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의 오만석, 김무열, 고창석

유쾌한 남자들이 온다.
압박하는 80cm 붉은 스팽글 부츠를 신고.
브로드웨이 신상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국 초연을 앞둔 이들은
무대 안팎에서 주체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웃음을 전염시키는 세 남자 오만석과 김무열, 고창석이 <보그>와 만났다.

고창석의 그래피티 패턴 시스루 톱은 도미닉스 웨이(Dominic’s Way).

오만석의 슬리브리스 패딩 톱과 모피 머플러는 프라다(Prada), 복서 팬츠는 도미닉스 웨이(Dominic’s Way), 미니 클러치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손에 낀 반지는 모두 엠주(Mzuu). 빈티지 스툴은 까레(Kare).

지난해 토니상을 휩쓴 뮤지컬 <킹키부츠(Kinky Boots)>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 라이선스 공연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 극을 주도하는 여장 남자 롤라 역을 누가 맡게 될지 궁금했다. <킹키부츠>는 2013년 4월 브로드웨이 신작으로 소개되자마자 심상치 않은 객석 반응을 불러오더니 웬만한 뮤지컬 작품상을 차례로 휩쓸었다. 그리고 롤라 역을 맡은 빌리 포터(Billy Porter)는 브로드웨이닷컴으로부터 ‘관객이 뽑은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토니상 남우주연상 수상은 물론이거니와!). 더욱이 극 중 롤라가 1막에서 부르는 ‘Sex is in the Heel’은 뮤지컬 넘버로는 최초로 빌보드 클럽 차트 톱 1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기다란 붉은색 스팽클 부츠를 신고 신나게 춤추는 이 기묘한 주인공을 한국 배우 가운데 누가 맡게 될지는 뮤지컬계가 주시하는 관심사였다.

“작년에 뉴욕에 갔다가 <킹키부츠>를 봤어요. 뮤지컬 <원스(Once)>와 톰 행크스의 브로드웨이 데뷔작 <럭키 가이(Lucky Guy)>, 알렉 볼드윈의 연극 <고아들(Orphans)> 같은 핫한 무대를 섭렵했는데, <킹키부츠>가 특히 신선하고 재밌더라고요. 공연을 보며 한국에서라면 롤라 역할을 누가 하게 될까 궁금해했죠.” 청담동의 넓은 스튜디오 대기실 안, 감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긴 소파에 풀썩 주저앉은 오만석은 스스로도 신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튿날엔 맨해튼 거리에서 우연히 빌리 포터를 만나기도 했어요. 완전히 관광객 모드로 다가가 함께 인증샷을 찍었죠. 얼마 뒤 제게 롤라 역할이 주어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김무열의 타탄체크 재킷과 벨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러플 셔츠는 꼼데가르쏭(Comme des Garçons), 검정 바지는 덴햄(Denham at Beaker), 카키색 스카프는 프라다(Prada), 불꽃 페인팅 포인트의 큼직한 슈즈는 도미닉스 웨이(Dominic’s Way).

고창석의 그래피티 패턴 실크 가운은 도미닉스 웨이(Dominic’s Way), 그래픽 패턴 스웨트 셔츠는 베르사체(Versace at Koon), 메탈릭 부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여자 모델의 그린 메탈릭 원피스는 미우미우(Miu Miu), 앞코에 선글라스 장식이 달린 러버 힐은 멜리사(Melissa), 체인이 달린 레더 초커는 엠주(Mzuu). 파스텔 컬러 미니 벤치는 까레(Kare).

제안을 받고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만석은 ‘소울’ 가득한 흑인 배우의 인상이 워낙 강하고, 뮤지컬 넘버도 쉽지 않을 듯해 조금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매주 tvN 예능 <택시>의 녹화가 진행되고, 한창 진행 중이던 뮤지컬 <레베카> 공연과 <킹키부츠>의 연습 기간이 맞물려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미 <헤드윅>의 동성애자 연기로 뜨거운 성취감을 맛본 그였기에(한국 뮤지컬 공연의 ‘레전드’로 꼽힐 만큼!) 비슷한 분위기를 드리울 수 있는 <프리실라>나 <라카지> 섭외를 일부러 피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거부할 수 없는 느낌이 감지되더라고요. 세상에 대한 조소를 머금고 사는 헤드윅과 달리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롤라의 유쾌한 에너지를 뿌리칠 수 없었어요.”

