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창조하는 젊은 예술가들

한 시대의 장르를 개척하고 경계를 넘어 제3의 방식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다.
동시대의 판소리를 연구하는 이자람과 영화감독 윤성호,
실험적인 사운드 아티스트 권병준,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듀오 디자이너 슬기와 민.
우리의 미래가 기억할 이름들이다.

LEE JA RAM 화이트 셔츠는 유돈초이(Eudon Choi), 플레어 스커트는 오즈세컨(O’2nd), 깃털 장식의 시스루 스커트는 맥앤로건(Mag&Logan), 흰색 운동화는 노네임 바이 플랫폼(No Name by Platform), 옥비녀는 차이 김영진(Tchai Kim Young Jin), 흰색 벨트는 월포드(Wolford).

LEE JA RAM 화이트 셔츠는 유돈초이(Eudon Choi), 플레어 스커트는 오즈세컨(O’2nd), 깃털 장식의 시스루 스커트는 맥앤로건(Mag&Logan), 흰색 운동화는 노네임 바이 플랫폼(No Name by Platform), 옥비녀는 차이 김영진(Tchai Kim Young Jin), 흰색 벨트는 월포드(Wolford).

 

동시대의 판소리 탐험가

이자람의 판소리엔 경계가 없다. 병풍을 둘러친 무대 위에 한 명의 소리꾼이 등장해 고수의 장단에 맞춰 구성진 입담을 늘어놓는 형식 자체는 기존과 다를 바 없지만 그 내용은 딴판이다. 지난겨울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펼쳐진 판소리 공연에선 춘향이와 심청이 대신 주요섭의 단편소설 속 비운의 여인들이 무대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바다 건너 브레히트의 서사극(<사천의 선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이 판소리 한 마당으로 재구성되고, 젊은 고수들은 북과 꽹과리, 기타와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로 장단을 맞춘다. “제가 주장하는 건 이거예요. 조선시대에도 기타가 있었다면 아마 사용했을 거라는 거. 드라마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걸 갖다 쓰는 거죠.”

소리꾼이자 작가이며 예술감독이기도 한 이자람은 포크 록 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보컬이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 재주 많은 예인은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으로 2014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바쁘다. 지난 연말엔 홍콩과 루마니아를 오가며 <사천가>를 선보였고, 1월 초 밴드의 단독 콘서트가 끝난 후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억척가>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아담한 체구의 퍼포머가 혼자 무대에 올라 2시간 넘게 에너지를 뿜어내는 광경을 처음 본 해외 관객들은 입이 떡 벌어져 꼭 이런 질문들을 한다. “대체 평소에 뭘 먹나요?” 정답은 싱겁다. “저요? 그냥 밥 먹죠.” 스무 살에 이미 <춘향가>로 최연소·최장 시간 완창(8시간)이라는 기네스북 기록을 세운 이자람에게 체력은 기본이다.

그보다 놀라운 건 공연 그 자체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버전의 브레히트 작품을 만난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킥킥대다 꺽꺽 눈물을 쏟는다. 연극도 아닌 것이 뮤지컬도 아니며, 그렇다고 음악 공연도 아니지만 음악적 테크닉은 뛰어난, 이 기묘한 장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게다가 재미있다! 이자람은 이를 ‘또 하나의 다른 판소리’라고 표현했다. 판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이자람의 판소리는 시종 흥미진진하다. 요즘 언어로 쓰인 탓에 소리꾼의 육성은 귀에 착 달라붙고 그 능청스러운 연기와 덩실대는 몸짓은 시선을 붙든다. 이야기의 소재도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주요섭의 작품을 각색한 판소리 단편선 시리즈 <추물>과 <살인>은 끝내주게 못생긴 여자와 지독히 가난한 여자를 각각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지닌 인간적인 욕망과 사회적 편견이 충돌하는 모습을 판소리로 풀어낸다. 외모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 주의에 빠진 씁쓸한 현시대를 아프게 꼬집고 풍자하면서도 판소리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터져 나온다. 작가와 작창가, 예술감독을 맡은 이자람은 이 공연에선 무대에 서지 않았다. 2009년부터 <사천가>를 같이 한 소리꾼 김소진과 이승희를 위한 작품이었다. “재주 많은 젊은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볼 수가 없잖아요. 그건 무대도 없지만, 무대에 설 만한 작품이 없어서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위한 작품을 써주고 싶었어요. 전 다작할 거예요.”

