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과 강북, 우리들의 쇼핑 취향

파리에 리브 고쉬와 리브 드로아가 있다면, 서울에는 리브 쉬드와 리브 노르가 있다.
거대한 한강을 중심으로 구획되는 우리들의 쇼핑 취향.



30년 전엔 강남이 허허벌판이었네 어쩌네 하는 건 말 그대로 옛날 얘기다. 그 높은 땅값에도 자리가 모자라 한적했던 동네 골목길(바로 그 가로수길은 원래 동네 골목길이었다!)까지 강남역 못지않은 번화가로 둔갑시켰으니 말이다. 강남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저렴했던 센 강의 남쪽(센 강 북쪽은 전통적으로 상류층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모인 뒤 점점 세련되고 예술적인 동네로 탈바꿈한 리브 고쉬(고쉬는 왼쪽이라는 뜻으로 강의 남쪽을 말한다)와 꽤 비슷한 배경을 간직했다. 그리고 쇼핑 성향으로 치자면, 리브 드로아처럼 고고한 상류층이 점거해온 강북은 보수적이고 클래식한 디자인을, 기민하고 눈치 빠르게 움직이는 강남의 신흥 세력은 유행에 민감하고 최신 디자인을 선호해왔다는 사실.

그러나 최근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팀에서는 강북 매장에 드나드는 고객들이 훨씬 더 세련된 취향이라는 게 전반적인 의견입니다.” 분더샵 남성복 바이어의 얘기는 전혀 뜻밖이었다. 전개하는 브랜드들이 모두 진열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를 제외하고 신세계 본점과 강남점의 분더샵 남성 매장을 비교할 때, 아직 낯선 신진 디자이너나 마니아적 취향의 레이블 다수가 강북 매장에서 팔린다는 것. 가령 요지 야마모토, 하이더 아커만, 엘더 스테이츠먼 같은 부류다. 반면 강남 매장을 채우고 빠른 속도로 소비되는 건, 요즘 한창 뜨는 디자이너 레이블(지방시, 알렉산더 왕 등). “매출 결과를 볼 때 강북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옷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고 느낍니다. 주 고객층의 연령을 조사했을 때도 본점 매장이 가장 젊었죠. 물론 젊다고 해도 35세 전후지만요.” 아, 저기 손을 높이 드신 분. 최근 한남동이나 북촌 같은 강북 지역이 떠오르면서 새로 유입된 소비자들 때문이 아니냐고요? 패션 전문가들은 꽤 오래전부터 이런 경향을 눈치채왔다. “7~8년 전 신세계 강남점에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단독 매장이 오픈했었죠. 당시만 해도 MMM은 낯설고 전위적인 스타일을 고수했고 매출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끼리는 본점에 매장을 냈다면 결과가 더 좋았을 거란 얘기가 농담처럼 오갔어요. 본점 매장 고객들의 취향에 대한 신뢰였죠.” 한국 매장을 둘러본 해외 디자이너들도 패션계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한 강남 매장보다는 폭 넓은 취향을 보여주는 강북 매장에서 더 좋은 인상을 받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분더샵과 동일하게 신세계 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에 매장이 있는 슈 컬렉션의 바이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던 우리를 안심시킨다. “신발에 한해 여전히 강북 고객들은 크게 유행을 타지 않고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우리가 알던 대로 강북은 소수의 고정 고객이 많고 연령대 역시 좀더 높은 반면, 강남은 특정 모델을 사러 오는 단발성 고객들이 다수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샤넬의 160만원대 스니커즈, 스튜어트 와이츠먼의 100만원대 부츠를 사겠다고 작정하고 오는 고객들이죠.” 강북과 강남 분위기를 신발에 비유하자면? “강북은 새침하게 반짝이는 스톤 장식의 마놀로 블라닉, 강남은 색색의 스파이크가 가득 박힌 크리스찬 루부탱!”

우리가 알던 것과 새로 알게 된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무렵, 10CC 바이어는 10 꼬르소 꼬모 청담점과 에비뉴엘점의 친숙한(패션계 사람들과 가장 유사한) 쇼핑 패턴에 대해 설명했다.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셀러브리티, 해외 패션계 흐름에 밝은 연예인과 스타일리스트, 패션계 종사자, 로열 패밀리의 젊은 구성원들이 청담점의 주 고객입니다. 새로운 브랜드나 런던 베이스의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도 가장 먼저 그들이 시도하죠.” 다시 말해 패션계에서 일하지 않아도 패션에 대한 평균 이상의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청담점의 메인 타깃이라는 것. 가장 진보적인 셀렉트 숍이라는 점에서 볼 때 추측 가능한 성향이다. “청담점 고객들이 브랜드를 얇고 넓게 경험하는 데 반해, 에비뉴엘점 고객의 흥미로운 점은 브랜드를 좁고 깊게 접근한다는 거죠.” 멋진 상류층 여성들(요르단의 라니아 왕비, 이탈리아 왕족인 프랑스 여배우 클로틸드 쿠로 등등)에게 사랑받는 지암바티스타 발리를 예로 들어보자. 강남에서 가장 발리답고 기본적인 디자인의 지암바티스타의 옷이 열 점 팔렸다면, 강북에서는 다양한 디자인이 골고루 열 점 팔리는 식. 시즌에 관계 없이 스타일이 꾸준한 아제딘 알라이아도 파격적인 컬러나 새로운 디자인이 나왔을 때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건 에비뉴엘점이다. “강남은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브랜드나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원하면 큰 고민 없이 브랜드를 ‘갈아탈’ 수도 있죠. 강북은 오랜 시간을 두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브랜드를 찾기에 일단 발견하면 브랜드 안에서 훨씬 개방적으로 시도하는 편이죠.”

