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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아름다운 이야기

2016.03.17

by VOGUE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아름다운 이야기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설립한 네이키드 하트 재단이 10주년을 맞았다.
    자신이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나탈리아의 아름다운 이야기.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장애아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만든 모스크바의 한 놀이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웨터와 셔츠는 프라다(Prada), 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장애아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만든 모스크바의 한 놀이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웨터와 셔츠는 프라다(Prada), 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슈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Natalia Vodianova, 33세)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지녔다. 하지만 그녀가 모델 세계에 뛰어드는 데 도움이 된 여동생 옥사나가 없었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결코 못 봤을 얼굴이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옥사나를 위해 보디아노바는 동생과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일에 삶을 바치고 있다.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의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홀어머니 아래 자란 보디아노바 자매는 당시 흔치 않은 성장기를 거쳤다. 뇌성마비와 자폐 진단을 받은 옥사나는 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다섯 살 때까지 걸을 수 없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장애를 지닌 어린이 30%는 가족의 손에 의해 국영 고아원에 맡겨진단다. 하지만 보디아노바의 엄마는 옥사나를 그곳에 보내길 거부했다. 물론 그것은 아주 힘든 삶의 연속이었다. “옥사나를 돌봐야 했기에 엄마는 제대로 직업을 가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힘들고 보수가 적은 일만 했죠”라고 보디아노바는 회상한다. “먹을 게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있었어요.”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해 보디아노바는 매서운 추위에도 노점에서 과일을 팔았다. 열일곱 살 무렵 그녀는 좀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모델 일에 도전했다. 그러자마자 지구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모델 중 한 명이 됐다. 심지어 ‘슈퍼노바’라는 별명이 따라붙었고, 파리에서 지내며 정기적으로 대형 광고판과 패션지 표지를 장식했다. 구찌, 이브 생 로랑, 캘빈 클라인, 베르사체 등의 광고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러시아에서 장애아와 그 부모를 위한 지원이 거의 없다는 건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많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삶은 불평등의 연속이다. 건물에 들어갈 수 없는 데다, 특수교육에 가장 가까운 학과라고 해봐야 종종 ‘결함학’으로 불리는 쓸모없는 연구분야밖에 없었다. 미국 국무부의 국제 장애인 인권 특별 보좌관 주디스 E. 휴먼은 러시아 문화에 대해 “여전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디아노바는 그것을 바꾸는 것을 평생의 임무로 삼았다. 2004년 베슬란에서 일어난 학교 대학살(186명의 어린이가 살해됐다)에 깊은 충격을 받은 뒤, 슬픔에 빠진 조국을 치유하며 도울 방법을 찾던 중 ‘네이키드 하트 재단(Naked Heart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 재단이 10주년을 맞았다. 이 재단의 목표는 옥사나와 같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도록 공공 서비스, 가족의 도움, 그리고 문화적 포용을 누릴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준비는 유아기부터 시작된다. 부모들을 위한 심리적·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장애아들을 가르치도록 학교와 함께 일하며, 치료와 교육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여러 ‘패밀리 센터’에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그러자 삶을 바꾸는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 도움을 받은 지역사회는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들의 인원에 변화가 생기는 걸 목격했다. “그 부모들은 일단 생활이 가능하니까요”라고 보디아노바는 말했다. 그리하여 네이키드 하트는 러시아 전역에 장애아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원과 놀이터 100여 개를 지었고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열리는 여름 캠프에 참가했다. 한편 회의를 열고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보디아노바는 러시아 문화를 재교육하고 있다. “네이키드 하트는 사람들이 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라고 휴먼은 설명했다.

    네 아이의 엄마인 보디아노바는 평생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대의를 위해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케이트 모스 같은 사람들에게 직접 전화를 건 뒤, 자칫 간과될 뻔한 사안에 대해 패션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노력은 마음에서 우러난 것입니다”라고 디자이너이자 친구인 스텔라 맥카트니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뭔가를 만드는 건 어느 업계에서든 아주 드문 일이죠. 나탈리아는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는 또 이렇게 전한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여동생을 절대 잊지 않아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부탁과 전화 통화와 엄청난 수고도 아끼지 않을 거예요.”

    옥사나는 잘 지내고 있다. 그녀는 네이키드 하트가 고향에 세운 패밀리 센터를 정기적으로 찾는다. 그녀는 직접 자신의 머리를 땋고 버스를 타고 그곳을 오간다. “친구들도 있고 남자 친구도 생겼어요. 옥사나가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있는 걸 봤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었어요”라고 보디아노바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리는 제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한 침대에서 잤어요. 옥사나는 현실을 몰랐기 때문에 늘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줬어요. 아주아주 힘든 시기에도 옥사나는 삶의 빛이었습니다.”

    에디터
    줄리아 이오페(Julia Ioffe)
    포토그래퍼
    Pamela H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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