이자람이 판소리를 만난 건 방송 덕분이다. 어린 시절, 혼성 듀엣 바블껌의 멤버였던 아버지(이규대)와 함께 부른 노래 ‘내 이름 예솔아’로 KBS <가요톱10> 무대에 서기도 한 이자람은 요즘으로 치면 삼‘ 둥이’ 못잖은 인기를 누리던 꼬마 스타였다. 한 어린이 프로그램의 ‘판소리 배우기’ 코너를 통해 故 은희진 명창을 만나며 그렇게 판소리와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국악과 재학 시절엔 국악 뮤지컬 그룹 ‘타루’를 창단해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판소리 현대화 작업의 발판이 된 ‘판소리 만들기 자’는 한예종 연극원 출신의 남인우 연출가와 <사천가>를 작업하며 결성한 단체다. 이 작품으로 이자람은 2012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음악부문 올해의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민중의 희로애락을 한판 흥겨운 놀이로 풀어내온 판소리가 비로소 21세기 도심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 걸음걸이는 당차고 기개가 넘친다.

동시대의 판소리 탐험가로서 이자람은 종종 연극판을 기웃거린다. “둘 다 사람을 다루잖아요. 그게 경이로운 거 같아요. 사람이 중심이 되면 돈은 못 벌어요. 더구나 시대는 점점 더 강퍅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연극과 판소리는 태생이 우리의 삶이에요. 인간의 욕망과 충돌을 고뇌하는 작업이죠. 멋있어요. 진짜 멋있는 건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아요. 그냥 홀로 멋있는 거죠. 저한텐 연극이 그래요.”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이자람은 희곡집을 읽었다.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였다. “재밌어요. 지난번에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초연했는데, 올해는 본격적으로 서울 공연을 올리려고 준비 중이죠.” 이 작품 역시 <추물/살인>에서 호흡을 맞춘 박지혜가 연출과 드라마트루기를 맡는다. “드라마트루기는 이를테면 유비한테 제갈공명 같은 존재예요. 작품 내용의 전체를 보고 판단하고, 조언해주는 역할이거든요. 저처럼 작가적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겐 정말 중요하죠.” 각색과 테이블 작업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진 1년 정도가 걸린다. “사실 전 글은 금방 써요. 그보단 창작의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렵죠.” 이자람은 자신의 본능을 믿는 편이다. 일단 본능의 낚싯줄에 걸리고 나면 두세 달의 시간을 왜 그 이야기에 자신의 마음이 흔들렸는지 쌍방 간의 링크를 찾아내는 데 쏟는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자람을 홀린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전후 시대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전쟁으로 인해 문명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사적인 인생담이다. “그런 얘기가 현재 우리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삶의 중요한 가치가 사람에서 돈이나 권력을 갖는 것으로 변해가는 게 과거는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지금보단 더 사람 중심의 세상이었던 것 같거든요.”

소설과 희곡이 판소리가 될 수 있다면 시는 노래가 된다. 지난해 발매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크레이지 배가본드>는 천상병의 시를 음악으로 옮긴 컨셉 앨범이다. 정신 나간 방랑자라는 뜻의 제목 역시 천상병 시인을 한마디로 정리해주는 시다. “되게 문학소녀 같네요. 전혀 아닌데… 원래 전 ‘귀천’밖에 몰랐어요. 다른 시인도 잘 몰라요. 2007년 천상병예술제 측에서 시집을 잔뜩 주며 판소리 공연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 게 계기였어요. 시가 정말 좋더라고요. 그다음 해에 다시 연락이 와 밴드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했죠.” 이자람의 목소리와 밴드 사운드가 빚어낸 그 호방한 음악은 천상병의 시처럼 질박하고 따뜻하다.

밴드 활동은 이자람이 씩씩하게 동시대 판소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의 최전선에 선다는 건 대체로 고독하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리 밴드의 기타리스트 이민기가 농담처럼 저한테 ‘밴드가 널 살렸지’라고 하는데, 그 말에 저도 동의해요. 밴드를 시작하고, 또 붕가붕가레코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런 부담이 필요 없단 걸 느끼게 됐어요. 장르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저기에서 매달려온 문제가 여기에선 보잘것없어지기도 하거든요. 그게 저한텐 도움이 돼요.” 이자람의 올해 목표는 2집 음악을 잘 써서 내는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선을 서울에서 잘 선보이는 일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읍내>를 붙잡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12월 전엔 좋은 대본을 써내고 싶어요.” 이자람은 좋은 작업을 많이 해내는 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자 또 해야 되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지만 위대한 개인의 삶을 응원하던 판소리가 지금이 시대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제 역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진짜 멋지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YOON SUNG HO 체크 패턴 셔츠와 블랙 수트는 모두 바톤 권오수(Baton Kwon Oh Soo), 스웨이드 소재 검정 구두는 더 브라더(The Brother), 검정 안경은 타르트 옵티컬(Tart Optical).

