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피렐리 캘린더

2016.03.17

by VOGUE

    피렐리 캘린더

    ‘핀업 걸’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잠시 잊어주길!
    50년 동안, 최고의 사진가와 슈퍼모델이 만나 최적의 장소에서 만든
    피렐리 캘린더는 분명 예술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HISTORY

    피렐리는 140년 역사의 이탈리아 타이어 회사다. 19세기 말 밀라노에서 시작해 이미 60년대부터 스페인, 영국, 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에 지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중 달력 출판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영국 지사다. 1964년 피렐리 영국 지사의 후원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북 디자이너 데릭 버솔과 비틀스 전속 사진가 로버트 프리먼이 함께 첫 피렐리 캘린더를 탄생시켰다. 처음부터 피렐리 캘린더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하나, 최고의 실력파들이 모여 최고의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 50년간 늘 다르면서도 하나하나 독창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탄생한 이유다. 둘, 피렐리 캘린더는 상품이 아닌 예술품이기에 억만금을 주더라도 판매할 수 없다는 것. 대신 매년 사회 · 경제 · 문화 · 교육 분야를 망라해 피렐리 측에서 인정하는 주요 인사에게 전달된다. 회사 사정상 잠시 출판을 중지한 시기도 있지만(1975~83년), 현재까지 총 40권의 피렐리 캘린더를 출판했다. 매년 12컷, 총 480컷의 이미지가 완성된 셈이다. 현재 피렐리 캘린더의 출판은 ‘The Calendar’로 불릴 만큼 모두가 기다리는 연례행사가 됐다.

    PHOTOGRAPHERS

    피렐리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사진가 목록을 보면 전 세계 <보그>를 통해 더 익숙한 이름들이다. 마리오 소렌티(2012), 테리 리처드슨(2010), 머트 앨러스&마커스 피고트(2006), 닉 나이트(2004), 마리오 테스티노(2001) 등등. 물론 더 이상 새 작품을 구경할 수 없는 전설적인 사진가들, 그러니까 세상을 떠난 버트 스턴(1986), 허브 리츠(1994, 1999), 리처드 아베돈(1995, 1997) 등도 포함돼있다. 올해까지 출판한 40권에는 사진가 총 34명이 참여했다. 그중 8명은 두 차례 이상 촬영했다. 바로 2년 연속 이름을 올린 해리 페치노티(1968, 1969), 프랑시스 지아코베티(1970, 1971), 클라이브 애로스미스(1991, 1992)를 비롯, 브루스 웨버(1998, 2003), 허브 리츠, 리처드 아베돈 등이다. 50주년 기념 화보 촬영을 맡은 피터 린드버그(1996, 2002)와 패트릭 드마슐리에(2005, 2008)는 이로써 세 차례나 참여한 사진가가 됐다. 패션계에 여성 사진가가 드물기 때문일까? 반세기 동안 여성 사진가는 딱 4명뿐. 사라 문(1972), 조이스 테니슨(1989), 애니 레보비츠(2000), 그리고 남편과 함께한 이네즈 반 램스위드(2007)까지. 올해는 그 유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푸른 눈의 아프간 소녀’를 찍은 사진가 스티브 맥커리가 선정됐다. 주로 분쟁 지역, 재난 현장에 뛰어들어 다큐 사진을 찍는 맥커리가 만든 결과물은? “리오의 일상적인 사람들을 배경으로 아주 특별한 여성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단지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모델들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빛나는 모델들을 선택했다.” 맥커리의 설명처럼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피렐리 캘린더가 탄생했다.

    MODELS

    패션모델에게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업들이 있다. <보그> 커버,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샤넬 광고 등등. 피렐리 캘린더에 등장하는 것 역시 그중 하나다. 매년 당대 최고 모델들을 기용했기에 피렐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는 건 톱 모델이라는 증거다. 미국 <보그> 커버를 장식해 최연소 모델(16세)로 기록된 캐롤리나 쿠르코바는 그녀의 전성기에 2년 연속으로 피렐리 캘린더의 주인공이 됐다(2003, 2004). 브루스 웨버와 닉 나이트는 각각 남부 이탈리아와 런던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를 포착했다. 그런가 하면 이자벨리 폰타나는 무려 6번(2003, 2005, 2009, 2011, 2012, 2013)이나 등장했다. 두 아들의 엄마지만 여전히 완벽한 몸매의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헬레나 크리스탄센(1994), 크리스티 털링턴(1995), 알레산드라 암브로시오(2003), 미란다 커(2010) 등도 피렐리의 요정이 된 톱 모델. 2012년에는 조안 스몰스, 라라 스톤, 사스키아 드 브로우, 밀라 요보비치, 케이트 모스 등 당대 슈퍼모델들과 셀럽들이 마리오 소렌티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지혜, 김성희, 수주 등이 패션계 곳곳에서 맹활약 중인 요즘, 한국 모델들도 피렐리 캘린더에 등장할 날이 오기를!

