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도쿄에서 열린 첫 프리폴 패션쇼

2016.03.17

by VOGUE

    도쿄에서 열린 첫 프리폴 패션쇼

    디올 역사상 첫 프리폴 패션쇼를 위해 라프 시몬스와 디올 팀은 도쿄를 찾았다.
    초대형 무대에 펼쳐진 컬렉션은 현실적이고 미래적인 여성들을 위한 디올의 비전 그 자체였다.

    ‘리얼 워드로브(Real Wardrobe)’라는 단어가 패션계 최고의 칭찬으로 떠오른 요즘, 디자이너들에게 현실적인 스타일은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덕분에 디자이너들의 환상과 상상력이 만개하는 봄과 가을 메인 컬렉션만큼 중요해진 것이 있다. 상업적인 옷으로 가득한 리조트와 프리폴 컬렉션이 그것. 한때는 ‘낀’ 컬렉션으로 불리며 무시받기도 했지만, 이제 리조트와 프리폴 컬렉션은 브랜드에 수익을 안겨주는 데 있어 효자 중의 효자다. 2015 프리폴 컬렉션을 준비하던 디올의 라프 시몬스 역시 ‘현실’을 직시하려 애썼다. “디올은 대부분 특별한 경우나 레드 카펫처럼 소중한 순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대신 시몬스는 ‘가드로브(Garde-robe)’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디올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는 한 여성을 상상했습니다. 디올 차림으로 정원을 가꾸고, 남자 친구와 오토바이를 탄 채 도시를 가로지르기도 하죠. 혹은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향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기도 합니다.”

    이번 디올 프리폴 컬렉션이 더 중요했던 이유는? 처음으로 런웨이 패션쇼 방식으로 프리폴 컬렉션을 공개했기 때문. 뉴욕에서 선보인 리조트 컬렉션에 이어 프리폴 쇼의 목적지는 도쿄였다. 그리고 쇼장은 무려 1만명이 넘는 관객을 수용하는 스모 경기장이다. “디올과 일본의 관계는 아주 긴밀합니다. 그 역사는 매우 흥미롭죠.” 그의 설명대로 일본과 디올의 관계는 어떤 패션 하우스보다 밀접하다. 어린 무슈 디올은 일본 호쿠사이 회화에 푹 빠져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구한 회화로 집 안을 꾸미기도 했다. 또 전성기 시절 무슈 디올은 53년 도쿄에서 꾸뛰르 쇼를 발표하는가 하면, 일본 왕족의 결혼식을 위해 웨딩 드레스도 디자인했다. 그런가 하면 존 갈리아노가 일본에 헌정한 2007년 꾸뛰르 컬렉션은 일본 열도를 향한 애정 그 자체.

    기모노부터 스모, 호쿠사이 회화 등의 일본 문화는 디올뿐 아니라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정작 도쿄에서의 쇼를 준비하던 시몬스는 전형적인 일본풍을 피했다. “일본에 오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이번 컬렉션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도쿄에서 쇼를 발표하기로 한 뒤 몇 가지 의상을 더하긴 했지만요.” 그가 선택한 건 일본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다. “20년 전 처음 제 옷을 알아봐준 일본 바이어들 덕분에 그때부터 도쿄를 오갔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걸 보고 배웠죠.” 그는 스트리트 스타일을 담은 <Fruits> 매거진을 즐겨 봤고 한때 시부야 맥도날드 앞을 배회하는 ‘갸루족’을 구경하기 위해 하루 동안 햄버거를 스무 개 이상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 가운데 도쿄가 지닌 미래적 이미지와 거리를 오가는 멋쟁이들이 이번 컬렉션의 포인트. “패션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쿄 사람들이 옷 입는 방식에 대한 컬렉션이라 할 수 있죠. 이를 위해 매우 화려한 것과 아주 실용적인 옷을 접목했습니다.”

    도쿄의 스모 경기장인 국기관에서 펼쳐진 디올 프리폴 컬렉션장의 전경. 철골 구조물 아래로 가짜 눈이 내리고, 모델들은 미래에서 온 여성들처럼 무대를 거닐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1일 저녁, 전 세계에서 날아온 기자와 VIP 1,200명이 도쿄 료고쿠 국기관으로 몰려들었다. 오드리 토투와 헤일리 스테인펠드 등의 월드와이드 스타들은 물론, 다소곳하게 꽃단장한 일본 고객들은 모두 색색의 디올 컬렉션으로 빼입고 스모 경기장의 웅장한 입구를 통과해 쇼장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시몬스만의 ‘리얼 워드로브’에 대한 해답이 공개되는 순간. 거대한 격자 철골이 사각형의 ‘도효(스모 경기가 벌어지는 다다미 바닥)’ 위로 내려오더니 그 위로 가짜 눈발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흩날렸다. 동시에 비욕의 ‘Hunter’가 흘러나오며 카멜색 가죽 코트 차림의 모델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시몬스의 설명대로 현대 여성들을 위한 옷 그 자체였다. 왁싱한 코튼 코트, 와이드 팬츠와 매치한 니트 조끼, 매력적인 실루엣의 시프트 드레스 등등. 물론 디올의 바 재킷도 잊지 않았다. 허리가 살짝 들어간 코트와 꽃무늬 자카드 재킷은 레드 카펫보다 프랑스 북부 해변에 더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여러 모델이 입은 아주 얇은 파이에트 장식 세퀸 터틀넥 스웨터는? “사실 저는 세퀸을싫어해요! 하지만 세퀸의 방향을 돌려보니 아주 따뜻하고 편안한 스웨터로 만들 수 있었죠.”

    새롭게 업데이트된 ‘뉴 룩’ 외에 인상적인 디자인은 많았다. 사각 체크 패턴의 토글 코트와 페어 아일 패턴의 니트는 영국의 교외에서 힌트를 얻은 듯했다. 또 건축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의 부츠는 망가 속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양 갈래로 땋아 동그랗게 말아 올린 헤어와 눈의 중앙에만 은박을 붙인 듯한 메이크업 역시 <공각기동대> 같은 만화에서 걸어 나온 여성처럼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쇼가 계속되는 동안 눈발은 연속해서 모델 위로 흩날렸다. 그리고 모델들은 시부야의 유명한 횡단보도를 걷듯 도효 위를 교차하며 걸어 다녔다. <인터스텔라>의 웅장한 음악과 <블레이드 러너> 속 유명한 대사들을 배경으로 쇼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잠시 후 63벌이 일렬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피날레를 장식하자 관객 모두가 휴대폰을 높이 든 채 이 초현실적인 순간을 촬영하느라 바빴다. 그 순간 비욕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만약 여행이 찾는 것이고 집을 찾았다 해도 난 멈추지 않겠어.” 그 순간 만큼은 료고쿠 국기관 관중석에 앉은 관객들의 마음에 하나의 신념이 자리 잡았다. 라프 시몬스의 디올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사진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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