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인조 모피 대유행

2016.03.17

by VOGUE

    인조 모피 대유행

    진짜 못지않게 곱디 고운 결, 달콤한 사탕처럼 알록달록한 색,
    가격은 10분의 1, 내가 바로 진짜 인조 모피다!
    패션계 아이돌로 떠오른 인조 모피 대유행.

    알록달록 캔디 같은 색감의 인조 모피가 요즘 대세! 몽골리안 털처럼 보이는 민트색 오버사이즈 코트, 티셔츠, 레몬색 미니스커트는 코치(Coach). 송치 느낌의 얇은 인조 모피 코트, 투톤 스톨, 노란색 클러치, 굽에 털이 장식된 샌들은 모두 쉬림프(Shrimps). 패턴 미니 드레스와 레이스업 샌들, 선글라스는 모두 미우미우(Miu Miu).

    스튜디오 메이크업룸 안쪽의 드레스룸에서 모델 정호연이 미우미우 70년대풍 실크 미니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그 위에 ‘쉬림프(Shrimps)’ 2015 S/S 컬렉션의 하늘색 인조 모피 코트와 머플러를 두르자 그녀가 입가에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짓고 중얼거렸다. “아직까지 모피 코트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럴만해요, 비싸잖아요!” 하지만 지금 그녀가 입은 인조 모피(송치처럼 납작하게 누운 인조 털에 윤기가 흐르는 얇은 봄 코트와 진주알이 장식된 여우털처럼 풍성한 머플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3월부터 판매될 봄 아이템은 지금 매장에 걸린 가을, 겨울 컬렉션 가격을 고려했을 때, 각각 100만원대와 30만원대로 맘만 먹으면 충분히 장만할 수 있다. 옷장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진짜 모피 코트를 종류별로 구비했다고 해도, 달콤한 사탕 빛깔 인조 모피의 매력은 그것과 분명 다르다.

    “귀엽고, 재미있고, 누구나 환영하죠.” 쉬림프의 한나 웨일랜드(Hannah Weiland)는 가을, 겨울 시즌에 처음으로 정식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 자신의 소규모 인조 모피 레이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핫 핑크 줄무늬의 선명한 오렌지색 ‘둘시’ 코트, 베이비 핑크와 버건디 배색 ‘이바나’ 스카프, 네이비와 오렌지색 블록 ‘파블로’ 클러치 등등. 만화처럼 통통 튀는 색깔의 아이템들은 론칭 직후 패셔니스타들(로라 베일리, 알렉사 청, 케이트 보스워스, 수지 라우 등)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쉬림프의 첫 고객이었던 로라 베일리에 의하면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동시대적이고, 무지개색이지만 세련됐다”는 것. 지난 9월 런던 패션 위크 때 봄 시즌용으로 선보인 얇고 가벼운 인조 송치 코트(재규어무늬도 있다)와 합성 가오리가죽 바이커 재킷은 인조 모피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제 디자인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도 좋지만, 인조 모피 쪽이 더 경쾌하고 가능성도 무한합니다.”

    ‘샬롯 시몬(Charlotte Simone)’의 ‘팝시클’ 스톨도 요즘 인조 모피 인기에 한몫 거들고 있다. 한쪽 끝만 핫 핑크나 베이비 블루로 염색한 이 스톨은 리타 오라 덕분에 2013년 말부터 주목받았는데, 인조 모피와 진짜 모피 두 가지 버전으로 판매 중이다. 물론 반응이 좋은 건 인조 모피다. “자신의 생활방식에 근거해 인조 모피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단순히 싸구려 대용품이 아닙니다. 인조 모피도 진짜 모피만큼 아름다워야 하고, 또 특정 스타일에 있어서는 더 멋져 보일 수도 있어요.” 샬롯 시몬의 디자이너 샬롯 비첨(Charlotte Beecham)은 질 좋은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러울 뿐 아니라 가격도 높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압도적 열기에도 인조 모피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라면, 아마 제대로 된 최신 인조 모피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봐온 ‘모조품’들은 저렴한 합성섬유 광택, 거칠고 뻣뻣한 촉감, 가위로 잘라낸 듯 뭉툭한 털 끝으로 인해 누가 봐도 가짜임이 명백했으니 말이다. 한동안 우리의 눈과 귀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칼 라거펠트가 진짜 모피를 염색하고 짜깁기한 뒤, 조밀한 오색 줄무늬나 사람 얼굴을 표현한 ‘푸어 퍼(Poor Fur, 1977년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일반 원단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해 패셔너블하게 표현한 모피를 말한다)’ 신공에 매혹돼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또 다른 디자이너들이 이에 대응할 꽤 그럴듯한 소재들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전문 섬유 회사는 인조 모피의 질을 진짜에 가깝게 향상시켰다.

