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의 계절

오래전 에픽하이는 ‘10년 뒤에’를 부르며 오늘을 상상한 적이 있다.
열한 번째 가을이 찾아왔고, 에픽하이가 돌아왔다.
꽤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한순간도 멈춘 적은 없다.
차가운 공기를 타고 음악이 흐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에픽하이의 노래가 들린다.

미쓰라의 가죽 재킷은 쿤 위드 어 뷰(Koon with a View), 터블넥 티셔츠는 산드로 마르조(Sandro Marzo at Mue), 이너는 아딘(Adyn), 비니는 클럽 모나코(Club Monaco), 운동화는 프라다(Prada). 투컷의 레오퍼드 재킷은 로드앤테일러(Lord&Tailor), 셔츠는 김서룡 옴므(Kimseoryoung Homme), 티셔츠는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신발과 벨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타블로의 셔츠는 프라다(Prada), 타이와 벨트는 생로랑, 모자는 브로너(Broner), 운동화는 스터즈워(Studswar), 바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미쓰라의 가죽 재킷은 쿤 위드 어 뷰(Koon with a View), 터블넥 티셔츠는 산드로 마르조(Sandro Marzo at Mue), 이너는 아딘(Adyn), 비니는 클럽 모나코(Club Monaco), 운동화는 프라다(Prada). 투컷의 레오퍼드 재킷은 로드앤테일러(Lord&Tailor), 셔츠는 김서룡 옴므(Kimseoryoung Homme), 티셔츠는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신발과 벨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타블로의 셔츠는 프라다(Prada), 타이와 벨트는 생로랑, 모자는 브로너(Broner), 운동화는 스터즈워(Studswar), 바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세 남자는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에픽하이의 새 앨범이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으며 수주째 차트 상위권을 골고루 휩쓸고 있는 데다, 5년 만에 콘서트 무대에도 오른다. “어제 최고의 찬사를 받았는데, 그건 말이 아니었어요.” 이른 아침 촬영장을 찾은 타블로는 졸린 눈을 비비며 몇 시간 전 자신에게 일어난 멋진 사건을 들려주었다. “스케줄 사이에 틈이 생겨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보낼 때였어요. 복국을 먹고 카페도 들른 후, 하루 장난감을 사주러 문방구를 찾았어요. 그사이 편의점과 휴대폰 가게도 잠시 들렀죠. 그런데 그 모든 곳에서 우리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것도 전부 다른 곡이 말이죠.” 타블로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의 일상의 일부가 된다는 건 뮤지션에겐 더없이 기쁜 일이다. 지난 10월 21일 발매된 에픽하이의 8집 <신발장>은 어느덧 이 계절의 BGM이 되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이젠 이 계절이 우리의 놀이터 같아요. 유일하게 1월에 나와 잘된 앨범이 4집이었는데, 그것도 원래는 10월로 계획한 거였죠.” 2003년 에픽하이의 첫 앨범 역시 꼭 이맘때 세상에 나왔다. 당시 ‘10년 뒤에’라는 음악 편지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띄웠던 에픽하이의 오늘은 11년 전의 상상보다 훨씬 더 근사하다.

타블로는 2001년 겨울을 떠올렸다. 역사의 시작은 대체로 아주 사소하기 마련이다. “노보텔 로비에서 미쓰라를 처음 만났어요. CB Mass를 비롯한 무브먼트 크루들이 송년회를 하기 위해 호텔 방을 빌렸나 봐요.” 에픽하이의 프로듀서였던 J-Win의 소개로 만난 둘은 곧장 강남역의 어느 실내 포차에 들어가 술을 마셨고, PC방에서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게임은 타블로의 완패로 끝났다. “진짜 못하더라고요. 흐흐.” 가죽 케이스에 담긴 전자 담배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던 미쓰라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에 키득거렸다. 게임이라면 지금도 질색인 타블로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프로듀서 형의 집에 갔어요. 랩을 해보라고 해서 몇 곡을 녹음하고는 일주일 즈음 있다가 같이 팀을 하자는 전화가 온 거예요. 좋다고 했죠.” 투컷이 합류한 건 그 이듬해 3월이었다. “강남의 한 쌀국숫집에서 셋이 첫 만남을 가졌죠. 지금의 삼성 본사 자리였어요. 전 그때 우리가 뭘 입고 있었는지도 다 기억나요.” 투컷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 사람은 합창하듯 서로의 인상착의를 줄줄이 읊었다. 타블로는 자주색 목 폴라 니트에 푸마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미쓰라는 겨자 색상의 커다란 봄버와 두건, 투컷은 남색 디제이 모자에 회색 후디와 리바이스 구제 청바지 차림이었다. “제가 패딩 점퍼 입고 독서실 가는 애 같았다면 미쓰라는 살아 숨 쉬는 힙합 그 자체였어요.” 그 점에 대해선 투컷도 인정하는 바다. “‘저 사람이 힙합을 안 하면 반칙’이라고 생각했죠.” 한껏 신이 나 떠들던 셋은 문득 서로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왜 기억하지? 굉장히 중요한 날이었나?” 정답을 아는 건 투컷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린 옷이 그거밖에 없었거든! 1년 내내 그 옷만 입었지.”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졌다.