YOON SUNG HO 체크 패턴 셔츠와 블랙 수트는 모두 바톤 권오수(Baton Kwon Oh Soo), 스웨이드 소재 검정 구두는 더 브라더(The Brother), 검정 안경은 타르트 옵티컬(Tart Optical).

 

21세기 드라마 오퍼상

영화감독 윤성호는 요즘 웹에서 논다. 지난 한 해 그는 <출출한 여자>를 시작으로 <출중한 여자>, <썸남썸녀>, 그리고 <What’s Eating Steven Yeun?>까지 모두 네 편의 웹 드라마를 만들었다. 대부분 10여 분 길이의 초단막극. 짧게는 3부작, 길게는 12부작까지 이어진다. 이야기는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여자가 음식으로 피로를 풀거나(<출출한 여자>), 짝을 찾지 못한 남녀가 캠프에 모여 ‘썸’을 주고받는(<썸남썸녀>), 사소하고 자잘한 내용이다. 심지어 인기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의 배우 스티븐 연이 2NE1의 산다라 박과 함께 출연한 <What’s Eating Steven Yeun?>은 스티븐 연이 한국에 들어와 ‘먹방’ 스타에 도전한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줄거리다. 보통의 드라마나 영화라면 들여다 보지도 않았을 일상, 기존의 서사가 ‘죽은 시간’으로 무시하고 넘겼을 시공간이 이들 작품에선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근래 인기 콘텐츠인 먹방도 종종 등장하고, 혼자 사는 여성의 라이프스타일도 화두로 오른다. “사실 먹방 자체에 관심이 많진 않아요. 다만 외로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이 가요. 먹방이라는 게 어떤 결핍에 대한 방증이잖아요. 그럼 그게 유행하는 지금의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지금 윤성호가 모바일로 길어 올리는 드라마는 의지할 게 모바일 밖에 없는 세대의 일기 같은 것이다. 윤성호는 모바일 세대의 가장 큰 테마인 외로움을 모바일의 언어로 풀어놓는다.

사실 윤성호는 영화판에서 빛날 인재였다. 그의 데뷔 단편 <삼천포 가는 길>, 그리고 <우익청년 윤성호> 등은 영화 팬들, 그리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꽤 오랜 시간 회자됐다. 그리고 2007년 연출한 <은하해방전선>은 새로운 방식의 영화처럼 보였다. 끊임없이 주절대는 이 영화는 말과 말 사이의 충돌로 서사를 넓혀가는 작품이었다. 윤성호 감독은 남자 주인공 영재의 캐릭터를 통해 일종의 분신술을 벌이며 이야기의 구조를 묘하게 꼬았고, 그렇게 영화는 스트레이트하고 나이브한 이야기의 구조를 내던졌다. 하지만 이후 윤성호의 장편 소식은 뚝 끊겼다. <은하해방전선>은 지금까지도 그의 유일한 장편 연출작이다. 대신 윤성호는 케이블 채널 MBC 에브리원에서 시트콤을 만들었다.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제목을 빌려 가져온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배경으로 한 9부작의 시트콤이었다. 속사포로 읊어대던 영화 속의 말들은 통통 튀는 코미디의 대사로 변주됐고, 층층이 나뉘던 영화의 서사는 9부작이라는 포맷 속에 질서 정연하게 담겼다. 그리고 이 시트콤은 마니악한 팬덤과 호평에 힘입어 추후 영화로도 편집돼 공개됐다. 이후 윤성호는 몇몇의 단편과 옴니버스영화 등 끊임없이 작업을 계속했지만 그중 장편영화는 없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제작비를 구하지 못한 젊은 감독의 힘겨운 임시방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에게 이 길은 그리 엇나간 방향이 아니었다. “저는 오퍼를 받고 대부분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제 의지로, 자발적으로 만든 건 딱 세 편 정도밖에 없어요. 저는 시네필의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윤성호는 오히려 지금, 다종다양한 드라마를 웹과 모바일로 펼쳐내고 있는 상황이 자신과 더 적합하게 느껴진다고 얘기했다. “예전엔 작품을 만들어도 좀 가짜 같고, 누가 상을 주면 내가 남을 속인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이제는 이걸 업으로 삼자고 생각한 이상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고쳐 생각했죠. 이를테면 의자를 예를 들어 예전엔 사람들이 앉기에 좀 불편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의자를 만들었다면, 이제 그게 취미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앉고 싶어 하고 실제로 오래 앉을 수 있는 걸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게 된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만들기 싫은 걸 억지로 만들 순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것과의 접점을 찾아야죠.” 윤성호의 타이틀은 이제 연출 감독이라기보다 작품 총 제작 감독 정도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올해 작업한 네 편의 웹 드라마는 모두 그가 제작사와 함께 기획해 꾸렸고, 스태프, 배우, 공동 연출자 등은 모두 윤성호가 골랐다. 그리고 그 외에 그는 올해 두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납품했으며, 가명으로 웹 소설도 연재했다. 주문에 의해 드라마를 제작해내는 이야기 오퍼상인 것이다. “2013년부터 기획자 마인드가 강해진 것 같아요. 예전엔 그냥 제가 연출하는 작품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바리바리 기획하고 제작한 건데 지금은 제안이 들어오면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포맷으로 만들어낼까 전체를 그려내는 거죠.” 아직은 노코멘트라며 입을 굳게 닫았지만 그는 현재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규모의’ 드라마 작업에도 착수 중이다.