    인조 모피 코트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2013년 가을 시즌 드리스 반 노튼과 타미 힐피거, 비카 카진스카야, 이사 아르펜(Isa Arfen)의 세라피나 사마(Serafina Sama)는 독일 슈타이프(Steiff) 사의 오리지널 테디 베어 원단을 과감하게 컬렉션에 도입했다. 슈타이프 원단이 패션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프라다 2007년 가을 컬렉션. 그 이후로 본사 샘플실에는 지금도 마크 제이콥스, 스텔라 매카트니 등은 물론, 패션 레이블의 이름이 적힌 박스들이 쌓여 있다. 그동안 우리가 봐온 컬렉션에는 알게 모르게 슈타이프의 보드라운 합성섬유나 곱슬곱슬하게 가공한 천연섬유 원단으로 만든 외투들이 꽤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제 아이들도 슈타이프의 테디 베어를 가지고 놀며 자랐어요. 제 디자인에 그 소재를 쓰는 게 아주 멋진 발상이라고 생각했죠.” 타미 힐피거는 2013년 테디 베어에 이어 2014년 가을 시즌에는 양털 느낌의 인조 모피에 몰두했다. 또 올봄 컬렉션에선 진짜 토끼털처럼 보이는 패치워크 인조 모피로 70년대 그루피 분위기를 표현했다. 스튜어트 베버 역시 코치 2015년 봄 컬렉션에 선보인 파스텔 컬러의 섀기 인조 모피 코트에 대해 ‘테디 베어와 비슷해서 선택한 고급 소재의 더플 코트’라고 설명했다.

    이쯤에서 지난 2012년 보그 패션 나잇 아웃의 메인 행사였던 인조 모피 컬렉션을 기억하는지? 그때 원단을 제공한 ‘경원’은 지춘희, 푸시버튼, 스티브앤요니 같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부터 갭, 타겟, 자라 등 세계적인 SPA 브랜드, 디올과 폴 스미스, 펜디 등 하이엔드 패션 하우스와도 거래하는 세계적인 인조 모피 제조사다. “일본 원자재 업체인 카네카(Kaneka)와 공동으로 개발, 세계 특허를 받은 ‘러스트러스 퍼(Lustrous Fur)’를 국내 독점 생산하고 있습니다. 100% 모드아크릴 소재로 촉감은 진짜 모피에 가깝고 털 빠짐은 확실히 적죠.” 경원의 박기완 영업 팀장은 최근 파스텔 톤이나 밝은 색감의 인조 모피에 대한 수요가 늘었으며, 레오퍼드, 옴브레, 카무플라주 패턴을 찾는 바이어들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푸시버튼이나 스티브앤요니, 제인송 외에도 럭키슈에뜨, 202 팩토리 등의 젊은 브랜드에서 감각적인 인조 모피 아이템을 꾸준히 전파해왔다. “모피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지만 진짜 모피를 사용하면 불가피하게 가격대가 높아져서 인조 모피를 선택하게 됐죠.” 브랜드 초창기부터 꾸준히 인조 모피를 사용해온 202 팩토리의 디자이너 이보람은 2014년 가을 컬렉션에서 패치 장식의 빨간 인조 모피 탬버린 백과 모피 샌들이 가장 많이 팔렸다고 전했다. “요즘 인조 모피는 예전과 달리 오래 입어도 크게 훼손되지 않아요. 지금 준비 중인 2015년 가을 컬렉션에는 좀더 다양한 인조 모피 소재를 사용할 예정인데, 그 위에 반짝거리는 장식을 달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디자이너 최은경이 론칭한 ‘래비티’는 실크와 인조 모피 아이템으로 특화된 브랜드다. 봄·여름은 실크, 가을·겨울은 인조 모피로 구성된 소규모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 “선명한 색감 연출을 좋아해 인조 모피를 선택하게 됐어요. 소재 디자이너에게 컨설팅을 받아 밀도 높고 착용할 때 가벼운 소재를 찾았죠. 제가 쓰는 원단은 진짜 모피의 단점, 다시 말해 관리가 어렵고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수명이 짧아지는 현상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해 제작된 거예요.”

    FIT 박물관 큐레이터 패트리샤 미어스(Patricia Mears)는 디자이너들이 인조 모피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일종의 예술운동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옷장에서 본 블랙, 브라운의 칙칙한 색깔이나 뻔한 디자인의 모피 의상은 진보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 혁명을 맞았고, 푸어 퍼의 자유로움은 지금 인조 모피의 무한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진짜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모조품의 자격지심이라기 보단 자체적인 품질 향상의 수준에 도달한 것. 인조 모피는 동물 털의 대용품이 아닌, 패브릭의 한 종류인 데다 이젠 훨씬 패셔너블할 정도다. 진짜에 얼마나 가깝느냐로 판단해 인조 모피를 선택해왔나? 지금은 룩과 디자인으로 선택할 때다. 인조 모피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이 됐으니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Rex Features
    모델
    정호연, 황기쁨
    스탭
    헤어 / 오종오 메이크업 / 이자원 네일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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