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에 대항하는 백신, 폴더폰

스마트폰에 중독된 테크 좀비가 지구를 정복했다. 첨단 기술에 아랑곳하지 않는 히어로들이 발견한 백신은? 바로 前 스마트폰 시대의 유물이요, 단순하고 튼튼하며 급사하지 않는 폴더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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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싶다면, 트렌드세터가 되고 싶다면 스마트폰을 버리고 폴더폰을 사용할 것! 비즈 장식 재킷, 자카드 팬츠, 레이스업 슈즈는 모두 발렌티노(Valentino). 스커트는 구찌(Gucci). 폴더폰은 삼성 갤럭시 폴더 3G.

“딸깍!” 드라마 <송곳>의 대쪽 같은 이수인 대리와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공포심을 잊게 하는 마성의 최준호 부제. 그들은 그 잘생긴 한쪽 뺨에 납작하고 날씬한 스마트폰이 아닌 작고 두툼한 폴더폰을 가져다 댔다. 자비에 돌란이 감독한 신곡 뮤직비디오 ‘헬로’에서 눈을 의심케 한 것 역시 아델의 통통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폴더폰. “방금 도착했어, 그런데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것 같아. 여보세요?… 딸깍!”

폴더폰의 귀환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2014 US오픈 테니스 대회 때 선글라스 너머로 플립폰을 확인하는 안나 윈투어의 모습이 포착된 직후 가십지들은 구식 휴대폰이 새로운 유행이 될 거라고 떠들어댔으니까. 비슷한 시기에 어쩐 일인지 유행의 최전선인 리한나 역시 레스토랑을 나서며 폴더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제니퍼 로렌스, 케이트 업튼, 마일리 사이러스 등 아이클라우드 계정을 해킹당한 셀러브리티들의 누드 사진이 유출되자 카메라가 없는 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따끈따끈한 신종 아이폰 6에 홀딱 반해 있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폴더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폴더폰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잘 작동하고, 실용적이며, 젖혀서 열기만 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인터넷에 접속할 필요도 없죠.”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무스토. “가볍고 작아서 주머니에 쏙 들어갑니다. 쉽게 부서지지 않아요, 태풍과 회오리바람에도 살아남을 겁니다.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으니 쉬는 날에는 업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죠.” CBS 뉴스 통신원 칩 리드. “폴더폰을 쓰는 유명인들은 앱을 쓸 수 없으니 해커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사진이 온라인으로 새어 나갈 염려도 없습니다.” 영국 C넷 에디터 브리짓 캐리.

아이폰이든 갤럭시든 버전을 거듭할수록 참신한 기능을 발견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한 손에 쥐기 힘들 만큼 커진 스마트폰은 오히려 스마트하지 못하다. 전자 기기가 매정하도록 똑똑해진 덕에 밤낮으로 일에 시달리게 되자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단순하던 과거에 대한 향수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실제로 이 모든 것을 되돌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중. 규슈대학의 부교수 안토니오 포르마시옹은 일본에서 꽤 많은 사람이 폴더폰을 쓴다고 전한다. “저 역시 전화기 두 대를 사용하고 있어요. 소프트뱅크의 폴더폰은 한 달 무제한 통화 요금이 2,000엔, 갤럭시 S5는 한 달에 980엔으로 데이터를 맘껏 사용할 수 있죠. 예전에 아이폰을 쓸 때는 한 달 평균 통화 요금이 무려 9,000엔!” 배터리 수명을 잡아먹는 잡다한 앱, 위치 서비스 기능이 없는 심플한 폴더폰의 최대 장점은 느닷없이 꺼져서 중요한 전화를 놓칠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에는 이런 추세를 감지하고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구형 폴더폰을 꺼낸 ‘얼리어답터’들의 흥미진진한 체험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유혹적인 부분은 스마트폰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스스로 쿨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사실 우리가 동경하는 쿨한 여자들은 애플 워치를 ‘좀 이상하다’고 표현하거나(알렉사 청), ‘구글로 살아가지 않는 게 가장 시크하다’(피비 파일로)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제니퍼 로렌스는 SNS를 하지 않으며 셰일린 우들리는 아예 휴대폰이 없다(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만약 갖게 된다면 폴더폰이 낫겠죠. 테크놀로지의 범람에서 멀어질수록 자유로울 테니까요.”

<뉴욕> 매거진의 저널리스트 앨리슨 데이비스는 프랑스 패션지에서 묘사한 여배우 비르지니 르도엔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이 끊임없이 울리는데도 절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 데이비스 역시 폴더폰을 체험하는 동안 스마트폰 유저 친구들의 메신저 홍수에 동참하지 않았다. 최신 IT 기술과 거리가 먼, 냉담하고 쿨한 파리지엔이 되려면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구글 맵이 없어 길을 헤매거나 약속에 늦는 일 따위는 감수해야 한다. 대신 식사 중에 상대방을 정수리로 응수하며 스크롤을 내리는 무례한 인간이나, 스크린 안으로 들어갈 만큼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폰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단언컨대 만약 ‘테크 좀비’에 대한 영화가 나온다면 중반쯤에서 밝혀질 백신은 아마 폴더폰일 것이다.

최근 삼성과 엘지는 각각 기본 스마트폰 기능을 갖춘 폴더폰을 선보였다. 최소한의 스마트폰 기능만 남겨둔 모델이다. 터치스크린이 불편하고 복잡한 기능이 부담스러운 중·장년층, 휴대폰 게임은 피해야 하지만 카톡은 포기할 수 없는 학생들이 타깃. 테크 좀비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1차 백신으로 접종할 만하지만, 진짜 멋쟁이가 되려면 온 집안을 뒤져서 오직 문자와 전화만 가능한 옛 휴대폰을 꺼내는 걸 추천한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건 유행의 선두에 서는 게 아닐지 모른다. 2인치에 불과한 흑백 화면의 휴대폰은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돌려줄 테니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사진부터 찍고 보는 대신,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세상을 폴더폰이 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