2014년의 마지막 달 12월. 서울독립영화제에 윤성호 감독의 작품이 또 한 편 걸렸다. 서울독립영화제 측이 연례행사로 진행하는 옴니버스 프로젝트 중 한 편인 <백역사>란 작품이었는데 웹 드라마와는 또 다른 윤성호의 이야기를 감상할 오랜만의 기회였다. 영화는 공장의 한 노동자를 따라간다. 주인공은 조퇴를 하고 극장, 여자, 중국집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웹 드라마의 말풍선,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읽어주는 내레이션 따윈 없고, 그저 이야기가 느릿느릿 이어질 뿐이다. “솔직히 좀 편한 작업이었어요. 웹 드라마는 천우희 씨 연기 그렇게 잘하는데도 감정 상태를 내레이션으로 넣어주거든요. 근데 이번엔 그런 양념을 안 한 저염식을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백역사>에서 윤성호의 카메라는 프레임 너머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거나 만두를 먹는 주인공의 모습을 TV 속 ‘먹방의 앵글’이 아닌 무심한 원근법으로 찍는다. MSG를 싹 거둬낸 무농약 식단, 혹은 근래 패스트푸드만 만들어내던 그가 차려낸 오가닉한 한 상인 것이다. “거장들은 정말 최소한의 표현만으로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 게 하고 싶었지만 잘되진 않았죠. 무엇보다 절실함이 부족했던 작업이고, 그래서 어떤 형식의 작품이든 정말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윤성호의 꿈은 좀 별나다. 그는 <응답하라> 시리즈나 <미생>, 혹은 영화 <명량>과 같은 대박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 대신 세상을 윤성호로 자잘하게 채우려고 이야기를 만든다. “문득 옆을 봤는데 ‘어, 윤성호게 있네’, 또 뒤를 봤는데 ‘여기도 윤성호 게 있네’ 이렇게 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세상을 저의 이야기로 포위하고 싶달까요.” 그래서 작품의 포맷, 장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의 어느 한구석이 그가 떠들고픈 주제와 맞닿으면 된다. “글도, 영화도, 드라마도 이미 재미있는 거 많잖아요. 정말 꼭 해야 하는 이야기, 죽어도 만들어야 하는 작품 같은 건 이제 좀 가짜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좀 자잘하게 보면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아직 안 긁혀지고 가려운 부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긁는 게 지금 저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작은 집을 수십 채 가진 부동산 부자, 소규모 분식집을 10여 곳 운영하는 요리사, 혹은 세상의 다양한 거리들을 모으고 선별하는 큐레이터. 윤성호의 직함은 아마도 이제 이런 것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출출한 여자>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재영은 친구와 함께 만두피로 추로스를 만들어 먹은 뒤 “먹고 살 만하다”며 배를 두드린다. 그리고 그 순간 그저 하찮은 일상의 소회 같았던 이 드라마가 뭉클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윤성호가 웹으로, 그리고 모바일로 담아낸 자잘함들이 사실은 우리의 현실이란 생각이 떠올라서다. 작지만 배부르고, 대박은 아니어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이야기들이 지금 윤성호의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다. 그리고 이 풍경은 아마도 우리가 쉽게 지나치곤 하던 일상의 작은 오점, 외로움, 그리고 허기의 기록일 것이다.

