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스콧의 소소한 이야기

모스키노 수장으로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은 제레미 스콧.
지난 18년 동안 자신의 작업을 정리해 책을 준비하며 그간의 소소한 이야기를 <보그>에 전해왔다.



미주리의 농장에서 자란 제레미 스콧이 파리 패션계의 악동으로 떠오른 90년대 후반. 그에 대한 평가는 양분됐다. 누구는 쇼맨십으로 가득한 충격요법에 기댔을 뿐이라고 혹평했고, 누군가는 시대를 풍자할 줄 아는 영리한 디자이너라 호평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서 노숙을 하면서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완성했던 1997년 봄 데뷔 컬렉션부터 스스로 패션계 악동을 자처한 듯했다. 달러 지폐로 만든 드레스, 로고 장식 트렌치, 소매가 연결된 화이트 티셔츠 등등 재기 발랄한 디자인은 발표될 때마다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팬들은 열성적이었다. 라거펠트는 자신이 은퇴하면 샤넬을 물려받을 디자이너가 제레미뿐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고, 아디다스와 롱샴을 비롯한 대형 브랜드들은 그의 유머 감각을 기꺼이 즐겼다. 그리고 데스켄스, 샬라얀 등과 함께 스콧을 차세대 기수로 꼽은 2000년 1월 미국 <보그>는 이렇게 썼다. “그는 이제 고티에나 모스키노 같은 패션 유머리스트처럼 인정받는 길에 올라섰다.”

 

14년 후인 지금, 제레미 스콧은 <보그>의 예언대로 모스키노의 정식 후계자가 됐다. 미국식 팝 문화와 유머 감각을 적절히 섞은 그의 모스키노 컬렉션은 아시다시피 매 시즌 대히트를 기록 중. 맥도날드 로고를 사용한 스웨터, 가죽 바이커 재킷을 본뜬 핸드백, 바비 인형의 옷을 그대로 뻥튀기한 섹시한 미니 드레스 등등. 이렇듯 모스키노와 자신의 라벨 모두에서 두 번째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잠시 속도를 줄인 채 과거를 뒤돌아봤다. 20여 년간의 작업을 집대성해 아트북을 기획한 것. “디자이너로 일한 지 18년쯤 지나자 한번 뒤돌아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제 역사를 곰곰이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았죠.” 출간을 앞두고 제레미 스콧이 미국의 추수감사절 기간 동안 맨 먼저 <보그 코리아>에 책 소개를 부탁한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특히 어린 패션 팬들은 저의 옛날 작업들이 낯설 거라 생각했어요.”

연대기가 아닌 테마에 따라 나뉜 책에는 스콧의 초기작부터 최근 모스키노 작업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마돈나부터 리한나, 케이티 페리와 비요크 같은 뮤지션들의 이미지부터 미국과 이탈리아, 영국 <보그> 등에 실린 화보 이미지들이 나란히 게재됐다. 또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찍은 폴라로이드부터 스티븐 마이젤과 이네즈&비누드 등 당대 사진가들이 촬영한 이미지들이 공존한다. “저의 경력을 통틀어 공통적인 실타래를 찾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음악과 만화 캐릭터 같은 팝 문화까지 말이죠.”





캔자스시티에 살던 10대 소년이었던 스콧은 <보그>와 <인터뷰> 같은 잡지를 성경처럼 받들었다. 잡지에서 발견한 장 폴 고티에의 옷이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뉴욕의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옷의 디테일까지 물어보던 소년이었다고 그는 추억했다. 그렇다면 호기심 많은 패션 소년과 당당하게 자신의 아트북을 발간하게 된 청년 사이에 변하고 바뀐 건 뭘까? “변한 건 전혀 없어요. 저는 여전히 패션이 즐거운 소년일 뿐이에요!” 뉴욕의 패션 스쿨 FIT에 지원했을 때 독창성, 창의력, 예술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떨어졌던 그 소년은 이제 밀라노 패션 하우스의 수장이 됐다. 이런 핑크빛 현재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을까? “책을 준비하기 위해 책 속 모든 이미지를 제 거실에 쫙 깔아봤어요. 그 사진들 속에서 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땐 조금 울컥했죠.”

최근 제레미 스콧이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2NE1의 멤버 CL과의 특별한 우정 덕분이다. 이 책에도 CL과 함께한 이미지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 매거진을 위해 CL과 함께 화보를 촬영한 적이 있어요. 늘 해오던 것처럼 함께 포즈를 취한게 아니라 제가 사진가로 변신했죠.” 다음 시즌에도 CL과 특별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며 그가 슬쩍 덧붙였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뮤즈와 함께 늘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우리 둘의 관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 셈이죠.”

요즘 젊은이들은 그의 얘기대로 흰색 플리츠 옷감을 조가비처럼 두르고 나온 데본 아오키는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캣워크의 맥도날드 소녀는 아주 익숙할 것이다. ‘제레미 스콧’이라는 디자이너에 대해 빠삭하든 아직은 낯설든간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의 작업 가운데 흐르는 두 가지 큰 줄기를 누구라도 쉽게 발견할 것이다. “유머와 섹시함이에요! 패션에서 제 역할은 커뮤니케이터! 제가 말하는 언어는 팝 문화라는 세계적인 언어이니까요.” 만약 그 언어를 능숙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도 좋겠다. “제가 궁극적으로 설파하고 싶은 메시지는 ‘재미’예요. Fun, Fun, Fun, Always F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