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윌슨을 기리며

ⓒ Gary Wa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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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성 바오로 성당의 높은 돔 천장 아래에 고(故) 루이스 윌슨 교수를 사랑하던 이들과 그녀의 교수법을 인정하는 영국 패션계 인사들이 모여 루이스 윌슨의 삶을 기렸다.

대리석 조각, 흰색과 검은색 모자이크로 꾸며진 이 고귀한 장소에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컬리지의 모든 예술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비롯해 윌슨 교수과 연을 맺었던 이들로 가득 찼다. 윌슨 교수는 호전적인 교수법으로 크리스토퍼 케인과 시몬느 로샤부터 록산다 일린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난 정말 수줍음을 심하게 타는 학생이었고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았어요.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준 건 윌슨 교수지요.” 마리 카트란주가 이 유명한 학교에서의 초창기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 행사는 슬픔과 동시에 희망적이었다. 그녀의 절친인 패션 비평가 사라 무어는 루이스가 지녔던 승마에 대한 열정을 기리기 위해, 사라 버튼이 만든 알렉산더 맥퀸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성당 앞에서 말을 타도록 했다.

무어는 “기억나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한번은 루이스가 저를 사무실로 불렀는데, 그곳에는 어떤 젊은 스코틀랜드 남자애가 네온색깔의 베르사체 메두사 벨트를 차고 있더군요.”라고 말했다. 그 남자애는 바로 당시 젊고 무명이었던 크리스토퍼 케인이었다(크리스토퍼 케인은 이날 갑자기 모친상을 당해 참석하지 못했다).

알버 엘바즈는 그와 그의 회사 랑방에 수많은 졸업생들을 연결시켜 준 윌슨교수와의 열렬한 관계가 마치 두 명이 하나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탱고와 같았다”라고 말했다.

“탱고를 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죠. 이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제 정의입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 디자이너는 오직 한쪽 눈만 성했던 루이스가 두 눈이 모두 건강한 사람들보다 예리했다고 덧붙였다.

과제가 미흡할 때나 아님 그저 내가 어떤 학생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안들 때 루이스가 불호령을 내리던 건 그녀가 그 학생의 작업을 진심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TG라 불리는 아들 티모시는 자신의 아빠인 티미의 말을 인용하며 루이스의 따뜻한 면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가 죽기 몇 달 전, 세인트 마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진작가 크리스토퍼 무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점심초대를 했다. 루이스는 물론 너무나 바쁘니 “내 자리 따로 빼놓지는 마”라고 얘기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나타나서 껄껄 웃으며 학생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늘어놓았다.

ⓒ Suzy Menkes

ⓒ Suzy Menkes

그녀의 상사라 할 수 있는 제인 래플리 교수는 “윌슨의 정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제나 검은 옷을 차려 입었었죠. 아름다운 머릿결에 빛나는 피부를 하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거친 말을 내뱉었어요. 나는 루이스가 내 밑에서 20년 간 일했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그건 완전히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죠. 루이스는 자기 자신만의 열정과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일한 거였어요.”

이 “완벽한 교육자”는 제자들을 전 세계로 내면서 국제적인 전설이 되었다. 빅토리아 베컴과 카니예 웨스트 같은 스타들도 성 바오로 성당에 나타났고 루이스가 1990년대 뉴욕에서 함께 일했던 도나 카란 역시 추모를 위해 날아왔다. 

“루이스는 오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저곳에 루이스가 있음을 느낄 수 있죠.” 도나 카렌은 가스펠 음악을 노래하는 비스포크 성가단 쪽으로 손짓하며 말했다. 비스포크 성가단은 오늘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추모식을 시작한, 너무나 영국다운 성 바오로 성가대와 대비됐다.

존경과 사랑을 담은 제자들과 패션관계자들의 특별한 이벤트 뒤에는 또 다른 어두운 이야기가 있다.

영국 패션협회를 이끄는 나탈리 마스네가 런던 패션 위크의 스타들을 배출해내는 윌슨을 전적으로 신망하는 와중에, 루이스 자신은 영국정부가 등록금을 인상한 것에 대해 우려와 분노를 표현한 적 있다.

