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엔자 스쿨러와의 랑데부

영원한 ‘패션 보이즈’로 통하는 프로엔자 스쿨러의 잭 맥콜로와 라자로 헤르난데즈가 서울에 왔다.
데뷔 12년 만에 정상에 오른 두 명의 쿨가이와 <보그>의 랑데부.

새롭게 단장한 분더샵에서의 전시를 위해 서울을 찾은 프로엔자 스쿨러의 라자로 헤르난데즈(왼쪽)와 잭 맥콜로(오른쪽). 모델들이 입은 2015년 봄 컬렉션은 아메리칸 스포츠웨어를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프로엔자 보이즈! 패션계가 프로엔자 스쿨러의 듀오 잭 맥콜로와 라자로 헤르난데즈에게 선물한 애칭이다. 어느덧 데뷔 12년이 된 ‘중견’ 디자이너이자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남자들에게 ‘소년’이라는 호칭은 어색할 법하다. 그런데도 살짝 졸린 듯한 표정 속에 숨은 반짝이는 눈빛, 포토제닉한 마스크, 캐주얼만 고집하는 보이시한 옷차림으로 인해 그들은 패션계의 만년 소년으로 통한다. 물론 ‘절대 동안’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12년 전 그들의 등장은 뉴욕이 바라던 스타 탄생이었다. 2002년 바니스 백화점이 파슨스 졸업 컬렉션을 통째로 사들일 때부터 그들은 뉴욕이 키워야 할 패션 신동이었다. 프로엔자 스쿨러라는 이름(각자 어머니의 성에서 따왔다)으로 첫 쇼를 연 것이나 이듬해 제1회 CFDA/VOGUE 패션 펀드(뉴욕의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한 후원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것도 패션계의 아낌없는 애정 덕분이다.

두 명의 청년은 뉴욕 패션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얼마 후 마크 제이콥스와 마이클 코어스를 제치고 올‘ 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거머쥐는가 하면, 첫 번째 핸드백인 ‘PS1’은 세계적으로 ‘쿨 걸’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할리우드 젊은 여배우들은 프로엔자 스쿨러를 입기 위해 조바심을 냈고, 기자와 바이어들은 그들의 런웨이쇼에 초대받지 못할까 노심초사했다. 뒤를 이어 등장한 수많은 ‘젊은 뉴욕 디자이너’ 군단에게 프로엔자 보이즈는 기준이 됐다. 단시간에 가장 확실하게 자기 색을 찾은 브랜드가 됐으니까. 이렇듯 패션계가 애지중지하던 ‘동생’들은 다운타운 패션 총아에서 하이패션 황태자들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보그>가 프로엔자 보이즈를 서울에서 만난 건 10월 중순이었다. 분더샵리뉴얼 오픈 파티 참석을 위해 서울에 들른 그들과의 인터뷰 때문이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청담동 분더샵 앞에 검정 밴이 멈춰 섰다. 그 안에서 늘어난 스웨터에 편안한 저지 팬츠를 입은 라자로 헤르난데즈와 덥수룩하게 턱수염을 기른 채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쓴 잭 맥콜로가 차례대로 내렸다. 분더샵에서 쇼핑한 후 발렛 파킹을 맡겼던 차를 기다리던 몇몇 고객이 두 남자를 알아봤다. “저기 디자이너들 아냐?” “맞나 봐! 너무 귀엽게 생겼다.” 그야말로 뉴욕 패션 아이돌의 서울 상륙이 따로 없었다.

