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좀 뚱뚱하면 어때?

2016.03.17

by VOGUE

    좀 뚱뚱하면 어때?

    한국에서 생활하는 살찐 여자들은 서럽다. 남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게 일상이다. 한국 여자들의 새해 소망엔 늘 체중 감량 목표가 들어 있고, 다 같이 먹고 즐기는 민족 대명절 설날과 추석 전날엔 아이러니하게도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 나는 명절 음식과 열량이 보기 좋게 정리돼 있는 칼로리표가 실시간 검색어 1, 2위를 다툰다. 날씬한 여자들이 잘 먹으면 보기 좋고, 뚱뚱한 여자들이 잘 먹으면 탐욕스럽단다. 이름 석 자보다 ‘뚱보’, 혹은 ‘돼지’라는 별명이 오히려 더욱 친숙한, 살찐 여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서러움의 연속이다.

    지난해 11월 7일,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의 새로운 광고가 공개됐다. 모델 밀라 달베시오의 ‘스펙’은 미국 사이즈로 10. 그녀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다. 얼마 전 미국 <보그> 홈페이지엔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대거 출연한 속옷 화보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화보의 주제는 ‘The Best Lingerie Comes in All Sizes’. 살집 있는 그녀들이 착용한 속옷은 보나마나 애 둘 난 엄마들이 입을 법한 고무줄 팬티에 촌스러운 레이스 브래지어일 거라는 속단은 금물! 속옷 브랜드의 사이즈 다양화를 알리는 취지로 진행된 화보답게 섹시하기로 소문난 아장 프로보카퇴르와 레인 브라이언트가 그녀들의 중요 부위를 감쌌다.

    플러스 사이즈 패션 컬처 잡지 <66100>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김지양의 키와 몸무게는 165cm에 70kg, 88 사이즈를 입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의 눈빛과 행동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데뷔는 미국에서 했어요. 자신감 없고 주눅 들어 있던 제가 확 바뀌었죠. 그들은 뚱뚱한 몸을 비난하지 않아요. 대신 ‘원피스 완전 예뻐!’ ‘립스틱 어디 거야?’라며 칭찬거리부터 찾죠.”

    <66100>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만인의 외모나 몸매를 신랄하게 평가하며 상처를 주는 이들은 생판 모르는 남보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나 친한 친구의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살을 맞대고 지내는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하는 이들의 고통은 음식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식이장애,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이번 취재를 통해 만난 아장 프로보카퇴르 청담 부티크 김인경 매니저는 남보다 통통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한 번은 옷을 보러 백화점에 갔는데 매장 직원이 절 보자마자 ‘사이즈 없을텐데’라며 말을 흐리더라고요. 아직 옷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런 소릴 들으니 기분이 팍 상하더군요.”

    김지양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옷 가게에서의 문전박대가 특히 심해요. 입어봐도 되냐고 묻기도 전에 ‘언니한테 안 맞는다’며 쏘아붙이죠.”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비현실적인 신체 조건이 몸매 관리가 일상인 모델과 배우를 통해 ‘현실’이 되어버린 요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왕성한 활동은 ‘마를수록 아름답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건강을 위해 불필요한 군살을 덜어내고 가벼워질 필요는 있지만 단순히 예뻐지기 위해 날씬해질 필요는 없어요. 과거 르네상스 시대 미술 작품을 보더라도 풍만한 여인들이 사랑받았고, 그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현재 그림으로 남아 있죠. 이렇듯 사이즈는 절대 미의 기준이 될 수 없어요.” 자신을 ‘플러스 플러스 사이즈’라고 표현하는 랑콤 홍보팀 남경희 차장의 소신 발언에 케이홀 스튜디오 브랜드 매니저 예수경도 맞장구쳤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늘어날수록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줄일 수 있어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할 뿐더러 경쟁적 다이어트를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는 물론 신체 사이즈에 따른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 타라 린을 기용한 H&M의 선택은 탁월했다!

    톱모델 라라 스톤은 최근 <시스템> 매거진을 통해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여자라면 누구나 나이 들면 팔뚝살이 출렁이고 처진 가슴을 고민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죠.” 사람마다 피부색이 다르듯 누구나 같은 체형일 순 없다. 획일화된 ‘펙’이 아름다움의 절대 기준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살찐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마른 기린보다 살찐 돼지가 훨씬 불행할 거라고 단정 짓지 말고 동정의 눈길을 거두시길. 키, 몸무게, 허리 사이즈는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지나지 않으니까.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주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스탭
    헤어 / 이일중 메이크업 / 이자원 브래지어 / 아장 프로보카퇴르
    사진
    COURTESY OF CALVIN KLEIN UNDERWEAR,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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