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패션 거리에 밀려든 젊음의 행진

젊은 디자이너들과 노련한 디자이너들이 ‘젊음의 묘약’에서 교집합을 찾았다.
2015 S/S 서울 패션 위크 최신작과 함께 서울 패션 스트리트에 밀려든 젊음의 행진!

Beyond Closet가죽 쇼츠와 네이비 팬츠, 플레잉 카드 패턴의 후드 코트는 비욘드 클로젯(Beyond Closet), 로즈 골드 참 목걸이는 미네타니(Minetani), 브라톱은 카이(KYE), 메탈 반지는 아워띵스(Ourthings). 

87mm & Munsoo Kwon왼쪽 모델의 검정 티셔츠와 와이드 오버올 팬츠는 87mm, 실버 스냅백은 NBA, 실버 반지는 엠주(Mzuu), 오른쪽 모델의 도트 프린트 야구 티셔츠와 네오프렌 팬츠는 문수 권(Munsoo Kwon), 그래피티 스냅백은 NBA, 메탈 반지는 아워띵스(Ourthings).

‘위너’ 강승윤이 교실문을 확 열어젖히더니 껌을 짝짝 씹으며 들어섰다. 어른들은 시시껄렁한 태도가 귀엽다는 듯 쳐다볼 뿐. 10월 17일 <보그> 페이스북에 실시간 올라온 이 사진은 <보그> 편집장의 눈에 들만큼 기발했다. 2015 S/S 서울 패션 위크 첫날 오후 4시 30분에 열린 고태용의 ‘비욘드 클로젯’ 쇼는 9월 15일 뉴욕 패션 위크의 컨셉 코리아 일정을 통해 발표된 컬렉션의 확장판이다. “뉴욕에서 네 번의 쇼를 발표했습니다. 현지에서 바잉을 끝냈기에 서울 쇼는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이죠.” 그에게 서울 패션 위크는 갈라쇼 개념이다.

고태용은 한국에서 세컨드 브랜드 ‘캠페인’이 불티나게 팔리는 데다, 온·오프라인을 통한 ‘비욘드 클로젯’ 판매 곡선이 하강한 적이 없다. 이런 자신감도 거들었겠지만 그는 기질적으로 거침없는데다 직언으로 쏟아내는 타입. 컬렉션 경력 8년 차로 볼 때 나이가 꽤 될 거란 예상과 달리 그는 81년생이다. 패기 넘치는 태도는 서울에 ‘Youth Culture’를 형성하기 충분했다.

 

이튿날 오후 1시 일정은 ‘87mm’ 쇼.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모델 김원중의 디자이너 전업 신고 같은 무대다. 고태용 쇼 두 시간 전에는 ‘문수 권’ 쇼가 열렸다. 패션 전문가들은 이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다. 전 세계 패션이 ‘젊음’에 꽂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패션 가문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늙수그레한 라벨들이 20대를 타깃으로 환골탈태하며, 40~50대 패피들이 걸리시하게 입는 현상).



Lucky Chouette핀스트라이프 민소매 톱과 가죽 오버올 쇼츠, 부드러운 실크 스트라이프 트렌치코트는 럭키 슈에뜨(Lucky Chouette), 검정 스냅백은 NBA, 붉은색 스포츠 양말은 나이키(Nike).

Pushbutton왼쪽 모델의 어깨에 트임이 있는 오간자 블라우스와 하늘색 머메이드 라인 스커트, 오른쪽 모델이 입은 프린트 셔츠와 스커트를 덧댄 분홍색 바지는 푸시버튼(Pushbutton). 

그들이 남성복 중심으로 ‘유스 컬처’를 넓힌다면, 멋쟁이 걸들은 키 슈에뜨, 푸시버튼, 스티브앤요니 문화에 푹 빠진 지 오래다. 이번에도 럭키 슈에뜨는 떠들썩하고 요란하며 발랑 까진 젊은이 문화를 제안했다. 프리다 칼로에게 영감을 얻어 어딘지 성숙했던 푸시버튼 쇼에도 여전히 젊음은 꿈틀댔다. 피날레의 회색 스웨트 수트 행렬이야말로 서울의 현재적 젊음이었으니까. 반면 스티브앤요니는 데님 전문 세컨드 브랜드 ‘SJYP’를 의식했는지 반항기를 줄였다. 대신 기발한 발상의 낙서 프린트와 타이포그래피로 펑키한 젊음을 유지했다. 그런가 하면 ‘KYE’ 계한희, ‘서리얼 벗 나이스’ 이수형과 이은경 커플, ‘로우 클래식’ 이명신 등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주제인 젊음을 입맛과 취향대로 또 한번 공개했다.



