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도심 속 현대 미술관이 미스터리한 원시 문명의 유적지로 변모했다.
인조 짚으로 엮은 황금빛 신전에 선 작가는
“성공이든 실패든, 이 전시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5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여는 양혜규를 만났다.

양혜규가 돌아왔다. 아름답고 슬픈 한 마리 코끼리와 함께. 2010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셋을 위한 목소리>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인생과 사랑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죽음에 이르는 병>)를 현실의 무대 위로 끌어 올렸던 양혜규는 이번엔 육지 동물 중 가장 덩치가 크다는 코끼리를 미술관 안으로 불러들였다. 2월 12일부터 5월 10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양혜규의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는 두 편의 소설에서부터 출발한다. 먼저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경찰로 일했던 조지 오웰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단편 <코끼리를 쏘다>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잔뜩 흥분한 코끼리가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제국 경찰은 그사이 안정을 되찾은 코끼리의 평온한 모습과 코끼리의 죽음을 구경하고자 몰려든 식민지 주민들의 기대에 찬 눈빛 사이에서 갈등에 빠진다. 주인공은 결국 코끼리를 쏘고 고통스러워한다. 전시 제목의 후렴구를 상징하는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힌 모렐이라는 남자가 아프리카 초원의 코끼리 떼를 상상함으로써 암담한 현실을 견뎌낸 후, 그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남은 생을 코끼리 보호 운동에 바친다는 내용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강자와 약자, 어느 쪽도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모순된 사회 구조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죄 없는 코끼리다.

두 소설에서 언급된 코끼리는 강인하지만 연약하다. 그리고 신비롭다. 양혜규의 작품 속으로 들어온 코끼리는 원초적이고 숭고한 모든 존재에 관한 커다란 은유가 된다. 코끼리는 자본에 위협받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문명에 의해 훼손되는 자연일 수 있다. 순수한 예술 정신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겠다. 탐욕스러운 사냥꾼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진짜 코끼리를 포함해 멸종 위기에 놓인 코끼리는 도처에 있다. 이 거대한 빌딩 숲 속에도. 다만 누구도 그 코끼리의 생사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난데없는 코끼리의 안녕보단 돈으로 환산한 상아의 값어치나 눈부신 장신구가 더 흥미롭다. 작가와 그 전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년 만에 열리는 양혜규의 대규모 국내 전시는 시작 전부터 이슈였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에 연이어 초대받은 세계적인 작가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데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두 번째로 개최하는 한국 작가 개인전이기 때문이다. 서도호의 <집 속의 집>이 누적 관객 수 10만 명을 넘기며 개관 이래 최다 흥행을 기록한 바 있는 만큼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양혜규는 지겹도록 이런 질문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그건 리움 측의 입장이고요. 작가와 기관의 작업은 중매결혼인 것 같아요.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맞으면 일을 시작하는 거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애가 될 수도 있죠. 제가 리움을 택한 건 제 나름대로의 욕심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2014년은 양혜규에게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일종의 꿍꿍이죠. 적어도 5월까진 전시 생각을 안 하겠다고, 스스로 강요하지 않겠다고 계속 얘기했어요. 자유롭게 생각이 실리면 괜찮은데, 숙제처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로는 이번 전시가 풀릴 거라 생각지 않았거든요. 그 기간이 끝나고 나면 어떤 전시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기왕이면 그 활동이 아시아에서 이뤄지길 바랐고요.” 지난 한 해 그는 지푸라기를 붙들고 살았다. 백지 위에 홀로 선 작가의 심정이란 게 늘 그렇겠지만, 작가가 움켜쥔 건 실체 없는 감정이 아닌 실제 지푸라기였다.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온 그는 모처럼 서울 집에 돌아와 마당 가득 짚단을 펼쳤다. 연건동에 작업실을 구한 여름부턴 짚풀 공예 장인을 모시고 본격적으로 짚풀 엮는 법을 배웠다. 현대미술의 최전방에서 지적이고 세련된 언어로 서구 모더니티의 문제점과 현대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져온 그가 짚이라는 토착적인 소재를 들고 나타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일본 가나자와의 어느 공원에서 짚풀로 감싼 큰 나무들이 조형물처럼 서 있는 모습을 본 이후, 양혜규는 짚 공예에 매달렸다. “짚이라는 것보다 ‘엮기’라고 생각했어요. 전부터 서울에 오면 배우고 싶은 기술 중 하나였죠.농사짓는 곳에서 볏짚이나 보리 짚으로 화문석을 만든다면, 열대지방은 야자수 같은 풀을 이용해바구니를 짜고, 서양에선 밀짚을 많이 쓰죠.” 매듭과 코바늘, 뜨개질 등 비경제적인 직조 방식은 ‘서울 근성’ 시리즈를 비롯한 이전 작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용해온 기술이다. “기술 자체는 굉장히 간단해요. 저에겐 그보다 의미 부여가 중요했죠. 예를 들면 왼새끼는 초상집에 걸려요. 금줄을꼬는 방향에 따라 신성과 일상의 구역이 구분되는 거죠.” 하지만 농경문화를 연상시키는 짚불은 원시 문명 사회부터 이어져온 수공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양혜규는 먼지 날리는 지푸라기 더미 속에서 새끼줄을 꼬고 엮고 또 응용해보는 끈질긴 실험을 지속했다.