KWON BYUNG JUN 티셔츠와 체크 패턴 재킷은 모두 에트로(Etro), 네이비 팬츠는 비욘드 클로젯(Beyond Closet), 양말은 해피삭스(Happy Socks), 운동화는 라코스테 바이 플랫폼(Lacoste by Platform).*TV와 마네킹으로 구성된 사진 속 설치물은 권병준 작가의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된 것이며 실제 작품과 무관하다.

KWON BYUNG JUN 티셔츠와 체크 패턴 재킷은 모두 에트로(Etro), 네이비 팬츠는 비욘드 클로젯(Beyond Closet), 양말은 해피삭스(Happy Socks), 운동화는 라코스테 바이 플랫폼(Lacoste by Platform).*TV와 마네킹으로 구성된 사진 속 설치물은 권병준 작가의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된 것이며 실제 작품과 무관하다.

 

낭만적 인조 음악 개발자

사운드 아티스트 권병준은 무음의 존재들에게 음악적 생명을 불어넣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다. ‘서울 오픈 미디어’라는 종이 한 장이 간판을 대신한 그의 한남동 작업실은 음악가의 그것이라기보단 공학도의 실험실을 연상시킨다. 테이블 위엔 정체불명의 전자회로 기판과 각종 공구가 흩어져 있고, 선반 수납함엔 각종 부품과 이런저런 케이블선이 빼곡하다. 일종의 수술 도구인 셈이다. 한쪽 구석엔현이 다 드러난 앙상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건반은 사라졌고 대신 전자 스피커가 연결되었다. 전선으로 된 핏줄과 철근 뼈대를 지닌 인조인간처럼 기괴한 형태의 이 피아노는 EBS 다큐 프라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 제작 과정을 소개한 ‘하이브리드 피아노’다. 영롱한 현의 울림 대신 몽환적인 전자음을 발산하는 이 악기는 권병준이 지속해온 음악적 실험의 일부다. “원래 피아노가 현을 때리는 악기라면, 이건 피아노 현의 속도를 조절해 떨게 만드는, 혹은 살짝 튕기는 악기죠.” 일련의 외과적 수술을 거친 이 피아노에선 손가락과 건반 대신 옆에 달린 스피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래는 스피커 자체가 떨어서 소리를 내는 데 쓰이는 건데, 여기에선 피아노의 스트링을 떨어서 연주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그 음은 다시 증폭되고 주파수에 따라 속도를 달리하며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탄생시킨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권병준은 90년대 펑크록 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보컬리스트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던 ‘고구마’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메인스트림을 떠난 후, 1세대 인디 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을 창단하며 원더버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와 현대무용, 패션, 연극,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와 결합을 시도한 그의 실험적인 음악 작업은 늘 시대를 한발 앞서갔다. 한때는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를 비롯해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다. 2004년 발매된 달파란&병준의 1집 <모조소년>은 지금까지도 일렉트로 팝과 어쿠스틱의 진정한 결합을 이뤄낸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듬해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난 권병준은 한동안 네덜란드의 전자악기 연구 개발 기관 스타임(Steim)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세계 유일의 인디 라이브 일렉트로닉 음악 센터인 그곳에서 독창적인 악기들을 연구하고 개발해온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건 4년 전이었다.

2011년 여름, LIG 아트홀에서 달파란과 함께 선보인 프로젝트 공연 ‘여섯 개의 마네킹’은 그야말로 쇼킹했다. “걸그룹을 테마로 파생된 작업이었어요. 기타도 현이 여섯 개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여섯 개가 됐고요.” 무대 위엔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는 센서를 장착한 마네킹들이 올라왔다. 인형사가 된 두 뮤지션은 늘씬한 그녀들의 신체를 멋대로 분해하고 재조립해가며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듯 사운드를 조정했다. 기계에서 생성되는 음향을 노트북으로 제어하는 행위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음악 연주가 아니었다. 악기도 없었다. 소리 나는 각종 복잡한 장치들이 전통적인 개념의 악기를 대신했다. 그 결과물은 우연적인 멜로디와 뭉개진 노랫말과 불협화음과 소름 끼치는 기계음이 연출해낸 한 편의 부조리 연극이었다. 이 새로운 음악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부르고 싶은 대로, 그냥 잡음이라고 해도 되고, 무슨 소리가 난다고 해도 돼요. 사실 누가 정의를 내려주면 편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스스로의 몫인 거 같아요. 제가 그걸 가두는 순간, 처음 의도가 많이 흐트러지는 거 같고, 또 너무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에 그는 독일 출신의 작곡가이자 뮤지션 한스 코흐(Hans W. Koch)와 언어를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협연을 펼쳤다. 권병준이 작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장착된 펜을 움직여 스크린에 글을 쓸 때마다 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문자들의 합창이었다.

