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닝’ 전성시대

커플끼리 닮은 스타일로 빼입는 ‘커플 룩’은 더 이상 패셔너블하지 않다. 대신 멋쟁이 친구와 비슷한 스타일을 공유하는 ‘트위닝’이 대세다.

쌍둥이가 대세다! 제대로 말하자면, 쌍둥이처럼 보이는 스타일이다. 올가을을 위한 남성복 컬렉션 공개가 한창이던 1월 말 파리 풍경을 보자. 수많은 컬렉션 가운데 특히 인기가 높았던 곳은 로에베에서 두 번째 남성복을 선보인 J.W.앤더슨의 프레젠테이션 현장. 로에베 쇼룸에서 기자들에게 직접 컬렉션을 소개하던 디자이너에게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가죽 디테일과 셔츠 소재에 대해서만큼 많았던 질문이라면? 인상적인 이미지의 룩북에 관한 것! 앤더슨과 오랫동안 작업한 사진가 제이미 혹스워스는 닮은 모델 네 명과 함께 스페인 세고비아로 촬영 여행을 떠났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모델을 두 명씩 짝지은 뒤 쌍둥이 스타일로 촬영했다는 것. 일명 2 대 8 가르마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 모델들은 요즘 유행하는 ‘Twinning’ 그 자체였다.

각종 영어 슬랭과 비속어의 뜻을 알리는 ‘어번딕셔너리닷컴’에 ‘Twinning’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맨 먼저 외설적 정의가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뜻은 따로 있다. ‘친구들끼리 비슷한 옷차림을 하거나 쌍둥이처럼 스타일을 즐기는 것.’ 여성복 프리폴 컬렉션을 소개하는 룩북에도 ‘트위닝’ 컨셉이 도드라진다. 미우미우는 쏙 빼닮은 모델 두 명에게 셜록 홈즈나 보이스카우트 유니폼 같은 옷을 입혔다. 만약 모델 한 명이 등장했다면 그저 그런 이미지였겠지만, 쌍둥이 컨셉 덕분에 훨씬 흥미로운 비주얼이 완성됐다.

또 ‘쎈 언니’ 두 명이 함께 포즈를 취한 발맹, 파리 거리를 누비는 친구들의 모습을 포착한 끌로에, 유니폼처럼 똑같이 차려입은 오 주르 르 주르 등등. 한마디로 ‘트위닝’이 대세다. 사실 ‘트위닝’은 몇 년간 스트리트 패션으로 꽤 익숙했다. 일본 <보그>의 안나 델로 루쏘와 미국 의 지오바나 바탈리아는 수시로 비슷한 옷을 빼입고 패션쇼장 밖에서 사진찍히는 걸 즐긴다. 또 파리 <보그> 군단은 데일리 드레스 코드라도 있는 듯 늘 비슷한 팬츠 룩 차림으로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혼자 튀는 옷을 입는 것보다 친구끼리 비슷하게 입고 나서면 카메라에 포착될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새로운 유행을 퍼뜨리고 싶을 때, 혼자보다는 무리가 훨씬 효과적인 게 사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트위닝도 눈에 띈다. 지난해 <러브> 매거진의 편집장이자 마크 제이콥스의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그랜드는 인스타그램에 전형적인 ‘트위닝’ 이미지를 올려 화제가 됐다. 제이콥스와 똑같은 무지개 프린트의 프라다 모피 코트를 입고 셀피를 찍은 것(제이콥스는 안나 윈투어와 똑같은 프라다 모피 코트를 입은 적도 있다)!

소수만이 즐기는 패션계의 ‘트위닝’을 대중에게 알린 인물이 있으니, 주인공은 바로 미국 최고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10대 컨트리 여가수에서 앨범을 가장 많이 파는 팝스타로 성장한 그녀(지난해 11월 발매한 앨범 <1989>는 계속해서 신기록을 갱신하는 중)는 절친들을 만날 때마다 비슷한 옷차림으로 파파라치에게 포착되곤 한다. 친구 중 한 명인 칼리 클로스와 뉴욕 거리를 거닐 땐 트렌치 코트에 스키니 팬츠를 입고, 뉴질랜드 여가수 로드와 말리부 해변에선 셔츠에 검정 쇼츠와 스커트를 매치하는 식. 같은 아역 스타 출신 친구인 셀레나 고메즈와는 할리우드 스타답게 화려한 옷차림으로 만나고, <걸스>의 레나 던햄을 만날 때면 브루클린 힙스터처럼 변신한다. 패션의 규칙인 T.P.O.에 ‘Friend’를 덧붙인 ‘T.P.O.F.’를 따르는 셈. 각종 타블로이드가 앞다퉈 ‘테일러 스위프트의 BFF 패션’이라는 기사를 실은 덕분에 인스타그램에서 ‘#Twinning’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사진은 무려 200만 장을 넘어섰다.

이쯤 되니 ‘트위닝’ 컨셉의 광고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랑방의 올봄 광고에서 모델 팻 클리블랜드와 딸 안나, 커스틴 오웬과 딸 빌리 로즈는 서로 꼭 닮은 옷차림으로 팀 워커의 카메라 앞에 섰다. 남성복 광고에 등장한 런던 DJ 듀오 조시 퀸튼과 앤디 브래딘도 마찬가지. 리카르도 티시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에서 DJ를 맡았던 두 사람은 광고에 등장하기 전부터 비슷한 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늘 옷을 계획해서 입어요. 음악성만큼 비주얼도 중요하니까요.” 트위드 수트만 즐겨 입는 듀오 아티스트 길버트&조지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친밀한 사람들이 비슷한 스타일로 빼입는 것은 새로운 컨셉이 아니다. 그건 한반도의 수많은 ‘커플 룩’ 추종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학창 시절 우린 친구들과 똑같은 가방을 메거나 비슷한 스니커즈를 신었다(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성인이 된 뒤에도 친구들끼리 비슷한 스타일로 거리에 나설 땐 꽤 용기가 필요하지만, 약간의 부끄러움을 견딘다면 ‘유유상종 스타일’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서로의 옷장을 공유하면 옷이 두 배로 늘어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