열두 번째 겨울을 맞이한 지금도 세 사람은 함께다. 달라진 점이라면 소속사와 늘어난 식구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지 못한다는 건 핑계고 노력 부족이에요. 에미넴은 시작부터 애 아빠였잖아요. 물론 감성을 유지하는 데 예전보다 더 노력이 요구되긴 하죠.” 더 이상 집에서 곡 작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사소한 애로 사항 같은 것들 말이다. YG에서 마련해준 옷장만 한 작업실에서 투컷과 함께 작업을 해오던 타블로는 결국 투컷에게 공간을 내주고 카페에서 곡을 썼다.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장담하는데 이번 앨범 제작비의 50%가 커피값일거예요.” 다행히 최근 회사 측에서 마련해준 작업실은 전보다 훨씬 넓다.

투컷이 입은 가죽 재킷과 셔츠, 바지는 모두 생로랑(Saint Laurent), 선글라스는 폴리스(Police). 미쓰라의 코트는 푸시버튼(Pushbutton), 티셔츠와 비니는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 신발은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 바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투컷이 입은 가죽 재킷과 셔츠, 바지는 모두 생로랑(Saint Laurent), 선글라스는 폴리스(Police). 미쓰라의 코트는 푸시버튼(Pushbutton), 티셔츠와 비니는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 신발은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 바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리고 지금, 에픽하이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물론 이건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내일 날씨도 예측하기 힘든 게 인생인걸요. 그래서 재미있죠.” 투컷의 말에 미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쓰라는 한동안 음악적 고민에 빠져 꽤 긴 슬럼프를 겪었다. “11년 전이 뭐예요? 작년, 아니, 몇 달 전만 해도 지금 같은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우리가 진행형의 가수가 된 거잖아요. 정말 농담이 아니고 앨범이 나오기 전날까지도 이런 날들이 올 줄은 몰랐어요.” 타블로는 자신의 옆에 기적처럼 서 있는 미쓰라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독한 성장통을 치른 미쓰라는 한동안 멤버들과 연락조차 끊은 채 잠적했다. 데뷔 10주년에 맞춰 내기로 한 앨범이 1년 늦어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지금은? “글쎄요, 앨범을 만들기 위해 있었던 슬럼프라 현재는 크게 적용이 안되죠.” 미쓰라는 무대 위에서 비로소 웃었다. 그리고 음악으로 말했다. 인트로곡 ‘막을 올리며’에서 미쓰라는 세상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시체인 줄 알고 밟아댄 새끼들 다 f*** y ou!” 마침내 에픽하이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포효였다.

<신발장>이라는 제목처럼 지난 시간의 발자취를 담은 이번 앨범은 한 편의 영화 같다. 1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각각의 노래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고, 실제 영화 DVD처럼 두 장의 CD 중 하나엔 각 노래에 대한 코멘터리가 담겼다. 영화광 타블로는 상상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그에 맞는 OST를 만드는 기분으로 곡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버릇이 된 것 같아요. 당구가 취미인 사람들은 누워서도 천장에 당구대가 보인다고 하잖아요.” <대부>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어릴 땐 자극적인 마피아의 세계에 끌렸다면 아빠가 된 요즘은 말론 브란도의 부성애를 집중해서 보게 돼요.” 이번 앨범의 마지막 트랙 ‘신발장’을 태교 음악으로 사용했다는 투컷 역시 동의하는 바다. “영화 자체가 패밀리에 대한 영화잖아요.” 타블로가 덧붙였다. “OST를 비롯해 그 모든 테마가 굉장히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어요. 그런 부분이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에픽하이와 <대부>라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다.

