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드수트를 탐구하는 서울 디자이너 2

저지 원피스나 스웨트셔츠의 무분별한 남발 틈에서 젊은 서울 디자이너들이 옷의 기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테일러드수트를 위해 골몰하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을 <보그>가 만났다.

디자이너 이정기는 시그니처 브랜드로 이번 서울 패션 위크에 첫 출전했다. 남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테일러드 수트의 쾌락, 탐미적 비스포크 문화를 제안하는 중.

2015 S/S 서울 패션 위크 첫날, 11시 30분에 오디너리 피플, 1시에 뮌에 이어 오후 5시 30분에 디자이너 이정기의 첫 번째 런웨이쇼가 열렸다. 그는 여섯 살짜리 스탠다드 푸들(‘뿌’)과 한 살배기 샴 고양이(‘웅’)가 초현실적으로 돌아다니는 신사동 2층짜리 단독주택을 작업실 겸 쇼룸으로 쓰고 있다(서른일곱 살의 이정기는 9년째 시그니처 브랜드를 전개 중). 2003년 에스모드 서울을 졸업하자마자 론 커스텀, 닉스 등에서 일한 그는 ‘권오수 클래식’에 들어가 정통 패턴부터 다시 배우기로 결심했다. “청소부터 시작했어요”라고 개화기 모던보이 같은 디자이너가 기억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서양 복식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였죠.” 2년 후 그는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는 의도로 ‘VIA’를 론칭했다(입는 사람의 삶, 만드는 사람의 기운을 수트 한 벌에 주입하기 위해 ‘날 비(飛), 나 아(我)’의 한자로도 의미를 부여했다). “자동차 광들은 온갖 튜닝을 경험한 뒤 순정 상태로 복귀하곤 합니다. 저 역시 수트의 본질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비아’와 세컨드 브랜드 ‘나비’ 매장 여러 곳을 한국과 중국에 열고 있는 그에게 서울 패션 위크 데뷔는 어쩌면 늦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고객 위주의 소규모 쇼를 열었습니다. 대형 무대를 위한 준비도 미흡했었죠. 하지만 이번 시즌이야말로 제가 추구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바로 60~70년대 황금시대 남자들!” 그의 데뷔는 옷과 남자와 음악은 물론 향까지 치밀하게 갖춘 무대였다. “저의 수트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는 옷인 데다, 시각, 청각, 후각 모든 것을 동원해 이성을 유혹하고 싶은 본능이 남자에겐 있으니까요.” 그는 패턴, 소재, 가공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진짜 수트라고 전한다. “이를 기본으로 영국, 이태리, 미국 등에 남자복식 문화가 있듯, 동양철학을 담아 코리안 수트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정기가 한국 정서를 수트에 담기 원하듯, 그보다 한 세대 위에서 서울 패션을 정의했던 디자이너들에겐 코리안 모던 수트를 제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홍승완은 ‘스위트 리벤지’ 때부터 곡선과 여유가 살아 있는 수트를 상징으로 밀어붙였다. ‘로리엣’ 시대에는 ‘테일러’라는 영어 낱말을 뒤집어 새 브랜드 이름으로 정할 만큼 테일러드수트에 공들였다(힐튼 호텔에서 오랫동안 수트를 만든 장인들을 삼고초려 설득 끝에 로리엣만을 위해 모셔올 정도). 김서룡은 스스로 연마한 수트 패턴으로 패션지 여기자들은 물론 수입 브랜드 홍보 담당자들까지 그에게 달려가 아름다운 수트를 맞추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들었다(그녀들은 서울 패션계에서 알아주는 멋쟁이들이다). 또 정욱준의 ‘론 커스텀’ 매장에서 황실 가봉으로 수트 한 벌을 맞춘다는 건 서울의 패션 명예처럼 여겨진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의 수트 실력을 유럽에서 더 알아주는 상황(그는 어느 후배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전속 수트 메이커들을 빼앗겨 맘고생한 적도 있다). 김재현 역시 ‘제인 에 알리스’부터 ‘쟈뎅 드 슈에뜨’까지 똑 떨어지는 테일러드 팬츠 수트가 그녀의 걸작으로 기록된다(지금은 럭키 슈에뜨에 가려 그녀의 수트 솜씨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아쉬울 뿐).



누빔 기법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테일러드 작업에 적용하고 있는 ‘제이백 꾸뛰르’. 디자이너 백지훈은 코리아니즘을 활용해 좀더 창의적인 비스포크 문화를 만들고 있다.

