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김종대와 권희라의 따뜻한 집

2017.01.11

by VOGUE

    김종대와 권희라의 따뜻한 집

    박공지붕과 붉은 벽돌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 집의 가구와 소품 대부분은 손재주 좋은 부부가 직접 만든 것이다.

    박공지붕과 붉은 벽돌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 집의 가구와 소품 대부분은 손재주 좋은 부부가 직접 만든 것이다.

    영화 프로듀서 김종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희라는 다락이 딸린 따뜻한 집 한 채를 지었다.
    텅 비어 있던 공간을 직접 만든 물건과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나간 이들에게
    집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다.

    “돈 없이 즐겁게 살려면 뭐가 제일 중요한 줄 아세요? 바로 사람이에요. 집이 하드웨어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소프트웨어죠.” 서울 외곽의 50평(165㎡) 남짓한 작은 땅에 5층짜리 집을 짓고 취향이 맞는 지인들과 삶의 한 부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부부에게 집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다. 스파클링처럼 톡톡 튀는 소소한 일상의 재미로 행복을 만든다는 뜻을 지닌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발포도건’의 대표 권희라는 4년 전, 난생처음 ‘집 짓기’라는 대모험을 감행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 전이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렸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아파트 생활에 염증이 난 상태였고, 마침 적당한 땅도 있었다. 반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마침내 집을 완성한 그녀는 그 험난하던 과정을 예측 불허의 오지 여행에 비유했다. “매일매일 상상도 못한 사건이 터졌고,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어요. 스스로 대처법을 찾아나가야만 했죠. 디자이너로 일한 지 12년이 넘었지만, 그제야 제가 누군지 알 것 같았어요. 집을 지어보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거예요.”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건 아니지만, 그사이 결혼을 하면서 새집은 자연스럽게 새 출발을 하는 신혼부부의 첫 번째 아지트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크랭크인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일본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종대다.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혼자 생활해온 남편과 오랜 시간 프리랜서로 활동해온 그녀는 결혼 후에도 주어진 경제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대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소규모 협동조합과도 같은 따뜻한 자급자족의 삶을 택했다. <킨포크> 라이프스타일이 국내에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각자의 취미와 감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비슷하다. 영화를 사랑하며 요리와 목공이 취미인 남편과 본업인 인테리어 디자인 외에도 바느질과 향초 만들기를 즐기는 아내는 틈날 때마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며 텅 비어 있던 공간을 자신들이 직접 만든 물건과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나갔다.

    영화 프로듀서 김종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희라, 그리고 이 집에서 나고 자란 다섯 살 난 딸 아민.

    영화 프로듀서 김종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희라, 그리고 이 집에서 나고 자란 다섯 살 난 딸 아민.

    “벽에 걸린 액자들은 딸 아민이를 위한 벤치를 만들고 난 다음 남은 졸대를 꺾어 만든 겁니다.” 다섯 살 난 딸아이의 사진이 걸린 액자를 가리키며 아빠 김종대가 말했다. 크루아상을 담은 나무 접시와 버터 나이프, 촛대, 티 테이블 역시 그가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목공예품이다. 남편이 조각을 하는 동안 아내는 아이의 옷을 지었다. “임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많아졌죠. 그때부터 취미 삼아 아기 옷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바느질은 단순노동이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더군요.” 아이 방의 깜찍한 인디언 텐트도 엄마 권희라의 솜씨다. 향초는 돌잔치 답례품을 직접 만들어보잔 생각에 시작한 또 다른 취미 활동.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인 발포도건의 인하우스 개념으로 발포상회를 개설한 그녀는 블로그를 통해 그 모든 취미 활동의 결과물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부부의 남다른 삶의 방식이 반영된 집은 구조부터 독특하다. 박공지붕 아래 원룸 형태의 다락은 부부의 작업실이자 딸아이의 놀이터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아래층 천장 역시 삼각 지붕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떡갈나무가 놓인 거실의 한쪽 벽면은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다용도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과 주방 사이엔 미닫이문을 설치해 공간을 가변적으로 활용한다. 

    다용도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과 주방 사이엔 미닫이문을 설치해 공간을 가변적으로 활용한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다락은 부부의 작업실 겸 딸아이의 놀이터. 남편이 목공 작업을 하는 동안 아내는 딸아이를 위한 옷을 만든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다락은 부부의 작업실 겸 딸아이의 놀이터. 남편이 목공 작업을 하는 동안 아내는 딸아이를 위한 옷을 만든다.