그러던 중, 강북과 강남 쇼퍼들의 소비 성향이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발견! 이때 등장한 멀티숍 쿤의 바이어는 최신 경향이 반영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관광객들이 서울 쇼퍼의 또 다른 큰 축이 되고 있다는 사실. “강북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에 대해 분명히 말하긴 어렵습니다. 강북 소비에서 관광객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다 그들은 단발적 고객이니까요.” 강북 소비자 중 상당수가 관광객이라는 것. 최근 쿤으로 통합한 쿤 위드 어 뷰가 신세계 본점에 매장을 오픈한 건 지난해다. 본점 매장에는 이미 그때부터 후드 바이 에어를 판매했고, 쿤에서 예상한 HBA 소비 타깃은 관광객. “당시 신사점(가로수길)과 같은 시즌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본점 매장에서 더 빨리 팔려 나갔죠. 이미 해외에선 HBA가 인기를 누리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디자인만 보고 구입한 사람도 꽤 있었을 거예요. 신사점에서 HBA를 사간 고객들은 그 레이블을 잘 알고 있던 소수였죠.”

 

그 역시 강남 매장의 판매는 특정 브랜드와 상품에 편중되는 반면, 강북 매장은 큰 편차 없이 고르게 판매된다는 경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때 새로운 브랜드를 맨 먼저 소개했던 청담동 셀렉트숍들 역시 이젠 브랜드 인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며 이런 현상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강남에 비해 강북은 패션 브랜드나 최신 유행에 대해서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오히려 강북이 자유롭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그의 설명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런가 하면 플랫폼 플레이스는 똑같이 여러 브랜드를 소개하는 셀렉트숍이라도 타깃이 달라지면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도산 공원과 한남동, 홍대 인근에 단독 매장을 운영하는 플랫폼 플레이스는 다시 강북과 강남에 대한 고전적 관점과 일치한다. 도산 매장을 찾는 이들은 자동차를 끌고 도산 공원 일대 뷰티숍을 찾는 층과 패션 피플들이 대부분.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제품과 웬만해선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 위주로 구성돼 있다. 이 매장에서 그들의 요구는 바로 그런 것들이니까. “익숙한 브랜드 제품은 사지 않아요. 오히려 브랜드 이름을 처음 듣는 제품, 가격대가 높아도 신선하고 예쁜 아이템을 구입합니다. 반면 홍대 매장은 일단 브랜드가 알려지고 난 뒤 반응이 오죠.” 프리 스탠딩 매장은 확실히 지역적 특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학생들, 뮤지션, 젊은 예술인들이 많은 홍대와 트렌디한 음식점과 카페가 많은 한남동 매장은 일부러 찾기 보다 오며가며 들르는 이들도 많다는 것. 그래서 부담 없이 구경하면서 재미 삼아 쇼핑할 만한 소소한 것들이 즉각 팔려 나간다. 판매 수량으로 따지면 홍대와 한남동 매장이 월등하지만 판매 금액으로 볼 때는 도산 매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이런 구분을 두고 해묵은 지역감정을 끄집어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강북에 사는 당신은 늘 강북에서만 쇼핑하나? 신세계 본점 VIP는 쾌적한 쇼핑을 위해 늘 북적대는 신세계 강남점 대신 본점을 향하는 방배동 주민일 수 있다. 또 중국과 일본 여행객들이 점령한 건 명동 거리만이 아니다. 청담동 명품 거리에서 쇼핑백을 든 사람들도 그들이다. 전문가들은 임대료 높은 강남 매장에는 진열하기 무섭게 팔려 나갈 제품으로 꽉꽉 채우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인기 있는 제품을 사려는 사람은 거주지가 어디든 강남으로 향할 수밖에. 강남에서 밀려난 채 위험부담을 지닌 새롭고 다양한 시도는 강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렇다면 패션 안에서 강북과 강남을 구획하는 건 의미 없을까? 지역 사람들의 성향의 연관이 의미 없어진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한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취향이 존재해 서울 패션이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