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고갈의 시대

솔로가 늘어난다. 수년 전 어장을 관리했고, 근래엔 썸을 타던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결국 혼자가 되었다. 요즘은 어딜 봐도 커플보다 솔로가 많다.
먹고살기 힘들다 아우성치는 시절. 우리는 어쩌다 연애를 포기하고 솔로가 되었나.

여자 모델의 화이트 톱과 재킷, 블랙 스커트는 모두 로우 클래식(Low Classic), 악어가죽 숄더백은 쿠론(Couronne), 남자 모델의 체크 패턴 재킷과 블랙 팬츠는 캐롤리나 헤레라(Carolina Herrera), 니트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백팩은 토즈(T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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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홍대 근처에선 별난 행사가 열렸다. 일명 ‘삼포에게 연애를 허하라’는 이벤트. 멀쩡하게 생긴 남녀가 대로변에 나와 연애의 자유를 허하라며 키스 퍼포먼스를 했다. 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누가 누구의 연애를 금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행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절규가 이해는 된다. 일단 지금은 삼포의 시대라는 것. 삼포는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함을 일컫는 말인데, 그 팍팍함 사이에서 연애할 여유는 없다. 학교를 졸업하곤 아르바이트해서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취업해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 이성에 한눈팔 겨를 따위 지금의 청춘에겐 없다. 실제로 올 초 한 시장조사 전문 기관이 솔로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대부분의 솔로들은 데이트 비용이 부담돼(59.9%)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18~49세 미혼 남녀 가운데 현재 이성 교제를 하고 있는 비율은 남성이 33.8%, 여성이 35.6%다. 성인 남녀 열 명 중 고작 세 명만 연애를 하고 있는 거다. 고된 현실의 가난한 청춘에게 연애는 그저 버거운 사치다. 연애는 안 해도 죽지 않지만, 취업은 당장 밥줄의 문제다. 씁쓸해도 지금 어쩔 수 없는 연애 불모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포럼>을 통해 발표한 연구 내용을 보면 근래의 이 연애 포기 현상은 생각보다 치명적이고 심각하다. 청년층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점점 더 연애 불가능 구조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30%에 달하는 커플의 비율은 학력이 높을수록 높아지며,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그리고 중소기업 근무자보다는 대기업 근무자가 그나마 연애를 하고 있는 비율이 높다. 연애도 철저하게 호주머니 사정에 좌우되는 셈이다. 심지어 근래엔 조건에 맞는 사람을 골라 연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남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괜히 이것저것 재느라 시간, 돈 낭비하는 대신 애초에 계산에 맞춘 타깃만 만난다는 거다. 연애도 투자 대비 효율을 고려해야 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연애 포기는 잠시 일을 위해, 꿈을 위해 연애를 뒤로 미뤄놓는 연애 유보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밥줄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애가 불가능하다는 연애 종말의 결론이다. 올 한 해 대중문화를 휩쓸었던 키워드 중 하나가 ‘썸’일 텐데 세상 한쪽에선 그조차도 괜한 사치인 사람들이 있다. 청년 실업률 10%의 시대. 연애가 로망과 낭만의 카테고리를 벗어난 건 이미 오래전 일이 되었다.

연애를 안 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빚진 학자금도, 갚아나갈 전세 대출금도 없지만 그냥 별 탈 없이 혼자 산다. 연애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혼자로도 충분하고, 가끔 외롭기는 해도 대부분은 둘일 때의 번거로움이 없어 오히려 편하다. 그리고 주변에는 나 같은 솔로들이 한가득이다.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장을 보며, 혼자 밥을 해 먹는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여흥을 즐긴다. 최근 솔로 중에는 연애를 포기한 게 아니라 연애를 선택하지 않는 케이스가 많다. 혼자로도 모자람이 없는데 굳이 둘이 되어 번거로운 감정 소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실제로 장기 저성장의 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옆 나라 일본의 경우 연애를 선택하지 않은 솔로들이 득실댄다. 일본의 한 사회문제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중 연애하지 않고 있는 이의 비율은 무려 70%에 육박하며,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앞으로도 연애할 마음이 없다고 답했다. 익숙해진 혼자 살림은 연애를 하며 늘어날 경제적 지출을 겁내는 동시에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 역시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게 혼자로도 충분해진 삶 속에서 타인에게 마음을 주고, 마음을 열고, 또 받아들이는 일은 새로운 노동이고 피로다. 그리고 지금의 솔로들은 그 수고를 하려 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못하는 연애는 돈을 벌면 해결될 문제지만, 혼자가 익숙해져 연애하는 법을 잊었을 땐 아무리 고액의 돈도 답이 되지 못한다. 암울한 취업난, 그리고 풀리지 않는 경제 저성장보다 지금 이 연애 고갈의 풍경이 더 우울한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모두가 썸을 타던 한 해였다. 젊은 남녀들은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사람’을 찾아 사방을 헤맸고, 수시로 ‘그린라이트’의 등을 켜고 살았다. 연애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뉴스가 터져 나오는 지금의 현실이 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결국 연애할 용기를 잃은 사람들이 벌인 연애 놀음이었는지 모른다. 고리타분한 말 같아도 자고로 연애는 내 자리 한쪽에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이고, 불편하지만 설레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일이 바빠, 혹은 이런저런 인간관계에 치여 우리는 그 한쪽의 자리에 인색해졌다. 괜히 다치고 싶지 않고, 괜히 불편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해도 너무나 편안해져버린 솔로의 살림살이가,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이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는 않을까. 팍팍한 지갑 사정과 마음의 우리는 연애를 포기하고 썸의 유희에 머물렀다. 그렇게 연애를 잃었다. 취업도, 살림살이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혼자인 세상은 분명 더 추울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정말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