19금곡 ‘Born hater’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블랙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버벌진트부터 위너의 송민호까지 <저수지의 개들>처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양각색의 래퍼들이 떼로 몰려나와 하나의 음악을 붙들고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발단은 투컷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쉴 새 없이 투덜거리는 투컷을 본 타블로가 ‘Hate’라는 주제를 떠올린 것이다. 투컷은 흔쾌히 ‘Born H ater’들의 소집에 나섰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버벌진트였어요. 그 얘기만 갖고도 몇 시간 동안 풀어낼 수 있는 래퍼죠.” 타블로의 애정 어린 디스에 응답한 빈지노는 지난 앨범에도 피처링으로 참여한 바 있다. 연습생 때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바비는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하기도 전에 녹음을 끝냈다. 훅 부분은 비아이가 맡았다. 까마득한 후배는 형님들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젊은 친구의 열정과 감성이 녹아들면 좋겠다 싶었는데, 전화한 당일 찾아와 혼자 랩을 짜 녹음을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손민호가 합류했다. “뭔가 꿈틀꿈틀하는 게 있었는지 넌지시 물어보더라고요. 위너의 색깔에 잘 어울리지만 로우한 감성을 지닌 래퍼이기도 하니까. 오케이! 그럼 해보자. 그리고는 하루 이틀 만에 곡을 완성했어요.” 트랙 리스트와 함께 이 기묘한 조합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표는 음악을 듣고 난 후 느낌표로 변했다. “일부러 그런 식으로 라인업을 짰어요. 사람들의 편견을 갖고 놀아보려고. 편견을 갖고 판단하는 순간 그게 바로 ‘Hater’라고 생각해요.”

화장실을 무대 삼은 독특한 세로 프레임의 ‘Born Hater’ 뮤직비디오는 디지페디의 솜씨다. 오렌지캬라멜의 엽기 발랄한 뮤직비디오 ‘까탈레나’를 완성한 바 있는 디지페디는 다이나믹 듀오와 진보, 자이언티 등의 뮤직비디오로 이미 힙합 신에선 유명한 팀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뭉친 에픽하이와 디지페디의 조합은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19금 뮤직비디오로는 유례없이 이틀 만에 1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보그> 촬영을 위해 투컷과 미쓰라는 다시 한 번 화장실로 입장했다. “어우, 난 유닛은 싫은데” 타고난 ‘hater’ 투컷이 장난스레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쓰라는 묵묵히 소임을 다할 뿐. 생로랑의 신상 가죽 재킷을 쫙 빼입은 투컷은 ‘일산 동부의 지드래곤’다운 멋쟁이 포즈를 취했다. “저랑 지용이 패션의 차이요? 걔는 디자이너로부터 선물 받고 전 직접 산다는 거죠. 크크.” 선글라스를 낀 채 변기 옆에 선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지 시크하게 말했다. “역시 옷이 날개야.”

회색 니트는 틸만 라우터바흐(Tillmann Laterbach at Mue), 어깨에 걸친 가죽 재킷은 올세인츠(Allsaints), 바지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구두는 생로랑(Saint Laurent), 페도라는 에스에스에스(SSS), 반지는 엠주(Mzuu).

회색 니트는 틸만 라우터바흐(Tillmann Laterbach at Mue), 어깨에 걸친 가죽 재킷은 올세인츠(Allsaints), 바지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구두는 생로랑(Saint Laurent), 페도라는 에스에스에스(SSS), 반지는 엠주(Mzuu).