    LOCATIONS

    1964년 첫 피렐리 캘린더 촬영 장소는 스페인 마요르카. 음악가 쇼팽이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함께 요양한 곳으로 유명한 지중해 서부의 섬에서 아찔한 사진들이 탄생한 것이다. 아서 엘고트는 세비야(1990), 클라이브 애로스미스는 알메리아(1992)에서 촬영하기 위해 스페인을 다시 찾았다. 보다 이국적인 정취의 자연을 배경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피렐리 사진가들이 탐험한 미지의 세계는 셀 수 없을 정도다. 튀니지(1968), 바하마(1970, 1984, 1994), 마다가스카르의 세이셸 제도(1974, 1993), 프랑스 남부의 캡 당티브(2006) 등등. 보츠와나의 아부 캠프(2009)에서는 집채만 한 코끼리들을 배경으로 아슬아슬한 장면도 연출했다. 또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는 패트릭 드마슐리에(2005)와 스티브 맥커리(2013)를 사로잡았다. 물론 도심의 스튜디오에서도 멋진 작품들이 탄생했다. 두 차례 촬영을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리처드 아베돈(1995, 1997)은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이미지들을 완성했다. 런던의 스튜디오에 미래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을 제작해 촬영에 나선 닉 나이트(2004), 파리 한복판의 스튜디오에서 신화를 주제로 자신만의 개성이 가득한 흑백 이미지들을 완성시킨 칼 라거펠트(2011) 등도 있다.

    NUDITY

    법 규정에 따르면 “노골적인 노출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을 현저히 불러일으키는 것”을 유해간행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골적인 노출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확실히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피렐리 캘린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위를 달리했을 뿐 한마디로 ‘누드 달력’인 피렐리 캘린더엔 슈퍼모델들은 물론 72세 소피아 로렌(2007), 줄리안 무어(2011) 같은 여배우들마저 세미누드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마리오 소렌티가 지중해 코르시카 섬에서 촬영한 39번째 달력(2012)에선 지금까지 선보인 어떤 버전보다 심한 전라의 모델들이 적나라한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아름답다는 감탄사만 터져 나왔다. “애초에 아주 섹시한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지만, 섬에 도착하고 나자 그럴 생각이 없어졌다”라고 소렌티는 기억한다. “누드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고 대자연과 어우러지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이미지가 탄생했다.”

    CELEBRATION

    50주년을 기념해서는 전례 없이 두 명의 사진가가 2014년 피렐리 캘린더를 촬영하게 됐다. 지난 1978년 이탈리아 <보그>를 시작으로 30년 이상 패션계의 중심에서 일해온 거장, 피터 린드버그.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작품 세계는 늘 20년대 독일 흑백영화에서 영감을 얻는다. 카트린느 드뇌브, 믹 재거, 마돈나, 샤론 스톤, 존 말코비치 등 그의 앵글에 포착된 유명 인사들은 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것이 특징.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패트릭 드마슐리에 역시 피터와 함께 이번 캘린더 제작에 투입됐다.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두 아들을 찍은 인물 사진가로, 7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인 패션 사진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가 묻는 것도 ‘드마슐리에의 승낙’이고, <셉템버 이슈>에서 안나 윈투어가 막판 구원투수로 찾는 것 역시 ‘패트릭’이다. 두 사진가와 함께할 드림 팀 역시 쟁쟁하다. 이미 피렐리를 장식한 적 있는 6명의 모델들(알레산드라 암브로시오, 이자벨리 폰타나, 알렉 웩, 미란다 커, 캐롤리나 쿠르코바, 헬레나 크리스탄센)이 등장하며, 스타일링은 일본 <보그>를 위해 일하는 스타일리스트 조지 코르티나와 그레이스 코딩턴의 수제자이자 <베니티 페어> 패션 디렉터인 제시카 디엘이 맡았다. 여기에 헤어 아티스트 테디 찰스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풀비아 파롤피까지. 피렐리 캘린더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또 하나의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만한 기념행사가 또 있을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사진
    Courtesy of Pir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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