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들의 패션 리그

어렸을 땐 옷 한 벌을 두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부모의 DNA를 사이 좋게 물려받은 자매가 패션을 위해 의기투합한다면?
같은 미소와 눈빛, 심지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는 그들만의 리그!

남성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추구하는 허지예(왼쪽), 허지인(오른쪽) 자매가 론칭한 엉 쁠랜 뉘. 


En Pleine Nuit


파리 의상조합에서 패션 디자인 전공 후 발맹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한 허지인, 그리고 네 살 아래의 눈웃음이 예쁜 동생 허지예가 2011년 론칭한 ‘엉 쁠랜 뉘’. “라벨 이름을 짓기도 전에 이태원에 매장부터 계약했어요. 그 후 파리로 다시 돌아와 집을 정리하고 브랜드 컨셉을 논의하기 시작했죠. 처음부터 남성적이고 어두운 느낌의 여성복을 떠올렸어요.” 프랑스어로 ‘한밤중에’라는 뜻을 지닌 두 자매의 브랜드는 절제된 아방가르드가 특징이다.

 

Vogue 자매치곤 외모가 많이 다르다. 각자의 성격 역시 다른가?

허지예 시원시원한 외모의 언니는 성격도 털털할 것 같지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반면 나는 직설적이고 사교적인 편이다. 디자인의 대부분은 같이 하지만 언니가 주로 디자인과 생산을 담당하고, 나는 홍보와 마케팅 쪽을 담당한다.

Vogue 자매라서 불편한 점은 없나?

허지인 불편한 것보단 한 명이 의욕이 없으면 다른 한 명도 영향을 받는다. 직원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얘기할 수도 없고 서로를 배려하다 보니 오히려 늘 긴장하게 된다. 가끔 날씨가 무지 좋은 날엔 둘이서 매장 문을 잠그고 산책하거나 맛집을 찾아 다닌다. 일반 디자인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Vogue 그렇다면 가장 큰 장점은 뭔가?

허지예 서로의 성격이나 취향, 심지어 몸의 바이오리듬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대처하기 편하다. 그리고 마음 상한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속 시원히 풀 수 있다. 파리에서 함께 생활할 때 된통 싸워서 한 달쯤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다. 부모님한테 들켜서 엄청 혼났지만. 그날 이후 마음에 섭섭한 건 절대 담아두지 않는다.

Vogue 의견 조율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

허지인 큰 플랫폼을 정한 뒤 작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면서 시작한다. 가령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는 건 서로 양보하는 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절제된 디테일이나 모던한 디자인을 완성한다.

 

Vogue 혹시 수익은 어떻게 나누나?

허지예 공평하게 똑같이 월급 받는다. 지금은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지만.

Vogue 당장 예정된 일은 뭔가?

허지인 남편이 이태원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다. 우린 자타공인 미식가 자매다. 곧 엉 쁠랜 뉘 매장 근처에 또 다른 느낌의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 예정이다. 지금껏 ‘주’를 함께했던 우리는 이젠 ‘의’와 ‘식’을 나누며 평생 우애 돈독한 자매로 남고 싶다.



클래식을 기본으로 절제된 디자인과 여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아보아보는 한보름(왼쪽), 한아름(오른쪽) 자매가 론칭한 브랜드.


Avou Avou


뉴욕 파슨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언니 한아름과 발레리나 출신의 동생 한보름은 ‘아보아보’라는 앙증맞은 이름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각자의 이름에서 한 단어씩 조합한 브랜드 이름이다. 2014년 S/S 시즌을 통해 두 번째 컬렉션을 선보이는 그녀들은 50년대풍의 클래식한 테일러링을 기본으로 한 여성스러운 컨셉이 특징. 올겨울부터는 맞춤 라인 ‘아보(Avou)’까지 기획했다.

Vogue 다른 자매 디자이너들과 달리 두 사람의 이력은 좀 특별하다.

한아름 나는 파슨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뒤 뉴욕에서 프로모션 제작 공장을 경영했다. 당시 일이 너무 많았는데, 뉴욕에서 발레를 공부하던 동생이 아르바이트로 내 일을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브랜드 론칭까지 하게 됐다.

Vogue 그렇다면 디자인은 주로 언니 담당인가?

한보름 디자인은 전적으로 언니의 몫이다. 나는 홍보와 기획, 재정을 담당한다. 24시간 일해도 시간이 늘 빠듯한 디자이너들이 돈 관리까지 하는 건 정말 고역이다.

