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맛집 유감

매일같이 맛집이 생긴다. 어떤 집은 간판을 다는 동시에 맛집으로 소문이 난다.
먹거리가 전 국민의 오락이 되어버린 요즘, 근데 정말 다들 맛은 제대고 보고 있는 걸까?

맛집에 둘러싸여 산다. 2년 전 이사한 곳이 경리단길인데 원래도 많던 레스토랑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제는 거의 매주 새로운 가게가 생긴다. 프렌치, 이탤리언, 김밥집, 빵집 등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경리단길 초입엔 추로스를 사 먹기 위해 늘어선 줄이 평균 10m 이상이고, 크래프트 맥줏집이 모인 경리단길 근처 시장엔 한잔 걸치고 나와 길바닥에 늘어앉은 사람들이 또 한 무리다. 주말이면 이 동네는 붐비는 차와 사람들 탓에 10m도 1km 가듯 기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동네 주민인 내가 맛을 위해 이 동네에서 찾는 집은 거의 없다. 이사 당시엔 이런저런 가게를 열심히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사람들이 맛있다는 집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방송에 소개돼 유명해진 집들은 일단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괜한 동네 주민의 뒤틀린 심사 같아도 실제 맛집이라고 찾아간 곳 중 대부분은 실망만 안겼기 때문이다. 꽤 많은 집의 경우 틀린 음식을 내놓고 있었고, 메뉴와 어울리지 않는 서비스나 접대를 하는 곳도 많았으며, 맛을 내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식에만 공을 들이는 집도 있었다. 물론 정말 맛있고 서비스도 좋은 집들이야 있을 거다. 근데 근래의 이 맛집 광풍은 분명 자격 미달의 집들도 맛집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올봄부터 디저트 트렌드 중 하나는 우유였다. 일본 오사카의 빵집 몽쉐르의 도지마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커피 프랜차이즈 폴 바셋이 상하목장 우유로 만든 소프트크림을 내놓으면서 질 좋은 우유를 푸짐하게 쓴 디저트가 연달아 나왔다. 보통 국내에서 판매되던 롤케이크는 빵과 크림을 겹겹이 말아 둘의 비율이 반반씩 되게 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도지마롤 이후 빵의 속을 우유 크림으로 가득 채우고 딱 한 번만 빵을 만 롤케이크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크림의 양이 마치 맛의 기준인 듯 떠벌려지며, 그저 그런, 때로는 정말 기름기만 가득한 케이크도 맛난 구르메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도지마롤이 인기였던 건 북해도 지역 목장의 우유를 마치 커피콩 블렌딩하듯 맛나게 섞어 만든 크림 덕택이다. 마트에서 파는 ‘1+1 우유’로 만든 크림을 가득 채운 롤케이크는 크림의 볼륨과 상관없이 그저 느끼할 뿐이다. 또 하나 올해 구르메 시장에 새로 등장한 건 애프터눈 티다. 싱가포르의 차 브랜드 TWG의 매장이 국내에 들어왔고,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중심으로 애프터눈 티를 메인으로 하는 가게가 생겨났다. 스콘과 샌드위치, 그리고 차 등의 간식을 3단 트레이로 놓고 즐기는 영국 전통의 메뉴이니 멋 내기 좋아하는 구르메 시장이 반기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격식을 차린 애프터눈 티 가게 중엔 스콘과 함께 클로티드 크림이 아닌 생크림을 내놓는 집도 있었고, 4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정말 딱 간식 정도의 볼륨으로 상을 차린 곳도 있었다. 맛과 옳은 레시피 대신 멋과 유행만 챙긴 맛집들이다.

근래 방송가엔 아무리 시청률이 안 나와 쩔쩔매는 프로그램이라도 먹거리를 등장시키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오간다. 먹방, 그리고 구르메 코너는 요 몇 년 거의 부동의 인기 콘텐츠다. 실제로 <식신로드>, <테이스티 로드>, <한식대첩> 등의 프로그램은 시즌을 이어가며 장기 방영되고 있고,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집들은 맛집이라 불리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본래 맛집이란 건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소문이 나고, 그게 방송으로 소개되는 게 순서일 텐데, 지금 우리 사정은 정반대에 가깝다. 맛으로 맛집이 되는 게 아니라 이슈로, 유행과 트렌드로 맛집이 된다. 얼마 전 요즘 이태원에서 새로 뜬다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실내장식을, 그리고 커틀러리 등을 아낌없이 찍는다. 어쩌면 지금 맛집은 얼마나 SNS에 올릴 거리가 많은 집인가로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맛을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 없이 그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릴 멋진 사진을 찍어 좋은 가게, 맛집이라 소문낸다. 경리단길 초입의 추로스는 분명 나쁘지 않다. 한 개 2,000원이란 가격을 생각하면 괜찮은 간식거리다. 하지만 그곳의 추로스는 맛보다 긴 줄로 얘기된다. 녹사평역 인근의 인기 타코집 역시 마찬가지다. 그곳의 타코가 얼마나 괴상한 조합의 재료를 쓰는지는 간과되고 외국인과 어울려 흥겨운 파티를 할 수 있는 힙한 플레이스라고만 떠벌려진다. 팝콘을 덕지덕지 토핑한 아이스크림, 죽을 만큼 매운 떡볶이에 풍미 따위 쉽게 무시한 치즈를 얹은 음식 등 요즘 유독 인기를 끄는 메뉴들이 선정적인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본래 입소문에 의한 검증과 식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만들어져야 할 맛집이 지금 서울에선 선정적 뉴스마냥 ‘RT’와 ‘좋아요’로 퍼져나간다.

근래 즐겨 챙겨 본 프로그램 중 하나는 <한식대첩 2>였다. 전국 팔도의 요리 고수들을 모아놓고 요리 대결을 벌이는 내용인데 매번 귀한 식재료를 들고 나와 드라마틱한 요리 쇼를 벌이는 게 ‘꿀잼’이었다. 하지만 반면 아쉬움도 컸다. 애초 프로그램에 팔도 요리사들의 실력, 그리고 팔도 음식의 우위를 가릴 기준과 능력이 없으니 그저 식재료의 스펙터클에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털 짐승이 도마 위에 올려지고, 하나에 10만원을 호가한다는 송이버섯이 사람들의 눈을 현혹한다. 거의 ‘식재료 대첩’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들고 나온 캐치 카피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음식들’이다. 근데 한식은 본래 식재료 본연의 맛보단 합이 우선인 요리가 아닌가. 심지어 한 심사위원은 재료 본래의 맛을 이야기하면서 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맛집은 많은데 맛을 적절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치즈의 풍미야 어찌 됐든 손님을 끌 수만 있다면 불닭이든 떡볶이든 위에 올리고, 비주얼이 상품 가치가 된다면 치아에 들러붙든 말든 아이스크림 위에 벌꿀을 토핑한다. 그리고 별다른 기준을 찾지 못한 한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좇아 일식 비슷한 것이 된다. 진짜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얼까. 맛집은 점점 더 늘어나는데 진짜 먹고 싶은 게 없는 건 무슨 상황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방이 먹방 시대인 지금 대한민국에 정말 결여되어 있는 건 바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