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 대국민 칩

편의점이, 마트가 들썩인다. 모두가 과자 한 봉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고작 중량 120g, 1,500원짜리 허니버터칩 한 봉지가 몰고 온 거센 과자 열풍.
“저기요…, 이거 어디서 파나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필요 없다. 그랑 크뤼 와인도 소용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자 한 봉지에 애가 탄다. 두 달 전쯤 힙한 트렌드나 기이한 뉴스가 재빠르게 올라오는 SNS에 웬 과자 얘기가 등장했다. 프랑스산 쿠키도, 일본산 케이크도 아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란 놈. 포테이토칩임에도 단맛이 새롭다고 했다. 그리고 이 멘션은 조금씩 RT되기 시작해 퍼져나가더니 일주일 새 거의 모든 계정의 타임라인을 뒤덮었다. 단맛 끝에 짠맛이 온다 했고, 그 짠맛 다음엔 다시 달콤함이 찾아온다 했다. 소위 ‘단짠’의 황금 콤비다. 맥주와는 환상의 궁합이란 말도 더해졌다. 그리고 이 SNS발 입소문에 힘입어 과자는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과자가 웬만한 편의점과 마트의 품귀상품이 되었다. 동네를 다섯 바퀴 돌았다는 제보가 나왔고, 아무리 슈퍼마켓을 뒤져도 없다며 가공의 환상 속 과자가 아니냐는 음모설도 제기됐다. 실제로 9월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세 달 만에 100억원어치나 팔렸다. 하루 평균 8만 봉지씩 12월 현재 1,000만 봉지가 나간 것이다. 부동의 과자 강자 농심의 새우깡을 누른 건 물론이고, 3년 전 하얀 국물 라면의 붐을 몰고 온 팔도 꼬꼬면의 기세도 압도했다. 허니버터칩의 갑작스러운 활약은 거의 제과업계 역대 최고 히트상품에 버금가는 난리였다.

사방이 맛집 풍경인 요즘이지만 TV도, 광고도, 맛집 힙스터들도 모르는 구르메 정보가 있다. 이 정보들은 대부분 1,000~2,000원 사이의 상품들 얘기며, 주로 편의점 활용도가 높은 학원가나 1인용 가구가 많이 사는 동네에서 성한다. 혹은 한강 둔치나 국립공원의 매점 같은 특수한 상황의 가게들이 정보의 발상지가 되기도 한다. 누구 하나 먹었다고 자랑하는 인증샷을 SNS에 올리지는 않지만 입소문이 모이고 모여 힘을 받으면 그 어떤 맛집 메뉴보다 힙한 트렌드가 된다.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 전국을 뒤흔들기 전 편의점의 히트상품은 CU의 콘소메맛 팝콘이었다. TV 광고는 물론 프로모션 이벤트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의점의 이 PB상품은 야금야금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2013년 과자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새우깡 판매량을 1.5배나 넘어서는 양이었다. 그리고 허니버터칩이 그 바통을 거세게 이어받기 전 크라운 제과의 캬라멜콘 메이플이나 세븐일레븐의 PB상품 체다치즈맛 팝콘과 같은 화제작이 있었다. 허니버터칩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가시화되긴 했지만 동네 편의점의 트렌드가 낳은 히트상품은 꾸준히 있어온 셈이다. 특히나 근래 3~4년 편의점들이 PB 상품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이런 ‘암암리 히트상품’ 시장은 계속 확장됐다. 과자 외에도 목우촌에서 출시한 핫바 프라임 매운 꼬치, CU의 PB상품인 자이언트 떡볶이, 그리고 한강 둔치 매점에서 베스트셀러라는 롯데햄의 에센뽀득 등은 시골 장터의 인기 메뉴처럼 도심 속 편의점 먹거리 시장의 소리 소문 없는 강자다. 게다가 이들은 TV, 광고, 힙스터들도 알려주지 않는 먹거리이기에 발견과 공유의 쾌감이 배가 된다. 허니버터칩과 에센뽀득, 그리고 CU의 콘소메맛 팝콘은 경리단길 추로스와 김밥, 포틀랜드발 커피에 버금가는, 또 다른 장르의 힙스터 푸드인 것이다.