대체 이런 기막힌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권병준은 자신의 롤모델을 손이라고 말했다. “제 손을 따라가는 거죠. 손을 쓰며 놀다 보면 이런저런 게 나오는 거 같아요.” 그는 요즘 하고 있는 몇 가지 작업을 보여줬다. 전자회로 기판처럼 생긴 손바닥 만한 사이즈의 초보자를 위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접으면 가방이 되는 프로토타입의 툴박스 앞치마였다. 올해 개관하는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준비 중인 어린이 아트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이다. 개인 작업과는 별개로 권병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상생활 재료를 활용한 나만의 악기 만들기 워크숍을 종종 진행해왔다. “자기가 내는 소리에서 한번 출발해보는 가능성 같은 걸 보여주는 거죠. 안 되는 폼을 억지로 배워 전통에 자기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한테 내재된 무언가를 찾아보고, 거기에서부터 발전시켜보는 걸 저절로 체득할 수 있도록. 인류의 역사가 곧 악기의 역사일 텐데, 사실 그런 전통 악기와 맞먹을 만한 뭘 만들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지난해 권병준은 꽤 많은 일을 벌였다. 미디어 창작 그룹 ‘이악’과 함께 진행해온 여러 워크숍의 결과물을 선보인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도 그중 하나다. 연극 연출가 적극을 비롯, 무용가와 배우, 무대 미술가, 조형 예술가, 컴퓨터 공학도 등 여러 구성원이 모인 ‘이악’은 “이것도 악기일까?”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또 다른 작품 <또 다른 달, 또 다른 생>은 지난 10여 년 동안 그가 몰두해온 실험과 작업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정리한 것이다. 퍼포머가 막대기를 바닥에 쿵 치며 조심스럽게 평균대를 걷는 것으로 시작된 공연은 빛과 열, 물, 증기, 바람 등의 자연현상을 소리와 버무려 음악으로 연주해냈다. “악기의 개념을 무대장치나 환경적인 무엇으로 확장시킨 작업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작은 악기가 아니라 거기서 타고 다니는 평균대라든가 그런 것들의 삐거덕대는 소리가 증폭되고, 그 소리가 무대장치와 어울려 조형적으로도 의미가 있도록 적절히 잘 조합해내는 게 중요했죠.” ‘안과 밖’을 화두로 한 이 공연의 구성원들은 전문 배우가 아닌 극장과는 거리를 둔 시스템 바깥의 아웃사이더들이었다. 권병준은 그들을 다시 극장 안으로 불러들여 수증기 막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형상화했다. 그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프로세싱한 음악은 현장성이 더해지면서 태초의 소리처럼 원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운드 아티스트라는 직함을 달고 시스템의 안과 밖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안에 잠깐 들어갔다가 이제 다시 어느 섬으로 들어간 거 같아요. 그게 제일 마음이 편해요. 섬에 살다가 바람 쐬듯 가끔 나와보는 게.” 한국에 돌아온 후, 그간 머릿속으로 생각해온 것들을 열심히 작업물로 쏟아낸 그는 이제 다시 채워나갈 시기라고 했다. 올해의 화두는 ‘바람’이다. “바람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바람을 잘 이용하자. 바람을 가지고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한번 해볼까 하고 있어요.” 90년대 말 그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느냐는 질문에 이런 얘길 했다.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가 필요하고 그 일을 해야 하니까요. 화려한 차림으로 TV에 나오는 로커도 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독특한 음악을 하는 밴드도 있어야 하지만, 음악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실험적인 뮤지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그런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부족해요.” 그는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여기까지 흘러온 셈이다. 방송국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인디 레이블을 설립하고, 영화를 찍고,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음악을 만들고, 가끔은 디제잉도 하면서. 앞으로도 그는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 음악이라는 바람이 이끄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SULKI&MIN 슬기가 신은 태슬 장식 플랫 슈즈는 에르메스(Hermès), 의상은 본인 소장품, 민이 입은 니트 소재 피케 셔츠와 블랙 재킷, 레이스업 구두는 모두 에르메스, 데님 팬츠는 본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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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우주의 발화자들

