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인스타그램 세상의 이미지들

2016.03.17

by VOGUE

    인스타그램 세상의 이미지들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비관론을 전하는 게 아니다.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현실만큼 혹은 현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스타그램 세상의 이미지들!

    특별한 날 온 가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고 사진관을 찾아 기념사진을 남기는 일은 이제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적 장면이 됐다. 부모님의 낡은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가지런히 정리된 사진을 감상하는 것 역시 다음 세대에게는 낯선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 세대에게 사진 촬영이란 특별한 기술, 특별한 사건, 특별한 피사체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늘 먹던 아메리카노 한 잔도 찰칵!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낙엽도 찰칵! 늘 똑같은 내 얼굴도 찰칵, 찰칵, 또 찰칵! 이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찍고 온라인에 공유하는 문화는 현실이 어떻게 보이느냐 만큼, 사진 속에서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보그>가 인터뷰한 패션쇼 프로듀서들은 한결같이 인스타그램의 등장으로 패션쇼 기획 때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말했다. “실시간 패션쇼의 모든 게 온라인에 공개되기에 고작 몇 초간의 동영상을 통해 봤을 때도 인상적인 장면과 무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알렉산드르 드 베탁의 설명이다. “모든 게 아주 짧고 집약적이며 효율적이어야 하죠.” 빌라 유진의 에티엔 루소도 같은 생각이다. “SNS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최근 쇼 프로듀서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 모먼트’니까요.”

    실제로 2015 S/S 런던 패션 위크를 취재한 <보그> 패션팀은 안토니오 베라르디 컬렉션이 런웨이에서 봤을 땐 소재와 디테일도 꽤 훌륭했지만, 사진으로 다시 보니 별로라고 품평했다. 반면 토마스 테이트의 경우 쇼 자체는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사진상으론 꽤 완성도 높았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디자이너들은 쇼를 앞두고 카메라를 통해 컬렉션 룩을 확인하는 추세.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을 마지막 점검할 때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꼼꼼히 봅니다.” 지난해 마카오에서 만난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이렇게 말했다. “직접 볼 때는 완벽했던 룩도 화면을 통해 보면 단점이 발견될 때가 있어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완전히 바뀐 거죠. 이게 바로 패션의 미래입니다.”

    카메라 속 세상이 의미를 지니게 된 최근 현상과 맞물린 게 ‘필터’ 기능이다. 인스타그램이 엄청난 속도로 인기를 끈 것 역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필터 덕분이다. 아시다시피 인스타그램에서는 흑백을 비롯, 각양각색의 19가지 다른 필터 중 하나를 골라 손쉽게 사진 톤을 변경할 수 있다. 또 조금만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밝기, 대비, 온도, 채도 등의 세부적 조정도 가능하다. 게다가 스마트폰 앱스토어에는 다채로운 필터를 제공하는 수십 가지 다른 사진 편집 어플들이 널려 있다(찍을 때부터 필터를 씌워 찍는 카메라 어플도 인기). 최근 새로운 버전을 선보인 사진 편집 어플 ‘VSCO’는 스트리트 사진가 토미 톤이 직접 VSCO 필터를 활용하는 모습을 담은 캠페인 영상도 공개했다. 이 필터의 도움을 받으면 특별한 기술 없이 특별하지 않은 상황을 찍어도 멋진 장면이 탄생한다. 한마디로 흔해빠진 현실이 예술로 승천하는 것. 소셜미디어 마케팅 회사 ‘스프레드패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필터를 적용하지 않은 사진이라는 의미로 ‘#nofilter’라는 해시태그를 단 이미지들조차 11%는 필터를 적용한 것이다(무려 860만 장!). 이제 ‘사진 촬영’이란 촬영 후 어떤 필터를 적용하느냐의 문제까지 아우르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현실은 인스타 사진만큼 멋질 순 없을까? 에든버러에서 활동하던 세 명의 사진가는 이 질문을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지난 5월 인스타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선글라스를 출시한 것. 태양을 피하는 대신 태양의 온기를 모으도록 설계된 선글라스는 인스타그램의 ‘Valencia’ 필터를 적용시킨 듯 보인다. “평소 사진을 찍은 뒤, 파랑과 초록색 톤을 낮추면 좀더 따뜻한 느낌으로 완성됩니다. 고객들이 좀더 만족하는 걸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디자인을 맡은 톰 웰시의 설명이다. 세 사람은 제작비 마련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방식을 택했다. 1만 파운드가 모이면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펀딩 시작 당일 목표액의 세 배 이상을 거뒀고 일주일 후엔 100만 파운드! 현실보다 인스타 사진을 더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의미다.

    스마트폰과 몇 가지 어플만 있다면 누구라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사진 예술이 어떤 장르보다 맨 먼저 예술의 상아탑을 떠나간 것 같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사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스타그램이 발굴한 재능 넘치는 신인 사진가들도 있으니까(@pketron, @lavicvic, @thiswildidea, @darrylljones 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만 명이 같은 장면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포장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중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Illustration
      Yim Seung 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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