Steve J & Yoni P왼쪽 모델의 나뭇잎과 레터링 프린트의 셔츠와 팬츠, 오른쪽 모델이 입은 시폰 톱과 레이어드한 시스루 스커트, 카키색 망사 오버올 스커트는 스티브앤요니(Steve J&Yoni P).

KYE브라톱과 속살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 톱, 레이저 커팅 디테일의 가죽 복서 팬츠는 카이(KYE), 양손에 낀 반지들은 아워띵스(Ourthings), 리폼한 나이키 슬리퍼는 87mm.

서울의 ‘유스 컬처’는 34년생 진태옥마저 사로잡았다. 요즘 그녀가 자주 입고 다니는 회색 스웨트 원피스를 풍자한 것. 스웨트 셔츠에 환상적인 비즈 장식을 곁들인 진태옥다운 젊음의 재탄생이었다. 형태가 빵빵하게 잡히는 메시 소재에서도 그녀의 젊음이 드러났다. 한국식 레이디라이크룩의 상징인 지춘희에겐 핑크와 그린으로 염색된 육감적인 뱀가죽이 젊음의 묘약으로 쓰였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젊음을 유지하는 ‘앤디앤뎁’ 김석원과 윤원정 부부는? 마린 룩으로 단조롭기 짝이 없는 서울 패션 위크 쇼장에 봄바람을 더했다. 그런가 하면 김서룡과 홍승완자인 같은 시니어급 역시 평소보다 힘은 빼고 위트를 더해 세대초월의 완성도 높은 쇼를 보여줬다. 특히 홍승완과 김서룡의 파자마 룩, 송자인의 정교한 레이스 룩은 다가올 봄 글로벌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진다.

 



Surreal but Nice검정 레이스 시스루 톱과 낙낙한 그래피티 가죽 조끼, 와이드 팬츠는 서리얼 벗 나이스(Surreal but Nice), 실버 반지들은 엠주(Mzuu), 리폼한 나이키 슬리퍼는 87mm. 

Low Classic데님 크롭트 톱과 레이어드한 시스루 팬츠, 데님 랩 스커트는 로우 클래식(Low Classic), 오른손의 로프 팔찌는 엠주(Mzuu), 양털 실 팔찌와 양 손에 낀 반지, 그리고 왼손에 옷감을 감아 만든 가느다란 뱅글은 모두 아워띵스(Ourthings),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by Jeremy Scott). 

이렇듯 2015 S/S 서울 패션 위크는 젊은 기운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누구나 청춘에 겪는 경솔한 문제가 몇몇 쇼에 드러났다. 사실 패션 위크에 초대돼 맨 앞줄에 앉는 관객은 해외 선진국 패션 위크를 정기적으로 취재하는 패션 기자이거나 국내외 옷들을 수없이 사 입는 패션 골수들이 대부분. 그들 앞에서 런웨이쇼를 열 때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라면? 동시대성, 창의성, 완성도 등이 꼽힌다. 물론 유행 감각이나 독창성은 갖췄다고 스스로 주장할지 모르나, 완성도에서 감점 받을 쇼들은 충분히 지적하고 충고할 대목이다. 옷 자체의 제품력, 다시 말해 프로덕트로서의 완성도, 그리고 하나의 컬렉션을 구성하기 위한 편집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아울러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나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Jintéok에어 메시 소재 망사 톱과 모래색 실크 타프타 조끼, 물결무늬 시폰 스커트는 진태옥(Jintéok), 레이스 프레임의 독특한 선글라스는 하우스 오브 홀랜드(House of Holland at Optical W), 스니커즈 힐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by Jeremy Scott). 

그렇다면 서울 패션 위크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런웨이쇼를 발표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뭘 더 갖춰야 할까? 2001년 1월 역삼동 어느 모델하우스에서 첫 쇼를 발표했던 홍승완의 십수 년 이력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진태옥의 눈에 들어 그 해 경복궁에서 열린 가을 쇼로 데뷔한 뒤 꾸준히 패션 위크에 참여한 그는 바잉과 유통이 전무한데다 쇼장의 공간적 한계에 부딪혀 2007년 쇼를 중단했다. 그 무렵 그는 패션 공부를 마쳐 익숙했던 일본에 슬슬 기웃거렸다. 가장 원했던 쇼룸을 8개월 설득한 끝에 돌아온 대답은? 당신의 옷을 만드는 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싶다는 것. 당신과 식사와 술자리를 하며 디자이너 홍승완이란 인물이 대체 누군지 알고 싶다는 것. 그리하여 여러 조율 끝에 ‘로리엣’을 론칭한 그는 짠! 하고 도쿄 패션 위크든 단독 패션쇼든 런웨이쇼로 데뷔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들이 홍승완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긴 조언은? “서두르지 마세요.”

