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vs. 아버지

근래 개봉한 두 영화 <국제시장>과 <허삼관>은 과거 살기 위해 분투하던 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희생과 헌신으로 완성된 한국의 아버지상. 외국인의 눈엔 어떻게 비칠까?
실제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서울에서 거주 중인 미국인 영화 기자 달시 파켓이 감상을 보내왔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는 오직 가족을 위해 일한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건강을 해쳐가며, 이국땅에서 기진맥진할 정도로 노동하며 말이다. 하지만 아들, 딸, 손주들에 둘러싸인 그의 노년을 볼 때 덕수의 가족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놀러 온 손주들은 덕수가 뻗은 손을 피해 할머니에게 달려가고, 장성한 자녀들은 목소리를 높여 모든 잘못의 책임을 덕수에게 돌린다. 심지어 가족들은 휴가 때 덕수만 홀로 집에 두고 떠난다. 덕수가 가족을 위해 했던 희생과 헌신은 상당한데 왜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좀더 친밀감을 느끼지 못할까. 덕수는 분명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많은 고난을 몸소 겪었다. 근데 그 헌신에 대한 보답은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건 항상 어머니였다. <미워도 다시 한번>과 같은 고전을 비롯해 비교적 근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까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영화와 소설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초점이 아버지에 맞춰지는 것 같다. 감독 겸 주연을 맡은 하정우의 <허삼관> 역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허삼관의 본래 직업은 변변치 못하다. 가정 하나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들 지경이다. 그래서 그는 피를 팔기 위해 지역 병원을 찾아다닌다. 매혈 행위가 건강에 좋을 리는 없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쳐 큰돈이 필요할 때 허삼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밖에 별로 없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을 위해 산다.

가족을 위해 인생을 사는 두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했지만 두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매우 다르다. <국제시장>이 근대사 20년간 일어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허삼관>은 우화의 느낌이 날 정도로 보편적인 동시에 허구적이다. <허삼관>은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했다. 이 소설은 독창적인 이야기와 희비극적인 분위기, 그리고 허삼관이란 캐릭터의 매력으로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는데, 높은 지능이나 기술이 아닌, 한 인간의 고집과 욕구에 집중함으로써 작은 마을에서 간신히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는 남자의 삶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하지만 허삼관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상이 아니다. 그에겐 종종 다른 것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우선순위다. 그리고 영화 <허삼관>에는 소설 속에 있었던 시대의 텍스트가 없다. 1950년대 말 사회 비판의 자유를 허하라 외치던 대약진 운동을 시작으로 중국은 1970년대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격변을 겪었다. 그래서 허삼관이 자신의 피를 팔러 나갈 때 그 행위는 실패한 정부 정책으로 인한 험한 세상에서 가족을 구하기 위한, 살아나가기 위한 몸부림이 된다. 정부는 재앙을 만들고 그 탓에 가난한 허삼관은 피를 팔아야 한다. 하지만 영화 <허삼관>은 정치나 정부에 대한 어떤 언급도 피하고 있다. 그저 허삼관의 이미지를 가난과 싸우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쓴 고집스러운 아버지로 제한한다. 물론 어쩌면 이 변용이 1970~80년대 한국인의 아버지를 더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허삼관은 유머러스한 터치가 가미된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국제시장>이 보여준 부성애의 묘사가 더 흥미로웠다. 한국전쟁 중에 아버지와 헤어진 덕수는 어린 나이부터 어깨에 무거운 의무를 짊어져야 했다. 그는 그 힘든 시기에도 공부해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해서는 꽤 그럴싸한 직업을 찾을 만큼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덕수 외에 없었기에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배움과 열정을 한쪽으로 제쳐놓는다. <국제시장>은 주인공의 엄청난 노력과 고통이 가족에 대한 헌신이었음을 증명한다. <허삼관>이 관객에게 남긴 가장 큰 인상이 육체적 고통이라면(영화의 끝 부분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국제시장>은 주인공 덕수의 희생에 대해 그동안 쌓인 감정적 서운함에 초점을 맞췄다. 덕수는 노년이 되어 씁쓸함을 느낀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의 삶을 버렸지만 아무도 그 희생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 덕수는 어느새 헌신에 중독되었다. 그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은 이제 희생뿐이다. 덕수 자신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영화는 결국 희생만으론 가족과 가까워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아버지가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단순히 음식과 돈만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영감을 주고, 멘토가 되어주고, 사랑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 관계엔 시간과 참을성, 서로의 노력의 축적이 필요하다. 신체적 근접성과 감정적 개입 역시 바탕이 되어야 한다. 덕수의 삶이 비극인 건 그가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나 많은 일을 하느라 가족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그를 아버지와 여동생으로부터 갈라놓았고, 끝없는 노동은 그를 그의 가족들로부터 감정적으로 떼어놓았다. 윤제균 감독은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인정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분명 아버지 세대는 요즘 젊은 세대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현재 한국인들이 부유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수의 비극은 지금 세대에게도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은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고통의 한계점에 도달한 건 어머니, 아버지들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조차 치열한 경쟁과 압박감을 경험하고 있기에 가족 관계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 지금 한국은 어쩌면 자신의 행복에만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결과는 덕수가 노년에 느낀 허무함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국제시장>이 무려 1,300만 장의 티켓을 팔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영화가 묘사한 쓸쓸함의 경험이 완전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모두의 이야기란 생각 때문이 아닐까. 희생의 아버지 트라우마는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서 유효하다.