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안토니 바카렐로와의 만남

2016.03.17

by VOGUE

    안토니 바카렐로와의 만남

    신인 디자이너가 모델, 기자, 셀러브리티, 고객을 모두 만족시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자신만의 관능적이고 미니멀한 패션 길을 거쳐 5년 만에 정상을 차지한 안토니 바카렐로를 파리에서 만났다.

    검정 티셔츠와 데님진, 스니커즈까지, 늘 자신만의 시그니처 룩을 고집하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2015 봄 컬렉션 오프닝 룩을 입은 모델 수주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요즘 패션계는 스타일리스트가 디자이너가 되고, 바이어가 디자이너가 되고, 모델이 디자이너가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서른두 살의 안토니 바카렐로는 그야말로 정석이라 여겨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디자이너가 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아빠와 벨기에 사람인 엄마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 성장했다(그로 인해 ‘섹시하면서도 구조적인 디자인이 탄생했다’는 것이 바카렐로의 주장이다). 그런 뒤 라 캄브르 패션학교를 우등 졸업한 2006년, 포르노 스타 라 치치올리나에게 영감받은 컬렉션으로 ‘이에르 패션 페스티벌’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그때 라거펠트의 눈에 띄어 어린 나이에 펜디 모피 디자이너로 2년간 일하게 됐다.

    그리고 2009년 1월, 바카렐로의 패션계 공식 데뷔 무대가 열렸다. 파리 꾸뛰르 기간 중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여성복 컬렉션을 공개한 것. 가죽과 오간자로 구성된 다섯 벌의 미니스커트 시리즈는 시큰둥한 패션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충분했다. 데뷔 이후 그가 일관적으로 선보이는 관능적인 동시에 미니멀하고 동시대적 분위기를 띤 컬렉션은 애냐 루빅, 칼리 클로스, 루 드와이옹 등 톱모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2012년 메트로폴리탄 갈라 파티를 위해 애냐가 그의 슬릿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순간! 바카렐로의 패션쇼는 모든 모델들의 꿈의 무대 중 하나가 됐다). 2011년 프랑스 CFDA라 불리는 ‘안담(ANDAM) 어워즈’를 수상한데 이어, 2014년 가을에는 크리스토퍼 케인, J.W. 앤더슨에 이어 ‘베르수스 베르사체’ 협업의 세 번째 주인공으로 간택됐다.

    이렇듯 패션계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에서 자신만의 광채를 번득이고 있는 그를 2015 S/S 파리 패션 위크 마지막 날, 생토노레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9월 초, 뉴욕에서 ‘베르수스 베르사체’ 컬렉션을 발표한 뒤 한 달 후 파리에서 시그니처 컬렉션을 공개했으니 그에겐 전에 없이 바쁜 패션위크였다). 패션쇼가 끝난 후에도 쉴 새 없이 이어진 바이어 미팅 일정으로 인해 20분쯤 지각한 그는 패션쇼 피날레에 등장할 때처럼 수줍은 표정으로 몹시 미안해하며 <보그> 팀에게 인사를 건넸다(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직접 골라온 두 벌의 옷이 모델 수주에게 잘 맞는지 꼼꼼히 챙겼다).

    남성적인 핀스트라이프 소재가 관능적인 미니 드레스로 변신했다. 바카렐로가 가장 좋아하는 비대칭 실루엣!

    VOGUE KOREA(이하 VK) 촬영을 위해 준비한 두 벌이 이번 봄 컬렉션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룩이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ANTHONY VACCARELLO(이하 AV) 모델 수주가 나와 함께 촬영할 때 입은 룩이 이번 쇼의 오프닝 룩이었어요. 편안하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모두 스며 있죠. 가죽 재킷부터 비대칭 미니스커트까지! 음, 스웨트셔츠는 평소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죽 재킷과는 아주 잘 어울릴 듯했죠. 오프닝 룩이 늘 최고는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가장 맘에 들어요. 참, 핀스트라이프 미니 드레스 역시 맘에 들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관능적인 비대칭 실루엣에 남성복 소재를 더했거든요.

    VK 핀스트라이프뿐 아니라 여러 그래픽 패턴도 눈에 띄었어요. 당신의 컬렉션에 패턴이 등장한 것은 처음 아닌가요?