두 남자는 단순히 파티 손님으로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분더샵은 새로 마련한 5층 전시 공간을 그들에게 선사했다. 12년 동안 그들의 컬렉션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40여 벌을 모아 전시를 기획한 것. 이를 위해 디자이너들은 올해 초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선보인 전시를 통째로 옮겨왔다. 이에 대해 프로젝트를 기획한 분더샵은 이렇게 전했다. “‘모던&컨템퍼러리’라는 분더샵의 새로운 컨셉을 가장 잘 표현할 브랜드였기에 첫 전시의 주인공을 그들로 정했습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장기 중 하나는 익숙한 소재를 새롭게 선보이는 방법이다. 내년 봄 컬렉션 속 컬러풀한 뱀가죽 재킷과 스커트, 펀칭한 얇은 가죽으로 완성한 셔츠 드레스에서도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워요.” 전시를 둘러보던 라자로 헤르난데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절대, 절대,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요. 늘 앞만 바라보고 일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 자리에 예전 작업을 모으고 나니 추억 여행에 나선 것 같아요.” 다음 컬렉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샘플까지 죄다 팔아버렸던 초창기 몇 년을 제외하고 모든 옷은 소호 사무실의 지하 창고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그들은 디자인 작업을 위해 아카이브를 헤매지 않는다. “우리는 파리의 하우스 브랜드가 아닙니다. 아카이브를 살펴보며 ‘그래, 50년대에는 이런 드레스를 만들었지. 이걸 다시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고민이 불가능하죠. 헤리티지가 없는 디자이너가 과거를 바라보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 라자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잭이 덧붙였다. “이 옷들을 보면 당시 우리 모습이 떠올라요.” 다시 라자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가령 이 드레스는 인도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이 자수는 부탄 여행 직후 만들었어요. 또 이건 우리가 새 사무실로 옮긴 뒤 디자인했던 거예요.”

파슨스 입학 3주 전,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클럽 ‘라이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고백대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졸업 후 여러 브랜드에서 일을 배우며 패션계에 입문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졸업하자마자 브랜드를 시작했다. 그런 뒤 요즘 디자이너들이 견뎌야 하는 압박(빠른 성장, 여러 액세서리와 라인들, 브랜드만의 개성 구축)을 모두 견뎌내고 패션계에 견고하게 뿌리내렸다. 그들의 졸업 컬렉션을 바잉했던 줄리 길하트(전직 바니스 뉴욕 패션 디렉터)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신인들이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지만 그들에게 근접한 사람은 없었어요. 모든 걸 갖췄죠. 창의력, 젊음, 타이밍, 운!” 물론 유혹도 많았다. 2007년 발렌티노가 그들의 회사에 투자했을 땐 거장의 은퇴 후 두 사람이 후임자가 될 거라고 다들 예상했다. 이후 파리 패션 하우스에 공석이 날 때마다 잭과 라자로는 맨 먼저 물망에 올랐다. 2011년 갈리아노가 떠난 디올, 제스키에르가 떠난 발렌시아가도 그들을 원했다(비공식 제안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모두 다 말할 순 없지만 제안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라자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우리는 우리의 보스예요”라고 잭이 덧붙였다. “우리가 시작한 회사가 있고, 자유가 있고, 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왜 그걸 포기하겠어요.”

 

다행히 그들에게는 운이 따랐다. 띠어리 창립자 앤드류 로슨이 2012년에 지분 40%를 사들이며 투자한 덕분에 그들은 맘 편히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 뒤 뉴욕에 두 개의 매장을 냈고, 요즘엔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입지를 다지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8월에는 럭셔리 공룡 기업 LVMH가 보이즈에게 투자할 거라는 추측성 기사까지 돌았다. 그 소식이 사실이 된다면 언젠가 LVMH 그룹의 수많은 브랜드 중 하나가 그들의 손에? “우린 자신의 브랜드를 포기하는 디자이너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라자로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자유를 손에 쥔 대신 그들은 묵직한 책임감을 어깨에 얹었다. 새로운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그저 예쁜 디자인만으론 힘들다는 것을 12년 만에 깨달은 것. 두 사람은 오후 4시 이전에 디자인해본 적이 없다고 전한다(예술성과 창의성, 그리고 비즈니스 감각을 모두 갖춰야 하는 요즘 디자이너에겐 숙명이나 마찬가지). “보스의 일과는 바쁩니다. 출근하면 맨 먼저 비즈니스에 신경 씁니다. 임원 회의에도 참석해야 하고, 매장 디자인도 살펴야 하죠. 인재들을 뽑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모든 걸 마무리하고 날 때쯤, 디자인할 힘도 나지 않는 게 사실이에요.”



매 시즌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실험하는 프로엔자 스쿨러. 봄 컬렉션 속 프린지 드레스는 가느다란 실을 한데 꼬은 뒤 다시 엮어서 완성했다.