롤라 역을 소화하기 위해 우선 다이어트에 돌입한 그는 체지방 4kg을 덜어냈다. 밥 한 술 씩 덜 뜨는 방식으로 먹는 양을 줄였고, 굽 높은 하이힐 부츠를 신고 안무 연습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했다. 그사이 ‘Hold Me in Your Heart’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는(부를수록 어려워서!) 넘버가 됐다. “피로 누적 상태에서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까 예전엔 흡수가 빠르던 것들도 튕겨 나가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안 먹던 홍삼도 챙겨먹고 있어요. 그래도 저를 비롯해 무열이나 창석이 형 등 공연으로 출발한 배우들이 대부분이어서 합을 찾아가는 연습 과정 자체가 즐겁거워요.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12월 2일 첫 무대가 관객을 만날 때까지 매일 쉴 틈 없이 반복되는 어마무시한 연습 과정을 들려주던 오만석은 바깥에서 <킹키부츠>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자(센스 있는 스튜디오 어시스턴트의 셀렉트!) 자동 반작용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 화보 컨셉이 뭐죠?”

 

‘변태’라는 단어를 내밀었을 때 배우 김무열은 오늘의 촬영 컨셉을 바로 꿰뚫는 눈치였다. “<보그>는 확실히 다른 것 같네요.” 이건 그가 스타일리스트에게 따로 건네는 얘기였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언제나 어색하다던 그였지만, 그렇다고 행어 가득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해온 총천연색 현란한 의상들을 소화하는 데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괴이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여가며 <킹키부츠>에서 그가 부르는 ‘Soul of a Man’을 노래했다. 뮤지컬을 보면 알겠지만 <킹키부츠>에서 찰리도 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다잡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킹키부츠> 스토리는 찰리의 이야기다. 3대째 정통 신사화만 만들어온 영국 노샘프턴의 구두 공장에서 찰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제화점의 재기를 노린다. 유행에 뒤떨어진 수제 신사화만 고집하던 공장은 저가 수입 구두에 밀려 폐업 위기에 처한 상황. 찰리는 여장 남자 롤라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우면서도 튼튼한 구두인 킹키 부츠로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다. 당연히 그 과정은 쉬울 리 없다. 평범하지 않은 롤라의 존재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공장 직원들은 찰리마저 불신하고, 킹키부츠를 밀라노 패션쇼 런웨이에 세우겠다던 처음의 목표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물론 예상 가능하겠지만 온갖 역경을 이겨내는 찰리의 희망찬 성공담으로 무대는 피날레를 장식한다.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었어요. 관객에게 행복을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킹키부츠>는 영화로 먼저 접했는데, 좀 지루했죠. 그런데 개인 일정으로 뉴욕에 갔을 때 직접 본 뮤지컬 <킹키부츠>는 달랐어요. 재미진 코미디 안에 무겁지 않은 철학이 녹아 있어서 멋있기까지 하더라고요. 연말과 제대로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화보 촬영 중간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김무열은 맨몸에 줄무늬 수트만 걸치고 있었다. 대충 두른 검은 스카프가 살짝 가슴을 가려주긴 했지만 에디터가 여자였더라면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속살에 심하게 초점이 흔들렸을 듯했다. 누군가는 <은교>에서 그의 나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에는 옷 벗는 장면이 없어요. 찰리에게 어울릴 정도로 다이어트에만 신경 쓰고 있죠. 사실 운동을 못하고 있거든요. 군대에서 무릎을 다친 후론 안무도 쉽지 않더라고요. 만약 제게 롤라 역이 주어졌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지난여름 제대한 김무열이 복귀작으로 뮤지컬을 택한 것은 영민한 선택 같았다. 이전부터 뮤지컬 스타였던 그는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 <은교>로 보다 대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홀연히 군 입대를 결정했고(군 문제를 둘러싼 어수선한 이야기는 그의 자진입대로 한 방에 깔끔해졌다), 훈련 중 크게 무릎 연골을 다쳤다는 뉴스를 전하면서도 꿋꿋이 만기 제대를 선택했다. 제대 후 자신이 가장 잘 꿈틀댈 수 있는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김무열은 본인의 건재를 고대하는 많은 팬 앞에 명쾌하게 존재감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복귀라는 두 글자가 부담을 주긴 했어요. 하지만 인생이란 게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려도 잘되지 않잖아요. 그냥 좋은 작품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때 <킹키부츠>가 눈에 들어왔죠.” 결국 킹키부츠는 찰리와 김무열 두 사람 모두에게 흡족한 성공 아이템이 아닐까? “대학 떨어지고 재수할 때 저도 찰리처럼 바닥을 친 적이 있어요. 그러다 연기를 시작하면서 의욕적으로 삶의 이유를 찾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는 성공은 배우로서 잘하면서 오래가는 거죠. 아직은 잘하지 못하니까 열심히 하면서 오래가보려는 중이고요.” 그는 내년에 개봉하는 영화 <연평해전>의 마지막 촬영을 남겨둔 상태였다. 드라마 섭외도 있었지만 당분간은 찰리로 살아가느라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지금은 연습실에 나가서 연기에 대한 고민을 주고받는 것 자체만으로 즐겁다는 그였다. 연습하느라 바빠서 발톱도 못 깎았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요즘 빠져 있는 관심사를 물었다. “<킹키부츠>와 여자 친구요!” 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일어섰다.



