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하이 패션으로 뛰어든 스포츠브라

2016.03.17

by VOGUE

    하이 패션으로 뛰어든 스포츠브라

    107년 전, <보그>는 ‘브래지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브라를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운동복 밖으로 뛰쳐나와 하이패션 무대에 뛰어든 스포츠브라는 어떤가!

    패션 위크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트렌드의 탄생이다. 요즘은 패션쇼 런웨이보다 그곳에 가기 위한 통로, 다시 말해 패션쇼장 바깥 풍경에서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곤 한다. 그렇다면 얼마 전에 끝난 2015 봄, 여름 패션 위크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띈 것은? 바로 스포츠브라! 셀럽 모델 카라 델레빈이 검정 스포츠브라와 노랑 플레어 스커트를 매치하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더니, 런던에선 소문난 멋쟁이 하넬리 무스타파타가 데님 멜빵 원피스 안에 나이키 스포츠브라를 톱처럼 활용했다. 밀라노에서도 모스키노 로고 프린트 브라가 여러 차례 출몰했으며, 거의 모든 쇼에 모습을 드러낸 키아라 페라니는 패션 수도 파리에서 온갖 색깔의 스포츠브라를 차고 나타났다. 말하자면, 스포츠브라는 이제 더 이상 피트니스 센터 전용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

    스포츠브라는 와이어, 후크, 패드 등 일반 브라가 지닌 세 가지 고통 요소를 제거한 것이 특징이다. 운동하는 동안 보다 편안하게 가슴을 보호할 수 있도록 1975년 처음 탄생했다. 여자의 전유물로서, 가장 여성스러워야 한다고 여겨진 브라를 레이스와 실크가 아닌 스판덱스로 운동복처럼 만든 것 자체가 모순이었을까? 애석하게도 스포츠브라는 그 후 오랫동안 여자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오프라 윈프리> 쇼에 소개된 후 3일 만에 미국 내에서 1만5,000장이 팔린 적도 있지만).

    그렇다면 땀 흘리는 운동과 거리가 먼(우아한 척하기 좋아하는) 패션 피플들이 느닷없이 너도나도 스포츠브라를 찾게 된 이유가 뭘까? 지겹다 싶을 만큼 몇 시즌째 이어지는 디자이너들의 스포츠웨어 사랑이 한 가지 이유다. 디자이너들은 스니커즈, 스웨트셔츠, 봄버 재킷, 스냅백, 백팩, 트랙팬츠, 사이클 쇼츠 등 온갖 스포츠웨어를 하이패션으로 업그레이드시키더니, 이제는 언더웨어까지 손을 뻗쳤다. 자신의 컬렉션에서 스포츠브라를 즐겨 선보이던 제레미 스캇은 올가을 모스키노 컬렉션에서도 브랜드 로고가 잔뜩 찍힌 스포츠브라를 등장시켰고, 뒤이어 내년 봄 컬렉션에서도 모델들에게 알록달록한 스포츠브라를 잔뜩 입혔다. 스포츠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알렉산더 왕의 경우, H&M 협업 컬렉션에 스포츠브라를 포함시켰다.

    90년대를 추억하는 패션의 전반적 흐름 역시 스포츠브라가 재평가된 이유다. 놈코어부터 미니멀리즘까지, 최근 패션계는 90년대 스타일의 재조명에 재미가 단단히 들렸다. 캘빈 클라인은 이런 분위기를 마케팅에 잘 활용하고 있는 브랜드.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의 ‘#Mycalvins’ 캠페인을 통해 미란다 커, 켄달 제너 등 CK 로고 스포츠브라 차림의 셀피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하더니, 얼마 전엔 케이트 모스의 여동생 로티 모스가 스포츠브라와 데님 오버올을 입고 등장한 광고를 공개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 패션계에서 딱 한 번 스포츠브라가 주목받았던 시기가 90년대다. 1990년 장 폴 고티에가 마돈나의 ‘Blonde Ambition’ 투어 의상으로 콘 브라를 선물한 이후, ‘브라 룩’의 전도사가 된 마돈나는 보이 런던의 스포츠브라를 티셔츠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돈나의 후예들(리한나, 마일리 사이러스, 2014년 그래미 어워드를 휩쓴 ‘팝의 신데렐라’라고 불리는 로드(Lorde) 등) 역시 스포츠브라에 열광 중이다.

    그렇다면 스포츠브라를 실생활에선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맨 먼저 필요한 건 ‘스포츠’와 ‘브라’라는 요소를 머릿속에서 지울 것(쉽진 않겠지만)! 전혀 스포티브하지 않고 결코 언더웨어답지 않게 스타일링했을 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쉬운 방법은 키아라 페라니처럼 스포츠브라 위에 시스루 톱을 톤온톤으로 매치하는 방식. 다들 흰색 시스루 안에 검정 브라를 매치하는 공식에 익숙하지만, 스포츠브라는 지나치게 대비시키지 않을 때 오히려 시크하다. 또 캘빈 클라인 진 광고의 로티 모스처럼 오버올과 스포츠브라의 매치 역시 좋은 방법이다. 약간의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스포츠브라 위에 아우터 하나만 걸칠 것. 봄버, 후디, 셔츠 등 어떤 아우터를 걸치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가 완성된다. 특히 날렵한 테일러드 재킷과의 매치는 강력 추천 방법! 마지막으로, 내년 봄 나시르 마자르 쇼에서 건진 스타일링 팁 한 가지. 좀 과감하긴 하지만, 티셔츠 위에 스포츠브라를 입으면 된다.

    파리 패션 위크 마지막 날 아침,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두 번째 루이 비통 무대엔 벨벳 소재 브라톱이 등장했다. 소재는 달랐지만 디자인은 영락없이 스포츠브라였다. 당분간 스포츠브라의 유행이 계속될 것이라는 달콤한 종소리다. 때마침 어떤 설문 조사에 의하면, 68% 여성들이 특별한 날 새 브라를 사고 싶어 한단다. 당신도 좀더 특별해지고 싶은가? 스포츠브라를 입고 모터사이클 재킷이나 턱시도 재킷만 툭 걸칠 것!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포토그래퍼
    남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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