1집 때부터 이어져온 에픽하이의 피처링 방식은 요즘 영화계의 멀티캐스팅 트렌드보다 한발 앞선다. 이번 앨범 역시 흥미로운 이름들로 가득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타이틀 곡 ‘헤픈엔딩’의 주연을 맡은 조원선이다. 타란티노가 존 트라볼타나 팜 그리어 같은 왕년의 아이콘을 자신의 영화 속에 끌어들여 신선한 반전을 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롤러코스터의 오랜 팬이었어요. 그들의 신보 소식을 기다리다 지켜 ‘차라리 내가 만들자’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조원선 씨를 생각하고 멜로디를 썼어요.” 투컷과 미쓰라 역시 롤러코스터의 전집을 다 소장하고 있을 만큼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성공한 팬의 좋은 예죠.” 지난 앨범 때부터 스케치해둔 ‘헤픈엔딩’은 과거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초안을 들은 하루가 “시끄럽다”고 짜증을 낸 바로 그 곡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때와 편곡을 조금 다르게 한 노래는 각종 음원 차트와 음악 방송에서 1위에 올랐다. ‘Amor Fati’에선 넬 김종완의 목소리도 만날 수 있다. “에픽하이와 넬은 비슷한 감성을 다른 장르로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의 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거나 자극을 받기도 하고요.” 2007년 합동 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넬과 에픽하이는 꽤 오래전부터 음악적인 교류가 있었다. “음악 이야기를 할 땐 아주 말이 잘 통하는 친구들인데, 그 밖엔 하나도 안 맞죠. 흐흐.” 투컷의 농담과 달리 사실 타블로와 김종완은 절친이다. 여기엔 하동균도 포함된다. “저희 셋은 나이도 같고 취향도 비슷해서 잘 맞는 편이죠” 그 밖에도 태양과 박재범, 윤하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이번 앨범의 주·조연을 맡아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트랙 리스트에서 공개되지 않은 깜짝 게스트의 면면도 화려하다. 강혜정과 함께 연극 무대에 오르는 공효진이 ‘스포일러’에 특별 출연했고, ‘Lesson 5’에는 도끼가 우정 출연했다. 그렇게 완성된 앨범은 늘 그래 왔듯 한 곡의 노래가 아닌 전체로 들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를 한 장면만 보고 만족할 사람은 없잖아요?” 투컷은 “이번 앨범 대박이에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기분 좋다고 했다. “앨범이란 말이 올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저희가 추구하는 바예요.”

홍대에 합주실을 빌린 에픽하이는 요즘 일과의 대부분을 콘서트 준비에 투자하고 있다. 11월 14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연말 지방 공연까지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일본에서도 공연을 한다. 2009년 이후 오랜만에 갖는 단독 콘서트다. 인디 밴드 칵스와 라이프앤타임 두 개의 밴드를 합쳐 슈퍼 밴드도 결성했다. 투컷은 특별 공연으로 지드래곤의 ‘One of a Kind’를 보여줄 예정이다. “사실 투컷의 이 솔로 무대를 위해 이번 콘서트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쓰라는 본인의 역할은 들러리 정도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타블로 역시 들러리를 자처한다. “투컷은 콘서트 때마다 그 시대의 아이콘에게 한 수 보여주는 특별한 무대를 선보여왔어요. 한때는 ‘남양주 비’로 불리기도 했죠. 저랑 미쓰라는 감히 누군가에게 한 수 보여주기엔 아직 부족하고 연약한 영혼들이라, 그저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음악을 할 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드래곤도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 들었어요.” 타블로의 얘길 들은 투컷이 재빨리 마지막 문장을 수정하고 나섰다. “긴장이 아니라 김장하고 있다고요, 크크.” 어쨌건 콘서트 중간엔 앙코르 요청을 만들어내는 건 슈퍼스타 투컷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콘서트에서 아내 강혜정을 만난 타블로에겐 이번 공연이 더욱 각별하다. “혜정이가 우리 콘서트를 보러 오기 전엔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요. 그렇게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이 됐는데, 콘서트를 못하니까 마치 5년 동안 결혼기념일을 못 챙긴 기분이었어요. 그게 가장 슬펐어요.” 12월 19일 인천 공연을 갖는 이유 중 하나도 가족이다. 인천은 강혜정이 살았던 곳이다. 이제는 타블로의 홈그라운드이기도 하다. “미리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분위기가 될 거예요.” 에픽하이는 오랜만에 무대 위에서 연말을 맞이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안 쥐고 송년회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이번 콘서트의 세트 리스트 중엔 1집에 있던 ‘Go’처럼 10년 만에 불러보는 노래도 있어요. 아직까지 가사를 외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죠. 연습하다 보면 살짝 울컥하기도 해요.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다 떠오르니까. 팬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행복과 불행의 발자국을 남긴 제 신발 같은 음악을 <신발장>이라는 이름의 앨범에 곱게 넣어 공개한 에픽하이는 결코 만만치 않았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Life is Good’의 가사 속 “독하게 품은 행복이 복수”라는 문장처럼 기필코 이 행복을 놓치지 않을 작정이다. 타블로는 앨범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아직 구름 위에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건 투컷과 미쓰라도 마찬가지다. 에픽하이는 오랜만에 맛보는 이 기분을 조금만 더 즐기고 싶다. 이 순간이 그들의 인생에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차가운 공기를 타고 음악이 흐른다. 요즘은 어딜가나 그들의 노래가 들린다. 에픽하이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