여자 모델의 주름 잡힌 실크 드레스와 뷔스티에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플랫폼 슈즈는 구찌(Gucci), 초커는 엠주(Mzuu).



김무열의 연분홍 재킷은 로드앤테일러(Lord&Tailor), 작은 도트 셔츠는 꼼데가르쏭(Comme des Garçons), 보타이는 톰 포드(Tom Ford), 잔잔한 꽃무늬 프린트 팬츠는 펜필드(Penfield), 스팽글 레이스업 슈즈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여자 모델의 분홍색 퀼팅 톱과 플레어 스커트는 디올(Dior), 바이커 재킷 형태의 백은 모스키노(Moschino).

“요즘 블락비 노래에 빠져 있어요.” 고창석의 대답에 그만 발을 구르고 말았다. 그는 “지줘스~!” 하며 ‘Her’ 도입부를 불러 보이기까지 했다. 지코에게 사인 CD를 선물 받은 뒤로 거의 모르고 지내던 아이돌의 괜찮은 노래에 귀 기울이게 됐다는 것! 엑소 백현의 팬이라는 중학교 1학년 딸아이를 둔 고창석은 블락비의 노래를 <킹키부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과 신디 로퍼의 30주년 기념 음반과 함께 돌려가며 듣고 있다고 했다. 89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탈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부산 노래극단에서 민중가요를 불렀다. 음악을 듣는 그의 귀에 편견 따위란 없는 듯했다. 그의 노래가 더욱 궁금했다. “관객들이 저한테 엄청난 가창력을 기대하진 않잖아요. 재작년 프랑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서 1인 4역을 맡아 본격 뮤지컬에 도전했을 때도 노래를 부른다는 생각보단 말 그대로 음표에 대사를 얹는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래서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죠. 그 자체가 훈련이 돼서 <킹키부츠>까지 오게 된 거고요.” 브로드웨이의 대형 공연은 다른가 했는데, <킹키부츠>에서 그가 맡은 ‘돈’ 역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음으로 노래 부르기보다는 연기 비중이 훨씬 크다. 보수적인 구두 공장 직원 돈은 여장 남자 롤라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마초 캐릭터. 밉상이지만 고창석의 연기는 결코 미워할 수만 없는 존재감을 발휘한다는 전언이다. 결국 롤라와의 화해와 이해로 매듭지어질 결과를 생각하면 그가 그려낼 무대 위의 감동이 또 한 번 궁금해진다.

