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쇼핑 사운드트랙 세상

쇼핑객들을 위한 오감 만족. 그 가운데 요즘 주목받는 건 청각이다.
영화 속 BGM처럼 필수 요소가 된 오리지널 쇼핑 사운드트랙의 세상.

음악이 쇼핑이 선사하는 새로운 즐거움이 된 시대. 붉은색 선글라스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푸른색 헤드폰과 블랙 컬러 미니 스피커는 닥터드레(Dr. Dre), 모피 장식의 화이트 백은 펜디(Fendi), 유석 보석 장식 블랙 백은 MCM, 그린 컬러 뱅글은 코치(Coach), 스터드 장식 아이폰 케이스는 생로랑(Saint Laurent), 아래의 푸른색 헤드폰은 소니(Sony).

쇼핑객은 매장에 들렀을 때 어떤 면에서 만족할까? 정중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응대, 집에 온 듯 안락한 인테리어는 기본이다. 여기에 시원한 샴페인과 달콤한 디저트처럼 훈훈한 서비스와 은은한 향이 곁들여진다면 사기 싫은 아이템도 덜컥 사고 말 것 같다. 요즘엔 하나가 추가됐다. 쇼핑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음악이 그것. 완벽 쇼핑으로 이끄는 오감 만족을 위한 노력이다. 지난해 10월 재단장한 분더샵 청담은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공간인 만큼 음악에도 신경을 썼다. “고객들이 패션, 뷰티, 아트, 음식을 즐길 때 음악까지 200%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고른 음악을 준비했다고 분더샵 담당자는 전한다. “젊고 동시대적인 N 빌딩 1~3층 음악은 YG 아티스트인 테디, 클래식하고 세련된 S 빌딩은 피아니스트 윤한이 작업했습니다.” 가령 부첼라티와 레포시가 자리한 1층 주얼리 매장에서는 리케 리(Lykke Li)의 ‘Gunshot’과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Latch’가 들린다. 반면 VIP 라운지에는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Amore’와 크리스 보티(Chris Botti)의 ‘Caruso’가 흐르는 식. 이 음악 리스트는 1개월마다 업데이트된다. 대대적 공사를 거친 압구정동 갤러리아 역시 음악에 신경을 썼다.

맨 먼저 하드웨어부터 바꿨다. 지난해 3월 리오프닝 때 모든 스피커를 ‘Bose’로 교체한 것. “층별 음악이 다른 사운드 마케팅을 준비했습니다”라고 갤러리아 측은 전한다. “‘뮤직 살롱’이라는 컨셉 아래 고객들이 바라보는 아이템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들리죠.” 특히 흥미로운 점은 공간에 따라 사운드 볼륨까지 세밀하게 고려했다는 사실. “대화와 유동 인구가 많은 구역 등에 따라 사운드 레벨을 미리 설정했습니다.” 웨스트 1층은 백화점에 들어오자마자 활기를 느낄 수 있게 최신 팝과 경쾌한 재즈를, 또 컨템퍼러리 여성복으로 구성된 2층은 부드러운 라운지와 퓨전 재즈 음악을 선곡했다. 또 란제리 존에서는 프렌치 팝, 보사노바가 들린다. 트렌디한 3층의 경우 애시드 재즈, 데님 존에는 일렉트로닉, 4층 남성복 존은 모던록과 R&B 등등. 그야말로 오리지널 쇼핑 사운드트랙의 완결판! 다양한 카테고리의 브랜드와 제품이 마련된 대형 멀티숍과 백화점이 동선에 따라 음악의 흐름에 신경 쓴다면, 단일 브랜드 매장은 고유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한다. 최근 쇼핑 사운드트랙을 마련한 에르메스가 대표적인 예다. “전 세계 에르메스 매장에는 음악이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라고 에르메스 하우스는 전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매장 3층 VIP 룸과 신라호텔 매장이 그곳. 파리 본사는 유난히 조용한 이곳을 특별 배려했다. 매장이 운영되는 10시간 동안 222개 트랙을 마련해 음악을 선물하기로 한 것. 지난 1월 1일부터 카페 마당에서는 카를라 브루니, 샬롯 갱스부르 등의 익숙한 프렌치 팝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반면 음악 애호가를 디자이너로 둔 브랜드들은 역시 매장 음악을 중요시한다. 조니 미첼부터 벡, 킴 고든 등의 뮤지션들을 광고 모델로 섭외할 만큼 음악에 푹 빠진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은 전 세계 매장용 음악을 손수 고른다. 지금 생로랑 매장에서는 어떤 음악이 플레이되고 있을까? 라 팜므(La Femme)의 ‘Telegraphe’와 ‘Anti Taxi’, 마리 플로르(Marie-Flore)의 ‘Fancy Me’와 ‘All Mine’, 타히티 보이 앤 더 팜트리 패밀리(Tahiti Boy and the Palmtree Family)의 ‘All That You Are’ 등신나는 록 뮤직. 시즌마다 슬리먼은 새로운 리스트를 공유한다.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는 거대 브랜드들은 특별한 사운드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한다. “전 세계 구찌 매장에는 ‘무드 미디어’라는 기계가 있습니다”라고 구찌 홍보 팀은 설명한다. 비디오 플레이어 크기로 이태리 본사에서 음원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그날 음악이 다운로드돼 매장에 재생되는 시스템. “프리다 지아니니는 LP판을 무려 8,000장 넘게 소유하고 있을 만큼 음악 애호가입니다. 그녀의 의견에 의해 다양한 음악이 플레이되죠.” 이태리 본사에서 선곡하면 3개월간 그 리스트가 매일 새롭게 믹스돼 전 세계로 ‘송출’된다. 구찌 코리아는 시스템을 구축한 채 저작권 업무만 처리하면 된다. “얼마 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오픈한 ‘구찌 카페’ 역시 ‘무드 미디어’를 통해 구찌만의 멜로디를 들려줬습니다.” 돌체앤가바나 역시 비슷하다. 밀라노 본사에서 음악을 정해 실시간 전 세계 매장에 울릴 수 있게 한 것. 팝부터 칸초네까지 다양한 장르가 컬렉션, 디스플레이, 계절, 이슈 등에 맞춰 바뀐다. “우리는 ‘레드 포인트’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 세계 플래그십 스토어에 같은 음악과 영상이 스트리밍 되게 하고 있죠.” 이 외에도 프라다는 매 시즌 160여 곡을, 미우미우는 180여 곡을 선정해 전 세계 매장에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을 갖지 못한 브랜드는 기발한 방법으로 고객과 소통한다. 발렌시아가는 매장에서 재생할 수 있도록 파일이나 리스트를 보내는 게 아닌, 매 시즌 새로운 아이팟을 각 나라에 발송한다. 120여 곡이 수록된 이 아이팟은 발렌시아가 매장에서 오디오 시스템을 대신한다. 덕분에 전 세계 발렌시아가 팀은 본사 출장 때마다 새로운 아이팟을 들고 귀국한다.

