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가르뎅, 그 패션 미래파 박물관 속으로!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수지 멘키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저널리스트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현재 <인터내셔널 뉴욕 타임즈>로 이름이 교체됐다)에서 25년 간 패션 비평을
담당한 그녀는 현재 세계 각국의 ‘보그닷컴’을 위해 독점 취재 및 기사를 쓴다.

피에르 가르뎅 드레스와 램프 ⓒ 수지 멘키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고 길 건너편으로 가길 바래. 여기는 과거고 저기가 미래야!”라고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92세)이 파리 마레 지구에서 열린 그의 박물관 개막식에서 말했다.

 

그러나 불멸의 패션 미래파로 알려진 가르뎅 외에 누가 나에게 1968년대의 고고, 우주시대, 그리고 비닐 미니 드레스들로부터 등을 돌리라고 말할까? 또 어느 누가 시대에 앞선 스포티하고 유연하며 유니섹슈얼한 남성복으로부터 등을 돌리라고 말할까?



피에르 가르뎅이 디자인한 의자 ⓒ 수지 멘키스

디자이너 가르뎅은 그의 새로운 과거, 현재, 미래 박물관(5 Rue St-Merri 75004 Paris)에서부터 에볼루션(Evolution)이라는 이름의 피에르 가르뎅 매장까지 걸어가보길 나에게 권했다. 매장은 전략적으로 박물관 반대편에 놓여 있는데, 열성적 애호가들은 이곳에서 현재 혁신적인 룩들을 구입할 수 있다. 



자신의 새 박물관에 있는 피에르 가르뎅 ⓒ 아카이브 피에르 가르뎅(Archive Pierre Cardin)

피에르 가르뎅은 파리 꾸뛰르 디자이너 디올, 파킨(Paquin), 스카아파렐리(Schiaparelli)를 위해 일하면서 배운 완벽한 테일러드 엘레강스로부터 벗어난 이후, 자신의 궤도 안에서 공전하고 있는 디자이너이다. 



우주시대를 위래 옷을 갈아입고 있는 피에르 가르뎅 모델들, 1968 ⓒ 아카이브 피에르 가르뎅

나는 1952년대의 스칼렛 패널 코트와 그와 함께 착용된 블랙 엘보 렝스 장갑과 클로슈(종모양의 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어떻게 가르뎅이 15년 후 달의 첫 착륙에 적합해 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앙드레 쿠레주(André Courrèges)와 마찬가지로 가르뎅은 60년대 정신을 포획했다. 



피에르 가르뎅 코트, 1981 ⓒ 수지 멘키스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 아카이브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은 비쥬얼 자극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으나, 정보 면에서는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처럼 짧았다. 옷들은 맨션의 4개 층에 진열돼 있었다. 맨션은 원래의 장엄함과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이전에는 자신의 타이 공장이었다고 가르뎅이 설명했다. 옷들은 액세서리와 함께 마네킹에 입혀져 있었고 신발을 신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 아카이브 피에르 가르뎅

피에르 가르뎅 디자인, 1968  ⓒ 수지 멘키스

날짜가 적힌 레이블은 있었지만, 의상들의 시대나 디자이너의 개발에 대한 맥락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전혀 없었다. 비록 가르뎅이 플라스틱과 최고급 꾸뛰르 실크를 대조적으로 함께 사용한 것은 아주 흥미로웠지만 옷감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 

 

당대 레드 카펫에도 오를 수 있는 관능의 이브닝 웨어를 디자이너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창조한 데 대해 관객들은 놀랄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히 클래식 마스터피스라고 볼 수 있는, 등이 노출된 블랙 레이스 드레스가 맘에 들었다. 



피에르 가르뎅 드레스, 1966  ⓒ 수지 멘키스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 아카이브 피에르 가르뎅

그렇다고 나는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을 실망스럽게 묘사하지 않을 것이다. 각 층에는 모두 흥미로운 작품들이 존재했고 그의 모던 퍼니처(빛나는 호빗 같은 바닥 채광을 포함) 자체만으로도 아주 매혹적이었다.

 

단지 나에게 너무 많은 가르뎅 추억이 있기에 어느 정도 텍스트를 읽고 패션쇼 영상을 보며 그의 비범한 비전을 기록한 인터뷰를 들을 수 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피에르 가르뎅 의상, 1968 ⓒ 라지즈 하마니(Laziz Hamani)

피에르 가르뎅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 아카이브 피에르 가르뎅

1988년에 나는 첫 중국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낯선 문화와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장벽에 허덕일 때, 느닷없이 가르뎅이 지니처럼 나타나 당시 모든 대중들이 국가가 지정한 인민복만 입던 베이징을 가이드해줬다. 그때 그는 베이징 패션쇼를 위해 초대됐었다. 이 행사는 전쟁 이후 일본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가져간 첫 디자이너가 된 이후에 이뤄졌다.  