매사추세츠에서도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버크셔의 낡은 농장 건물이 지친 그들에겐 훌륭한 안식처다. 매 주말 그들은 맨해튼을 떠나 1792년에 지은 그곳으로 향한다. 텃밭에서 라자로가 과일과 채소를 가꾸면, 잭은 그 재료로 요리한다. 동이 틀 때까지 클럽을 떠나지 않던 시절은 모두 옛날 이야기다. 독한 알코올과 무서운 약을 연료로 밤늦게까지 악명높은 파티를 즐겼던 이들은 이제 잘 자란 사과나무에서 기쁨을 느낀다. 낡은 농장은 새 디자인의 발원지다. 메인 컬렉션을 준비하기 전 두 사람은 10일간 나무 테이블에 마주 앉아 끊임없이 스케치한다. “형태와 실루엣, 그리고 우리의 기분을 그립니다. 그런 뒤 우리 마음에 드는 그림을 벽에 붙이며 본격적으로 소재를 고르고 디테일을 정하죠.” 라자로가 설명하는 자신들의 작업 방식이다. “우리 기분에 달려 있어요. 때론 전 시즌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지난 시즌의 특징 중 하나를 더 발전시킬 때도 있죠. 또 그때쯤 다녀온 여행이나 감명 깊었던 예술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듀오는 여행과 예술에 필사적으로 집착한다. 그들의 역사를 스스로 써내려 가기 때문이다. 하우스 디자이너들처럼 아카이브에서 맘에 드는 디자인을 쇼핑하듯 골라 재탕할 순 없으니까. “디자인을 흥미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새로운 요소들을 찾아야 해요. 매 시즌이 끝나면 아프리카와 네팔, 태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지속적으로 예술품을 바라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덕분에 그들의 컬렉션에는 일본의 시보리 염색과 미국 인디언의 나바호 프린트, 네팔의 니트 장식과 하와이의 서핑복이 공존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진과 조 콜롬보 가구, 멤피스 그룹의 그래픽 컬러가 함께 등장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 발견한 무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가죽 드레스에 프린트될 때도 있다. 서울에 오기 직전에도 그들은 하와이와 미국 서부를 여행했다. 짧은 서울 방문에도 틈을 내 리움에 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푸른빛이 도는 청자들이 너무 아름답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로엔자 스쿨러 쇼에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로 ‘쿨’하다는 것. 이제는 두 가지가 생겼다. 쿨‘ ’과 ‘래프트’다.” ‘타일닷컴’ 패션 에디터 니콜 펠프스는 듀오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품평했다. 한때 자신의 친구들이 입고 싶어 할 예쁘고 쿨한 옷으로 승부했던 디자이너들은 이제 머리 아플 정도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디테일들을 고집한다. “우린 표면에 무척 신경 씁니다. 소재 위에 또 어떤 일을 저지를지 고민하죠”라고 라자로가 이야기했다. 여러 색깔의 실을 섞어 트위드를 완성한 다음 그 위를 네온 레이스로 장식하거나, 가죽 위에 풍경 사진을 프린트한 뒤 잘게 찍어낸 후 다시 연결하거나, 실뭉치를 격자로 짠 다음 아래 부분을 풀어헤쳐 프린지를 완성하는 식이다. 이렇듯 그들의 작업은 결코 한 단계로 완성되는 법이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디테일과 뉘앙스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됩니다. 스타일닷컴 사진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죠.” 이태리와 뉴욕을 오가는 공정에 대해 한참 설명하던 잭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직접 만져봐야만 진가를 알 수 있는 옷이 되길 원해요.” 그러자 라자로가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모든 컬렉션이 그렇진 않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컬렉션은 블랙, 화이트, 그레이, 베이지만 썼던 2013년 가을 시즌이에요. 때론 빈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옷을 선보일 필요도 있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아메리칸 캐주얼 아이템을 새롭게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피케 셔츠를 해석한 드레스는 내년 봄 ‘쿨 걸’들의 유니폼이 되지 않을까.