ⓒ Gary Wa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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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책은 학생들이 엄청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이론상으로는 나중에 이를 갚도록 장려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 결과로 그녀가 사랑하는 세인트 마틴이 그저 “돈 많은 애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격분했다. 특히나 영국의 예술과 디자인 교육을 그저 “신부수업”으로 보는 아시아 부자들로 말이다.

루이스는 이 싸움을 그저 즐겨야만 할 뿐 혼자서는 정부와 맞붙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날 성당에 모인 힘 있고 존경 받는 이들 가운데서 영국과 전 세계 패션의 미래를 위해 이 훌륭한 싸움을 계속해줄 사람이 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날 저녁, 루이스 윌슨 교수로부터 선택 받고 가르침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 마지막 학생들의 작품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컬리지가 선사함에 따라 루이스 윌슨 교수에 어울리는 마지막 찬사가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English Ver.

 

Remembering Louise Wilson 

Under the soaring cupolas of London’s St Paul’s Cathedral, Professor Louise Wilson’s life was celebrated by those who loved her and a British fashion world that recognised her teaching skills.

The noble interior, with its marble statues and black and white mosaics, was filled with those whose lives she had touched, especially an entire generation of students at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where her combative teaching produced so many stars, from Christopher Kane to Simone Rocha to Roksanda Ilincic.

“I was super-shy – I didn’t talk to anyone. She made me,” said Mary Katrantzou of her early days at the famous school.

The event was both sad and uplifting. To mark Louise’s passion for riding, Louise’s close friend, the fashion critic Sarah Mower, arranged for a model to ride sidesaddle in front of the Cathedral, dressed in Alexander McQueen by Sarah Burton.

Mower remembered “So many things,” including “Louise calling me into her office, where there was a young Scottish boy wearing a Versace neon-bright Medusa belt,” who was the young and unknown Christopher Kane. (He was unable to attend as his mother suddenly passed away.)

Alber Elbaz insisted that his tempestuous relationship with the Professor, who provided him and his company, Lanvin, with so many graduates, was “like a tango”, as the two danced to the same beat.

“When you tango, it is about trust – that is my definition of love,” the Paris-based designer said, adding that Louise’s single functioning eye was sharper than of those who had two.

Having been at the whipcrack of Louise’s rage when she disapproved of a review, or merely what I said about one of her students, I knew it was because this was a teacher who cared deeply about her work.

I also had an opportunity to see the warmer side that her son Timothy, known as TG, spoke about, partly in his father Timmi’s words.

Less than a month before she died, I invited Louise to a lunch to celebrate the birthday of photographer Christopher Moore, who teaches students at Saint Martin’s. She, of course, was too busy – “Don’t save a space for me,” she insisted – but then turned up and with her big belly-laugh told us unprintable stories about the students.

Professor Jane Rapley, technically Louise’s boss, spoke about the “essence of Wilson”: “Always in black, with her beautiful hair, radiant skin, resonant voice and foul language.”

“I was going to say that she worked for me for over 20 years, but realised that this was completely delusional,” Rapley said. “She worked on her terms, with her passion and her standards.”

This “consummate educator” had become so globally legendary for sending her graduated students around the world, that today’s stars – from Victoria Beckham to Kanye West – showed up at St Paul’s, while Donna Karan, with whom Louise worked in New York in the 1990s, flew in to honour her.

“She embodied this building today – I could see her up there,” Donna said, gesturing towards The Bespoke Choir playing gospel music against the so-English choral team from St Paul’s who started the ceremony with ‘Amazing Grace’.

Behind this exceptional event of former students and the fashion industry coming out of respect and love, there is another, darker story.

While Natalie Massenet, in her leading role in the British Fashion Council, credited Wilson with creating the stars of London Fashion Week, Louise herself was possessed with anxiety, anger, and rage against the British government’s change of tuition fees.

A new policy demanded that students get deeply into debt, which theoretically they would later pay back. The result, Louise told me in one of her massive flare-ups, was that her beloved Saint Martin’s was filling up with “rich kids”, especially Asian families seeing British art and design education as a “finishing school”.

Louise knew that she could not take on her country’s entire government single-handed, although she would only have relished the fight.

Let’s hope that among the powerful and the respectful in the cathedral, there is someone left to fight that good fight – for the future of fashion in the UK and across the world.

For now, a fitting tribute and final flourish to Louise Wilson’s career will be on stage this evening, as the 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ents the work of the last class of students who had the privilege to be chosen and mentored by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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