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서울에 온 톰 브라운

2021.04.02

by VOGUE

    서울에 온 톰 브라운

    톰 브라운이 누구인가? 이성과 감성, 전통과 파격 사이에서 신중하고 절묘하게 균형 잡힌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구축한 남자다. 그가 서울을 방문해 압구정동 한복판에 섰다!

    톰 브라운 여성 매장 오픈 파티가 열렸던 10 꼬르소 꼬모와 지방시 매장 사이 횡단보도에 일렬로 늘어선 모델들과 톰 브라운. 검은색과 회색, 금색으로 이뤄진 의상은 어두운 밤하늘, 갤러리아 백화점의 불빛과 잘 어우러졌다.

    9월 중순, 톰 브라운 첫 여성복 단독 매장이 압구정동 갤러리아 이스트에 오픈했다. 50년대 사무실 컨셉인 남성복 매장과 달리 갤러리 분위기로 꾸민 곳이다. 이번에도 그는 여성복 매장에 놓을 소품과 집기들을 구하러 직접 뉴욕과 LA, 런던, 암스테르담의 앤티크 가구점을 뒤졌지만, 2015 S/S 컬렉션 준비로 인해 10월이 돼서야 서울에 들를 수 있었다. 매장 오픈 파티가 열리기 전날, 도산공원 앞 애슐린 라운지에서 세 번째로 서울을 방문한 톰 브라운과 작고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겨우 50cm 앞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그가 있다. 만약 계속해서 배우의 길을 갔다면,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허트 로커> 같은 미국 전쟁 영화에서 꽤 어울리는 배역으로 출연했을 것이다(작고 다부진 체격에 종종 내적 갈등에 휩싸이는 원칙주의자의 인상이 담긴 얼굴). 만나자마자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실례일지 모른다. “포트레이트 사진을 구글링해 봤는데, 대부분 고집 세고, 심각하고, 엄격해 보이더군요.” 그는 옆에 앉아 있던 PR 에이전시 칼레이도스코프의 대표 미키 히가사와 얼굴을 마주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대체 어느 사진이요?” “오, 글쎄. 당신은 거의 웃지 않고 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요.” 미키가 자기 말을 믿으라는 투로 말했다. “전혀 반대예요. 톰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2014 가을 겨울 컬렉션 백스테이지. 스태프들은 쇼 직전까지 의상을 손보고, 모델들은 복사와 베일을 벗은 수녀로 분했다. 

    당신의 성격은 어떤가요?

    단순하고, 털털하고, 심각하고, 그리고 클래식하지만 약간 거만하고.

    고집 세거나 엄격하진 않아요?

    일할 땐 그렇긴 하지만, 평소엔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죠.

    어릴 때 자라온 가족 환경 때문일 수 있어요. 당신은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죠?

    가톨릭! 가톨릭이 늘 엄격하진 않아요. 대가족이긴 했죠. 저는 그저 중간에 낀 조용한 아이였어요.

    6명의 남매와 함께 자란다는 건 어떤 분위기일까요?

    주변의 것들이 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듯, 그건 수월하게 성장하는 거죠. 부모님은 자신보다 한 명 한 명을 세심히 보살폈고 우리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셨어요.

    여성복 쇼에 종교적 관점이 자주 반영되는데, 혹시 수녀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어릴 때 가톨릭 학교에 다닌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종교적 접근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수녀에게서 로맨틱한 면을 떠올리거나 수녀에 대한 개념을 좋아하긴 해요. 고전적이고 보수적이기에 그런 면을 파격적으로 선보일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럼 초현실적 주제는요?

    모든 게 하나로 작용하는 거예요. 가령 수녀가 초현실적 대상이 되는 식이죠. 익숙한 아이디어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런 과정이 흥미로워요. 제 컬렉션이 아주 클래식한 발상에서 비롯되지만 비율이나 소재로 변화를 준 것처럼요.

    그렇다면 2014 F/W 컬렉션은 어떤 수녀에 대한 건가요?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도 감추지 않고 자신이 입고 싶은 방식(제 생각에 그녀들이 입고 싶어할 만한)대로 차려입은 수녀예요. 그리고 금빛 라메 소재가 아주 중요했어요. 실제로 30년대에 제작된 원단을 썼거든요. 그 다음엔 30년대라고 했을 때 맨 먼저 떠오르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옷 형태와 비율을 응용했죠.

    이렇듯 당신의 쇼는 어딘지 늘 연극적이에요. 과거 배우 경험이 영향을 미쳤나요?

    축적된 삶의 경험은 우리의 모든 일에 영향을 끼쳐요. 패션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매 시즌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간접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죠? 50~60년대 영화?

    옛날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비주얼이 강한 영화에 끌리는 편이에요. 스탠리 큐브릭 작품이나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같은 영화!

    호러물이나 오싹한 영화는요?