부클레 트위드를 뜯어내고 레이저 커팅한 기퓌르 레이스를 겹치는 등의 디테일은 시즌마다 변한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프로엔자 걸스’의 태도다. 그들의 쇼에는 거의 하지 않은 듯한 메이크업과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의 모델들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빠르게 워킹한다. ‘풀어헤친(Undone)’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잭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 단어 너무 좋은데요. 우리 옷을 입는 여성들의 정신을 정의하기에 완벽해요. 자수 장식의 톱에 크로셰 스커트를 입고 모피를 더한 재킷을 걸쳐도 결코 빼 입은 느낌이 나면 안 돼요.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적당히 헝클어진듯한 느낌이죠”라고 라자로도 설명했다. “완벽한 헤어에 완벽한 구두, 완벽한 드레스, 완벽한 네일, 완벽한 메이크업으로 나서면 부르주아처럼 보이잖아요. 그건 우리와 맞지 않아요. 최고급 소재의 옷을 아무것도 아닌 듯 취급하는 여자들 말이에요.”

그런 설명에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비록 2년 전이었지만, 쓰러져 가는 빌딩 1층에서 열린 2013년 봄 컬렉션은 그 친구들이 모두 모인 현장이었다. 그들의 쇼를 보기 위해 무작정 찾아온 불청객들로 붐비던 입구를 겨우 통과해 쇼장에 들어서자 맨 먼저 붉은 머리의 제시카 차스테인이 눈에 띄었다. 영국 여가수 플로렌스 웰치와 대화 중이었다. 그들 곁으로 알렉사 청이 지나갔고 맞은편에는 커스틴 던스트가 지아 코폴라와 함께 자리를 찾느라 서성댔다. 또 오랜 친구인 바네사 트라이나가 가이아 레포시와 함께 케이트 보스워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대 패션계에서 가장 쿨한 걸들이 가장 쿨한 보이들을 찾아온 것. “꼭 가야 하는 패션 행사가 있어요.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 말이에요. 그런 곳에 가면 저는 늘 잭과 라자로를 찾아요.” 차이나타운의 골방 같은 아파트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바느질해 옷을 완성하던 시절부터 그들과 함께했던 클로에 셰비니의 말이다. “그들과 함께 있는 건 그들의 옷을 입은 것과 같아요.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 돌봐주는
느낌이 들죠. 또 스스로 아름답고 파워풀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줘요.”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 돌봐주는 느낌의 패션이라! 그건 현대 럭셔리 패션을 정의하는 또 다른 방법일지 모른다. “요즘 우리를 흥분시키는 건 브랜드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거예요. 진짜 럭셔리 패션을 선보이고 싶어요.” 12년 전 즉흥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했던 소년들은 이제 모던 럭셔리를 꿈꾼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할 일이 넘친다. 남성복, 향수, 새로운 라인 등등. “수많은 옵션 중에 우리가 준비된 것들 먼저 천천히 선보이고 싶어요.” 잭의 다짐대로 프로엔자 스쿨러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재빨리 사라진 브랜드 가운데 하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최상의 결과물을 보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들을 좀더 낫게 만들어 놓은 것이 럭셔리라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버전으로 선보이는 거죠. 바로 그 버전을 우리 브랜드에서 찾길 바랍니다.”

<보그> 인터뷰가 마무리되는 순간 90년대 패션이 주제가 됐다. 마이애미에서 자란 라자로는 무작정 지아니 베르사체를 찾아간 적이 있고, 패션을 무시했던 예비 예술가 잭은 헬무트 랭을 보고 패션에 흠뻑 빠졌다. 마이애미에서 의사 아들을 바라던 쿠바 이민 가정에서 자란 소년(라자로)과 뉴저지에서 반항기를 보낸 소년(잭)은 비로소 소수에게 주어지는 패션 정상에 올라섰다. 한때 우상으로 여겼던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은 그들 자신에게도 쉽게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한국에 두 개의 매장을 열고 서울에서 가장 큰 멀티숍에서 자신들의 작업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며 <보그>와 인터뷰하는 현실 말이다. 이런 상황에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패션 공부를 시작했던 스무 살로 돌아가 이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꼬마 잭과 라자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른 말이 필요 없어요. ‘쿨!’이라고 외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