그래픽디자이너 슬기와 민은 수수께끼 같은 작가다. 그들의 작업은 기존 질서로 보기엔 얼핏 아리송한 메시지뿐인 것 같다. 하얀 캔버스 위에 뿌옇게 드리우는 글자들, 혹은 어떤 모형들. 2006년 둘의 첫 국내 전시였던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는 제품의 뚜껑 속 글씨, 혹은 상품의 바코드를 확대해 가공 재생산한 작업이었으며, 사사(Sasa, 44)와 함께 진행하는 연례 프로젝트 <연차 보고서>는 사사가 매해 먹은 설렁탕의 그릇 수, 대중교통 이용 횟수 등을 소재로 축적된 데이터의 숨은 의미를 던져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올해 슬기와 민은 여다함, 장민승과 함께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작가로 선정돼 선보인 전시에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의 어떤 구석을 찾아 드러냈다. 제품을 만들거나 제어하는 장치의 일부를 확대한 이미지들인데 어떤 작품은 하얀 종이 위에 검정 갈고리 모양이 프린트되어 있고, 또 다른 작품엔 그저 까만 네모 여러 개가 올라가 있다. 블러 처리된 이미지가 마치 앰비언트 사운드를 비주얼화한 듯한 그림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듯하지만 잘 모르는 것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랄까요? 그런 생각으로 한 작업입니다.”(민) “2006년 ‘기능적 타이포그래피’ 시리즈가 있었어요. 그 관심사와 통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슬기와 민의 이 ‘테크니컬 드로잉’ 연작은 공정의 풍경이다. 둘은 제품의 도면, 이미지 해상도나 포커스, 밸런스 시험을 위한 드로잉 등을 재료로 가져왔다. “인쇄를 해도 가장자리에 빨주노초파남보 바가 있잖아요. 그 역시 이런 드로잉 중 일부죠.”(민) 제품이 완성된 뒤에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들, 과정 중 스치고 지나가 사라지고 마는 것들의 흔적을 다시 표면화한 것이다. 그래서 슬기와 민의 작품 앞에선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다른 우주의 메시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래픽디자인이 마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슬기와 민은 2000년대 초 예일대에서 함께 유학하며 연을 맺었다. 이후 네덜란드의 디자인 연구소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Jan Van Eyck Academie)에서 연구원으로 함께 일하며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여러 행사의 포스터, 단체의 홍보물, 웹 기반의 디자인 작업 등을 주로 하며, 2006년부터는 스펙터란 이름의 출판사도 차려 직접 서적을 번역, 출판하고 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조르주 페렉의 선집과 몇몇 인문학 서적도 둘의 작업으로 완성됐으며, 예술감독 김성희 시절의 ‘페스티벌 봄’ 포스터, 홍보물도 둘의 손을 거쳤다.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의 아이덴티티 작업, BMW 구겐하임 랩(BMW Guggenheim Lab)의 그래픽 작업, 그리고 스펙터에서 발행하고 있는 사사와의 <연차 보고서> 등은 둘의 대표작이다. “저희가 2005년 한국에 왔으니 올해로 딱 10년인데요. 처음엔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았고 가급적이면 다 해보려 했어요. 실제로 다 해봤고요. 근데 이제는 좀 고민하게 돼요. 점점 더 새로운, 재미있는 작업을 만들기가 힘들어지니까요. 이미 한 것들은 나름의 재미는 있지만 새로운 자극은 되지 못하죠.” (민) 그래서 이번 에르메스와의 작업은 좀 의미심장하다. 작품의 모티브가 2006년 둘의 첫 전시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와 연결되며, 2009년 활자를 뿌옇게 처리한 <연차 보고서>와도 비슷한 맥락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커미션 작업은 어느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게 솔직히 있었어요. 우린 직업 작가는 아니니까, 그냥 디자이너니까, 농담 좀 섞어 해도 되겠구나 싶은. 하지만 이번 에르메스 전시를 하면서는 더 진지해진 것 같아요. 밖에선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작품적으로는 저희의 어떤 변곡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민) 한국으로 건너와 그래픽디자이너로 10년. 둘은 이제 막 슬기와 민이란 우주의 첫 층을 올렸다.

