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콤플렉스

요즘은 영국 남자들이 대세다.
그래미를 휩쓴 샘 스미스부터 올해 최고의 연기를 펼친 에디 레드메인과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매너와 유머는 이들의 치명적인 무기로 알려진다. 열등감에 빠진 한국 남자가 그 매력을 질투했다.

유튜브 스타 ‘영국 남자’ 조쉬는 말 한마디에 선물 폭탄을 받는다. 요즘은 그의 친구들도 덩달아 스타다. 샘 스미스는 올해 그래미 주요 부문을 휩쓸며 토크쇼 섭외 1순위다.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는 50가지 매력을 발산하는 ‘미스터 그레이’ 제이미 도넌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다. <킹스맨>의 콜린 퍼스는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쫙 빼입은 신사로 변신해 ‘또다시’ 여심을 들썩거리는 중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인생 연기를 펼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컬러링 북까지 나와 여자들은 그의 잘생기고 못생긴 얼굴을 정성스레 칠한다. 신비주의에서 탈피한 에디 레드메인은 또 어떤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뒤늦게 매력에 빠진 여성 팬들은 얼굴도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고, 옷도 잘 입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엄친아의 얼굴 주근깨 수마저 세어볼 기세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델 데이비드 간디는 지난해 세계인명사전에 ‘미남’으로 등재, 영국 남자가 지구인을 대표하게 됐다. 베컴가의 둘째 아들 로미오 베컴은 지난 시즌 버버리 모델로 발탁되더니 전 세계 누나, 이모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그의 나이, 이제 열두 살. 요즘은 어딜 가나 영국 남자가 대세다.

한때 주드 로와 이완 맥그리거가 꽃미남으로 불리고 데이비드 베컴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영국 남자 판타지를 만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베니(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히들이(톰 히들스턴)라 불리는 두 영국 남자가 등장하고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악플 없는 존재들이다. 배짱 좋은 누군가가 만든 컴버배치의 해외 안티블로그는 되레 운영자 안티로 고생 중이다. 쌍벽을 이루는 톰 히들스턴은 한국 방문 이후 급속도로 팬이 늘었다. <토르: 다크 월드>로 내한 당시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준 그는 기꺼이 춤도 췄다. 지극정성 팬 서비스에 ‘호불호’가 갈리는 게 아니라 ‘호호호’ 소리만 늘었다. 남자들은 ‘히들 시들’해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1세대 로맨틱 영국 남자 휴 그랜트는 <한 번 더 해피 엔딩(The Rewrite)>이라는 영화로 <노팅 힐> 당시의 인기를 노린다. 그의 뒤에는 앤드류 가필드, 짐 스터게스, 역변을 피해간 니콜라스 홀트 등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일급 경계 대상들이 촘촘히 포진해 있다. 끝이 아니다. 톰 하디와 다니엘 크레이그는 할리우드 액션 스타 못지않은 터프함으로 영국 남자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제임스 맥어보이와 올랜도 블룸은 여전히 잘나간다.

 

TV 드라마에서도 영국 남자들은 이슈 메이커다. 핵폭탄 인기를 누리는 <왕좌의 게임>은 우수한 영국 남자 두 명을 배출했다. 먼저 작은 키도 매력으로 승화시킨 존 스노 역의 키트 해링턴은 어딘가 슬픔에 찬 눈망울과 듬직한 얼굴로 모성을 자극, 단번에 영화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패션계에서도 눈독을 들여 요즘 그는 ‘지미 추 맨’의 모델로도 활약 중이다. 광고를 보면 거만한 표정이 압권이다. 비운의 북부 왕 리처드 매든은 영화 <신데렐라>에서 백마 탄 왕자님으로 변신했다. 귀족 신드롬을 일으킨 <다운튼 애비>의 매튜, 댄 스티븐스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셰익스피어를 줄줄 외는 지성과 부드러운 호감형 외모를 갖췄으니 좀더 인기를 얻으면 가장 위험할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여자들은 왜 영국 남자들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걸까? <러브 액츄얼리>의 한 에피소드처럼 정말 영국 남자라면 그냥 좋은 걸까? 믿거나 말거나 영국 <텔레그라프>의 조사에 따르면 여자들은 영국 남자의 적절한 유머 능력과 구식일 정도로 철저한 매너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가끔 바보 같은 짓을 하거나 어설픈 농담을 던지는 등 편안하고 느긋한 성격을 최고 장점으로 꼽았다. 물론 악센트는 덤. 그러고 보면 컴버배치와 히들스턴의 인기 비결은 친근하고 수수한 모습 때문이다. 베네딕트의 전매특허 깜짝 사진 망치기 놀이나 히들스턴의 찾아가는 팬 서비스를 보면 첩첩산중 신비주의가 아닌 대중을 위해 준비된 스타라는 느낌을 준다. 그 흔한 스캔들과 황당한 사고 소식도 할리우드 스타들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지난해 여성 팬들에게 가장 기분 나쁜 소식은 컴버배치와 레드메인의 약혼 소식이었다). 여기에 데이비드 베컴같이 16년간 일편단심하는 애처가의 존재는 영국 남자를 더 위대하게 만든다.

최근 개봉한 영화 <킹스맨>은 이런 영국 남자 자랑의 결정판이다. 액션의 탈을 썼지만 그 속은 노골적인 예찬이다. 예를 들어 사무엘 L. 잭슨의 혀 짧은 소리와 콜린 퍼스의 똑 떨어지는 악센트 차이는 잔인할 정도로 계산적이다. 하층민 사고뭉치 소년이 스냅백 모자를 벗고 수트를 입더니 순식간에 신사가 된다는 건 교육을 가장한 ‘영국 남자는 타고난 매너남’이라는 자화자찬 속임수다. 사사로운 정 때문에 원대한 꿈도 포기할 만큼 연약해지는 감성적인 면모는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물론 누군가는 이 모든 걸 시기심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한국 남자의 확대 해석으로 볼 수 있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는 매너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같은 남자 입장에서 능청스러운 영국 남자가 질투를 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는 동물적인 본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크린과 안방극장, 서점에서 세상 여자를 다 홀리는 영국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김수미의 명곡이 떠오른다. “세상에 젠틀맨이 너뿐이냐”던 <젠틀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