 

“여자들은 참 대단해요.” 킹키부츠를 신고 다 같이 춤추는 마지막 장면은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다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뮤지컬 홍보 영상을 찍느라 한나절 부츠를 신은 날도 있었는데 이후 그는 3일 동안 몸살을 앓았다. “덕분에 여자들이 힐 신는 이유를 조금 알게 되기는 했어요. 높은 구두 굽이 남녀를 막론하고 몸 라인이 아름다워 보이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재미난 체험을 한 거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반복되는 연습 과정이 죽을 만치 고통스럽다면서도 그는 즐거워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그래서 너무도 많이 찾는!) 신 스틸러 고창석이 내년 2월 22일까지 꼼짝없이 몰두해야 하는 라이브 공연에 나설 수도, 이렇게 홍보와 관련한 매거진 취재에 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사실 배우 입장에서 드라마나 영화는 소모적인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역할보다 기존에 가진 이미지를 소비하고 이전까지 쌓아오며 준비한 걸 풀어내야 하죠. 그런데 공연은 한 장면 한 대사를 수천, 수만 번 다듬는 과정을 거치니까 연습을 통해 보다 생산적인 훈련을 겪죠. <킹키부츠>가 끝나면 제 노래 실력도 조금 늘어 있을 것 같거든요. 몸은 힘들지만 솔직히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요.”



김무열의 검정 골드 배색의 스트라이프 팬츠 수트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스터드 장식이 달린 로퍼는 쥬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 검정 스카프는 디올 옴므(Dior Homme), 깃털 장식이 달린 페도라는 구찌(Gucci). 오만석의 스트라이프 더블 버튼 팬츠 수트는 뮌(Munn), 블루 앵클 부츠는 김서룡 옴므, 메탈 반지는 엠주(Mzuu).

오만석의 추상적인 꽃무늬 팬츠 수트는 암위(Am.We), 레이스업 워커는 디올 옴므(Dior Homme). 여자 모델의 기하학 프린트 원피스는 프라다(Prada), 검정 브라 톱은 푸시버튼(Pushbutton), 빨강 브라는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 실버 플랫폼 슈즈는 구찌(Gucci), 컬러 크리스털 반지와 귀고리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지브라 프린트 앤티크 의자는까레(Kare).

여자 모델의 딥 브이넥 브라 톱은 마르니(Marni), 밧줄 디테일의 앞트임 스커트는 모스키노(Moschino), 골드 반짝이 싸이하이 부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진주와 큐빅 장식 스프링 반지는 엠주(Mzuu).

김무열이 80년대를 풍미한 팝 아이콘 신디 로퍼를 아예 몰랐다기에 놀랐는데, 반대로 고창석은 로퍼의 굉장한 팬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깊이 있는 발라드 ‘Time After Time’. 지난 4월 발매된 30주년 기념 음반은 물론 가을 발간된 그녀의 자서전도 구입했다니! 신디 로퍼는 <킹키부츠>의 모든 뮤지컬 넘버를 작사 작곡한 음악 감독이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올해 그래미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토니상 음악상을 받은 최초의 여자 작곡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내년 1월에 신디 로퍼가 내한한다고 해 기대감이 몹시 커요. 말괄량이 삐삐 같은 그녀에게 자서전을 내밀고 사인을 받아야죠. 〈킹키부츠>에 나오는 넘버에도 신디 로퍼라는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담겨 있으니까 연습실에서 다른 배우들 연습하는 걸 보면서 공연을 보는 착각이 들기도 해요.”

12월에는 <킹키부츠>의 막이 오르는 동시에 젊은 배우 김우빈과 함께한 영화 <기술자들>도 개봉한다며, 관심 가져달라는 고창석에게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인지를 넌지시 물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짧지 않은 문장들을 뱉어냈다. “어릴 때는 열심히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열심히’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했죠. 연기를 거듭하다 보니, 잘하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좀더 지나니까 그것도 의미 없어지더라고요. 다들 잘하니까. 지금은 ‘또 같이하고 싶은 배우’이고 싶어요. 실력이든 품성이든 다시 만나고 싶은 배우. 결국 삶이 건강한 배우가 또 함께하고 싶은 좋은 배우 아닐까요. 관객들에게 한 그릇의 밥, 한 잔의 술 같은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다음엔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에게 좀더 다가가 이미 충분히 좋은 배우라고 얘기했다. “술 생각은 좀 나게 만들지, 내가!” 얼굴 가득 큰 주름을 만들며 웃어젖히는 배우 고창석을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