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내 귀의 음향 장치

2016.03.17

by VOGUE

    내 귀의 음향 장치

    제대로 된 이어폰을 고른다는 건 괜찮은 남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디지털 칼럼니스트가 신중하게 고른 여섯 개의 이어폰을 소개한다.

    1 AKG의 ‘K3003’. 2 더 하우스 오브 말리의 ‘업리프트’. 3 아토믹 플로이드의 ‘슈퍼다츠 티타늄+리모트’. 4 젠하이저의 ‘IE800’. 5 뱅앤올룹슨의 ‘A8’. 

    최근 이어폰의 위상이 달라졌다. 가볍고 편리한 것은 물론, 100만원이 넘는 이어폰도 다수 등장했다. 용도별, 가격별, 기능별로 엄청나게 다양하기까지 하다. 헤드폰의 대체재를 넘어 이어폰 고유의 매력을 가진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하지만 제대로 된 이어폰을 고른다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음질 차이도 미세한 데다 디자인도 한정적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칼럼니스트로 10여 년간 숱한 제품을 평가해오며 어떤 이유에서든 뇌리에 남은 이어폰들이 있다. 여기 소개하는 이어폰들은 어쨌든 돈값을 하는 제품들이고, 내가 직접 돈을 내고 구입했거나, 혹은 앞으로 구입하고 싶은 제품들이다.

    첫 번째는 더 하우스 오브 말리(이하 말리)의 ‘업리프트’다. 말리는 디자인이 상당히 개성적인 데다 가격대도 대부분 3만~5만원대로 합리적이다. 음질은 중저역이 강해서 팝이나 힙합, 특히 레게 음악을 듣기에 좋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말리는 레게의 전설 밥말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브랜드니까. 음질뿐만이 아니다.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던 밥 말리처럼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수익금의 일부는 ‘원러브 재단’에 기증하기까지 한다. 흥겨운 음색과 무엇과도 다른 특별한 디자인, 그리고 제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할 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제품이다.

    말리의 업리프트가 예술가 타입이라면 아토믹 플로이드의 ‘슈퍼다츠 티타늄+리모트’는 B형 남자 같다. 이어폰에도 성별이 있다면, 가장 남성적인 제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산 이어폰 브랜드인 아토믹 플로이드의 최고급 모델인 슈퍼다츠 티타늄+리모트는 이름처럼 티타늄 재질이다. 왜 하필 티타늄이냐고? 왠지 강해 보이고, 남자의 피를 끓어 오르게 하지 않는가! 티타늄은 항공우주산업에 쓰일 만큼 스틸 소재보다 가볍고 내구성도 강하다. 이어폰 케이블은 무산소 구리선의 심선을 두꺼운 순은으로 코팅해 방탄 소재인 케블러로 견고하게 감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넥터 부분까지 24K로 도금했다. 음질 특성은 극단적이다. 고역과 초저역 등 다른 이어폰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낸다. 대신 중역대는 과감히 포기했다.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한심한 소리라는 반응도 있지만, 자신이 듣는 음악과 아토믹 플로이드의 음질 특성이 일치하면 천상의 소리를 낸다. 그리고 어쨌든 티타늄이다.

    이어폰의 끝판왕 AKG의 ‘K3003’젠하이저의 ‘IE800’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더 비싸고 독특한 제품도 있긴 하나 일반적으로 이 두 제품이 가장 비싸면서도 가장 대중적이다. 그중에서 K3003은 해상력이 좀더 좋고, IE800은 저역의 공간감이 더 좋다.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은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굳이 꼽자면 개인적으로는 AKG K3003 쪽에 좀더 무게를 싣고 싶다. 만약 이어폰에 100만원을 투자할 각오가 돼 있다면 말이다.

    뱅앤올룹슨의 ‘A8’은 지금까지 언급한 제품과는 사뭇 다르다. 위에 소개한 이어폰들이 귓속에 집어넣는 커널형이라면, ‘A8’은 귀에 거는 오픈형 이어폰이다. 오픈형 이어폰은 커널형에 비해 덜 답답하지만 음질이 떨어지고 귀에서도 잘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A8은 음질이 제법 뛰어난 데다 따로 귀걸이가 있어 착용감도 좋다. 뱅앤올룹슨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아름다운 디자인 덕분에 20여 년간 엄청난 사랑을 받아온 제품이다. 특히 고음역이 좋아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에 잘 맞는다. 사실 예전에는 15만원대의 가격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헤드폰과 이어폰 시장의 가격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음질을 최우선으로 친다면 그 어떤 이어폰도 실망스러울 것이다. 아직까진 가장 비싼 이어폰도 그 반값의 헤드폰 음질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어폰의 가장 큰 매력은 음질이 아니라 간편함이다. 만약 운동을 하면서도 음악을 듣고 싶다면?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땅한 제품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커다란 헤드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달리기를 하다 보면 자그마한 이어폰도 케이블이 흘러내리고, 땀에 젖으면서 고장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땐 무선 이어폰이 좋은 해결 방법이다. 자브라의 ‘스포츠 록스’는 전체 무게가 19g에 불과하고 다양한 크기의 이어젤과 이어윙을 제공해 귀에 밀착된다. 방수를 지원하며 한 번 충전으로 5시간 이상 재생할 수 있다. 별도의 유닛 없이 이어폰 헤드에 배터리와 블루투스 모듈을 모두 넣었기 때문에 무게감이 거의 없다는 점이 최고 장점이다. 음질도 중저역이 두툼해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도 다이내믹하게 즐길 수 있다.

      에디터
      글 / 김정철(디지털 칼럼니스트), 피처 에디터 / 이미혜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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