허니버터칩을 되새김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달 전 심드렁하게 몇 개 주워 먹다 방구석에 팽개친 과자였지만 이제는 귀해서 구할 수 없는 제품이 되었다. 허니버터칩은 사실 샘플이 있는 놈이다. 일본의 제과 브랜드 가루비(Calbee)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은 가루비가 2년 전에 내놓은 행복버터포테이토칩의 한국 시장 버전처럼 보인다. 해태 쪽은 꿀과 버터를 사용한 점은 같아도 허니버터칩은 가루비 제품과 엄격히 다른, 독자적인 과자라 설명했지만 ‘단짠’의 궁합을 맛으로 내는 두 제품의 유사성을 부정할 순 없다. 그리고 허니버터칩은 맛의 무게에 비해 식감이 너무 가벼운 느낌도 준다. 칩의 형태를 한 과자니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꿀이 가미된 과자치곤 덩어리감이 부족하다. 어쩐지 종잇장을 주워 먹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맛이야 어찌 됐든 허니버터칩은 올해 스낵의 왕이 되었다. 품귀현상에 인터넷 쇼핑몰엔 한 봉에 5,000원이 넘는 허니버터칩이 등장했고, 외국의 교포 시장을 노린 것인지 아마존엔 다섯 봉지 묶음 170달러짜리 상품마저 올라왔다. 허니버터칩에 기생하려는 제품도 한둘이 아니다. 하이트 맥주는 허니버터칩을 끼워 팔아 이미 재미를 보았고, 모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는 허니버터칩에 자동차를 끼워주는 건지, 자동차에 허니버터칩을 끼워주는 건지 모를 애매한 프로모션 가격 상품도 등장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허니버터칩을 손에 쥔 자가 갑이고 승자다.

허니버터칩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기 시작할 무렵 먹거리 커뮤니티 내의 또 하나의 이슈는 창렬 푸드와 혜자 푸드였다. 창렬 푸드는 가수 김창렬이 론칭한 편의점 즉석식품 브랜드 ‘김창렬의 포장마차’ 상품들이 형편없는 만듦새라 비난조로 생겨난 유행어고, 혜자 푸드는 배우 김혜자를 모델로 한 ‘김혜자 진수성찬 도시락’ 상품의 구성이 매우 알차고 충실해 칭찬하며 붙은 말이다. 그러니까 창렬 푸드와 혜자 푸드는 편의점 먹거리 품질의 극과 극 평가 척도다. 그리고 이 말장난과 같은 놀이가 바로 시장 매출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혜자 푸드는 창렬 푸드와 비교되기 시작하며 판매량이 40% 가깝게 늘었다. 허니버터칩의 기세엔 못 미치지만, 비슷하게 SNS발 입소문으로, 공유와 놀이의 소재가 되면서 판매가 성장한 경우다. 과자는 애들 먹거리다. 나이 먹어 어른이 된 뒤 부러 과자를 사 먹겠다고 슈퍼로 향하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줄 알았던 먹거리는 놀이로 다시 찾아왔다. 우리는 ‘마더 혜레사’의 혜자 푸드를 평가하면서, 빈약한 구성의 창렬 푸드를 조롱하면서, 그리고 품귀의 허니버터칩을 공유하면서 맛객으로서 또 하나의 재미를 찾는다. SNS 시대 먹거리의 풍경이다. 누구나 다 맛있다는 진수성찬 말고, 스타 셰프가 인정했다는 일품 말고 우리끼리 시시덕거리며 낄낄댈 수 있는 각종 음식의 놀이랄까. 그러니까 지금 허니버터칩은 어디 가면 살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