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션모델의 필수 조건, SNS

2016.03.17

by VOGUE

    패션모델의 필수 조건, SNS

    모델이 되고 싶은가?
    178cm가 넘는 장신, 가늘고 긴 팔다리, 멋진 골격의 런웨이 맞춤형 몸매로는 뭔가 부족하다.
    팔로워 50만 명 이상, 포스팅할 때마다 ‘♥좋아요’가 2만을 넘는 소셜 미디어 계정이 패션모델의 필수 조건인 시대!

    켄달 제너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오늘날 모델이 되려면 길고 가는 몸매와 매력적인 얼굴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SNS에서 한 인기하는 ‘잇 걸’이 되는 것! 이들은 꾸준히 경력을 쌓아 온 근면한 모델 지망생들-안타깝게도 SNS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을 제치고 모델계 입문과 동시에 초고속 엘리베이터에 탑승, 최상위 클래스로 수직상승하고 있다. 알랑가 모르겠지만 ‘인스타걸스’ 혹은 ‘인스타-스타’라 불리는 모델 세대의 첫 케이스는 바로 케이트 업튼. 2012년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대체 저 여잔 누구야?”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비키니로 풍만한 가슴의 주요 부위만 겨우 가리고서 ‘캣 대디’ 노래에 맞춰 깜찍하게 웨이브를 타는 동영상(그 유명한!)을 기억하나? 아직 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찾아볼 만하다.

    ‘육감적 몸매에 귀여운 수준의 백치미를 겸비한 옆집 소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업튼처럼, SNS에서 인기를 누리는 모델들은 몸매와 얼굴뿐 아니라 매력적인 성격과 패션 아이콘 못지않은 스타일로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한때 마크 제이콥스에게 ‘난쟁이’ 모욕을 당했던 카라 델레빈도 14차원쯤 되는 정신세계와 덕후 같은 포스팅으로 SNS계의 여왕님으로 등극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그리고 업튼과 델레빈에 이어 웜홀을 통과하는 속도로 뜨고 있는, 본격적인 소셜 미디어 모델 시대의 대표 주자가 바로 켄달 제너와 지지 하디드다.

    얼마 전 켄달을 새로운 광고 모델로 발표(1월호 ‘인보그’에도 소개됐던)한 에스티 로더는 그녀를 선택한 이유가 SNS상의 엄청난 파급력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켄달은 신세대를 대표하는 모던 뷰티이자 인스타걸이죠. 그녀의 이미지와 목소리, 에너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으로 에스티 로더를 전 세계에 소개하게 돼 흥분됩니다.” 에스티 로더의 글로벌 브랜드 대표 제인 헤르츠마크 후디스가 밝혔듯이 이 계약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1위에 빛나는 그녀의 인기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계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뉴욕 기반의 모델 에이전시 원 매니지먼트는 SNS에 특화된 모델 부서를 최근 신설했다. “‘원.1K’는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린 아름다운 소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중문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본화하고, 팔로워 수에 기반해서 모델들이 이득을 얻는 것을 돕죠. 브랜드는 바이럴 캠페인을 원하고, 그건 모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포장하면서 이뤄집니다. 개개인의 모델이 독자적인 미디어 브랜드가 되는 거죠. 오늘날 모델들은 단순히 광고의 피사체가 아니라 홍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 매니지먼트 대표 스콧 립스는 이 새로운 모델 그룹을 “모델계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원.1K에 소속된 모델은 팔로워 수가 100만이 넘는 피아 미아(뮤지션 겸 모델)와 애슐리 스카이, 멜리사 사타 등. 에이전시 홈페이지의 모델 얼굴 사진 아래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가 함께 표시돼 있다.

    엘리트 모델의 뉴욕 부서인 소사이어티 매니지먼트의 마케팅 코디네이터 비키 양은 소속 모델들에게 SNS 활동을 권장하고 심지어 포스팅 가이드라인(백스테이지를 너무 많이 공개하지 말 것, 일 외에 개인적인 취미에 대해서도 올릴 것 등등)까지 제시해준다. “그들이 단순한 마네킹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패션이나 모델에 관심이 많은 대중들과도 소통할 수 있죠.” 그 다음은? “브랜드에서도 패션모델이 브랜드를 소비하는 젊은 여자들의 중심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모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렇게 전파하죠. ‘이것 봐, 나 이 신상 백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거 진짜 멋져!’”