    AV 끊임없이 계속되는 파리의 시위, 그리고 리차드 프린스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기본적으로는 ‘안토니 바카렐로’라는 브랜드명을 스티커로 만들어 옷 위에 붙이는 것에서 시작했죠. 오프닝 룩의 스웨트셔츠 위에 붙인 것처럼 아주 작은 글씨에서 출발해 점점 더 큰 글씨를 붙여 넣다 보니 결국 알파벳이 아닌 그래픽처럼 보이더군요.

    VK 늘 그렇듯 이번 컬렉션 역시 흑백이 주를 이뤘어요. 딱 한 벌 포함시킨 빨강 스커트엔 남다른 의미가 있나요?

    AV 거창한 의미를 담은 건 아니에요. 지난가을 광고 촬영을 이네즈&비누드 커플과 함께했는데, 애냐 루빅의 흑백 사진 위에 ‘Anthony Vaccarello AW 14-15’라고 새빨갛고 단정한 글씨체로 적어 넣은 것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죠. 갤러리 포스터처럼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캠페인 이미지가 무척 맘에 들어 이번 컬렉션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본 겁니다.

    VK 사실 애냐 루빅은 ‘바카렐로 걸’ 이미지가 아주 강해요.

    AV 그녀는 제 상상 속 ‘바카렐로 걸’과 거의 일치해요. 우리는 4년 전, 친구의 디너 파티에서 처음 만났죠. 우연히 함께 대화하다 보니, 음악, 미술, 문화 등의 관심사가 같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주 잘 통한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었죠. 그날 이후 단순히 디자이너와 모델 관계를 너머 절친으로 지내고 있어요. 이번 광고 촬영을 위해 이네즈&비누드를 소개해준 것도 바로 그녀예요!

    VK 그렇다면 애냐 루빅이 당신의 뮤즈인가요?

    AV 애냐를 비롯한 주위 친구들 모두가 저의 뮤즈예요. 저는 늘 실존 인물을 상상하며 디자인합니다. 스크린 속의 특별한 셀러브리티가 아닌, 제 주변의 ‘리얼 걸’들로부터 영감을 얻죠. 물론 셀러브리티들이 제 드레스를 입을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가 아니면 완벽하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추천해줄 수 없다는 게 저의 생각이에요. 이번 봄 컬렉션은 뉴욕, 파리를 비롯해 활기찬 도시의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시티 걸’들을 위한 옷입니다.

    VK 바로 그 ‘시티 걸’들은 어떤 일상을 누릴까요?

    AV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것저것 부지런히 일하는 여성!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고, 곧장 샤워한 뒤 일을 시작하는 여성이죠. 게으르고 매사에 불평불만을 지닌 여성은 절대 아닙니다!

    VK 당신은 ‘여자는 여름 휴가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얘기한 적 있어요.

    AV 첫 컬렉션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아이디어예요. 여름 휴가 중에는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죠. 가을 컬렉션과 내년 봄 컬렉션이 다른 듯 비슷한 이유 역시 기본 아이디어의 연속 때문입니다. 바로 휴가를 즐기는 여성들을 위한 컬렉션. 좀더 스포티브하고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더하긴 했지만요.

    VK 당신의 컬렉션이 멋지긴 하지만 평소에 입기엔 좀 어렵다는 평가를 고려한 건가요?

    AV 고백하자면, 한두 개의 주요 리뷰를 읽긴 하지만 크게 영향받진 않아요. 언론의 평가나 판매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디자인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물론 몇 시즌 전까지 슬릿 드레스 일색이었던 것은 저도 인정! 하지만 이제는 여자들이 일상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재킷과 셔츠, 팬츠 등도 만들고 있어요. 저의 여성상은 그대로지만 이 옷들은 스타일링에 따라 얼마든 다르게 연출 가능합니다.

    VK 그런 면에서 이번 컬렉션의 스웨트셔츠를 본 순간, 스타일링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랐어요.

    AV 다행이군요! 로고로 뒤덮은 스웨트셔츠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아 만족스러워요.

    VK 스웨트셔츠가 포함됐지만, 당신의 컬렉션은 늘 관능적이에요. 관능미와 천박한 노출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AV 사실 그 경계는 무척 희미해요. 제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옷차림보다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봅니다. 가령 2012년 메트로폴리탄 갈라 파티에서 애냐가 입었던 슬릿 드레스의 경우, 만들 때만 해도 그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요. 애냐가 워낙 멋지게 소화했기에 모두의 관심을 받은 게 아닐까요?

    VK 2009년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발표한 뒤 본격적으로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게 바로 그 애냐 드레스 이후부터죠.

