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DF, 키다리 아저씨 펀드 이야기

무한경쟁 패션계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을 후원하는 SFDF가 10주년을 맞았다.
스타 디자이너들의 통과의례가 된 키다리 아저씨 펀드 이야기.

제1회 수상자인 박고은, 두리, 리차드 채를 비롯한 지난 10년간 SFDF를 수상한 행운의 디자이너들. 정욱준, 스티브앤요니, 최유돈, 이정선, 최철용 등이 SFDF와 함께 성장했다.

신인 디자이너가 일생일대 첫 컬렉션을 준비한다. 디자인과 생산에 골치가 아프지만, 겨우 마음에 들만한 컬렉션을 완성시켰다. 다음 절차는 세상에 자신의 컬렉션을 알릴 타이밍. 조심스럽게 기자들에게 연락하고, 바이어를 프레젠테이션에 초대한다. 그런 뒤 몇몇 매장에 옷이 걸리고 패션 매거진들은 새로운 신인의 등장을 다룬다. 자, 여기까지는 신인 디자이너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성장 과정이다. 하지만 패션계는 늘 반전과 변수의 연속. 신인들의 인큐베이터로 불리는 뉴욕 패션 위크 일주일 동안 런웨이쇼와 프레젠테이션이 무려 350개가 열린다. 다른 패션 수도 역시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상상초월의 자본력을 갖춘 럭셔리 브랜드와 이미 깊게 뿌리 내린 거장 디자이너들의 견고한 성곽을 뚫기란 더 어려워지는 현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패션 콘테스트다. 프로엔자 스쿨러, 로다테, 알렉산더 왕, 조셉 알투자라, 크리스토퍼 케인, 어덤, 토마스 테이트, 안토니 바카렐로, 후드 바이 에어, 마르코 데 빈센조 등등. 지난 10년간 출현했던 슈퍼 신인들은 모두 젊은 디자이너들을 위한 펀드 혹은 어워드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다. CFDA/VOGUE 패션 펀드(프로엔자 스쿨러, 로다테, 알렉산더 왕, 조셉 알투자라), BFC/VOGUE 패션 펀드(크리스토퍼 케인, 어덤), LVMH 프라이즈(토마스 테이트, 후드 바이 에어), 앤덤 어워즈(안토니 바카렐로), 후 이즈 온 넥스트(마르코 데 빈센조) 등이 그것. 여기에 에코 도마니, H&M 디자인 어워드, 인터내셔널 울마크 프라이즈 등까지 더하면? 디자이너 후원 콘테스트를 거치지 않고선 스타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10회를 맞이하는 2015년 SFDF를 수상한 ‘KYE’의 계한희와 ‘99%IS-’의 박종우.

‘패션 코리아’의 미래를 위해 기획된 SFDF(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 역시 같은 취지다. 단 하나의 조건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신인 디자이너여야 한다는 점. 2005년 1회 수상자였던 뉴욕의 두리 정과 리차드 채, 밀라노의 박고은을 시작으로 SFDF는 전 세계에서 분투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을 지원해왔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스타 디자이너들의 통과의례가 됐다. 정욱준(Juun. J), 스티브앤요니(Steve J&Yoni P), 임상아(Sanga), 이정선(J. JS Lee), 임상균(Siki Im), 최유돈(Udon Choi), 최철용(CY Choi) 등이 SFDF 출신. 10년 동안 17팀에게 수여된 상금만 해도 250만 달러. 아울러 2012년 시작된 ‘SFDF 장학금’을 통해 뉴욕, 런던, 서울의 패션학도 28명들이 장학금을 선물받았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세계로 비상하길 원하는 미래의 패션 스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것.

“SFDF 상금으로 런던에서 데뷔 컬렉션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2~3회 수상자였던 스티브앤요니의 요니가 SFDF 수혜자가 됐던 순간을 추억했다. 현재까지 런던에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이정선 역시 이렇게 덧붙였다. “상금 덕분에 규모가 커지면서 좀더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발표할 수 있었죠. 덕분에 저 같은 독립 디자이너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는 것도 사실이구요.” SFDF는 단지 금전적 후원만 약속하진 않았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을 다시 국내외에 제대로 알리는 좋은 기회도 겸했다. 심사위원 자격으로 오랜 시간 가까이서 지켜본 10 꼬르소 꼬모의 까를라 소짜니는 이렇게 전했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관심받을 수 있게 돕는 건 물론, 그들 역시 전문적인 지원과 체계화된 전략 덕분에 폭 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대망의 열 번째 수혜자들은 SFDF에 대해 어떤 감흥을 갖고 있을까? KYE의 계한희는 디자이너로서 목표 중 하나가 SFDF의 수상이었다고 전한다. “선배들로부터 꼭 지원해보라고 권유를 받았어요.” 뉴욕에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그녀가 열 걸음 도약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그저 상금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 작업이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점이 기쁩니다.” 그녀와 함께 수상한 ‘나인티나인퍼센트이즈(99%IS-)’의 박종우 역시 신인의 어려움을 모두 겪었다. 레이 카와쿠보의 시선을 끌었던 스터드 장식 아이템들은 모두 직접 완성한 것. “나중엔 손목에 염증이 올 정도였어요.” 그래서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그에게 SFDF의 지원은 미래를 향한 ‘그린 라이트’다. “패션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공식 인사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