 

서두르지 말 것! 솔직히 이런 조언은 젊은이들의 속도로 볼 때 속 터지는 소리다. 또 요즘 세대는 옷 뒤에 숨는 것 보단 옷 앞에 자신을 내세우길 원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인스타 팔로워 68K를 거느린 고태용(푸시버튼 박승건은 63K, 계한희는 56K)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최근 1년 동안 무려 24개의 협업을 성사시킨 데다(내년부터는 줄일 거라고 다짐했다), 전 세계 28개 편집 매장에 옷을 팔고 있다(원하면 언제라도 티셔츠 한 장쯤은 맘대로 만들 전용 공장까지 소유했다). 그러니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패션쇼 피날레만이 아닌, 대중매체에 자주 나온다고 문제될 건 없다. 패션 디자이너와 패션 엔터테이닝도 겸하는 인물이 공존하는 시대가 지금이니까.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그는 “패션 디자이너는 약간의 ‘자뻑’ 기질을 가져도 좋아요”라며 자신과 함께 묶이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친구처럼 조언했다.



Miss Gee Collection섹시한 파이톤 튜브톱 드레스는 미스지 콜렉션(Miss Gee Collection), 꽃 패턴 스냅백은 NBA.

Andy & Debb원피스처럼 연출한 오버사이즈 세일러 니트와 팬츠는 앤디앤뎁(Andy&Debb), 빨간색 버킷 햇은 87mm, 실버 메탈 반지는 엠주(Mzuu).

서울 패션 위크라는 공식 무대에서 1~4번의 쇼를 마친 몇몇은 지금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디자인도 할 줄 아는 예능인이 되고 싶은지 숙고할 타이밍. 몇몇은 고태용처럼 둘 다 아우른 인물을 꿈꿀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4~5년 만에 스타덤에 오른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 수많은 패션 뒷얘기에 익숙한 패션 기자가 들어도 혀를 내두를 만한 산전수전을 8년 동안 겪은 뒤 그는 현재 패션 디자이너 겸 패션 엔터테이너가 됐다. “8년 전 최범석 쇼에선 디자이너도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음을, 한상혁 쇼에선 루시드 폴 노래가 흐르는 동안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못할 때 디자이너가 패션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을, 정욱준 쇼에선 죄다 탈색한 모델과 완성도 높은 옷이 감동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Kimseoryong & Roliat왼쪽 모델이 입은 블랙 코튼 파자마 셔츠와 팬츠, 나이트 가운은 김서룡(Kimseoryong), 오른쪽 모델의 파자마 셔츠와 팬츠, 스트라이프 베스트와 시어서커 재킷은 로리엣(Roliat), 플랫폼 벨크로 샌들은 제인송(Jain Song).

Jain Song섬세한 레이스 자수 크롭트 톱과 펜슬 스커트는 제인송(Jain Song), 심플한 메탈 반지들은 캘빈 클라인 주얼리(Calvin Klein Jewelry).

젊은 디자이너들에겐 서울에 ‘유스 컬처’를 제안한 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오디너리 피플’(<패션왕 코리아>에 출연했고 비욘드 클로젯 출신인 장형철), ‘아르케’(2010년 <프런코>로 등장했고 <뉴 솔드아웃>에 나와 대중에게 익숙한 윤춘호) 등 서울 패션 위크에서 주목받은 신인들의 컬렉션을 디렉션하는 스타일리스트 채한석은 이렇게 조언한다. “서울 패션 위크는 졸업 작품 쇼가 아닙니다. 하이패션과 맞닿은 컬렉션이야말로 패션 위크에 발표돼야 합니다. 전 세계 패션 위크도 마찬가지예요. 이를 위해 젊은 디자이너들이 하이패션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고급 옷을 자주 경험한 뒤 연구의 연구를 거듭해 런웨이쇼를 발표해야 이상적이죠.”

 

2015 S/S 서울 패션 위크에 도사린 젊은 기운, 그 흐름을 가열차게 주도한 젊은이들, 이 폭발적 에너지에서 영감 얻은 시니어들, 그리고 옷 뒤가 아닌 옷 앞에 나선 채 패션 엔터테이닝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 디자이너 계한희는 여기 참여한 패션 관계자라면(패션 디자이너, 패션 에디터, 바이어, 고객, 패션 학도 등등) 누구든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를 남겼다. “서울 패션 위크는 과연 ‘패션 위크’일까요, ‘패션 축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