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초월 최고가 패션 세계

누군가에게 팔기 위해 존재하고 또 실제로 누군가가 사들이는 건 분명하다.
차값, 집값을 훌쩍 뛰어넘는 상상 초월 최고가 패션 세계!



지난 연말,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항공사 고위 관계자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출석할 당시 검정 코트와 머플러 차림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부터 무채색 의상까지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네티즌 수사대는 ‘매의 눈’으로 옷차림을 분석했다. 코트는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 세이블 믹스로 4,000만원, 목도리 역시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 친칠라 믹스로 1,000만원쯤 된다는 것. 만약 그녀의 코트가 세이블 믹스가 아니라 100% 비쿠냐라면 1억원을 훌쩍 넘길 거라는 추측까지 나오면서 온라인이 금세 뜨거워졌다. 그런가 하면 전 국민을 90년대 추억 속으로 몰아넣은 <무한도전-토토가>에서 간만에 등장한 이정현 역시 변함없는 미모와 함께 900만원대의 21드페이 야상 재킷, 3,000만원이 넘는 에르메스 버킨 백으로 화제가 됐다. 또 새해 첫 연예계 스캔들이 더 관심을 끈 이유는? 디스패치 사진 속 이정재의 그녀가 입은 옷값이 총 6,000만원 이상이었기 때문.

소수에 의해 소비되는 하이패션 브랜드 아이템의 가격이 어느 때보다 관심 대상이 됐다. 1955년 작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그 유명한 지하철 환기구 장면에서 마릴린 먼로가 입은 흰색 홀터넥 드레스는 할리우드 영화 기념품 중 최고가로 팔린 아이템이다. 지난 2011년 50억5,000만원에 낙찰! 먼로라는 상징적 인물이 결정적 순간에 입은 드레스인 만큼 영화광들에게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매 시즌 새롭게 디자인되고, 또 한 시즌이 지나면 트렌드가 바뀌는 기성복 컬렉션은 대체 왜 날이 갈수록 가격이 치솟는 걸까? 치솟는다면 대체 얼마까지 치솟을 수 있을까? 

 

생로랑 2015 S/S 컬렉션에는 약 2억짜리 드레스가 등장했다(할렐루야!). 수만 개의 스팽글과 비즈를 한 땀 한 땀 수놓은 미니 드레스가 그것. 워낙 고가이기에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에 돌입하는데, 지난해 9월 패션쇼 이후 딱 한 벌을 중국 고객이 구입했다는 후문. 웬만한 집값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가격의 드레스지만 보시다시피 지구 상의 누군가는 사 입는다.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후, 생로랑 하우스는 매 시즌 더 비싼 아이템을 제작하는 분위기. 슬리먼은 무슈 생로랑의 정신을 잇기 위해 공방의 기능을 강화했고, 그 결과 꾸뛰르 컬렉션에 육박할 만큼 정성을 쏟은 옷들이 기성복 컬렉션에 추가된 것이다. 

 

물론 특별한 옷감도 한몫했다. 더 이상의 디자인은 없기에 매 시즌 디자이너들은 좀더 기상천외한 소재를 찾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가령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이번 시즌 루이비통 컬렉션에는 얇고 가벼운 뱀장어가죽이 곳곳에 쓰였다. 특별한 크로셰 방직기를 사용해 가죽을 엮은 톱, 라이더 재킷, 그리고 세 가지 컬러의 가죽을 완벽하게 퍼즐 맞추듯 완성한 미니 드레스 등등. 아직 가격 미정이지만 이번 시즌 루이 비통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에 노미네이트된 의상들이다(마크 제이콥스 시절에는 온통 세퀸과 원석 장식으로 뒤덮은 팬츠 수트 시리즈의 2012 F/W 컬렉션이 가장 비쌌다). 또 프라다의 지난 2013 F/W 컬렉션에는 밍크와 세이블이 믹스된 약 1억5,000만원짜리 코트가 등장했다. 남성복 역시 다를 게 없다. 브룩스 브라더스가 ‘궁극의 브룩스 브라더스 수트(Ultimate Brooks Brothers Suit)’로 지칭하는 메리노 울과 몽골리안 캐시미어로 만든 수트는 한 벌 가격이 1,500만원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규모가 작은 액세서리들은 좀더 저렴할까? 천만에! 올슨 자매의 더 로우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핸드백을 디자인한 적 있다. 가격은 무려 5,600만원. 허스트 작품이 지닌 엄청난 미래 가치를 감안한다면 차라리 좀더 투자해 그의 진품을 구입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가격이다. 한편 루이 비통의 최고가 아이템은 신디 셔먼과의 협업으로 완성된 ‘스튜디오 트렁크’다. 1896년 처음 등장한 모노그램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무려 2억원 상당! 그런가 하면 지난 연말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알레산드라 앰브로시오와 아드리아나 리마가 입은 란제리의 가격은 22억(페라리 스포츠카를 10대 살 수 있는 가격)! 루비 1만6,000개를 비롯해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등 온통 호사스러운 원석으로 장식됐으며, 1,380시간에 걸쳐 제작된 엄청난 피조물이다. 이런 천문학적 가격의 ‘작품’들은 과연 누구에게 팔려갈까? 지구 위에 극히 한정된 이 아이템들은 주로 중국과 아랍 부호들(한국에는 한 개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의 품에 안긴다. 그렇기에 희소성을 따지는 고객들이 더 혹할 수밖에. 반지 하나에 8,000만원을 호가하는 부첼라티는 전 세계 소수의 VIP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현지로 떠난다. 반나절 만에 수십억의 판매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지구 어딘들 출장 판매를 마다할까. 

 

지난가을 펜디 쇼에서 카라 델레빈은 칼 라거펠트를 꼭 닮은 가방 고리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모피 폼폼이 장식된 가방 고리의 가격은 180만원. 작은 가방 고리에 그 돈을 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놀랍게도 쇼가 끝나자마자 600명 이상이 선주문 완료! 누구에게는 소소한 지출, 또 다른 누구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일 것이다. 더 새롭고 각별한 컬렉션을 완성하려는 디자이너들과 그것을 소장하고 싶은 고객들이 있는 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수 있는 게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