김재현과 김서룡 수트의 꾸뛰르에 필적할 만큼의 감도와 완성도는 어떤 홍보나 마케팅 없이 그저 고객의 입을 통해 소문났다. 어느 해외 브랜드의 아시아 지역 VMD로 3년 넘게 일한 서른두 살의 청년은 한남동에 오붓한 쇼룸과 신사동에 전용 공장을 운영하며 꾸뛰르급 수트를 만들고 있다. ‘제이백’이라는 디자이너 백지훈의 브랜드 이름 아래엔 ‘꾸뛰르’라는 패션용어가 따라붙는다. “패션학도 시절과 회사 다닐 땐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디자인을 입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외국에 머물 때 우연히 쇼윈도에 비친 제 옷차림이 아주 맘에 들지 않았죠. 그래서 모던&클래식 수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는 “네가 나에게 만들어준 옷이 나는 제일 좋았어!”라는 친구들의 의견에 힘입어 브랜드를 냈다. 그런 뒤 ‘제이백 꾸뛰르’ 수트에 자신의 본능을 그대로 반영했다. “미술을 공부하며 몸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기에, 고객의 체형에 대한 순간 파악 능력이 빠른 편입니다.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가리는 면에서 좀더 특별합니다.”

현재 그는 코리안 꾸뛰르를 수트에 실험 중이다. 동양의 누빔을 테일러드수트에 적용하는 것. “솜의 두께, 누빔의 폭, 옷감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질감과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스웨트 소재 효과도 구현할 수 있다며 누빔 아이템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나저나 한국적인 것을 서양복식에 적용할 때 발생되는 개량한복 느낌을 피하려면? “친구들 가운데 패션 에디터들이 많아요. 그녀들은 해외 패션 위크를 정기적으로 취재하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죠. 그들로부터 당대 경향에 대해 많은 조언을 얻고 있어요.” 그리하여 누빔이 가미된 올가을 컬렉션은 물론, 그 옷들을 촬영한 룩북(톱모델 박세라와 박형섭이 출연한 세련된 비주얼)은 서울 패션 전문가들에게 인상을 남기는데 일단 성공!



‘권오수 클래식’이라는 전설의 비스포크 가문의 유산은 창립자의 아들인 권준우가 잇고 있다. 그는 ‘바톤’이라는 두 번째 브랜드를 통해 테일러드수트의 좀더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서울 테일러드수트 탐험의 마지막 일정은 한국 하이패션 1번지 청담동이다. ‘국민학교’ 학예회 때부터 아빠에게 옷을 맞춰 입은, 그야말로 수트 사이에서 태어나 수트 틈에서 성장해 수트 가문을 이끌고 있는 서른 일곱 살의 권준우다. 에스모드 서울에서 ‘비아’ 이정기와 함께 동문수학했던 그는 파리의 스튜디오 베르소에서 스틸리즘을 공부하다 귀국해 가업을 이은 보기 드문 경우다(한국에서 1세대 여류 디자이너들이 딸에게 세습을 실패한 것과 달리, 권오수 가문은 진지하게 명맥을 잇고 있다). 60년대에 ‘선샤인 예복의 집’을 열어 한국 최초 연미복 맞춤과 대여를 병행한 뒤 80년대에 강남으로 이주한 바로 그 전설의 권오수 클래식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 안에서는 대기업이 신사복으로 밀어붙이고 또 밖에선 수입산 수트가 밀려들자 한국 맞춤복 문화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들이 합류한 200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고유의 기술력과 디자인, 영업 능력 위에 젊고 활기찬 턱시도 문화를 다시 펼친 것.

 

그때쯤 압구정역과 을지병원 사거리 사이의 권오수 클래식 매장 앞에 새로운 기운이 감지됐다. 매끈한 턱시도 차림의 남자 마네킹 10여 개가 멀티숍 꼴레트 2층처럼 와르르 도열한 인상적인 풍경 때문이다. 이 역시 권준우의 발상. 때마침 한국 남자 연예인들에게 시상식용 수트가 절실했고, 이런저런 매체에서 다루는 파티 문화가 한국에 형성되자 미리 타이밍을 맞춘 듯 권오수 클래식에 두 번째 황금기가 도래했다. “인터넷 홍보와 정찰제도 한몫 거들었습니다”라고 ‘수트빨’이 유난히 잘 받는 늠름한 체형의 권준우가 설명한다. 그러나 두 번째 전성기도 잠시. 브랜드 확장에 한계를 느낀 그는 권오수 가문의 자산을 좀더 유연하게 쓰기 위해 두 번째 브랜드를 냈다.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바톤’입니다. 육상에서 릴레이는 정말 멋진 경기 아닌가요? 먼저 뛴 사람이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전달해 모두가 끝까지 완주하는!” 

