열었는지 궁금한가. 그건 ‘프렌치 리비에라(French Riviera)’로 알려진 코트 다쥐르(CÔte d’Azur) 지역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하우스의 전통에서 비롯됐다. 파리와 런던에서 각각 1854년, 1885년 이미 단단한 기반을 갖춘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휴가를 위해 해변을 찾는 러시아 왕족과 귀족, 예술인, 작가 등 상류층 여행객에겐 필수품이었다. 그 점에 착안해 창업자 루이 비통의 아들인 조르주 비통은 1908년 니스에 첫 매장을 열었다. 그후 리비에라 해변은 사시사철 붐비는 상류층 관광지가 됐고, 그의 아들 가스통 루이 비통은 해변을 찾는 상류층 셀럽들(피카소,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이디스 워튼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 중에는 1904년부터 러기지 제작을 의뢰한 모나코의 그리말디 왕족(1919년 모나코를 공국으로 독립시킨 주인공)도 포함돼 있었다(1949년 레니에 대공, 1966년 캐롤라인 공주도 루이 비통의 VIP 고객이 됐다). 그즈음 리비에라의 해변 도시 모나코는 ‘모든 길은 모나코로 통한다’로 통용될 만큼 유명해졌다. 카지노, 호텔, 오페라하우스 등이 모인 그곳은 귀족과 상류층에겐 더없이 근사한 향락과 사치의 휴양지였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드디어 모나코 최초의 루이 비통 매장이 몬테카를로 보자르 거리에 문을 열었고, 루이 비통과 그리말디 왕실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말하자면, 루이 비통과 모나코, 그리고 크루즈 여행은 오랫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것이 최초의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쇼를 이곳 모나코에서 개최한 이유다. 제스키에르는 리비에라의 해변을 유난히 사랑하던 전 세계 상류층과 그리말디 왕족과의 친분, 그들이 들고 다니던 루이 비통 트렁크와 100년 넘는 긴 역사의 리비에라 지역 매장과의 관계를 생각해냈고, 이 소중한 유산을 자신의 첫 크루즈 컬렉션쇼에 ‘여우같이’ 끌어들인 것이다. 물론 그 어떤 브랜드에도 문을 연 적 없는 모나코 왕궁 안뜰에서 쇼가 열린 데는 모나코공국의 안주인, 샤를린 대공비의 도움이 컸다. 수영 선수 출신의 아름답고 야심 있는 그녀(얼핏 보면 샤를리즈 테론을 닮았다)는 모나코가 밀라노-파리를 잇는 또 하나의 패션 스폿이 되길 바랐고, F1 자동차 경주대회만큼이나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이 되길 원했다. 제르키에르의 개인적 추억 또한 도움이 됐다. 아주 어릴 때 모나코를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쇼가 열리기 두 달 전 샤를린 대공비를 만나기 위해 다시 이곳에 왔다. 모나코 궁전에서 환대를 받고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 궁전 안뜰에 유리 텐트를 짓고 쇼를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고 대공비는 흔쾌히 수락했다. 모나코의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 그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모나코 특유의 70년대 건물들, 생전의 헬무트 뉴튼이 모나코에서 살면서 남긴 강렬한 사진 이미지를 좋아하는 제스키에르의 진심도 전해졌을 것이다.



리베이라 해변은 늘 루이 비통과 그 고객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35년에 촬영한 니스 풍경, 코트 다 쥐르의 에덴 록 호텔, 20년대 루이 비통 지갑 광고, 루이 비통 니스 매장, 모나코 몬테카를로 해안가에서의 여유로운 한 때.

어쨌든 지금 크루즈 컬렉션은 프리폴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브랜드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컬렉션이 됐고, 프레젠테이션을 근사하게 해 사람들의 뇌리에 콕콕 박히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패션 천재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노린 것도 그것. 인터뷰에서 설명하듯이, 그는 이제 예술적인 비전과 함께 비즈니스 마인드도 충분한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고, 데뷔쇼를 통해 그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러니 두 번째 쇼를 위해 전 세계 프레스와 셀럽 친구들을 모나코로 초대해 놀라운 볼거리, 쇼핑 아이템, 이야깃거리를 잔뜩 마련한 건 당연한 일. 바야흐로 활짝 열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웨어러블한’ 루이 비통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