Vogue 하는 일이 다르면, 혹시 성격도 다른가?

한아름 주위에서도 자매가 참 다정하다고들 하는데, 우리 자매는 정말 유독 끈끈하다. 동생처럼 나를 섬세하게 보살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을 정도다. 혈액형도 나는 B형, 동생은 A형이다. 아무래도 동생이 내 눈치를 보며 잘 대처하기에 싸울 일이 없는 것 같다.

Vogue 무척 친밀하지만 그래도 의견 조율이 필요할 때도 있을 듯한데.

한아름 나는 일을 추진력 있게 밀어붙여 크게 벌이는 편이다. 하지만 늘 마무리가 안 된다. 반면, 동생은 조용하고 묵묵히 내가 벌인 일을 깔끔히 처리한다. 일은 내가 적극적으로 펼치지만, 될 것과 안 될 것의 구분은 동생이 정한다. 이렇듯 우리 자매의 궁합은 정말 환상적이다. 얼마 전부터 막둥이 남동생도 브랜드에 합류했다.

Vogue 그렇다면 함께 일할 때 불편한 점은 전혀 없나?

한보름 일할 때 불편한 점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24시간 함께 지낸다. 둘 다 싱글이기도 하지만 부모님 댁이 지방이라 신사동 매장 위층에서 같이 살며 일도 같이 한다. 언니지만 상사를 모시고 잠까지 같이 자는 상황이랄까? 서로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일하면서 부딪히는 건 없다.



마랑고니 액세서리 과정을 졸업한 이지연(왼쪽)과 미스코리아 출신이자 파슨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이지선(오른쪽)이 론칭한 제이 어퍼스트로피.


J Apostrophe


‘제이 어퍼스트로피’는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이지선과 밀라노 마랑고니에서 액세서리 과정을 졸업한 이지연 자매가 론칭한 브랜드다. 세 살 터울의 두 자매는 여성스러운 실루엣에 아방가르드한 디테일을 곁들여 서울 패션 위크의 런웨이쇼는 물론 해외 트레이드쇼에 참가하며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다.

Vogue 어떻게 해서 제이 어퍼스트로피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나?

이지선 어릴 적부터 우린 패션을 좋아했다. 그리고 다른 자매와 달리 옷 입는 취향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싸울 일도 많았지만. 각자 다른 도시에서 패션 스쿨을 다닐 무렵, 언젠가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다면 둘이서 꼭 함께하자고 다짐했었다. 

Vogue 세 살 터울이라면 자라면서 꽤 다퉜을 것 같은데.

이지연 우린 정말 많이 싸웠다. 옷 입는 것과 먹는 것 외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얼굴은 비슷하지만, 몸매와 키가 다르듯 성격도 무척 다르다. 하지만 불같이 화내는 성격은 부모님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 받았는지 싸울 땐 불꽃이 팍팍 튄다. 하지만 금세 풀어지는 것 역시 우리의 장점이다.

Vogue 싸운 뒤에 어떻게 화해하나?

이지선 어릴 때처럼 쓸데없이 고집부리지는 않는다. 특히 함께 사업하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으며 풀곤 한다. 한번 더 생각하고 마무리 한 뒤 다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편. 이렇게 서로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면 딱히 부딪힐 일이 없다.

Vogue 디자인 컨셉은 주로 누구의 몫인가?

이지선 우리 업무는 철저히 구분된다. 내가 의상 디자인, 언니가 액세서리 디자인을 맡는다. 언니는 랑방 컬렉션 액세서리 파트에서 일했다. 이후 마랑고니에서 가방과 구두 디자인을 전공했다. 다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에 비해 제이 어퍼스트로피에 가방과 구두가 다양한 이유다.

Vogue 의견이 다를 땐 어떻게 조율하나?

이지연 나는 주로 해외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얼굴을 맞대고 아이디어 회의하기가 힘들어 자주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전화로 얘기한다. 각자가 할 일이 달라 큰 그림만 서로 의논한 뒤 세세한 내용은 스스로에게 맡긴다.

Vogue 자매 디자이너로서 한 브랜드를 운영하는 장단점은 뭔가?

이지선 직원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어떤 시간에도 부담 없이 통화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특히 주말이나 새벽, 이른 아침이나 명절에도. 단점이라면 서로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 눈빛을 보거나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맞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