파리의 밴에 그려진 피에르 가르뎅 광고 ⓒ 수지 멘키스

피에르 가르뎅 의상, 1968 ⓒ 수지 멘키스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한 후 64년이 지난 뒤, 피에르 자신이 여기는 최고의 업적이 뭔지 말해줬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거야! 이 모든 게 내 것이라는 거지!”라고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단지 방대한 의상과 액세서리, 매장, 글로벌 라이센스의 그물망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패션 월드에서 그의 자랑스러운 포지션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가르뎅은 브랜드라는 용어가 사업 개념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브랜드를 창조했고, 스마트 패션 경영에 대한 매뉴얼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코드와 개발 계획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피에르 가르뎅의 스토어, 에볼루션(Evolution) ⓒ 수지 멘키스

70년대에 그가 디자인한 미래파 자동차 역시 볼 수 있길 소망한다. 아울러 파리에서 그의 극장 일에 대한 정보와 이탈리아 근본으로 돌아가는 남부 프랑스와 베니스의 현재 프로젝트도 있었으면 더 좋았듯 하다.

 

가르뎅은 늘 젊은 예비 디자이너들을 위해 너무도 많이 공헌해왔다. 그는 학생들을 초대해 스마트폰을 갖고 함께 박물관을 둘러보며 그가 직접 전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녹음하게 해준다. 학생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의상 디테일을 장식하고 기록물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피에르 가르뎅과 함께 있는 수지 멘키스 ⓒ 수지 멘키스

내가 직접 녹음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피에르 가르뎅의 말을 듣는 것은 살아있는 전설의 말을 듣는 거니까.




English Ver.


Pierre Cardin: a museum from fashion’s futurist

 

“Don’t stay here too long – go across the road. This is the past and that is the future!” said Pierre Cardin, 92, at the opening of his new museum in the Marais district of Paris. 

 

Who but Cardin, the perpetual fashion futurist, would suggest that I should turn my back on go-go, space age, vinyl minidresses from 1968? Or menswear that was sporty, stretch and unisex before its time? 

 

The designer was encouraging me to walk across from his new Past, Present, Future Museum (5 Rue St-Merri 75004 Paris) to a Pierre Cardin shop named Evolution, strategically placed opposite, where devotees can buy current re-furbished looks. 

 

Pierre Cardin is a designer who has been spinning in his own orbit since he stepped away from the perfectly tailored elegance he learned from working at Paris couturiers Dior, Paquin and Schiaparelli. 

 

I looked at a scarlet panelled coat from 1952, worn with black, elbow-length gloves and cloche hat, and wondered how it was conceivable that 15 years later Cardin’s miniskirts looked ready for the first moon landing. The designer, along with André Courrèges, caught the spirit of the 1960s. 

 

The museum has plenty of visual stimulation, but it is as short as a micro-miniskirt on information. The clothes are on four floors of a mansion, far from its original grandeur, which Cardin told me was his former necktie factory. The clothes are put on mannequins with accessories, but few shoes. 

 

There are date labels, but nothing else to put a garment in the context of its decade or the designer’s development. There are not even details of fabrics, although Cardin’s contrasting use of both plastics and the finest couture silks are intriguing. 

 

Visitors may even be amazed that, throughout his career, the designer created glamorous evening clothes that could grace a red carpet today. I particularly liked a black lace dress framing a bared back, a classic masterpiece. 

 

I would not describe this Pierre Cardin museum as a disappointment. All the floors have interesting pieces and his modern furniture alone – including floor lights like glowing hobbits – are fascinating.

 

It is just that I have so many Cardin memories and I would have liked to have seen some text, looked at films of shows, or heard interviews as a record of his extraordinary vision. 

 

In 1988, I made my first trip to China. And as I struggled through an alien culture and an impenetrable language barrier, Cardin suddenly popped up like a genie, guiding me through a Beijing where the public still wore Mao suits to a massive, state-organised event where he had been invited to stage a fashion show. And this was after he had already been the first designer to bring his style to Japan after the war. 

 

Sixty-four years after he founded his fashion house, Pierre told me what he considered his finest achievement. 

 

“I own everything – it is all mine,” he said proudly, referring not just to the welter of clothes and accessories, the stores and a web of global licences, but to his extraordinary position in the fashion world. Cardin created a brand – before that word was used as a business definition – and went on to break every code and development plan you would find in a manual about smart fashion management. 

 

I wish one of the futuristic cars he designed in the 1970s was on show, along with information about his theatre work in Paris and his current projects in the South of France and in Venice, returning to his Italian roots. 

 

Cardin has always done so much for young or would-be designers. I would love him to invite students with smartphones to walk with him around the museum, recording the exceptional stories from his own lips – and then use that information to embellish the details of the outfits and to create an archive. 

 

I wouldn’t even mind doing those recordings myself. For with every word that Pierre Cardin says, you know that you are listening to a living legend. 

 

www.pierrecardin.com/art_spectacle_e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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