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 등장한 선인장

뾰족한 가시, 통통하고 구불거리는 몸, 어두운 녹색 등등.
외계 생명체 같은 식물이 유행의 최전선에 등장했다!
선인장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야말로 이번 시즌 트렌드세터다.

패셔너블한 장소에 빠지지 않는 소품으로 떠오른 선인장. 가죽 라운지 체어와 크고 작은 선인장들이 자리한 곳은 선인장 전문점 ‘씨클드로’ 매장. 빨간색 레이스 톱과 도트 패턴 팬츠, 분홍색 새틴 슈즈, 백 모두 선인장에서 영감을 얻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크루즈 컬렉션.

킨티아, 프라일레아, 유퀴나, 해리시아…. 그리스 고대 희곡에 등장하는 왕의 네 딸들, 혹은 마녀 자매를 떠오르게 하는 고전적 이름은 선인장 종류의 학명이다. 울룩불룩한 모양과 진초록, 뾰족한 바늘과는 어울리지 않게 우아한 이름을 지닌 녹색식물은 방금 막 오픈한 카페부터 패션 매장과 멀티숍, 심지어 브랜드 룩북에 자주 등장하는 ‘라이징 스타’다.

지난해 9월, 영국 브랜드 ‘휘슬즈’ 남성 컬렉션 론칭 행사장은 대형 선인장으로 뒤덮였다. 손님들의 식사 테이블을 장식한 것 역시 선인장의 형제쯤 되는 다육식물. 간결한 실크 아이템으로 인기 있는 ‘마리나 런던’ , 요즘 인기 절정인 인조 모피 브랜드 ‘쉬림프’ 룩북에도 유일한 소품으로 선인장 화분이 등장할 정도다. 파리 생제르맹 데 프레 매장뿐 아니라 얼마 전 오픈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제롬 드레이퓌스의 인테리어 소품 역시 멕시코 사막에서 막 뽑아온 듯 거친 매력을 내뿜는 선인장이다. 그런가 하면 모나코에서 선보인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에도 도식화된 선인장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크루즈 컬렉션 사진집은 파리 본사와 모나코에서 촬영한 이미지로 구성했습니다. 각각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영감을 준 자연물 사진과 나란히 배열했죠.” 루이 비통 코리아에 의하면,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찍은 <루이 비통 컬렉션 북>은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활자 대신 이미지로 컬렉션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들의 두 번째 작업인 크루즈 컬렉션 북(에 이은)을 채운 구불거리는 유기적 곡선, 뾰족한 금속 프린지와 길고 가는 의상,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바늘이 빼곡히 솟아 있거나 털북숭이인 채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야생 선인장의 강렬함이란!

 

라이프스타일 컨셉 스토어를 표방하는 ‘플랫폼 플레이스’ 한남점에서는 오픈 때부터 작은 선인장과 다육식물 화분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 “예상보다 판매가 좋아 얼마 전 오픈한 코엑스 파르나스몰 점에서는 좀더 큰 선인장 화분을 팔고 있어요.” 플랫폼 플레이스 마케팅팀은 최근 라이프스타일에서 화두가 된 가드닝에 쉽게 접근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선인장 판매를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선인장은 책상이나 베란다, 거실 한 편에 둔 채 큰 관심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 근사한 오브제가 될 수 있어요.” 패션과 리빙 제품을 선보이는 영국 브랜드 ‘하우스 오브 해크니’에서도 선인장 화분은 인기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갑니다. 샷글라스 크기의 미니 화분에 담긴 60펜스짜리부터 사람 키만한 300파운드까지 다양하죠. 처음 매장을 열 때부터 매장에 플로리스트를 두고 이런저런 꽃들을 팔았지만, 꽃은 계속 시드는 반면 오래 사는 선인장이 더 적절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대유행 중이죠.” 공동설립자 자비 로일은 봄 컬렉션에도 선인장 프린트를 응용할 거라고 전한다.

 

“햇볕이 잘 드는 그 어느 곳이든 잘 놓아두고서 한 달에 한 번만 잊지 말아줘, 물은 모자란 듯 하게만 주고. 차가운 모습에 무심해 보이고 가시가 돋아서 어둡게 보여도 걱정하지 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선인장’의 가사처럼, 선인장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들여도 금세 시드는 식물에 비해 관리가 수월하다. 최근 선인장에 관심을 보이는 소비층은 기르는 재미보다 장식 효과를 기대한다고 도시 가드닝 컨셉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가든하다’는 분석한다. “기하학 형태나 패턴처럼 보이는 가시처럼, 식물인데도 지극히 모던한 외형을 갖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식물로서의 존재감도 커서 세로로 긴 선인장 화분 하나만으로도 한결 공간이 넓고 시원해 보이죠.” 인테리어 소품으로 세련되게 심고 가꾸려면 몸통과 화분의 비율을 2:1로 잡고(몸통 높이가 애매하다면 1:1로 할 것), 화분은 선인장보다 좀더 톤다운된 색상으로 고르는 게 좋다. 클수록 손이 적게 간다. 또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 타입(가시가 많고 통통한)이 물과 햇빛이 적은 환경에도 적응을 잘한다. 그러나 실내에서 ‘적당히’ 키우며 쑥쑥 자라길 기대할 순 없다. 역시 식물은 해를 많이 보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적절한 영양분과 함께 길러야 잘 자라고 봄과 가을에 꽃도 피운다(‘에이랜드’ 이태원점과 ‘원더플레이스’ 홍대점에서 ‘가든하다’의 선인장 화분이 판매되고, 연남동 ‘씨클드로’ 같은 선인장 전문 숍까지 오픈하는 중. 물론 주위 꽃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자, 나만의 공간에 큼지막한 선인장 화분을 들인 순간 인테리어에 힘과 중심이 생길 것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늘 시선이 그쪽을 향하게 될 테니까. 볕이 잘 드는 발코니나 커다란 창가도 좋다. 게다가 낡고 차가운 인더스트리얼풍이나 이국적인 인테리어와도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게 선인장이다. 작은 유리 볼에 돌멩이나 조개와 함께 작은 선인장을 넣은 테라리움도 유행인 요즘이다. 패션계의 화려한 속도에 지쳤다면, 지금은 선인장의 녹색 기운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