 

이렇듯 누군가에게 ‘테일러링’은 아빠에서 아들로 아름답게 세습되는 유산이자, 또 다른 누구에겐 밑바닥부터 구르고 굴러 터득한 비장의 기술이다. 그런가 하면 스웨트셔츠든 오버사이즈 코트든 유행 상품을 만들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 사실 욕하면서도 보는 게 막장 드라마라고 치면, 현재 패션 피플들이 욕하면서도 입는 게 ‘그놈의’ 스웨트셔츠다. 너무 남발되는 통에 지긋지긋하고 누구나 다 입지만, 유행인 데다 편하기로 치면 또 이만한 게 없으니까. 게다가 남녀노소 디자이너들이 죄다 스웨트 소재로 티셔츠를 만들고 심지어 원피스와 드레스까지 디자인하는 중. 하지만 줄자로 몸을 정확히 재고, 자를 어떤 방향으로 쓰느냐에 따라 다르게 완성되는 옷본을 금쪽같이 다루며, 그것을 정밀하게 퍼즐 맞추듯 옷감 위에 배열해 가위로 잘라 각각을 잇고 바느질해 수트를 만드는 28세부터 37세의 신중한 젊은이들이 지금 여기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서울에 펼쳐진 모던 비스포크 문화. 누빔 처리된 숄 칼라 재킷과 팬츠는 제이백 꾸뛰르. 아웃 포켓이 달린 재킷과 팬츠는 모노 갤러리, 셔츠는 델디오. 날렵한 가죽 라펠의 재킷과 팬츠, 셔츠는 바톤. 회색 핀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트 수트와 화이트 셔츠는 오디너리 피플. 옷감 표기를 그대로 활용한 블랙 수트는 뮌. 블랙 턱시도 셔츠는 델디오, 회색 스트라이프 팬츠는 오디너리 피플, 구두는 모스키노. 매끈하게 재단된 블랙 재킷과 조끼, 팬츠, 그리고 화이트 셔츠는 이정기 서울.

그러나 어떤 현상이든 거품이 있다. 모노 갤러리의 홍순규는 자신은 물론 또래 집단에 대해 다시 한번 염려했다. “피티 우모 같은 해외 스트리트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되면서 현실감이 결여된 채 판타지만 갖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몇몇 젊은 테일러들은 “남훈을 만나봐야 해요”라고 얘기했다. “수트에 관해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으니까요.” ‘알란스’의 남훈은 현재를 과도기로 정의했다. “수트는 진지한 클래식 문화입니다. 그러나 희한하게 ‘헛바람’이 든 젊은이들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수트 제작은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 몇 장으로 배우는 게 아니에요. 사진에 찍히는 인물 역시 수트를 아주 오래 입어봤거나 오래 만든 사람들이죠.”

그는 60년대 소공동 시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 테일러드 경계 안에서는 장인들, 그러니까 테크니션뿐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다 보니 아빠가 맞춰 입던 획일화된 수트가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것. “수트 스타일을 잡아주는 뭔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훈은 2005년쯤 숙고 끝에 소공동 장인들을 섭외해 ‘란스미어’를 시작하며 ‘수트 스타일’에 대한 개념을 한국에 도입했다. “맞춤 양복이 그저 아저씨들의 옷이 아닌, 그 안에서도 충분히 재미와 유머가 있고 심지어 섹시함까지 갖춘,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을 즐길 수 있게 기획했습니다.”

 

한국형 테일러드수트의 결정적 순간 이후 곳곳에서 나폴리, 피렌체, 셰빌로 출신인 척 하는 젊은 수트 매장이 우후죽순 생겼다. 공급 과잉 속엔 독소가 끼어들게 마련. “물리적으로 그들은 남자로서 삶의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포장에만 급급한 경우가 많아졌죠. 일종의 클래식 도그마입니다. 게다가 20대들이 맞춤 수트를 입는, 다시 말해 클래식이 유행이 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겼어요.” 그건 해외 패션 대도시에도 없는 위험한 현상이라며 엄격한 말투로 설명을 이었다. “한국 정서에서 발생된 일시적 현상이라면, 언젠가 이 거품이 빠지겠죠. 그래서 저는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테일러드에 맛들인 채 그것을 탐구하고 혁신하는 2837세대에게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수트에 대한 자부심과 자만심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테일러드수트를 잘 만들길 원하고 또 그것을 멋지게 빼입고 싶은 그들에게 어른으로서 무작정 훈계하려는 게 아니에요. 제가 그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었기에 조언하는 겁니다. 테일러드수트 앞에 겸손해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