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준 다카하시의 도쿄 작업실

체제 전복적인 ‘언더커버’의 컬트 지휘관 준 다카하시가 곧 25주년을 맞는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친구들과 마라톤을 뛰며 자신을 재점검하는 그를 도쿄 작업실에서 <보그>가 만났다.



일본 패션계에서 가장 멋진 남자을 꼽으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준 다카하시(Jun Takahashi, 그의 친구들과 충실한 추종자들에게는 ‘Jonio’라고 불린다)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마른 체형에 구불구불하고 흐트러진 머리 스타일에다 전복적인 동시에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겸비한 이 록스타 말이다. 그는 패션계에서 영원히 우상으로 숭배될 인물이자 보기 드물게 국제적인 디자이너다. 파리에서 열린 언더커버 쇼를 보기 위해 모인 군중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의 런웨이에서는 늘 뭔가 이상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스마트하게 비틀어 평상시에 입을 만한 옷도 많다.

지금 우라 하라주쿠에 있는 그의 작업실 한구석의 낡은 소파에 앉은 나를 수많은 여성이 부러워할 거라고 장담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이곳은 일종의 아지트다. 거친 나무 바닥과 네온사인, 주크박스, 그리고 음악 관련 수집품으로 가득 찬 선반이 뒤죽박죽 섞인 곳. 특이한 외모에 보풀이 일어나 있고 눈은 하나밖에 없는 데다 빅토리아 왕조 스타일의 레이스 옷차림의 인형들(다카하시가 얼마 전 열린 쇼를 위해 만든 일명 ‘그레이스’들이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커피를 만들어왔고, 우리는 보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 만큼 괴상한 의식 같던 가을 컬렉션 이면에 담긴 게 뭔지 얘기를 나눴다. 머리를 땋아 만든 왕관을 쓴 소녀들(그의 친구인 헤어드레서 가쓰야 가모의 작품)이 옷에 안팎으로 엮인 스톨과 완장을 두른 채 왕족 같은 차림으로 엄숙하게 걸어 나왔던 바로 그 쇼 말이다. 쇼는 투알 드 주이(Toile de Jouy, 화려한 풍경이 프린트로 들어간 프랑스산 날염 무늬 옷감)와 웨지우드 프린트로 호화스럽게 감싼 망토와 코트의 극적인 피날레로 막을 내렸다. 그 쇼는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대화 주제로 오르내렸다. “쇼의 일부는 로열 패밀리에 대한 풍자 같은 겁니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일종의 블랙 유머죠! 어찌 보면 하이패션 같지만,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UFO와 뱀파이어가 보일 거예요.”



(왼쪽부터) 모델 릴리 도날슨(Lily Donaldson@IMG)이 입은 가죽 재킷과 스커트는 언더커버(Undercover), 로퍼는 마르니(Marni). 미래적이면서도 기괴한 가을 컬렉션쇼 백스테이지의 모델들.

다카하시는 민주주의적 태도를 지녔다. “저는 스트리트 패션과 음악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가 어깨를 한 번 으쓱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단순한 럭셔리 브랜드를 추구하지 않아요.” 언더커버의 본질은 무의식적 감정의 불협화음이 만드는, 다시 말해 의도적이고 종종 장난기 가득한 자극과 하위문화를 바탕으로 한 리프(Riff, 재즈 연주에서 2~4마디의 특정 구절을 반복 연주하는 것)에 놓여 있다. 아울러 독창적인 기능주의자다. 이번 가을 컬렉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로열’이라는 주제 아래에 놓여 있다. 매일 입는 야구 점퍼, 트렌치, 라이더 재킷 등이 허리에 두른 스커트에 펑크가 가미된 타탄체크, 테일러드 팬츠 위에 덧댄 물결 모양 디자인과 대응하는 식이다.

언더커버는 내년에 25주년을 맞는다. 다카하시는 자신의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프린트로 만든 티셔츠 컬렉션과 아트북 발간 작업에 돌입했다. 인스타그램 속의 앳된 얼굴을 한 조니오를 한번 보자. 1990년 도쿄 문화복장학원에서 붉은색 보위 헤어스타일을 한 10대 펑크족 모습이다(그는 이미 섹스 피스톨즈 트리뷰트 밴드를 조직한 적 있다). 93년 부티크를 열기 위해 그가 친구인 베이프(A Bathing Ape)의 니고(Nigo)와 손잡았을 때, 그들은 순식간에 언더그라운드 컬트의 히어로가 됐다. 2002년(다카하시가 독립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꼼데가르쏭의 레이 카와쿠보에게 자극을 받은 해)이 돼서야 비로소 다카하시는 파리에서 언더커버 쇼를 열었다. 그곳에서 그는 독창적 스타일을 지닌 젊은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그의 기준은 자신이 성장해온 모습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방식이다. 그는 아내 리코(Rico)와 딸 라라(Lala)와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또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즐거움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으며, 가정에서의 경험을 컬렉션에 녹여냈다. 그 후로 몇몇 친구들과 달리기를 시작했고(그들은 세 차례 마라톤에 참가했다), 거기서 배운 움직임을 나이키와 협업으로 진행한 하이엔드 컬렉션 ‘갸쿠소(Gyakusou)’에 반영할 수 있었다. “그들과 작업하기 위해 1년에 두 번 포틀랜드에 갑니다. 그건 제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죠.”

다카하시는 분명 패션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매력은 솔직함에서 찾을 수 있다. 늘 앞으로 질주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검토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약간 놀라운 일이다. 내년 25주년을 위해 점점 가속페달을 밟는 중에도 그는 여전히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제가 벌써 40개 시즌을 작업했더군요.”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일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제가 꽤 잘해왔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