슬기와 민의 작업엔 주로 일상, 무의미한 것들의 질서, 혹은 재료의 구조 같은 단어들이 곧잘 따라붙곤 한다. ‘설렁탕을 O그릇 먹었다’와 같은 문장을 무려 8개 국어로 번역해 나열해놓고, 서울에서 광주 가는 길의 휴게소에서 사 모은 에너지 드링크를 진열해놓으니(<에너지!>, 2011년 광주 비엔날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사실 슬기와 민의 작업에서 더 중요한 건 일상의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의 나열이 아닌 그 나열 뒤의 어떤 가능성의 뉘앙스다. 슬기와 민은 아무 쓸모없을 것 같은 자질구레한 자료를 나열하면서, 그리고 수집해 분류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의미의 망, 혹은 가치의 뿌리 같은 걸 드러낸다. 가령 2012년 발행된 <연차 보고서>의 “2012년 Sasa(44)는 설렁탕 39그릇, 짜장면 55그릇을 먹었고, 서울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9편 보았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23권 샀고, 교통카드를 135번 이용했고…”와 같은 문장을 블러 처리된 활자로 보고 있으면 문득 이 터무니없는 텍스트 속에 내가 모르는 질서, 알아차리지 못한 구조가 숨 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정리된 의미보다 의미의 잠재 가능성, 실현되지 않은 의미들이랄까요. 그런 게 저희의 관심사죠. <연차 보고서>의 경우 가치 없는 정보를 모으고, 그 터무니없음과 체계의 엄밀함 사이에 대비가 생기고, 그로 인해 어떤 잠재성이 확인되는 거고요.”(민) 그리고 이 <연차 보고서>를 매년 출판 시장에 출간한다는 것 역시 이들이 노린 전략이다. 확실한 의미의 결과들만이 서적으로 출판되는 서점가에 무언지 모를 문장들의 나열이 제품으로 등장하는 건 기존 질서의 파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음을 하나의 어엿한 출판물로 내놓으면서 출판이란 제도와 실제 출판물 형식의 간극이 생기고, 거기서 자기장 같은 게 일어나는 거죠.”(민) “또 실제 중앙 도서관 같은 곳에는 이 터무니없는 책을 납본해야 하는 상황인 거니까요.” 의미의 시장 속의 무의미, 결과의 전시장을 비집고 등장하는 과정들. 슬기와 민은 그 충돌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잠재적 뉘앙스를 뽑아낸다.

폰트와 데이터를 활용한 작품 이면에 슬기와 민은 다소 튀어 보이는 작업들도 종종 한다. 사사, 박미나와 함께 SMSM이라는 이름으로 꾸리는 작업들이 그것인데 2011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에너지!>를 비롯해, 2012년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디자이너 R, K 두 명의 일상 패턴을 프로파일한 뒤 식단을 짜 <이상적 다이닝 테이블>이란 타이틀의 전시를 열었다. “좀더 이야기가 있고, 요소가 있고, 둘이 잘 안 하는 작업들과 추상적으로 보이고 아리송해 보이는 작업들. 굳이 분류하면 그렇게 나뉘는 것 같아요. 슬기와 민 이름으로 하기엔 좀 민망한?(웃음) 것들을 SMSM으로 하죠. 더 과감하게 이상한 짓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민) 직관보단 기획이 더 주요하게 작용했을 이런 작업에서 둘은 작은 인장을 남기기도 한다. 2011년 리스본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슬기와 민은 교통신호를 안내하는 신호수 로봇 두 개를 자신들의 분신처럼 포장해 행사장 입구에 설치했다. “저희 둘이 한 작업이지만 SMSM 작업에 더 가까워 보이죠.”(슬기) “신호수 로봇을 본 순간 이걸 가지고 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민) 그래서 둘은 신호수 로봇의 전형적인 노란 옷을 벗기고 디자이너들의 멘탈을 연상시키는 초기 맥페인트의 프린트를 패턴화해 옷을 입혔다. “슬기와 민 이름으로 하는 거니까 신호수 로봇을 갖다놓는 것에서 멈추지 못하고 사소하지만 디자이너의 무언가를 남긴 셈이죠.”(슬기)

그래픽디자인의 역할은 명료함이다. 메시지를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본래의 기능일 것이다. 하지만 슬기와 민의 작업은 그 기본 명제를 배반한다. 둘은 두리뭉실한 이미지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예감케 되는 어떤 의미들을 건져낸다. 그리고 그것이 이들의 디자인을 계속 지켜보게 하는 동력이다. 지금 이곳의 질서가 아닌, 건너편 어딘가에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언질. 슬기와 민이 쌓아가는 우주는 계속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