    적극적으로 SNS 라이프를 즐기는 모델들은 이미 이 먹이사슬 구조에 대해 ‘빠삭’하다. 최근 톰 포드 광고 모델과 2015년 피렐리 캘린더 걸 열두 명 중 한 명이 된 지지 하디드는 가벼운 리얼리티 TV 쇼 출신 셀럽에서 ‘하이패션’스럽고 ‘고급진’ 패션모델로 성공적인 환골탈태를 마쳤다. “‘어떻게 상업적 이미지에서 하이패션으로 옮겨갈 수 있었는가’가 제 모델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소셜 미디어를 즐기는 모델 세대라는 게 가장 컸죠,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외모뿐 아니라 캐릭터도 분명한 브랜드의 대변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SNS상에서 그 브랜드를 대표하고 그 방식에 대해 브랜드와 상의하는 비즈니스에도 익숙하죠.”

    국내 모델에도 관심이 많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가 모델로 데뷔하기 전 이미 소셜 미디어와 스트리트 스타일로 10대 소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케이플러스 소속 모델 주우재. SNS상에서 인지도를 쌓으며 우연찮게 모델로 데뷔한 그의 인기는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으로 전파 중이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중파에선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다.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인기는 여전하지만 그의 인기와 매력에 호기심을 느낀 디자이너와 기자, 광고주들이 그를 찾는 횟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 케이플러스의 김지영 과장은 보통 의류 광고를 계약할 때 SNS에 제품을 노출시키는 조항이 포함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소셜 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룰수록 포스팅을 할 때 자연스럽게 제품을 노출시키죠. 그렇지만 SNS 활동도 사생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도한 요구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는 편입니다. 모델 본인들도 실리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려고 하고요. 요즘에는 모델들 사이에서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을 위한 흑백 사진 릴레이 포스팅을 하고 있더군요.” 케이플러스는 모델 지망생 모집을 페이스북을 통해 진행하기 시작했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폴란드 출신 모델 에바 블라디미루크도 페이스북 메시지로 캐스팅된 케이스. 그녀가 열다섯 살 때 에이전시는 그녀에게 이런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안녕, 난 모델 에이전시에서 일하는데, 우리에게 폴라로이드 사진 좀 보내주겠니?” 윌레미나 에이전시의 이미지 디렉터 겸 코코 로샤(SNS를 가장 먼저 시작한 모델로 꼽히는)의 에이전트 로만 영은 5~10년 전만 해도 모델들은 외모나 촬영장에서의 태도로 평가됐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쿨한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 세계에서 모델의 부각은 ‘80~90년대 슈퍼모델 시대’의 동시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오미 캠벨이나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대단한 성격과 분명한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당대를 휩쓸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델들은 굳이여배우나 셀럽에게 패션지 커버를 양보할 이유가 없어졌다. 켄달 제너와 지지 하디드에 이어 그들과 껌처럼 붙어 다니는, 얼마 전엔 저스틴 비버와 염문설이 돌았던 SNS 스타 헤일리 볼드윈이 모델계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텀블러에서 사진 공유가 많이 되는 걸로 톱 5 안에 드는 니콜 리치의 동생 소피아 리치도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마쳤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지지 하디드의 동생 벨라도 언니와 같은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됐다. 자국 내 랭킹 승마 선수이자 사진가인 그녀는 친구들과의 밤 생활을 기록하거나, 말리부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휴가 사진을 올린다. “집에선 늘 골칫거리 그 이상이었죠.” 그녀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린 매우 비슷해요, 심지어 목소리까지 비슷하죠. 그렇지만 지지가 예쁘고, 똑똑하고, 재미 있는 반면 저는 늘 반항적인 쪽이었어요.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사람들이 우리를 다르게 봤으면 하는 거예요. 그래서 머리도 염색했거든요.” 서로 달라 보이길 원하는 건 언니나 여동생을 둔 전 세계 자매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모델의 길로 들어선 지점에서, 벨라가 언니와 다르길 바라는 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모델 각각의 캐릭터가 중요해진 SNS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서 ‘다르다’는 건 모든 점에서 결정적이니까. 소셜 미디어의 시대, 자기 홍보의 시대, 소셜 미디어 스타가 모델이 되는 시대. 이 시대에 모델이 되고 싶다면,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방식을 가진 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성공의 관건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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