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스피어 속으로

미우치아 프라다가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는 대규모 전시를 기획했다.
100년 전 시작된 프라다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곳에 집약시킨 ‘프라다스피어’ 속으로!



“저는 패션계 일원이자 패션 디자이너로서 패션이라는 직업을 변호하려고 애써왔습니다. 물론 저도 패션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패션의 중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위에서 저를 경시하는 분위기도 느꼈죠. 물론 지금은 그런 시각은 없어졌지만요.” 5년 전 경희궁 마당에 불시착한 우주선을 닮은 ‘트랜스포머’ 전시를 위해 서울에 온 미우치아 프라다는 <보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로서의 패션을 옹호하기 위한 적당한 대변인으로 그녀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그녀야말로 지난 26년 간 예술의 한 장르로서 패션의 진화를 이끈 주인공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프라다를 ‘악마’만 입는 옷으로 여기거나, 프라다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역삼각형 로고의 나일론 백이라면, 지금 현대 패션에 대한 OS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또 프라다의 사피아노 백을 들고 다니면서도 그녀가 현대미술에 심취한 사실에 무지하다면? 게다가 5년 전 한국 방문 이유가 쿨하스와 함께 완성한 360도 회전하는 전시장을 공개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패션 지식 버전 업이 절실하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지난 11월 18일 홍콩 섬의 어느 부두 위에 마련됐다. 프라다에 대한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는 완벽한 체험 학습 현장이 기획된 것(5월 런던의 해롯 백화점에서 처음 공개된 ‘프라다스피어(Pradasphere)’ 전시가 홍콩에 상륙했다).

온전히 ‘프라다스피어’만을 위해 여객선 페리 터미널 위에 지은 네모난 공간은 1913년 처음 시작된 프라다의 시작(‘Origin’)까지 역추적했다. 체스판이 떠오르는 카펫의 공간에 진입하면 미우치아 프라다의 할아버지이자 프라다 창립자인 마리오 프라다와 그의 형제인 마르티노 프라다의 작업이 맨 먼저 눈에 띈다. 귀족을 위해 만든 거북딱지 머리빗부터 실크 파우치, 여행용 케이스 등등. 단순히 역사 유물만 연대기별로 전시하는 것은 전혀 미우치아답지 않다. 이번 프로젝트를 큐레이팅한 아트 디렉터 마이클 락(Michael Rock, 프라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뉴욕 에이전시 2X4의 대표)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프라다를 위한 자연사 박물관이었습니다.” 그는 곳곳에 숨은 아이디어를 보며 덧붙였다. “그녀의 작업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뭔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각적으로는 전혀 일관적이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뭔가를 찾아 보여주고자 했어요.”





그 아이디어가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 바로 전시장 중앙을 차지한 여섯 개의 빈티지 전시용 유리 케이스(밀라노 첫 번째 매장의 그것을 재현했다). 각각의 케이스에는 미우치아의 작업 중 자주 드러나는 6가지 주제, 다시 말해 ‘Excessivity(과도한 디자인)’ ‘Animality(모피와 가죽, 야생에서 영감받은)’ ‘Continentalism(유럽의 전통을 담은)’ ‘Modernism(미니멀리즘)’ ‘Femasculity(중성성)’ ‘Figuration(프린트)’에 따라 옷들이 보관돼 있었다. 가령 모더니즘에는 1990년 봄 컬렉션의 화이트 시프트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과 2011년 가을 컬렉션의 비즈 장식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나란히 서 있다. 또 피겨레이션의 마네킹은 2010년 가을 컬렉션 깅엄체크 풀 스커트 위에 2012년 가을 컬렉션의 기모노풍 모피 재킷을 걸치는 식. 덕분에 시대 초월성을 지닌 프라다 여사의 작업속 아이디어가 한눈에 확인됐음은 물론이다.

드레스와 재킷, 코트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액세서리다. 한쪽 벽 전체가 프라다의 대표 구두와 가방들로 채운 영역은 그야말로 압권.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더욱 대담해진 구두 디자인(불꽃 샌들과 샹들리에 펌프스, 꽃잎 러플이 장식된 샌들 등등)과 함께 여인의 초상화를 그린 핸드백과 공전의 히트 백이었던 볼링백 등이 박스에 담겨 있었다. 반대편 벽에는 미우치아의 데뷔작인 1988년 봄 컬렉션 영상부터 첫 번째 광고, 남성복 컬렉션, ‘트랜스포머’ 건설 현장, 리들리 스콧, 로만 폴란스키, 웨스 앤더슨 등과 함께했던 영상들이 시선을 끌었다. 또 그 앞으로는 지금껏 후원했던 예술가들의 서적과 프라다 역사를 닮은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아울러 렘 쿨하스, 에르조그&드뫼롱 같은 당대 슈퍼 건축가와의 협업 프로젝트는 물론, 내년 밀라노 외곽에 오픈할 ‘프라다 폰다지오네’ 건물 모형도 직접 만져보고 살필 수 있었다.

“여러 브랜드들이 모호한 정체성을 지우고, 한 가지 아이덴티티만 고집할 때 미우치아 프라다는 반대를 선택합니다.” 단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서 비롯됐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스펙트럼이 광대한 디자인에 대해 마이클 락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가 품는 의문들이 디자인하는 것의 주제가 됩니다. 설령 그것이 패션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 여성을 위해 디자인하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의심일지라도 말이죠. 그리고 우리들은 그녀의 디자인을 감상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지녔던 의문에 동감하게 됩니다.” 미우치아의 수많은 의문과 호기심은 전시장 끝에 마련된 ‘Construction’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유리 수납장 위에 놓인 지난 컬렉션들의 디테일(비즈, 자수, 레이스, 프린트 등등)을 보는 순간, 이 디자인들을 손으로 수없이 만지며 고민에 빠진 프라다 여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니 말이다. 이곳에서 다시 폭신한 카펫을 지나면 홍콩 항구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라운지가 마련돼 있다. 베르너 팬톤의 굴곡진 쑥색 벨벳 소파에 앉은 마이클 락은 이렇게 전했다. “프라다스피어는 패션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인물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곳입니다. 즐겁게 만끽하세요!” 어느 해외 기자가 그의 말에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저는 지금 ‘프라다-가즘’을 느끼는 중이에요!” 패션의 쾌락과 희열에 푹 빠져 상기된 그녀 곁에 미우치아 프라다가 있었다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그게 바로 패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