    오싹하다기 보다는 ‘자극적인(provocative)’ 쪽이죠. 그런 이야기들이 뭔가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거기엔 아름다움도 있지만 흉한 것도 있어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어떻게 보여주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좋든 나쁘든 각기 나름의 이유를 지닙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의 패션쇼 의상들은 매장에서 팔리는 옷에 비해 훨씬 과격해요. 누군가는 입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죠.

    컬렉션의 출발은 늘 전통 재단 방식입니다. 그런 뒤 그 시즌 저의 아이디어(혹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길 바라는 방식)를 비율로 표현하죠. 단 한 번도 ‘입을 수 있는 옷인가’라는 것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어요. 제 얘기는, 분명 모델들이 입었으니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거죠. 쇼는 그 시즌에 대한 저의 발상이자 제가 디자이너로서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저를 대변하는 클래식한 옷을 좀더 충격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션쇼 의상이 디자이너의 ‘진짜’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쇼에서 그걸 보길 원해요.

    그렇다면 매장에 걸린 옷보다 패션쇼 의상이 더 맘에 든다는 건가요?

    아뇨. 저는 둘 다 좋아요! 각각 이유가 있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금색 의상들은 실제 1930년대에 제작된 라메 원단으로 제작한 것이다.

    당신이 직접 입는다면요?

    개인적으론 클래식을 선호하지만, 사람들이 컨셉추얼한 아이디어도 포용할 수 있으면 해요. 스스로에 대한 감각을 갖춘 이들은 어떤 스타일이든 자신의 옷 입는 방식에 확신을 갖고 있죠. 제 옷은 분명 모두를 위한 옷은 아니지만, 개성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는 사실은 확실해요.

    그러고 보니 당신은 예술적 감성과 이성적 사고를 겸비한 디자이너군요.

    와, 그거 아주 멋진 표현인데요? 하하하!

    디자이너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계속해서 전진하려는 제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죠. 런웨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옷을 극적인 쇼에 집어 넣는 건 제가 하려는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된다면 우린 매 시즌 그걸 볼 필요가 없죠. 제가 쇼에 가미하는 컨셉추얼한 면이야말로 각각의 쇼를 흥미롭게 만들고 제가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하는 이유예요.

    어느 시즌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죠?

    모두 다! 늘 그 시즌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지만, 모두 다 마음에 들어요.

    그렇다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건요?

    오, 전부 마음에 든다구요. 전부 다, 매우! 각각 다 다르니까요.

    다음 시즌에 대해 고민은 좀 했나요?

    당연하죠.

    딱 하나만 말해줄래요?

    안돼요. 저는 다음 컬렉션에 대해 절대 미리 발설하지 않아요(그러곤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꼭 다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쇼는 뭔가요?

    제 쇼 중에서요?

    아뇨. 다른 디자이너나 브랜드요.

    (고개를 저으며)저는 다른 쇼는 보지 않아요.

    다른 쇼는 절대 보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물론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보지 않아요. 저만의 것을 하고 싶으니까요.

    맥퀸 쇼도 본 적 없어요?

    (어깨를 으쓱하며)정말 그 누구의 쇼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아주 멋질 거라고 확신해요. 특히 맥퀸 쇼는.

    당신은 정식으로 패션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 없고 재단사에게 필요한 것을 배웠어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단점은 없어요. 장점만 있죠. 처음 제 레이블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재단사와 일하고 있는데, 그에게 아주 많은 걸 배웠어요. 그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기술을 가졌어요. 이름이 로코 시카렐리(Rocco Ciccarelli)예요. 저에게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방법과 제작 과정에 대해 알려줬죠. 우리는 아주 좋은 파트너예요. 저는 제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또 그는 50년간 쌓은 경험으로 그걸 정확하게 표현해내니까요. 사실 저는 아이디어가 과감할수록 가장 클래식한 방식으로 견고하게 제작합니다.

    로코가 여성복에도 관여하나요?

    클래식한 옷들은 그가 작업하지만 컨셉추얼한 디자인을 담당하는 일본인 여자 재단사가 한 명 더 일하고 있어요. 컨셉 때문에 품질에 있어 적절히 타협하는 일은 결코 없어요.

    어떤 여자들이 톰 브라운을 입나요?

    개성 있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고전적 개념을 좋아하지만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여자. 지난 9월 봄 쇼에서 다이앤 키튼의 내레이션이 중요했던 이유도 그거예요. 독특하고 자아가 강하며 자신만의 스타일 감각을 지닌 인물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그녀를 선택했어요.

    그녀는 톰 브라운 단골 고객이죠?

    네, 아주아주 충실한 고객이랍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옷을 어떻게 입길 원해요?

    쇼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자신이 입고 싶은 방식대로.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질문 하나 할게요. 당신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저에겐 가능한 모든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니까요.

    <보그> X  톰 브라운 영상 보기

      에디터
      송보라, 홍국화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Sonny Vandevelde
      필름 디렉터
      GE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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