1 인조 짚으로 만든 ‘중간 유형-아즈텍 피라미드에 부쳐’와 ‘중간 유형-털복숭이 드래곤 볼’. 2 왼쪽으로 돌아가는 바람개비 가벽 사이에 위치한 ‘창고 피스’. 3 ‘서울 근성-약장수’와 ‘서울 근성-씻고 닦고’. 벽화는 ‘만국 애도실’. 4 그라운드 갤러리의 전시 전경. ‘중간 유형-외발 사자춤’과 ‘중간 유형-보로부두르 사원에 부쳐’ 너머로 양혜규 작가가 서 있던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신용양호자 #240’이 보인다.

1 인조 짚으로 만든 ‘중간 유형-아즈텍 피라미드에 부쳐’와 ‘중간 유형-털복숭이 드래곤 볼’. 2 왼쪽으로 돌아가는 바람개비 가벽 사이에 위치한 ‘창고 피스’. 3 ‘서울 근성-약장수’와 ‘서울 근성-씻고 닦고’. 벽화는 ‘만국 애도실’. 4 그라운드 갤러리의 전시 전경. ‘중간 유형-외발 사자춤’과 ‘중간 유형-보로부두르 사원에 부쳐’ 너머로 양혜규 작가가 서 있던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신용양호자 #240’이 보인다.

그 결과물은 원초적 에너지를 지닌 미지의 문명 세계로 나타났다. 양혜규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그라운드 갤러리에 기원을 알 수 없는 전설 속의 왕국을 건설했다. 전시장이 아니라 발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적지를 산책하는 기분이다. 고대 멕시코 아즈텍 피라미드와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과 라라 튤립이라 불리던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한데 모인 가운데, 인도 방울과 조롱박, 조개껍데기 등으로 장식된 토템과 바다 연꽃, 털복숭이 드래곤 볼이 장승처럼 서 있다. 머리에 삼색 띠를 매단 중국 신부와 족두리를 쓴 사자탈도 보인다. ‘중간 유형’이라 명명된 이 황금빛 유적들은 모두 인조 짚으로 만들어졌다. “우연히 인조 짚을 발견한 게 저에겐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의미 부여가 확 되더라고요. 민속적인 의미가 따라붙는 짚이 과거 지향적이라면 인조 짚은 동시대적이죠. 제가 하고 싶은 건 전통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확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조 짚을 발견하면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전통을 모방한 현대 공산품으로 재구성한 왕국은 미스터리하다. 이 낯설고도 친숙한 풍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 리움이라는 매끈한 건축물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양혜규는 미술관의 현실적 구조 환경을 깨끗하게 지우는 대신, 자신의 작품들과 중첩시켰다. 에스컬레이터의 뼈대와 위층 블랙박스의 검은 바닥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빛을 쓸 때도 인공조명과 자연광을 동시에 이용했다. 미술관 안과 밖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전시장 바닥엔 얼룩덜룩한 그림자가 생겼다. “공간의 디테일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뒀어요. 아마 전시를 보는 분들은 조명을 잘못 썼다고 타박할 수도 있을 거예요.” 덕분에 새하얀 갤러리는 폐허가 된 쇼핑몰이나 이상한 신식 동굴, 황량하고 거대한 골짜기처럼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싼 벽화들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10년부터 세계 각지의 화랑과 지인들로부터 편지 봉투를 수집해 재구성하고 있는 콜라주 연작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신용양호자 #240’은 마치 암각화처럼 바위 절벽 같은 콘크리트 기둥 사이에 위치한다. 그 앞엔 신성한 우물 ‘정지井址’가 놓여 있다. 말만 우물이지 사실은 마른 괴목이다. 작가는 충남 공주까지 내려가 흙이 붙은 밤나무를 구해왔다.

