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겨울을 담은 캐시미어 니트

2016.03.17

by VOGUE

    겨울을 담은 캐시미어 니트

    우리에겐 겨울 소재로 익숙한 캐시미어.
    캐시미어 니트는 포근함과 클래식한 매력 외에도 우리가 이 계절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보트네크의 버건디 니트 톱과 브라운 터틀넥 니트 톱은 파비아나 필리피(Fabiana Filippi), 아이보리색 니트 스웨터는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블루 니트 톱은 바하 이스트(Beha East by Boon The Shop), 아이보리 케이블 니트 톱은 랄프 로렌 블랙 라벨(Ralph Lauren Black Label).

    패션 ‘골든벨’ 문제 하나. 인도 서북부 카슈미르(Kashmir)에 서식하는 염소의 보드라운 털로 만든 가늘고 가벼운 모직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것은 바로 그 카슈미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요즘 생산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몽골이나 티베트에서 공급된다. 게다가 촉감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난 게 이 소재의 장점. 물론 생산량이 넉넉지 않아 무척 비싸다. 정답은? 캐시미어!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본능적으로 손이 간 것이 바로 옷장 선반에 차곡차곡 정리된 캐시미어 니트였다. 에밤에바, 바하 이스트부터 유니클로까지 다양한 캐시미어 아이템들은 두툼한 울 코트, 패딩, 모피로 치장한 <보그> 패션 기자들의 옷차림에 빠지지 않는다. 모피만큼 호사스럽진 않지만 밍크나 트위드 만큼 따듯한 캐시미어는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에게 포근한 담요 이상의 역할을 해준다. 물론 지금까지는 단조로운 색깔이나 뻔한 디자인 일색이었지만, 요즘은 클래식과 트렌드를 넘나들며 멋과 실용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중.

    하이패션의 울타리 안에서 캐시미어, 하면 로로 피아나, 에르메스 같은 유명 라벨부터 떠올린다. 캐시미어는 생산지와 제조 방법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그 가운데 이탈리아산, 스코틀랜드산(모두 염소가 서식하지 않는 곳)이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산은 형태를 잡기 좋지만 다소 뻣뻣하고, 이탈리아산은 부드럽고 가볍다. “몽골이나 티베트 고원지대의 건조한 지역은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40도로 매우 추운 지역입니다.” 로로 피아나는 추울수록 양질의 캐시미어를 얻을 수 있다고 전한다. “염소는 추울수록 두껍고 보송보송한 솜털이 많이 자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시미어는 5~7월에 주로 채취된다. 니트 브랜드 ‘원초이’의 디자이너 최원은 티베트산 캐시미어를 최고로 꼽는다. “까다로운 소재인 데다 부위별로 원사 감촉이 다릅니다. 니트에 쓰이는 소재는 목과 가슴 부위 솜털이죠. 그래서 테스트 기간이 충분해야 해요.” 그녀는 가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옷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오죽하면 마피아가 공급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예요. 캐시미어 확보가 쉽지 않아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캐시미어는 염소의 털갈이 기간에 손으로 빗질해 모은 털만 쓰기에 채취량이 극히 적다. 한 마리 염소에서 채취할 수 있는 양은 고작 150~280g. 그래서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다른 동물성 섬유에 비해 캐시미어가 매우 친환경적인 소재라고 말한다. “1978년 데뷔 당시 고급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캐시미어야말로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번 구입한 캐시미어 아이템은 쉽게 버리지 않죠. 뭔가 버리는 행위는 결국 지구를 병들게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캐시미어만 특별하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제가 만든 캐시미어 아이템이 특별히 더 낫다고 말하긴 곤란해요. 캐시미어 자체가 아주 탁월한 소재니까요. 단지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이 좋은 소재를 이탈리아 식으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니트 디자이너 마시오 알바(Massio Alba) 역시 동의한다. 알바의 캐시미어 니트는 다양한 컬러가 특징이다. “염색 마지막 과정에서 나오는 물은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멀티숍 슈퍼노말에서 전개하는 캐시미어 라벨 ‘에밤에바(Evam Eva)’의 니트 컬렉션 역시 식물성 염료로 완성된 내추럴 컬러가 일품이다.

    그런가 하면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재 중 하나도 캐시미어다. LA 니트 라벨 ‘더 엘더 스테이츠맨(The Elder Statesman)’의 그렉 채잇은 말리부 해변의 서퍼들을 위해 캐시미어 담요는 물론 비니, 스웨터, 쇼츠 등을 만들고 있다. “여자들이 고급 캐시미어를 캐주얼하게 입는 게 쿨해 보입니다.” 2014 CFDA/VOGUE 패션펀드 수혜자이기도 한 라이언 로쉬(Ryan Roche)는 교외에 마련한 목가적인 집에서 네팔에서 공수한 캐시미어 원단으로 편안한 카디건과 케이프 등을 만든다. “네팔에서 전통 방식으로 캐시미어 원단을 제작합니다.” 라이언 로쉬의 보드라운 모란, 체리빛 니트들은 여성스럽고 부티가 흐른다(이런 아이템은 저녁 모임이 많은 연말연시에 더없이 적절하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캐시미어 아이템에는 그들만의 편안하고 동시대적인 감각이 추가돼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들과 매치해도 손색없다. “다이아몬드처럼 희소성이 있어 더 매력적입니다.” 디자이너 최원은 기본 아이템보다 드레스 혹은 비대칭 실루엣 카디건처럼 이브닝에도 어울릴 니트에 공들이고 있다. “니트 마니아들은 베이식 스타일보다 좀더 디자인이 가미된 아이템을 원해요.” 캐시미어의 인기는 날씨 영향도 있지만 라이프스타일과도 관계가 있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갈수록 힘들이지 않는 멋을 추구하고 있어요. 삶이 윤택해질수록 자기 투자를 많이 하는데, 그들은 라벨이 도드라지는 옷보다 고품질을 선호합니다. 그게 바로 캐시미어죠.”

    물론 값비싼 캐시미어라고 보풀이 덜 생기는 건 아니다. 로로 피아나의 캐시미어 니트도 마찬가지다. 보풀은 섬유끼리의 마찰로 인해 서로 엉켜서 생기는데, 소재가 좋을수록 더 잘 일어난다는 사실(스웨터용 빗이나 보풀방지 스톤으로 얼마든 제거할 수 있다). “캐시미어 니트는 관리만 잘 하면 처음 형태 그대로 오래 입을 수 있어요. 울 샴푸로 미지근한 물에서 손으로 살포시 눌러 세탁하세요. 절대 비틀어 짜지 말고 타월이나 깨끗한 종이를 대고 눌러주거나 두드려 물기를 제거한 뒤 형태를 잘 잡아 그늘에서 말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향나무 볼과 함께 진공 팩에 보관하면 됩니다.” 이렇듯 태생부터 관리까지 특별대우 받는 소재로 캐시미어만한 게 또 있을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은영
      포토그래퍼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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