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패션계에 미친 영향

아이폰을 바꿀 것인가, 옷을 새로 살 것인가, 전용 클러치를 장만할 것인가.
더 커진 아이폰의 날갯짓은 패션계에도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재킷과 스웨터는 폴로 랄프 로렌, 청바지는 랙앤본(at 비이커), 원석 반지와 팔찌는 사만타 윌스 by 옵티칼 W, 왼손 팔찌는 엠주, 목걸이는 샤넬, 스마트폰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LG AKA, LG G3, 아이폰 6, 아이폰 6 플러스, 소니 엑스페리아 Z3.

아이폰6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출시 직전부터 연말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애플스토어 앞에 텐트 치고 대기한 끝에 쟁취한 이들의 성공담부터 지원금 경쟁으로 출시 하루 만에 곤두박질친 판매가, 게다가 싸게 판매한 아이폰을 회수한다는 간담 서늘한 소식까지. 현재는 제값 주고도 없어서 못 파는 수급부족 상태다. 더불어 블랙프라이데이 맞이 초특가 할인까지 들어간 아이폰6의 해외직구를 시도하기 위해 깊은 밤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이들도 허다하다(해외 통신사 약정이 걸려 있는 관계로 무용지물). 그러나 역경을 헤치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고야 만, 5세대에서 무려 07인치(6모델 4.7인치)와 1.5인치(6+모델 5.5인치)나 커진 6세대 아이폰은 장밋빛 신세계와 함께 밴드게이트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패션계까지!

 

지난 9월 미국에 첫 출시되며 터진 밴드게이트는 두께가 채 7mm도 안 되는 아이폰 몸체가 휘는 사고였다. 첫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바지 주머니에 아이폰을 넣고 앉거나 몸을 굽힌 후 아이폰이 휜 것을 발견했다는 것. IT 매거진 <와이어드>는 정확히 얼마나 꽉 조이는 청바지를 입었을 때 구부러지기 시작하는지 테스트했고, 테크기기 관련 블로거들은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어 보는 영상과 실물 크기로 만든 아이폰 모형으로 자신의 옷 주머니에 맞는지 시험하는 영상들을 앞다퉈 유튜브에 올렸다. 새 아이폰을 장만한 이들 중에선 “바지 주머니가 좁아터져 새 아이폰이 구부러졌다”라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러자 청바지를 주 아이템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들은 서둘러 스마트폰 사이즈에 맞춰 주머니 크기를 늘리겠다고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유니클로는 꽤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최신 기술과 관련해 제품 개발팀과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 옷이 사용자 관점에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토의했습니다. 청바지 주머니도 그중 하나였죠.” 아메리칸 이글은 자신만만하다. “남성복 바지 주머니 크기는 이미 스마트폰 사이즈에 맞게 크게 늘린 상태입니다.” 아울러 여성복도 디자인 조정에 들어갈 거라고 덧붙였다. 그 밖에 리바이스, 리, 제이크루 등 대중적인 캐주얼웨어와 데님 전문 브랜드들 사이에선 슈퍼 사이즈 스마트폰이 기름칠한 듯 매끄럽게 들락거리도록 주머니 크기를 넉넉하게 키우는 중.

 

물론 소니 엑스페리아 Z3(5.2인치), 엘지 G3(5.5인치), 삼성 갤럭시노트4 엣지(5.7인치)가 이미 아이폰6 이전에 출시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응이 다소 늦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뉴욕의 패션 저널리스트 로렌 셔먼은 변화가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들이 새 아이폰 크기에 맞춰 제품 디자인을 수정하고 있어요. 핸드백이나 재킷 같은 손보기 쉬운 것들이 분명한 증거죠.” 생각해보자. 2014 F/W 시즌에는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 컬렉션의 재킷과 스커트에 60년대풍의 오버사이즈 사각 주머니를 달았고, 미우미우 울 재킷과 패딩 조끼, 투명 폴리우레탄 레인코트에도 커다란 플랩 주머니가 달려 신형 아이폰을 꽂아 보란 듯 자랑할 수 있다. 지방시 와이드 팬츠의 늘어진 포켓은 스마트폰 서너 개쯤은 너끈히 들어갈 듯 보인다. 커진 주머니는 2015 S/S 시즌 주요 경향 중 하나인 유틸리티 룩으로 이어진다. 마크 제이콥스 군복에 올록볼록 카보숑이 장식된 커다란 호주머니들을 보라!

 

그렇다면 패셔너블한 데님 브랜드들도 완벽한 위치와 크기의 포켓, 심미적 스티치 장식을 기꺼이 스마트폰에 양보할까? 셔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지는 두고볼 일이죠. 데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에게 문의한 결과, 대부분 스마트폰 크기 때문에 그들의 스타일이나 취향을 바꿀 일은 없을 거라고 대답하더군요.” 랙앤본의 데님 디렉터 카트리나 클레인 역시 같은 생각. “랙앤본 스키니진의 포켓은 새 아이폰을 넣기엔 턱없이 작아요. 아마 가방이나 작은 클러치에 넣지 않겠어요?” 마더 진 설립자 렐라틸렘 베커는 신형 아이폰이 마더 진 뒷주머니에 들어간다고 전하며, 앞주머니에는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을 거라고 덧붙인다. “만약 그것 때문에 아이폰이 망가진다면 안 넣으면 되는 거니까요.” 일부에서는 옷을 망칠까 우려해 신형 아이폰 교체를 거부하는 극단적 힙스터들도 있다. “우리 고객 중 대다수가 청바지를 꾸준히 입어 빈티지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뉴욕 하이엔드 데님 전문점 ‘Jean Shop’ 설립자 에릭 골드스테인은 청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계속 넣어 두면 독특한 사각 형태로 색이 바래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크기가 달라진 스마트폰으로 인해 주머니 색이 바래는 형태까지 달라진다고 불만스러워하죠.”

 

편리함인가, 패션인가. 문제는 결국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다. 물론 주머니에 쑥 집어넣는 게 가장 편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한 손에 가방을 들 거라면 스마트폰은 안전하게 가방에 넣는 것이 가장 좋은 타협안. 발렉스트라는 첫 리조트 컬렉션에 아이폰6 사이즈에 맞는 손잡이 달린 아이폰 케이스 가죽 클러치를 출시했다. 또 레베카 밍코프, 랑방에 이어니만 마커스는 크리스털과 24K 골드, 자개가 반짝이는 다양한 케이스를 준비했다. 콧대 높은 패션계는 다른 영역의 변화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거대해진 스마트폰을 위한 전용 클러치를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유행시킬지도 모른다. 이도 저도 싫다면? 미국 <GQ> 에디터 데니스 탕의 말처럼 신기술에 맞춰 새로운 에티켓을 익혀야 할 것이다. 그러니 식사 자리에선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대신, 무음 기능을 선택해 구석에 밀어 넣고 손대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