그 기묘한 풍경 한쪽엔 짝이 맞지 않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군락을 이룬 ‘VIP 학생회’가 있다. 빅뱅의 최승현을 비롯, 미술가 박찬경, 주한 미국 대사 등 유명 인사들이 잠시 빌려준 소장품들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제일 크고 푹신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좀더 얘기를 나눴다. 양혜규는 지금 우리의 머리 위, 블랙박스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블랙박스를 가득 채우는 건 186개의 블라인드로 이뤄진 ‘성채’다. 일반 성인의 머리에서 배꼽에 해당하는 높이의 블라인드 담벽에 둘러싸인 이 작은 마을은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 안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오감여행이 시작된다. 동작 센서를 장착한 여덟 대의 소형 향 분사기는 각각 모닥불과 산안개와 숲과 바다의 향을 내뿜고, 여섯 대의 무빙 라이트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기계음도 들린다. 이와 같은 감각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몽환적이다. 추억 속을 거니는 것처럼.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이 양혜규의 이 같은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순수 박물관>을 완성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이스탄불에 있는 이 박물관은 사랑하던 여자를 잊지 못해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쓴 동명 소설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저도 알고는 있어요. 함부르크의 미술학교를 다닐 때, 미술사 교수였던 동료가 그 기사를 복사해 보여줬죠. 나중에 ‘순수박물관’에 가보기도 했고요. 인상적이었어요. 문학작품이 먼저 존재하고 그 뒤에 작가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문학 박물관이 세워지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책과 박물관이 동시에 디벨로프됐다는 점에서요. 기존 상하 관계와 다르죠.”

양혜규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현실, 원시 문명과 도시 사회, 수공예품과 공산품, 무명과 유명이 한데 뒤섞여 만들어낸 이 아이러니한 풍경 속에 오톨도톨하고 매끈한 촉감을 새겨 넣었다. 에스레이터와 쌍을 이루는 세 개의 가벽은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설치물이다. “제가 생각하던 촉각적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벽 안쪽 면에 돌가루 작업을 했어요. 사포에 쓰이는 재료예요. 반대로 바깥쪽은 아주 매끈하고요. 나중엔 관람객의 손때가 묻겠죠.” 작품은 아니지만 이 사선 가벽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람개비 모양의 가벽은 왼쪽으로만 돌아간다. 마치 서낭당 주변을 두른 금줄처럼 말이다.

양혜규는 “성공이든 실패든 이번 전시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전과 다르다. 일단 그의 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온 역사 속 인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항일운동가 김산이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녹색혁명가 페트라 켈리 등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운의 삶을 살았으나 끝까지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애썼던 이들 말이다. 작품에 구체적인 형태가 생겼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동안 모호한 형태와 빛과 소리, 냄새, 온기 등으로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연출해왔다면, 이번엔 그 정체가 분명한 조각상들이 생겨난 것이다. “제 작업에 대해 알고 있던 분들이 가장 놀랄 부분이죠. 전 그게 이번 전시의 의의라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저의 현주소예요. 왜 이런 구성적인 양식들이 툭툭 튀어나오는지 아직은 저도 모르겠어요. 이런 욕망의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저 스스로 질문해봐야 될 바예요. 물론 내부적으로 제가 일궈왔던 언어들을 계속 우려먹기 싫다는 반감은 있었어요. 좋게 말하면 제가 변화의 여왕이고, 나쁘게 말하면 죽어도 천착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자존심이죠.”