    “TV 선반을 겸한 이 원목 장식장은 외부 공사에 쓰고 남은 건축 자재를 재활용한 거예요. 그대로 사용하려고 보니, 구조적인 보강이 필요해 벽돌들을 쌓아 올리며 그 사이에 끼워 넣은 거죠.” 다이닝룸을 겸한 거실과 주방 사이엔 필요에 따라 여닫으며 공간을 나눠 쓸 수 있도록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헤이즐넛 색상의 미닫이문을 열면 하늘색 주방이 그림처럼 등장한다. “이런 가변적인 공간은 주택에서만 나올 수 있는 레이아웃이에요. 아파트는 거실과 주방, 침실 등의 위치가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설계를 하기가 힘들죠.” 홈 파티를 할 때마다 요리를 도맡는 남편은 이 공간이 주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무척 즐긴다. “요리할 때 문을 열면서 ‘짠’ 하고 보여주는 재미가 있죠.” 지붕의 홈을 따라 매달린 조명 트랙과 위쪽으로 빛을 쏘는 천장 등 역시 아파트에선 만나기 힘든 디자인이다.

    인조 대리석으로 만든 커다란 식탁 앞에 의자와 더불어 소파를 놓은 점도 특이하다. 식사와 요리는 물론 때로는 컴퓨터 작업과 책 읽기,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일도 모두 이 다용도 식탁 앞에서 이뤄진다. “어떻게 보면 휴대용 집기 가운데 제일 큰 게 교자상이에요. 집들이나 명절을 제외하곤 쓸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집 인테리어를 할 때면 늘 교자상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따로 만들어야 했어요. 우리에겐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죠.” 이색적인 건 식탁과 소파뿐만이 아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그녀는 집 안의 모든 가구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직접 디자인했다. 안방과 아이 방, 그리고 다락에 하나씩 놓인 침대 역시 마찬가지다. 인형처럼 귀여운 딸 아민이는 상상에 따라 뭐든 될 수 있는 이 집에서 계단을 책상 삼아, 다락을 운동장 삼아 볼이 빨개질 때까지 뛰어논다.

    단출한 삶을 추구하는 부부는 인테리어를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것을 직접 만들어 쓴다. 바느질 솜씨 좋은 권희라의 인디언 텐트.

    단출한 삶을 추구하는 부부는 인테리어를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것을 직접 만들어 쓴다. 바느질 솜씨 좋은 권희라의 인디언 텐트.

    현관문 앞에 놓인 아이를 위한 나무 벤치는 남편이 만든 것이다.

    현관문 앞에 놓인 아이를 위한 나무 벤치는 남편이 만든 것이다.

    “혹시 <보이후드> 보셨어요? 그 영화를 보며 아이들에겐 집의 평수나 경제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추억의 공간이라는 정서적인 의미가 크죠.” 머지않아 초등학교 에 입학할 아이를 생각하며 부부는 또 다른 모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부부는 후암동 남산 자락 아래에 두 번째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 규모가 훨씬 더 작아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취미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지만, 우리 세 식구에겐 너무 커요. 아이가 크면서 살림살이가 늘다 보니 점점 더 감당이 안 되더군요. 새로운 공간에서 보다 더 자유롭고 기름기 없는 삶을 살기로 했어요.” 원룸 형태의 새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딱 절반 크기다. 살림은 더욱 단출해질 것이다. 부부는 이곳을 커뮤니티 하우스처럼 만들 생각이다. 경제 논리에서 벗어난 사람들 간의 소통 창구다.

    “반지하 구조의 1층은 남편의 작업실이 될 거예요. 같이 일하는 작가들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편하게 머물 수 있죠.” 그 위층은 인테리어 사무실로 쓸 예정이다. 작은 마당도 딸려 있다. “소규모 디자이너 집단을 만들려고 해요. 출력이나 마감재, 내부 재료 등 사무실이 없으면 하기 힘든 것들을 한 장소에 모으고, 회의실도 만들어 비슷한 계통의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거죠. 언제든 협업도 가능하고요.” 이 모든 과정은 머지않아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예정이다. 집 짓기 노하우를 담은 실용서가 아니라,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에세이집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두 번째 아지트는 또 어떤 모습일까? 봄이 되면 후암동 골목길엔 이들의 즐거운 상상이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김종대는 벤치 뿐 아니라 티 트레이와 액자, 그릇 등 대부분의 나무 소품을 척척 만들어낸다.

    김종대는 벤치 뿐 아니라 티 트레이와 액자, 그릇 등 대부분의 나무 소품을 척척 만들어낸다.

    부부 침실의 침대는 주문 제작했다.

    부부 침실의 침대는 주문 제작했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미혜
    포토그래퍼
    JEON TAEG 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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