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아담한 모델들의 반란

2016.03.17

by VOGUE

    아담한 모델들의 반란

    다른 세계에서 온 듯 근본적으로 다른 비율, 쭉쭉 뻗은 팔다리를 뽐내던 모델 시대는 끝났다.
    개성으로 똘똘 뭉친 아담한 모델들의 반란이 대한민국에서 시작됐다!

    ‘한국 패션 사진작가 협회’는 매년 연말, 그 해 패션계에서 가장 활약한 인물들을 뽑아 시상한다. ‘2013 올해의 신인 모델상’ 주인공은 지드래곤과 함께한 BSX 광고를 비롯, 여러 뮤직비디오와 패션지 화보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호정이다. 그리고 지난 연말, ‘2014 패션 사진가의 밤’에선 일 년 내내 <보그 코리아> 뷰티와 패션 화보에서 팔색조처럼 변신의 변신을 거듭한 황세온이 수상했다. 평생 단 한 번 뿐인 신인상 수상자들이 더 특별한 이유? 아가씨 두 명 모두 키가 간신히 170cm를 넘는다는 사실(이호정 170cm, 황세온 172cm)!

    지금까지 ‘모델답다’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 중 1순위는 뭐니 뭐니 해도 훤칠한 키였다. 한국 여성 평균 키가 162.2cm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호정과 황세온이 결코 작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모델로서 큰 키가 아니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한국 여자 모델 평균 키는 177cm). 글로벌 모델 랭킹 사이트 ‘모델스닷컴’은 ‘모델로서 성공하기 위한 최소 신장을 규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광고 모델과 패션 모델로 나눠 답변했다. 광고 모델은 167~168cm면 충분하지만, 런웨이에 서거나 잡지 화보 모델은 최소 175cm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 실제 모델스닷컴에서 높은 순위를 지키는 대부분의 모델들은 178cm 이상이다. 우리가 흔히 슈퍼모델이라 부르는 모델도 마찬가지(클라우디아 쉬퍼 178cm, 지젤 번천 178cm, 칼리 클로스 183cm).

    물론 키 작은 모델이 패션계를 사로잡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60년대 패션 아이콘 트위기는 고작 162.5cm였지만 하이패션 모델로서 멋지게 활약했다. 지난 20년간 최고의 자리에서 떠날 줄 모르는 케이트 모스 역시 168cm다. 또 160cm를 간신히 넘었던 데본 아오키는 샤넬, 펜디, 지방시 등의 런웨이에서 누구보다 당당했다. “패션계에는 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순간, 아오키는 이렇게 말했다.

    잘나가는 모델들의 키가 여전히 180cm 언저리인 패션계에서 볼 때 최근 한국 상황은 조금 다르다. 현재 에스팀 에이전시의 여자 모델 리스트에 오른 42명 중 175cm가 넘는 모델은 27명뿐. 그나마 키 큰 모델들은 대부분 한혜진, 송경아, 이현이, 김원경 등 10년 이상 활동한 소위 ‘언니 모델들’이다. 또 김성희, 수주, 곽지영 등 해외에서 활동 중인 모델들까지. 반면 최근 데뷔한 모델들은 대다수가 170cm 초반이다(진정선 174cm, 여혜원 170cm, 고소현 168cm 등등).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보 촬영장에서는 해외에서 들여온 샘플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특히 신발은 샘플 사이즈가 대부분 250mm 이상인데, 키 작은 한국 모델들에게는 그야말로 항공모함이다.

    모델들의 키가 왜 갑자기 작아진 걸까? <보그> 스타일 디렉터는 작은 키에도 맹렬하게 일하는 모델들의 공통점이 바로 훌륭한 ‘표정 연기’라고 설명한다. “요즘 모델들을 보면 <쎄씨> 지면에서 활약하다가 연기자로 변신한 공효진, 김민희 등이 떠오릅니다. 키는 작지만 비율이 좋고 표정이 풍부하죠. 화보 촬영장에서 컨셉에 맞는 연기를 멋지게 해내기에 자주 섭외합니다.” 그렇다면 작고 아담한 그녀들이 최근 유난히 눈에 띄는 이유는? “늘 키 작은 모델들이 한두 명은 있었습니다. 장윤주부터 구은애, 김미정 등등.” 그녀는 최근 스트리트 패션을 향한 큰 관심도 언급한다. “대중에게 좀더 친근감 있는 모델을 향한 수요가 늘어난 거죠.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공감할 모델들을 원합니다. 어린 고객들이 아담한 모델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각 브랜드의 룩북 모델은 아담한 모델들의 차지가 됐다. 기자와 바이어를 위한 런웨이 무대는 여전히 키 큰 모델들의 무대지만 말이다. “게다가 뮤직비디오에서 남자 아이돌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기에도 더없이 유리하죠.”

    바야흐로 광고 모델과 패션 모델을 구분한 모델스닷컴의 기준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러니 ‘모델답다’는 것을 단순히 신장으로 단정할 순 없다. 모델 각자의 매력이 그만큼 중요해졌으니까. 게다가 모델 각자가 셀러브리티로서 화제를 일으키는 동시에 모델 이후에는 연기자나 방송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수많은 SNS 창구를 통해 일상의 매력을 뽐내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일이 중요해진 이유다. 키 172cm쯤으로 알려진 카라 델레빈은 2012년 가을 루이 비통 쇼 캐스팅에서 “저 난쟁이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마크 제이콥스의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그녀가 패션계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슈퍼스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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