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션계에 불어온 봄바람

2016.03.17

by VOGUE

    패션계에 불어온 봄바람

    하얀 매화와 샛노란 개나리와 진분홍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 봄.
    패션계에 거세게 불어온 봄바람 덕분에 여자들의 옷장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폈다.

    꽃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까? 패션의 단골 메뉴인 꽃무늬 또한 꽃피는 계절이 다가오면 유난히 사랑받는다. 여자들에게 있어 꽃의 의미는 다양하다. 10대에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같은 설렘이고, 20대에겐 흐드러진 벚꽃 같은 사랑이며, 30대에겐 농염한 향기를 풍기는 붉은 장미 같은 열정이고, 40대에겐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국화꽃 같은 의미다.

    하지만 꽃무늬에 대한 내 기억은 초라하다. 초등학교 시절 봄소풍 때 잔잔한 꽃이 프린트된 투피스를 입고 수줍게 미소 지은 사진 한 장뿐. 소녀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핑크색보다는 회색이나 검은색, 스커트보다는 팬츠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TV 외화 시리즈 <초원의 집>에서 자매의 페전트풍 드레스를 흉내 내느라 엄마의 꽃 프린트 실크 스카프를 스커트에 두른 기억 정도? 하지만 세월이 흘러 국화꽃 같은 나이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생일에 받는 큼지막한 꽃다발도, 시대극 주인공처럼 보이던 꽃무늬 셔츠나 팬츠, 옛날 다방 언니 필의 꽃 스카프, 심지어 알록달록한 꽃이 화려하게 프린트된 백에도 욕심이 생겼다. 나도 천생 여자?

    얼마 전 촬영장에서 마주친 꽃무늬 의상들은 히피 룩의 유행과 함께 따스하게 스며드는 봄바람처럼 더더욱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1950년대 파리 꾸뛰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미우미우의 수선화와 은방울 꽃이 수놓인 자카드와 라즈미르 소재 코트와 스커트는 어릴 적 할머니의 양단 한복처럼 아주 낭만적이다. 또 1880년 산수치(Sansouci) 제국의 베를린 난초에 관한 문서에서 영감을 얻어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펜디의 오키드 프린트 의상들은 어쩌다 귀한 손님에게서 선물받은 진한 향의 난 꽃처럼 우아하다. 쇼에 ‘꽃 시장’ 이벤트를 기획했던 마르니는 그야말로 거대한 꽃 잔치를 벌였는데, 레오나드식 고전적 프린트나 기모노 옷감처럼 정교한 자카드, 화선지에 그리거나 혹은 비즈로 세심하게 꾸민 의상들은 죄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로맨틱하기 그지없다. 피비 파일로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꽃무늬(데이지와 해바라기, 야생화 등) 드레스조차 할머니의 오래된 스카프나 다락방 꽃무늬 벽지처럼 정겹게만 느껴진다. 리비에라 혹은 모나코 왕국의 식물과 꽃에서 영감을 받은 루이 비통의 퀼팅 처리된 실크 베스트, 엠보싱 가죽 재킷, 스팽글 원피스, 레이스 톱과 백, 부츠는 프린트도 프린트지만 장인 정신마저 깃들어 있어 쇼핑 욕구에 불을 지핀다.

    올봄의 꽃바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줍은 듯 꽃 자수와 프린트가 다소곳이 새겨진 로샤스의 로맨틱한 코트와 드레스들, 오리엔탈풍의 화사한 꽃무늬를 더한 사카이의 원피스와 재킷, 기모노의 화려하고 모던한 꽃무늬 모티브를 이용한 알렉산더 맥퀸의 자수 원피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샤넬의 스프링 코트, 화려한 꽃무늬 도안이 인상적인 발렌티노의 정열적인 드레스들, 꽃 모양 레이스가 아플리케된 스텔라 매카트니의 올인원과 슬립 드레스, 목가적 꽃 프린트가 인상적인 디올의 스커트 시리즈, 새빨간 장미와 스페인 국화인 카네이션을 라틴 문화의 열정적인 에너지와 버무린 돌체앤가바나 컬렉션, 입체적인 꽃 장식으로 뒤덮인 마이클 코어스의 튤 스커트, 레이스와 깃털로 섬세하게 수놓은 어덤의 온실 속 드레스 등등. 패션과 꽃이 어울린 모습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한 마디로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할 것 없이 ‘꽃 사세요!’를 동시에 합창한 셈이다. 얼마 전 나는 펜할리곤스의 향긋한 가드니아 향수를 손에 넣었다. 뿌리면 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꽃이 가득한 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이 들어 좋다. 이제 곧 봄이 오면 70년대 히피 소녀처럼 긴 꽃무늬 원피스와 로라 애슐리의 꽃무늬 쿠션, 리버티 원단의 꽃무늬 이불, 웨지우드 빈티지 꽃무늬 찻잔,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린 루이 비통의 꽃무늬 그래피티 백 등으로 꽃 잔치를 벌여야지. 마치 첫사랑 연인에게 받은 꽃다발처럼 패션의 꽃바람으로 설레는 지금, 꽃단장하고 다시 오지 않을 40대의 꽃 같은 시절을 화사하게 누려보고 싶다. 올봄 만큼은 예뻐지고 싶다면 역시 꽃무늬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이지아
    사진
    JAMES COCHRANE, COURTESY OF MAR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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