1 전시장 입구 경사로에 설치된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2 알루미늄 블라인드 구조물 ‘성채’. 3 바우하우스 시대의 미술가 오스카슐레머의 발레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상자에 가둔 발레’. 4 빅뱅의 최승현을 비롯, 유명 인사들의 수집품들로 구성된 가구들의 공동체 ‘VIP 학생회’.

1 전시장 입구 경사로에 설치된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2 알루미늄 블라인드 구조물 ‘성채’. 3 바우하우스 시대의 미술가 오스카슐레머의 발레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상자에 가둔 발레’. 4 빅뱅의 최승현을 비롯, 유명 인사들의 수집품들로 구성된 가구들의 공동체 ‘VIP 학생회’.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작가의 말보다 전시장 입구에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입구 경사로에 설치된 2톤 무게의 이 블라인드 설치 작업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한 작가의 선언문과도 같다. 수학적 계산을 통한 반복 배치 작업으로 작가의 개성과 주관을 최소화한 솔 르윗을 소환한 양혜규는 이 작고한 미니멀 개념 미술가의 86년 작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차용한 뒤, 500개가 넘는 블라인드로 기존 구조물의 면을 대체했다. 그리고는 작품 제목 그대로 원작을 23배 확대해 거꾸로 매달았다. “원본을 뒤집고, 전폭적으로 변조·확장시킴으로써 구성으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작가의 의지다. 그 모습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본 5차원 우주 세계 같다. 빛조차 빨아들이는 우주의 포식자 블랙홀과 달리, 투명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이 새하얀 덩어리는 무한대로 확장되는 화이트홀을 연상시킨다.

전시 오프닝 날, 망명자의 이삿짐처럼 구슬픈 ‘창고 피스’ 앞에선 한 외국인 남성의 낭독 퍼포먼스가 열렸다. 맥주 박스와 플라스틱 의자 따위들이 한데 묶인 이 잡동사니 속엔 작가의 초기작 23점도 포장돼 있다. 10여 년 전, 무명의 작가였던 양혜규의 초심과도 같은 작품이다. “제 몸도 못 가누는 젊은 작가들에게 작품이란 먹여 살려야 할 가족 같은 존재죠. 더 이상 이 작품을 끌고 다닐 수 없게 됐을 때, 폐기할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포장째 작품을 전시했어요.” 전시는 뜻밖의 화제를 모았고, 곧 작품도 팔렸다.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운명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확 펼쳐져 전시되거나 일정 기간 동안 조금씩 짐을 푸는 방식으로 공개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늘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다. 작품과 짝을 이루는 ‘창고 피스에 부치는 연설’은 창작자의 신념과 회의, 염려 등을 담은 목소리다.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준 남성은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조지 오웰이 총을 쏜 코끼리가 살았던 버마(미얀마)에서 왔다.

미술관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경사로 아래엔 버려진 듯한 살림살이들이 뒹군다. 세제와 저장 식품들이다. “어떤 면으로든 밖을 가리키는 손가락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 슬쩍 갖다놓은 거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시를 줄줄이 앞두고 있는 그는 곧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릴 샤자 비엔날레의 옥외 전시를 이번 리움 전시와 함께 준비해왔다고 했다. “제목은 ‘바람에는 팔이 없다’예요. ‘성채’ 안에 삽입된 비디오 에세이의 거의 끝 부분 문장이죠.” 베니스 전시 때 만든 이 영상은 철거가 예정된 아현동 재개발 지역의 저물녘과 비엔날레를 앞두고 텅 빈 공원의 동틀 무렵을 촬영한 것이다. 이름 없는 이웃들을 비추는 영상 밖에선 어떤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귀를 기울이면 코끼리들의 합창 소리가 들린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을 두고 살림을 살지만, 우리는 이름 없이 바람처럼 응결을 두고 웅웅 살림을 산다.(중략) 목소리에는 목이 없다. 바람에는 팔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