    AV 맞아요. 하지만 그날 이전이든 이후든 저의 디자인팀은 늘 같은 마음과 태도로 일하고 있어요. 데뷔 컬렉션부터 변함없는 팀원들이죠. 아주 소규모지만, 우리는 서로를 무척 잘 알고 또 매 시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진행할 뿐이에요. 독립 디자이너에게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 제가 다른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원치 않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빅 하우스에서 요구하는 것 대신 제가 원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VK 그렇다면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뭐죠?

    AV 나에게 도나텔라는 록스타예요! 제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베르사체가 상징하는 강렬한 여성상, 헬무트 뉴튼과 함께 만든 강한 이미지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도나텔라와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우상과 함께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이지 거절할 수가 없었죠!

    VK 직접 만난 도나텔라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AV 에너지로 충만한 디자이너였어요. 모든 면에서 젊은 저보다 그녀가 더 에너지 넘쳤죠. 하하! 게다가 준비 과정에서 많은 자유를 줬기에 더 즐기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VK 보디컨셔스 드레스들로 이뤄진 베르수스 컬렉션은 전형적인 베르사체인 동시에 바카렐로적이었어요.

    AV 준비 과정에서 베르사체와 베르수스의 모든 아카이브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며 사진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룩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너무 황홀했죠. 저는 이 멋진 컬렉션을 좀더 동시대적으로 해석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모두가 70년대에 빠져 있지만, 오히려 90년대 스타일로 표현하길 원했죠.

    VK 지금까지 진행된 베르수스 협업 컬렉션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당신도 들었나요?

    AV 오!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몰랐어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하하하!

    VK 이번에는 좀더 과거로 돌아가 펜디에서의 경험에 대해 들려줄래요?

    AV 졸업하자마자 펜디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물론 대규모 디자인팀이 이끄는 작업 과정과 지금 우리 팀의 작업 과정은 아주 많이 달라요. 그곳에서 라거펠트로부터 상업적인 부분과 브랜드를 이끄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VK 그렇다면 당신의 디자인팀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AV 고작 네 명뿐이에요. 매 시즌 하나의 아이디어를 정한 뒤, 마네킹에 옷감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거쳐 실루엣을 찾습니다. 스케치하기보다 직접 다양하게 시도하는 편이에요.

    VK 당신의 날렵한 재단과 커팅이 돋보이는 남성복을 상상해도 되나요?

    AV 여자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옷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여성복을 만드는 게 더 유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남성복엔 별 관심이 없어요. 별로 흥미롭지 않기에 멋진 컬렉션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나저나 제가 직접 만든 여성복을 못 입을 이유도 없지 않나요? 단지 저에게 어울리지 않아서 입지 않는 것일 뿐. 하하!

    VK 그렇다면 평소엔 어떤 옷을 입나요?

    AV 아페쎄, 아크네를 가장 자주 입어요. 또 헬무트 랭 셔츠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모은 셀 수 없이 많은 티셔츠 등등. 다들 무척 아끼는 옷들이라 엄마가 세탁하기 전에 늘 물어보셨죠.

    VK 랭의 이름이 언급됐는데, 혹시 헬무트 랭이 당신의 롤모델인가요?

    AV 헬무트 랭과 아제딘 알라이아, 그리고 지아니 베르사체! 저에게 끝없이 영감을 주는 거장들입니다.

    VK 패션 위크가 끝났는데, 어떤 계획이 있나요?

    AV 아직 바이어 미팅이 남아 있지만 연말에는 뉴욕과 LA로 떠날 거예요.

    VK 다른 디자이너들은 하나의 컬렉션이 끝나자마자 다음 컬렉션을 떠올리곤 하는데, 당신은 다가올 가을 컬렉션을 위해 뭘 생각해뒀나요?

    AV 없어요! 이제 막 봄 컬렉션을 끝냈는데 다음 컬렉션까지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디자이너들이 다음 컬렉션 구상에 들어갔다고요? 다 거짓말, 그럴 리 없어요. 하하!

    VK 그렇다면 조금 먼 미래의 계획은요?

    AV 이미 이룬 것에 만족해요. 매일 아침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없이 행복합니다. 특별히 목표를 세운 뒤 이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그저 매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전진하며 발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내 자신을 표현할 방법이 패션 뿐. 패션을 통해 제 얘기를 들려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포토그래퍼
      Francois Coquerel
      모델
      수주(Soo Joo)
      사진
      Kim Weston Arnold, James Cochrane ,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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