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발견

하이브리드 푸드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금 세계의 미식 트렌드는 “무엇을, 어떻게 섞을 것인가”이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도 생각지 못한 융합의 맛. 목표는 단 하나다.
“섞어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고유의 국물 맛으로만 승부를 걸던 라면 연방이 ‘짜파구리’ 등장 이후 동맹 맺기에 바쁘다. 지난 한 해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맛과 판매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라면 탐사에는 스타들까지 합류했다. 정형돈의 오파게티(오징어짬뽕과 짜파게티)와 김동완의 골빔면(골뱅이와 비빔면), 강레오 셰프의 짜플(짜파게티 와플)에 이어 최근 홍석천의 홍라면이 소시지, 치즈와 만나(홍팜이, 홍춘이, 홍치즈) 편의점 별미로 떠오르고 있다. 건너편에는 불닭볶음면이 어느덧 편의점 터줏대감 자리를 차지했다. 혀를 뜨겁게 달구는 매콤함 덕분에 컵라면과 봉지 라면을 넘나들며 라면 블렌딩의 인기 베이스가 됐다. 칵테일로 따지면 보드카나 진쯤 된다고 해야 할까? 간편하지만 몰랐던 융합의 맛에 빠진 식객들은 자신만의 조리법 공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허를 찌르는 독특한 조합일수록 인기 상승! 입에 착 달라붙는 작명 센스는 필수다.

하이브리드 푸드, 혹은 프랑켄푸드(Frankenfood)로 불리는 기묘한 음식 실험은 바다 건너 뉴욕에서도 벌어졌다. 파티시에 도미니크 안셀의 크로넛이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컨셉을 모방한 합성 음식이 셀 수 없이 많이 쏟아졌다. 베이글과 도넛을 합친 베그넛(Bagnut), 크루아상과 베이글을 합친 크로젤(Crogel), 토르티야 대신 와플을 휘감은 와플 타코(Waffle Taco), 스시와 부리토를 합친 스시리토(Sushiritto), 빵 대신 라면으로 패티를 덮은 라면 버거 등. 먹을 수만 있다면 섞고 보는 음식 유희가 길거리와 SNS에 하루가 멀다고 탄생을 알렸다. 별미와 장난 사이를 오가는 합성 열풍은 다음 세대의 출현도 예고했다. 요리 잡지 <본 아페티>는 ‘크로넛 이후 먹어야 할 10가지 하이브리드 푸드’로 브라우니와 쿠키를 합친 브루키(Brookie), 돼지고기찜으로 속을 채운 피클인 포클렛(Porklet), 머스터드소스와 케첩을 합친 머스첩(Muschup) 등을 꼽았다.

음식 합성 인기와 더불어 별난 커피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일명 불렛프루프(Bulletproof) 커피는 블랙커피에 풀 먹인 소의 젖으로 만든 ‘버터’(일반 버터는 안 된다)와 코코넛 오일 몇 방울이 들어간다. 흡사 1970~80년대 달걀노른자에 참기름 몇 방울을 넣은 다방 ‘모닝커피’와 닮은 이 음료는 데이비드 애스프리(David Asprey)라는 인물이 만들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던 백만장자는 돌연 회사를 그만둔 뒤 티베트로 떠났다. 그곳에서 심신 수련 중 현지인이 건넨 ‘야크 버터 티’를 처음 맛봤다. 티 한 잔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얻은 그는 본국으로 돌아와 버터를 티 대신 커피에 빠뜨렸다. 그런 뒤 유튜브에 직접 제작 영상까지 올려 삽시간에 패션 피플들과 셰일린 우들리, 지미 펄론 등 셀럽들까지 사로잡았다. 비록 과학적으로 효능이 증명되진 않았지만, 버터의 영양과 커피의 각성 효과가 맞물려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얼마 전 별난 커피 제조법을 포함한 그만의 식이요법을 다룬 <더 불렛프루프 다이어트(The Bulletproof Diet)>라는 책까지 나왔다.

버터와 커피의 느끼한 만남과 비슷한 상황이 요즘 대한민국 술자리 메뉴에서도 발생했다. 마성의 모차렐라 치즈는 온갖 음식에 고명으로 올라가더니 등갈비라는 새 연인을 만났다. 와인 대신 소주와 즐기는 한국식 퐁뒤는 저녁 시간만 되면 철판 위에서 뜨겁게 열애 중이다. 그렇다면 맛은?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감각을 잃은 술자리 3차 메뉴 정도로 안성맞춤이라는 평이다. 반면에 두툼한 문어 한 마리와 야들야들한 닭이 바삭하게 씹히는 ‘문어치킨’은 까다로운 치믈리에들도 인정한 맛의 발견. 육지와 바다의 진미가 기름 속에서 하나 되니 맥주와 마시면 금상첨화! 무서운 기세로 홍탁삼합의 위엄에 도전하고 있다.

합성이 인기를 끌면서 맛의 재발견 역시 활발하다. 식품 기업들은 각종 공모전과 요리 대회를 주최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리법을 추구하는 ‘모디슈머(Modisumer)’ 찾기 삼매경에 빠졌다. 재료는 액젓, 된장, 쌈장, 다시다 등 한계는 없다. 반대로 기업에서 먼저 나서는 경우도 있다. 작년 여름 팔도는 골빔면의 인기에 CJ와 손잡고 연빔면(연어와 비빔면)과 참빔면(참치와 비빔면) 조리법을 제시해 모디슈머들의 창조 욕망을 자극했다. 유행의 발원지 편의점은 아예 모디슈머들이 개발한 조리법을 차용한 PB상품을 내놨다. 맵기로 소문난 ‘자떡라볶이’와 ‘불타는짜장’은 짜파구리가 낳은 대표적인 2세대 메뉴들이다. 멈출 줄 모르는 하이브리드 푸드 유행은 과거 동서양 음식이 만난 퓨전 음식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실험 대상이 근사한 일품요리가 아니라 라면, 햄버거, 피자, 떡볶이 같은 친숙한 음식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영양을 생각하는 태도도 다르다. 하이브리드 푸드는 건강보다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는 미식이다. 비주얼도 남다르다. 색과 모양이 대담하고 과장될수록 신메뉴에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누군가는 재미와 관심만 노린 쓸모 없는 유행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알겠나. 무심코 조합한 나만의 독특한 메뉴가 생각지도 못한 맛의 혁명을 불러올지. 늘 그랬듯 위대한 한 걸음은 무수한 실험과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