그런가 하면 매장에 음악 담당 직원이 머무는 경우도 있다. 베를린, 상하이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플래그십 스토어인 서울에는 아예 선곡을 담당하는 ‘뮤직 매니저’가 따로 일한다. 단순히 브랜드와 시즌에 맞춘 음악이 아닌, 그 매장이 자리한 도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것. “모든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라운지 바가 설치돼 있습니다”라고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팀은 설명한다. “그 곳의 태블릿 PC를 통해 어떤 음악이 선정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또 직접 들어볼 수 있죠.” 매주 업데이트되는 리스트가 궁금하다면 매장에 들어가 라운지로 향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음악을 집이나 차 안에서 들을 순 없을까? 10 꼬르소 꼬모는 매장 음악을 CD로 엮어 판매한다. 아트 디렉터 크리스 루스가 지휘하는 컴필레이션 앨범은 매장 음악으로 편집돼 있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10 꼬르소 꼬모는 시간에 따라 다른 음악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오전, 점심과 오후, 늦은 오후와 저녁 등으로 분류된 음악이 이 감각적인 공간에 흐른다. 오전엔 주니어(Junior)의 ‘I Don’t Listen Much’, 점심쯤엔 주왁스(ZooWax)의 ‘Nine to Five’, 늦은 밤에는 더티 홍커스(Dirty Honkers)의 ‘Ginger Bread Man’ 등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10 꼬르소 꼬모 이미지를 완성하는 또 다른 요소다.

10 꼬르소 꼬모가 특별한 CD를 기획하지만, 사실 CD를 구입하는 고객이 이제 많지 않다. 그래서 브랜드들이 선택한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다. 전 세계 젊은 멋쟁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쇼핑 사이트 센스(ssense.com)는 자신들이 믹스한 음악을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계정에 올린다. 이와 함께 그들이 반한 새 뮤지션에게 믹싱을 부탁하거나 새로운 아티스트도 소개한다. 새파란 독일 뮤지션인 닐스 호프만(Nils Hoffman)이 선택한 음악을 들으며 라프 시몬스의 신상을 쇼핑하는 재미란! 전 세계 54개국 3,540개 매장에서 동일한 음악을 틀고 있는 H&M 역시 젊은 음악 팬들을 섭렵하기 위해 스포티파이(Spotify,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 자신들의 시즌 믹스를 올려 공유한다. 덕분에 H&M 매장에 들르지 않고 스마트폰만으로 현재 매장에서 흐르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또 파리에 다녀온 패션 피플들이 전리품처럼 챙겨오던 패션숍 컴필레이션 CD의 선구자 꼴레뜨는 시대에 맞게 온라인 쇼핑을 위한 배려를 마련했다. 공식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매장 직원들이 준비한 음악이 백그라운드 음악처럼 자동 재생된다. 음악이 거슬린다면 정지 버튼만 클릭하면 끝!

“내 음악에 다른 이들이 공감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보그 코리아> 인터뷰를 통해 뮤직 디렉터 미셸 고베르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슈퍼 브랜드(샤넬, 디올, 펜디, 구찌, 셀린, 발렌티노,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로다테, 프로엔자 스쿨러 등)의 패션쇼 음악을 죄다 담당하는 그는 10분짜리 쇼를 위해 최적의 음악을 고른다. 개성 넘치는 음악을 준비한 매장과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고객의 귀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잘 표현할 음악을 고르고 골라 쇼핑의 재미를 증폭시키는 중이다. “음악 없는 인생은 실수에 불과하다”라고 니체가 말했나? 청각을 자극하는 패션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 “음악 없는 쇼핑은 실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